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준비행(07)
호검방의 정예 열다섯과 호검방주, 나. 총 열일곱이 관에서 빌린 쾌속선에 올랐다.
“방도들을 좀 더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소?”
호검방주의 말이다. 협조하기로 한 이상 협조한 테를 왕창 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괜히 머릿수 많아지면 흉수가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 챌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도에 가기도 전에 요격 당할 수 있지요.”
머릿수 많으면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도로 가는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리고 우도 분타의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하긴, 연락도 없이 몰려오면 파룡당에서 괜한 오해를 할 수도 있겠구려.”
우도까지 물길은 대강 육백 리. 흐르는 강을 따라 내달리는지라 호검방주의 장담대로 해 떨어지기 전에 우도에 당도했다.
관의 쾌속선에서 무인들이 우르르 내리자 포구를 오가던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잠시 후 포구를 담당하는 파룡당의 무인이 달려왔다.
긴말 할 것도 없었다. 파룡당 내당주의 패찰을 내세운다.
“내당주의 명을 받은 흥국 청도방의 이도연이다. 이쪽은 내당주의 협조 요청을 받으신 석성 호검방주님과 호검방 정예들이다. 급한 일이다. 분타주를 뵈어야 하니 서둘러라.”
안내가 한 명이 붙고, 분타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명이 먼저 말을 타고 달려갔다.
포구에서 현도의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검문을 거쳐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파룡당의 무인이 붙어 있으니 바로 통과다.
분타로 들어서자 안내가 바뀌었다. 호검방의 정예들은 다른 곳으로 안내 되었으며, 호검방주와 나만 분타주의 집무실로 안내 되었다.
“무기를 맡겨 주시겠습니까?”
집무실 앞에 선 파룡당 분타 무인의 요청에 호검방주가 인상을 썼다.
“맹방의 수좌를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호검방주님 우도 분타주께서는 전후 사정을 모르니 조심하실 만도 하지요.”
나는 군말 없이 내 칼을 넘겼다.
그리고 몸 여기저기에 감추고 있던 투척용 비수와 단검들도 몽땅 꺼냈다.
부무장으로 단검 한 자루만 내놓는다면, 석성 분타 무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호검방주가 습격자를 떠올릴 수도 있으니 부려 놓은 수작이다.
내 행동에 호검방주가 바로 자신의 검을 맡겼다.
“들어가시지요.”
그제야 파룡당 무인이 집무실 문 앞에서 물러났다.
호검방주와 내가 집무실로 들어서자, 얼굴에 자잘한 상처가 한가득인 사십 대의 사내가 우리를 맞이했다.
“파룡당 우도 분타를 맡고 있는 시전악이요. 청도방 소방주가 우리 내당주의 패찰을 들고 그 대리를 자처하고 있는 것을 내 어떻게 받아들여야겠소?”
자기 이름을 말하기 무섭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청도방은 파룡당의 맹방이 되기 위한 협의가 오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귀당의 내당주는 그 합의의 마지막 조절을 위해 본방을 찾는 중이었고요.”
“본론만 간단하고 정확하게 하시오.”
“본방으로 오시는 도중 습격을 받으셨습니다. 동행하던 정예 스물은 물론이고….”
호검방주에게 늘어놓은 이야기를 똑같이 꺼냈다.
“…….”
우도 분타주는 입만 크게 벌리고 무슨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놀란 것이다. 내당주를 비롯하여 독심쌍도와 풍랑인도에 파룡당의 정예 스물, 어지간한 지역 흑도는 짓밟을 전력이다. 근데 그런 전력이 짓밟힌 것이다.
“석성의 일은 내가 말하겠소.”
호검방주가 나섰다.
“청도방의 소방주가 당도하기 전 귀당의 석성 분타는 흉적의 습격을 받아 분타주와 지휘부가 몰살을 당했소. 본방이 맹방의 의리로 그 뒷수습을 하고 있을 때 청도방 소방주가 당도하였소. 석성 분타가 당했으니 다음 목표는 우도 분타가 유력하다 판단하여 맹방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만사 젖혀 놓고 지원을 하러 달려 온 거요.”
