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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5화 (15/175)

15화

준비행(15)

“타합!”

전력을 다한 벽운섬전도의 절초가 드러난 혈검의 빈틈을 향해 쏟아진다.

우르르릉!

공간을 흔드는 울림이!

쩌쩌쩡!

벽력이 되어 그대로 혈검을 후려친다.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혈검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났다.

“과연 초극 고수!”

들어간 공격 하나 없다. 혈검이 내 공격을 다 막아낸 것이다. 입으로는 감탄을 터트리며 발로는 바닥을 박차, 튕겨 나가는 혈검을 향해 내달린다.

“아우!”

분풍이 경악성을 내지르며 달려든다. 분풍의 쌍겸이 강기를 머금고 나를 덮쳐들었다. 하지만 분풍은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다.

번쩍!

푸르른 섬광이 분풍과 나 사이를 갈랐다. 분풍이 주춤하는 순간 새로 피어난 섬광이 분풍을 덮쳐든다.

쾅!

분풍이 뒤로 물러서자 섬광의 주인이 그 앞을 막아선다.

“네 상대는 나다!”

사부다.

내가 미쳤다고 아무 대비 없이 초극 고수 둘의 면전에 나섰을까.

사부라는 든든한 보호자가 옆에 있기에 나선 것이다.

어쨌든 분풍은 사부에게 맡겨 두고 나는 혈검을 몰아붙인다.

“네놈! 초극 고수였더냐!”

혈검이 이를 갈며 검을 휘둘렀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진짜 초극 고수였으면 내 칼이 지금 강기를 뿜고 있겠지.

콰콰쾅!

혈검을 몰아붙이는 내 칼은 지금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일견하기로 강기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위력!

“크흑!”

혈검이 내 도격에 밀려 연신 뒤로 물러났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끝이다. 하지만 세상사 그리 쉽지 않는 법.

- 3, 2, 1, 0!

머릿속에서 연신 울리던 카운트가 끝난다. 그와 동시에 나는 주저 없이 뒤로 물러났다.

“무슨….”

혈검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봤다. 몇 번의 칼질만 더 이어졌으면 끝장날 상황에서 자신을 몰아붙이던 상대가 갑작스레 물러났으니 당연했다.

“이 무슨 개수작이냐!”

혈검이 내 행동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노성을 내질렀다.

아쉽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혈검의 손에 들린 검은 아직도 강기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들고 있는 칼이 빛을 잃고 도기만 뿜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 재충전에 들어갑니다. 소요 시간 2분.

초극 고수와 지겹도록 싸워야 하는 것이 내 미래. 절정 무인인 내가 당장 초극이 되는 수도 없다.

그러니 절정 상태로도 초극 고수와 싸울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위해 별의별짓을 다한 것이 금정산에서의 반년이다.

강기나 도기나 에너지의 일종이고 벽력섬전도는 이름 그대로 쾌도에 뇌기가 가미된 패도. 그래서 칼날에 전압을 걸어 봤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일정 이상의 전압이 걸리자 뇌기의 성질을 가진 도기에 변화가 일어났다. 계속되는 실험으로 도기의 기운이 폭증하는 지점을 찾고, 그 기운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았다.

문제는 그걸로 강기를 상대할 수 있느냐다. 오늘 사부와 만나 시험을 해봤고 결과는 성공, 그래서 혈검을 상대로 당당히 나설 수 있었다.

혈검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결정타를 넣을 순간까지 얼마 안 남은 상태! 그런데, 망할 배터리 용량이 다 된 것이다.

“시간을 줄 때 몸이나 추스르지?”

혈검을 보고 아량을 베풀 듯 말한다. 시간을 끌어야 하기에 하는 소리다.

“나 혈검을 어떻게 보고!”

분노로 이성을 잃은 혈검이 검을 꼬나쥐고 덤벼든다.

씨발, 좀 있다 싸우자고!

마도에게 입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상당한데 아직 검강은 팔팔하게 유지되고 있다.

도기로 검강을 상대한다? 몇 번은 막겠지. 하지만 결국은 칼과 함께 동강난다.

- 90초 남았습니다.

그러니 바로 피풍의를 펼치고 뒤로 눕는다.

휭!

코앞으로 지나가는 검격을 보며 발로 바닥을 박차니 누운 몸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순식간에 삼 장의 거리를 벌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하.”

뒤따라 붙지 않고 멈춰 선 혈검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것이군. 그런 것이었어!”

혈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강기가 아니군. 쓰는데 제한이 많은 그런 것이렷다?”

흑도의 늙은 생강들 진짜! 눈치는 뭐 같이 빠르다.

- 63초.

“어떻게 버틸 위력은 나오지?”

- 예. 하지만 지금 전력량으로는 반절의 위력으로 15초가 한계입니다.

“플랜 B로 간다.”

“죽어라!”

