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19화 (19/175)

19화

절강행(01)

청도방은 사제 장철상이 물려받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내가 떠난 뒤에 공표될 일이다.

공주 부도 감시 체제인 캣 타워에 적중 침투 도감청 시스템인 서생원 시리즈, 공중 기동 생체 드론인 청작일가에 대한 운영권을 넘겼다. 사부는 호신강기 때문에 원활한 통신을 할 수 없으니 사제가 맡을 수밖에 없다.

이만하면 어지간한 놈들이 수작을 부려도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사제 녀석에게 철박테리아가 함유된 물을 먹이기 시작했다.

마*카*원 베타 덕에 사제의 무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지만 어지간한 절정 무인을 동시에 셋을 상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 하지만 골격을 금속으로 코팅하고 철 이온을 축적해서 전투 시 피부까지 금속 코팅을 할 수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부에게도 권했지만 초극 고수가 된 자신을 갈고 닦기도 바빠 딴 곳에 한눈팔 여유가 없다며 거부하셨다.

나중을 위해 명령어만 입력하면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마*카*원 알파를 세팅해 두고 명령어는 사제에게 일러뒀다.

피풍의나 장포를 활용해 양력을 얻는 방법과 그걸 활용한 경공을 데이터로 만들어 마*카*원 알파와 베타에 입력해 두었다.

어쨌든 지금 내가 사부와 사제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돌아올 자리를 튼튼히 다졌으니 남은 일은 떠나는 것이다.

“절강으로 간다고?”

“예.”

“뭐 중원 각지의 초극 고수들과 얽혀야 한다니 신분 위장이 필수기는 하지.”

내 강호 지식의 원천은 사부, 내가 절강으로 가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낸다.

청도방 섬패 이도연의 이름으로 초극 고수와 마찰을 일으키면 그 뒷감당은 청도방이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뻔히 피해가 예상되고, 막을 방법이 있는데 쓰지 않으면 바보다.

“낭인으로 들어가 왜구 놈들의 피로 명성을 쌓겠다 그거요?”

사제도 한 마디 보탰다.

해적과 왜구의 습격이 잦은 절강이다. 그들과 싸울 사람이라면 과거 따지지 않고 받아들인다. 거기서 명성을 쌓으면 그게 나의 새로운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럴 생각이다.”

그리고 해적과 왜구를 상대로 명성을 쌓으면 절강 내에서는 일단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터. 절강 내 목표의 호의를 사기도 쉽고 접촉도 쉬워진다.

“그럼, 매달 금자 오십 냥은 어디로 보내면 되는 거요? 사형이 전장(錢莊)을 정하면 그쪽으로 보내면 되는 거요?”

“전장을 통해 전표를 사용하면 추적당할 위험이 있지. 때가 되면 내가 보낸 녀석이 찾아올 거다. 그때 금자로 쥐어 주면 된다.”

내 말에 사제가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응 시리즈를 가리키며 물었다.

“금 오십 냥이면 반 관이요. 세 근이 넘는 무게인데 매가 붙들고 날기에는 좀 부담될 텐데?”

“큰 녀석이 올 거다. 그리고 용공산 광산에서 나오는 광석을 모아다가 그 놈에게 보여주면 제가 필요한 광석을 알아서 골라낼 테니, 그것들을 모아 넘기면 될 거다.”

금광이라고 금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량이라도 다양한 금속을 구할 수 있으면 농꾼이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의 효율이 늘어난다. 그건 내가 사용할 무기의 성능이 올라간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허, 뭔 놈이기에 광석을 골라낸단 말이오?”

“나중에 보면 알아.”

사제 녀석과의 대화를 마치자 사부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못해도 달에 한 번은 소식을 보내 거라.”

“예, 사부님.”

“사형, 제대로 된 소식이 없으면 돈도 없소. 아주 자세히 알려야 할 거요.”

사제 녀석이 시건방지게 입을 놀린다. 한 대 쥐어박을 수밖에 없다.

캉!

“크윽!”

금속성과 함께 사제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내가 손에 금속 코팅을 하고 휘두르자 녀석도 같은 대응을 한 것이다.

“나 정도 위력을 내려면 반년은 쇳물을 들이켜야 된다 했다.”

하지만 철박테리아를 들이켠 지 아직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사제다. 철 이온의 축적량이 미미해 뼈마디도 제대로 코팅이 안됐는데 피부에 금속 코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사람 그만 괴롭히고 가려면 빨리 가!”