‘그런데 이따위 대접이냐?’라는 것이 호검방주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흑도방파의 주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지금 호검방은 파룡당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 그런데 저렇게 당당하다니. 저건 나중을 위한 포석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호검방은 이 일에 무관하니 그렇게 당당하게 행동했다. 호검방은 오직 맹방의 의리로 움직였다.
우도 분타주가 뜻밖의 소식에 놀라 당황하고 있을 때 재빨리 그런 인식을 박아 넣으려는 것이다.
“영도와 흥국에서도 전력들을 모아 출발하였을 겁니다. 분타의 단독 전력으로 흉적을 막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큰일은 전서구로 먼저 알려 줬어야 하는 거 아니오?”
“석성 분타의 전서구가 난리 통에 다 죽은 것을….”
“잠깐, 그럼 영도에서 소식이 없었다는 말이 되는데?”
내가 호검방주의 말을 끊었다.
“이거 영도 분타도 당했다는 방증 아니오.”
호검방주가 놀란 눈으로 내 말을 받는다.
영도에서 우도까지 하늘을 가로지른다면 이백 리 길 정도. 전서구가 제때 떴다면 이때껏 도착하지 않을 리 없다.
“당장 다른 분타에 전서구를 보내시오! 파룡당 본당에도 지금 상황을 알리고!”
“밖에 누구 없느냐!”
호검방주의 호통에 우도 분타주가 그 뜻을 따라 당장 목청을 높였다.
잠시 후 파룡당 본당은 물론 각 분타로 보낼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후.
“흥국 청도방주와 영도 흑권회주(黑圈會主)….”
“빨리 모셔라!”
수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도 분타주가 외쳤다.
사부도 도착했으니 사제 녀석만 오면 되는군.
***
사제가 파룡당 우도 분타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정오쯤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중환자인 내당주와 동행했단 말이오!”
우도 분타주가 노성을 내질렀다. 사제와 청도방 정예들과 함께 오던 혈수탈명이 이동 중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한 것이다.
“흉수가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핵심 전력이 다 빠진 본방에 내당주를 그냥 두고 와야 했단 말입니까?”
사제가 눈 똑바로 뜨고 우도 분타주를 바라보았다.
“내당주께서 돌아가신 일은 안타까우나 분타주께서 잘못하셨소이다.”
“청도방의 옥안쾌도가 내당주를 해한 것이 아니지 않소. 화를 내려면 이 일의 원흉에게 내야지.”
“분타주, 너무 흥분하셨소.”
영도 흑권회주는 물론이고, 석성의 호검방주, 우도의 풍운방주까지 사제를 두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모인 일곱의 절정 무인 중 청도방 소속이 셋이다.
당장 일 터지면 가장 도움이 되는 전력이 청도방이다. 현 상황에 가장 적극적인 곳도 청도방이다.
흑권회주와 호검방주는 청도방과 한 배를 탄 처지고, 풍운방주는 자연스레 분위기를 따랐다.
“음. 내 너무 흥분했네. 괜한 탓을 했어. 자네 잘못이 아닌데. 내 사과함세.”
우도 분타주도 분위기를 읽는 눈치가 있어 고분고분 머리를 숙였다.
공식적으로 청도방은 궁지에 몰린 상태. 자신의 세력권에서 파룡당의 핵심 인사 셋이 죽고, 정예 스물이 죽었다.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파룡당이 책임을 물을 상황. 여기에 파룡당 분타주가 청도방 핵심 인사를 겁박한다면 청도방이 이를 파룡당의 뜻으로 곡해할 수도 있었다. 당하기 전에 친다 하면서 칼을 뽑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도 윗분들이 계신 곳에서 순간의 억울(抑鬱)을 참지 못하고 목청을 높인 점 사죄드립니다.”