검강을 앞세운 혈검의 검격이 날아든다. 이에 나는 전에 비해 시원찮은 빛을 내는 칼로 맞이했다.

캉, 카카캉!

위력에서 밀리니 그 충격이 고스란히 칼을 타고 몸으로 전해진다.

발을 움직여 충격을 흘리고 칼을 휘둘러 검격이 가져다주는 압력을 분산시킨다.

그럼에도 몸을 타고 흐르는 충격은 적지 않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연격이 나를 수세로 몰아붙인다.

“젠장!”

힘에 밀려 균형을 잃는다. 몸이 뒤로 넘어가는 순간 붕 떠오른 왼발의 감각이 사라진다.

그 틈을 놓칠 혈검이 아니다.

“끝이….”

결정타를 날리려던 혈검의 몸이 갑자기 멈칫했다.

왼발의 감각이 돌아옴과 동시에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쩌어엉!

공간을 터트리는 벽력성과 함께 혈검의 전신이 피보라를 뿌리며 뒤로 튕겨 났다.

“뒈져라!”

그런 혈검을 쫓으며 칼을 휘두른다.

카카캉!

아나 이 인간, 또 막아!

급히 뒤로 물러났다. 혈검이 든 협검에 서린 강기가 아직 멀쩡했다.

“하아, 하!”

혈검이 전신에서 피를 뿜으며 숨을 몰아쉰다.

“두 번은 안 통하겠지?”

왼발을 움직인 건 농꾼. 내공이 실리지 않은 발길질이라 혈검은 막지도 않았고, 그 덕에 10만 볼트의 전기 충격에 노출되었다.

- 다음 시도에는 다리가 잘릴 확률이 80% 이상입니다.

“망할 호신강기, 도기를 절반 이상 상쇄시켰어.”

전기 충격에 근육 경직이 일어났을 때 끝장냈어야 했다.

-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이제 도망치면서 충전 시간을 벌면 됩니다.

내가 몸을 빼면 혈검은 분풍과 협력해서 사부에게 덤빌 가능성이 크다. 농꾼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다치고 지쳤어도 명색이 초극 고수라 그건가?”

사부의 느긋한 음성, 고개를 돌리니 허리에 칼을 차고 팔짱을 끼고 있는 사부가 보였다.

사부가 상대하던 분풍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못 보던 시체 하나가 형편없이 난자된 몰골로 피 웅덩이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더 이상 하기 힘들면 내가 상대하마.”

사부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제자가 마무리 하지요.”

“크큭, 이것들이 나 혈검을 다 잡은 고기 취급하는구나!”

혈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면 다 잡은 고기 맞지? 아니라 여기시면 도망이라도 쳐 보시던가?”

내가 뚱하니 답하자 혈검이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다.

- 충전 완료.

우우웅!

농꾼의 보고와 함께 내 칼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혈검은 끝까지 검을 휘둘러 저항했지만 이미 입은 상처가 컸다.

검강을 유지할 공력은 있었지만 그걸 휘두를 근육을 다친 탓에 검격의 날카로움이 사라진 상태. 결국 내 칼에 목이 떨어졌다.

“이제 댁들만 남았는데, 어쩌시겠나?”

파룡당의 중진들을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나는 흑도인이오. 흑도의 율법을 따를 것이오!”

한 명이 나섰다.

“그것이 흑도인의 도리.”

“흑도의 호한으로 율법을 따라야지오.”

그 뒤로 줄줄이 나선다.

“사부님, 어쩌시겠습니까?”

사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혈검이 아닌 마도를 저격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일 아니냐?”

사부가 뭘 물어보냐는 듯 답한다.

“신입들 뭐하고 있나?”

내가 파룡당의 중진들을, 아니 이제 청도방의 허리가 되어야 할 자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청도방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부를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당연한 수순이다. 혈검과 마도가 서로 무기를 빼들고 목숨을 노리고, 분풍이 소당주의 목을 벤 그 순간부터 이들의 마음은 파룡당에서 반쯤 떠났을 터였다. 그리고 내가 등장하면서 파룡당에 망조가 들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복종할 마음이 없었다면 나와 혈검, 사부와 분풍의 싸움이 시작됐을 때 슬그머니 떠났을 터고, 실제로 그렇게 떠난 자들도 몇 있다.

떠난 자들은 모두 저승으로 갔다. 괜한 후환을 남겨 둘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와 사부가 파룡당에서 싸우고 있을 때 사제와 맹방의 인사들이 한 일이 그것이다.

파룡당 인근에 매복하고 있다가 빠져나오는 자들을 참살했다.

어쨌든 이렇게 파룡당은 사라지고 우리 청도방이 공주 부도의 패권을 쥐게 되었다.

***

안길 부도 복로방 방주 집무실.

“자석산에 아직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예.”

복로방주의 물음에 문사 차림의 중년 사내, 복로방의 책사 노릇을 하는 관필이 답했다.