사제 녀석의 입에서 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 간다.”

녀석에게 웃어준 뒤 사부에게 절을 한다.

“사부님, 제자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씁쓸하게 웃는 사부를 뒤로 하고 청도방을 나섰다.

***

강소에서 절강으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를 타는 것이다. 남강부에 가면 장강을 오가는 큰 배들이 많으니 그 중 하나를 타고 남직례의 진강부까지 간 다음, 운하를 오가는 배에 올라타면 절강까지는 편하게 간다.

대신 좀 늦다. 강서 공주부에서 절강 영파부까지 못해도 2,000km, 오천 리에 달하는 물길이다. 아무리 큰 배라도 속도는 뻔한 것이니 못해도 한 달은 족히 걸린다.

그래서 육로를 택했다. 길을 모르면 할 수 없는 선택이다. 파머가 깨어난 지 8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생체 드론의 항공 촬영으로 인근 몇몇 성의 지도를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란 소리다.

육로로는 1,000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 내가 그 거리를 달려 영파 부도에 도착한 것은 공주 부도를 나선지 3일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공주 부도와는 비교가 안 되네.”

부도를 둘러싼 성벽도 훨씬 길고, 오가는 사람도 많다.

성문 앞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대충대충 사람들을 통과 시키던 성문지기들이 나를 보더니 창을 고쳐 잡는다.

때 안 타는 검게 물들인 무복에 검은 피풍의를 두르고, 허리춤에는 칼과 탄궁을 달고 있는 모양새가 좀 많이 수상해 보이기는 하지.

“멸왜단(滅倭團)에 지원하는 협객이오?”

“아, 예.”

성문지기 중 하나가 물어 고개를 끄덕였다.

“멸왜단에 지원하는 거면 부도 안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동문 밖에 있는 멸왜단 총타로 가야 하오.”

내가 있는 곳이 서문이니 성을 반 바퀴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다.

“통과해서 가면 안 됩니까?”

이곳으로 들어가 동문으로 나가면 거리를 단축할 수 있기에 물었다.

“호패나 로인 둘 중 하나라도 있으시오?”

“칼 밥 먹는 낭인에게 로인 발급해 주는 관청은 없지요.”

“호패도 없다는 말이구려.”

내 투덜거림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영파부, 태주부, 온주부 이 세 곳은 부도나 현도에 들어서려면 둘 중 하나는 있어야 되오. 왜구 놈들이 워낙에 극성이라 말이오. 괜히 동전 몇 문으로 포섭하려 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니 조심하시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럼, 호패가 없으면 멸왜단에 입단해도 현도나 부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 아닙니까?”

“멸왜단에 입단하면 호패 대신 쓸 수 있는 패찰을 내주니 그런 걱정은 마시오.”

내가 낙담하는 척 하자 성문지기가 친절하게 답해 준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럼, 수고들 하세요.”

내가 막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성문지기가 내 어깨를 잡았다.

“멸왜단 총타는 왼쪽으로 돌아가는 게 빠르오. 성벽 따라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북쪽 성벽 끝자락에 반쯤 가려진 장원이 보이는데 거기가 멸왜단 총타요.”

웃는 얼굴로 멸왜단 총타의 위치를 가르쳐 준다.

성문지기가 일러 준 대로 서문 성벽을 따라 걸었다. 성벽의 모퉁이를 돌자 문지기 말대로 저 멀리 장원이 하나 보였다.

장원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강을 끼고 만들어진 장원이라 자체 나루터가 있고, 쾌속선으로 보이는 배들이 여러 척 보였다.

장원 정문에 100명 이상의 무인들이 몰려 있었다. 다들 멸왜단에 입단하기 위해 온 자들이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서 입단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한 시진 정도 지나자 멸왜단 총타의 정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나왔다.

뭔가를 한가득 들고 나와 정문 옆 공터에 설치한다.

“내공을 익히지 않은 분들은 이쪽으로 모이시오.”

바닥에 대나무를 꽂아 놓은 쪽에서 외치는 소리다.

“발경(發勁)은 할 수 있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쪽이오!”

목검과 청석판이 가득 준비되어 있는 곳의 외침이다.

“다른 두 곳의 시험은 딱히 보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오.”

그리고 사람 몸통만한 통나무가 준비된 곳이다.

대충 봐도 알 수 있다. 대나무는 삼류, 청석판은 이류, 통나무는 일류의 무위를 측정하기 위한 것들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무위에 맞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류 무인들이 육 할은 되어 보였고, 삼류가 삼 할쯤 되었다.