사제 녀석이 분타주와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당주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겼습니다. 모든 게 용공산의 … 탓이라 하셨습니다.”
“용공산의?”
“알 수 없는 말을 남겼군.”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못들은 것이오?”
그 연유를 모르는 사람들의 인상을 쓰게 만드는 유언이었다.
“청도방주께서는 짐작 가시는 일이 없으신지요?”
흑권회주가 물었다.
“내 큰놈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소. 그래서 파룡당과의 협의 내용은 잘 모르오.”
사부가 내게 떠넘긴다.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파룡당 본당에 연락해 보심이 어떨까요?”
모르면 알만한 곳에 물어야지 않겠는가.
또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갔다.
우도 분타에 모인 세력은 원래 그곳의 주인인 파룡당 우도 분타를 제외하고 넷. 각기 다른 지역의 흑도 정예들이었다. 그래서 각기 사방의 하나를 맡아 경계하기로 했다. 절정 고수의 수도, 정예도 가장 많은 청도방이 정면을 맡고, 파룡당의 우도 분타는 중앙에서 대기하는 구도가 되었다.
밤이 되어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왔다. 파룡당 총타에서 소식이 온 것이다.
각 세력의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다.
“공주 남부의 분타들은 회창에 전력을 모은 상태라 하오. 북부 전력을 모은 우리 우도 분타는 맹방들과 그대로 경계를 강화한 상태로 대기. 상황이 벌어지면 지원을 요청하고 버티라는 명이오.”
우도 분타주가 전서구가 물어 온 소식을 읊었다.
“파룡당의 지원은 당장 없는 것이오?”
풍운방주가 물었다.
“당장 지원에 대한 언급은 없소.”
“후우, 다행이군요.”
분타주의 답에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당장 지원이 없는데 다행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겠나?”
호검방주가 물었다.
“파룡당에서 내당주의 유언을 알아들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은?”
“예, 이 일을 벌인 원흉에 대한 단서를 파룡당 수뇌부들이 잡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근본적인 대처를 위해 본부의 힘을 분산시키지 않으려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용공산에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 난리가 일어난 거요?”
호검방주의 말은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혼잣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에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황금, 파룡당은 거기서 금을 잠채할 생각이었을 거요.”
사부였다.
“아니 알고 계셨으면서 입을 꾹 다물고 계셨던 겁니까?”
흑권회주가 사부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파룡당에서 저리 대답을 했다면, 이제 네가 생각한 대로 굴러간 것 아니냐?”
사부가 나를 보며 물었다.
“용공산 위치가 위치니, 복로방의 수작으로, 아니 파양호 수채 누군가의 장난질로 보고 잔뜩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이 파룡당의 종자는 더 이상 살려 둘 필요는 없겠구나?”
사부가 우도 분타주를 향해 몸을 돌렸다.
스르르릉!
사부가 칼을 뽑았다.
우르르릉!
칼날을 휘감는 강기. 그 강기의 위용에 집무실에 모인 작자들의 입이 벌어졌다.
“청도방주! 패력도(覇靂刀)! 조 방주! 조문형 방주님! 왜, 왜이러십니까?”
강기의 기세에 짓눌린 우도 분타주가 몸을 떨며 물었다.
대답은 내가 했다.
“내 손에 쥐어터진 혈수탈명, 당신네 내당주가 다 불었어. 우리 청도방을 복로당에 던져 줄 미끼로 만들고자 했더군. 파양호 수채의 간섭을 막겠다는 개수작질! 안됐지만 우리 청도방, 파룡당이 날로 삼킬 정도로 만만하지 않아.”
내 말이 끝나자 사부가 기다렸다는 듯 분타주의 목을 땄다.
나는 품에서 미리 준비한 연판장을 꺼냈다. 파룡당의 행패에 저항하는 연맹을 결의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다.
호검방주, 흑권회주, 풍운회주를 차례대로 지긋이 바라봐 준 다음 입을 열었다.
“세 분, 일단 여기에 수결부터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