“그럼, 용공산 쪽은?”

“그쪽도 조용합니다.”

“파룡당 쪽에서 채광 기술자들과 접촉한 것은 확실하지?”

복로방주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예. 찾아온 자들이 파룡당의 무사들임을 확인하고 채광 기술자들에게 붙여 놓은 눈들을 철수시켰습니다.”

관필이 확신을 했다.

“파룡당의 당주들이 그렇게 참을성이 많은 자들이 아닌데….”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금광이다. 어떻게든 빨리 일을 진행시켜 그 소유권을 확실히 해야 할 일 아닌가.

“흥국현의 흑도 세력과 이야기가 잘 안된 것이 아닐까요?”

복로방주가 의아해 하자 관필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거기 흑도 세력이 뭐라고 파룡당의 제안을 거부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

복로방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흥국현의 흑도는 청도방인데, 거기 방주가 제법 강직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필은 쉽사리 자신의 의견을 죽이지 않았다.

“누군데?”

복로방주가 심드렁히 묻는다.

“패력도 ‘조문형’이란 자입니다.”

“초극 고수야?”

들어보지 못한 자라 다시 묻는다.

“절정이랍니다.”

관필의 대답에 복로방주는 기가 찼다.

“파룡당에 초극이 몇이냐?”

“셋이지요.”

“그런데 절정 나부랭이가 개겨? 파룡당의 그 인간들이 보살인줄 알아!”

복로방주가 언성을 높였다.

“방주, 흑영대에서 올라온 급보입니다!”

집무실 밖에서 수하가 외쳤다.

방주가 고개를 까닥이자 관필이 말했다.

“들어오게.”

수하가 들어 보고서를 올리자 관필이 재빠르게 훑었다.

“파룡당에서 드디어 움직였다는 거냐?”

“파룡당이 현판 내렸답니다.”

“뭐?”

관필의 말에 복로방주가 눈을 치켜떴다.

“파룡당 현판이 내려가고 청도방 현판이 올라갔답니다.”

“무슨 개소리야!”

“청도방주가 공주부 지역 흑도들을 규합하여 파룡당 총타를 들이쳤답니다. 파룡당 당주 셋이 그 자리에서 죽고, 무릎 꿇기를 거부한 자들은 전원 목을 매달았답니다.”

“청도방주가! 청도방이 어디 붙어 있는 곳인데!”

“방금 말씀드렸던 흥국현 흑도입니다. 그곳 방주가 제법 강직하다 말씀 올렸던….”

“절정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초극 고수 셋을 때려잡아!”

“초극 고수인 것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야, 이러면 용공산 금광 어떻게 되는 거야? 자석산 하고 같이 파룡당에 흘리면 저쪽이 자석산을 미끼로 간을 볼 거라 했잖아!”

“방주. 그건, 파룡….”

“저쪽이 자석산을 개발하는 척하면 그때 우리는 용공산 금광을 개발하면 된다며! 하나씩 갖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파룡당에서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갈 거라며!”

“방주, 지금 용공산 금광이 문제가 아닙니다. 파룡당이 망했습니다. 전쟁 한다는 소리 소문도 없이요! 이게 뭘 뜻하는지 모릅니까?”

“파룡당보다 더 거북한 이웃이 생겼다는 말이잖아!”

“파양호 수채가 나서기 전에 우리도 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파룡당처럼!”

“야, 우리 복로방이 파룡당처럼 만만한….”

“파룡당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치본 거 아닙니까? 용공산이 우리랑 더 가까워도 어쨌든 파룡당 세력권인 공주부 관할이니!”

관필이 현실을 왜곡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였다.

“어쩌면 좋을까? 계책을 내놓게.”

“일단, 파양호 수채에 연락을 하지요. 그리고 수채의 보증 아래 불가침 조약을 맺는 겁니다.”

“젠장, 또 어마어마하게 뜯기게 생겼어.”

파양호 수채에서 공짜로 도와줄리 없었다.

“망하는 것보다 돈 뜯기는 게 백배 낫습니다.”

***

복로방에 투입된 서생원들이 확보한 영상에 기가 찬다.

자석산과 용공산 금광의 일이 복로방의 수작이었다니.

파룡당 놈들 알고 보니 정말 불쌍한 놈들이었구나.

“사부님, 용공산 금광의 일은 뒤로 미루는 게 어떻습니까?”

어쨌든 청도방에 나쁘지 않은 분위기다.

“복로방과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서 파양호 수채의 관심을 끊자는 말은 네가 한 거다만?”

사부의 말대로다. 용공산 금광을 복로방과 공동 개발해서 사이좋은 이웃이 되자는 계책은 내가 꺼낸 말이다.

하지만 복로방이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나올 것을 안 지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왜 온전히 손에 들어올 이익을 나눈단 말인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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