나는 일단 통나무를 가져다 놓은 곳으로 향했다. 나 빼고 열셋, 낭인으로 보이는 것은 삼십 대로 보이는 칼잡이 둘뿐이다. 다른 열하나는 이십 대로 무복의 질이 좋은 것이 나름 명문의 제자들 같았다.

이제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멸왜단 총타에서 뒤늦게 한 명이 나왔다.

“이중 백 관 철궁에 도전할 사람 없소?”

그가 두 개의 쇠막대를 들어 보이며 외쳤다.

백관 철궁 시험.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고수 판별법이다.

“그거 내가 해봐도 되오?”

청석판을 쌓아 놓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거한이 손을 들고 묻는다.

“물론이오.”

멸왜단의 인사가 두 개의 쇠막대를 하나로 만든 다음 활시위와 함께 건넸다.

시위가 풀린 철궁을 받아든 거한이 철궁의 한쪽 끝을 바닥에 댄다.

“하압!”

크게 기합을 내질러 철궁을 눌러 시위를 걸었다.

“후우, 후.”

심호흡으로 숨을 고른 다음.

“크아압!”

기합과 함께 시위를 당긴다.

“오오!”

“저걸 당긴다!”

“대단한 힘!”

“휘어진다! 휘어져!”

철궁이 거한의 힘에 의해 크게 휘어진다. 그렇게 철궁이 만작 상태가 되자, 거한이 시뻘게진 얼굴로 시험관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통과 아니오?”

“시위를 당겼으면 놓아야지 않겠소?”

철궁을 건넨 시험관이 태연하게 답했다.

“지금, 빈 활의 시위를 놓으라는 거요?”

거한이 벌게진 인상을 더욱 벌겋게 만들며 물었다.

“백 관 철궁 시험에 대해 잘 모르나 보오?”

시험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

거한이 대답이 없자 시험관이 말을 이었다.

“백관 철궁 시험은 고수를 뽑는 시험이지, 힘이 센 역사(力士)를 뽑는 시험이 아니오.”

“익!”

거한이 굳게 잡은 시위를 놓았다.

팅! 차캉!

공기를 튕기는 소리와 함께 금속성이 일며 철궁이 두 개의 쇠막대가 되어 허공으로 튀었다.

“악!”

거한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손을 감쌌다. 당연하다. 백 관의 장력을 지닌 활을 빈 상태로 격발했다. 갈 곳 없는 백 관의 힘이 철궁을 때리고도 여력이 남아 거한의 손을 후린 것이다.

백관 철궁 시험은 백 관의 장력을 가진 시위를 당기는 힘을 보는 것만이 아니다. 활의 만작이 만들어내는 백 관의 힘. 공 격발을 통해 활대를 후려치게 되는 이 힘을 흘려버리고 해소할 수 있는 기량을 보는 것이다.

백 관의 경력을 만들어내는 힘과, 그 정도의 힘이 손안에서 요동칠 때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보는 것이 백관 철궁 시험인 것이다.

“아쉽게도 실패하셨구려.”

시험관이 결과를 통보하고 두 개의 쇠막대로 변한 철궁을 주웠다.

“다른 도전자는 없으시오!”

시험관이 철궁을 다시 하나로 합치며 외쳤다.

나서는 자가 없었다. 더 이상 구경할 건 없다는 소리니 내가 나선다.

“그 철궁 장력이 백 관짜리 맞습니까?”

“호, 소협은 지금 우리 멸왜단이 치르는 시험의 공정성을….”

“그냥 백 관짜리 맞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그 앞에 서자 시험관이 미소를 지으며 철궁을 건넸다.

철궁을 받기 무섭게 시위를 걸고 최대한 당긴다.

팅!

한 번 당겼다 놓는다. 철궁의 장력이 반동으로 변해 손아귀에서 요동치지만, 이 정도도 해결 못하면 혈수탈명에게 진작 맞아 죽었다. 아니 그 전에 흥국현의 패권을 놓고 싸운 흑조회의 칼잡이도 못 이긴다.

팅, 팅!

두 번 더 공 격발을 한다.

= 백 관 안 되는 듯한데?

- 367.5kg. 백 관에서 이 관 모자란 구십팔 관입니다.

시위를 놓고 허공을 두드리는 내 문자질에 농꾼이 답했다.

“구십팔 관, 백 관 철궁 시험이라기에는 이 관 모자랍니다.”

시험관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