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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6화 (6/175)

6화

준비행(06)

대문을 넘어 청석이 보기 좋게 깔린 석성 분타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칼은 다시 허리춤에 찬다. 그리고 뽑아 드는 것은 단검. 벽운섬전도는 공주부에서 나름 알아보는 자들이 많은 무공. 그러니 철교아로 대응한다. 오른손으로 단검을 돌리며 왼손으로는 문자질을 한다.

= 목소리 변조.

귀 밝은 놈들을 대비한다.

- 20개의 패턴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농꾼 녀석이 샘플들을 늘어놓았다. 그 중에서 하나를 택했다.

번초들의 경고성과 대문이 박살나는 굉음까지 터진 상황. 앞마당으로 석성 분타의 무사들이 채워지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석성 분타의 무사들은 제법 훈련을 받은 듯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일단의 무리가 나를 둘러싸고, 일부는 담벼락이나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 시야를 확보해 다른 적들을 찾는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나에게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는 것.

대문을 박살낸 보람이 있었다.

“어디의 누구시기에 이른 새벽부터 본장을 찾으셨소?”

드디어 책임자의 등장이다. 대문은 박살났지만, 아직 피를 보지 않은 상태이니 말로 풀어 보려고 노력한다. 근처를 지나다가 여비 뜯으러 오는 마두들이 있기에 조심스레 나오는 것이다.

“대문 하나로는 여비를 받을 자격 증명이 안 되나?”

콰콰콰콱!

검기에 의해 내 발치의 청석들이 터져 나갔다. 오른손으로 가볍게 돌리는 단검으로 검기를 뿜은 것이다.

“흠.”

석성 분타주, 철례(鐵鱧)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두건을 벗어 주신다면 흑도의 관례에 따르겠소.”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돈 못 준다는 소리. 이것 역시 흑도의 관례다. 뜯길만한 놈에게 뜯겨야 뜯긴 놈도 체면을 차리는 법. 하지만 난 돈 뜯으러 온 게 아니다.

“못 벗겠는데?”

“피를 볼 수도 있소.”

청석을 박살내는 내 검기를 보고 할 만하다 판단한 것이다.

“그냥 은자 일만 냥 정도 턱하니 내놓으면 될 일인데. 어렵게 가는군.”

시비 목적이 분명한 말도 안 되는 요구. 철례도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잡아 꿀려라!”

명과 동시에 주위의 무사들이 도기가 서리는 칼끝을 내밀며 나를 견제했다.

주위를 둘러싼 열 명이 전부 일류. 석성 분타의 정예들이 분명했다.

내 눈길이 그들을 훑고 있자 철례가 칼을 뽑아 들었다.

“하압!”

철례가 도기를 휘두르며 정면으로 덮쳐든다.

캉, 카카캉!

경쾌하지만 살벌한 철교아의 검기가 철례의 도격을 맞받았다.

짧게 긋는 살기가 확연한 단검의 연격으로 칼을 후리고 누르고 밀어낸다.

“하압!”

철례가 도기를 강화하며 밀어붙인다. 이에 편승해 자연스레 뒷걸음질 치니 후방에 서 있던 놈이 도기 서린 칼로 내 등을 쑤셨다.

몸을 비틀어 등판을 쑤시는 칼을 흘리며 낭파조의 한 수를 발휘한다.

“어엇!”

쑤신 놈의 당혹성.

“비켜라!”

철례의 호통. 낭파조의 한 수에 휘말려 균형을 잃은 놈이 철례와 그렇게 엉키는 순간, 나는 내 목적 달성을 향해 사지를 놀린다.

타탁!

발이 바닥을 밟아 몸을 움직인다. 순식간에 다가가서 단검을 휘두른다.

캉.

검과 검이 얽히는 순간, 노는 손이 낭파조를 발휘한다.

우두둑!

어딘가 박살나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틈에 단검을 쑤셔 넣는다.

“놈!”

철례가 호통을 치며 달려들지만, 저놈의 순서는 마지막이다.

적에게는 멀고 나에게는 가깝게. 보법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달려드는 철례 놈의 사각으로 몸을 피한다. 그리고 발을 놀리고 손을 놀리고 단검을 놀려 주위의 정예 무사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한다.

일류의 무력으로 어떻게 견딘다? 코앞에서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육중한 놈이 더 정교한 수로 살수를 휘두르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어떻게 일격을 막는다 해도 그 육중하고 강력한 일격에 자세가 무너진다. 그리고 무슨 수를 쓰기도 전에 들이닥치는 쾌속한 이격이 목숨을 끊는다.

이격의 주체가 손이든 발이든 칼이든 결과는 마찬가지.

철례가 어떻게든 나를 막아서려 하지만 내게는 의지를 잃고 허물어지는 시체와 그걸 던질 낭파조의 기예가 있다.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시체를 끌어다 그 앞으로 밀어 버리니 철례의 발걸음은 일순간이나마 더뎌 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숨 몇 번 몰아 쉴 짧은 시간이 지나자, 석성 분타 열 명의 정예들은 죄다 피웅덩이에 몸을 담그게 되었다.

“하하!”

과장된 웃음을 짓는다.

석성 분타의 정예들을 한곳에 끌어들이고 몰살시킨다는 첫 목적은 무난히 달성했다.

“돈을 줄 생각은 아직도 없는 건가?”

“개소리 치우고 이거나 받아라!”

분노에 편승한 도기가 그 위세를 떨치며 내 목을 노렸다.

카캉!

철교아의 수법으로 그 공격을 받고 얽어든다.

빠드득.

낭파조의 기예가 더해져 철례의 칼 든 손목을 비틀어 제압하고.

푹푹!

다시 철교아의 살수가 이어지니 철례는 팔꿈치와 어깨를 피로 물들이며 허물어져야 했다.

“허어, 파룡당! 소문과 다르게 쪼잔하군. 아주 쪼잔해! 봐라, 네놈들이 몸담은 파룡당이 이런 놈들이다. 돈 몇 푼 아끼려고 수하들 피 보는 곳!”

수장과 정예들이 죄다 죽어 나자빠진 상태.

“자 그런 파룡당을 위해 목숨 바칠 머저리들이 누구냐?”

괜히 남은 조무래기들과 칼질할 필요 없는 것이다.

***

“잘 탄다!”

어둠 속에서 석성 분타가 타오르는 모습을 구경한다. 전표와 은자 등, 돈 될 만하고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챙긴 다음 불을 지른 것이다.

쫓겨났던 석성 분타의 졸자들이 돌아와 불을 끄기 위해 팔방으로 노력하지만 지휘 체계가 잡히지 않는 중구난방의 움직임일 뿐이다.

그런 움직임으로 끄기 어렵게 체계적으로 지른 불을 잡기는 요원한 일.

석성 분타에서 가지고 나온 것 중 부피가 있는 것들을 잘 숨긴 다음,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해가 떴다.

야행의와 복면은 벗어던진 지 오래. 땀에 절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지친 몰골이 되어 석성현 현도로 들어섰다.

석성 분타의 몰골은 처참했다. 어떻게든 불은 끈 모양새지만 멀쩡한 건물이 없었고, 담벼락마저 불에 그슬리고 허물어진 곳이 군데군데였다.

잘나가던 파룡당의 분타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박살난 대문 앞에 앉아 있는 파룡당 무인을 잡고 물었다.

“보면 모르오? 박살난 거지.”

“분타주는 어디 계신가?”

내 말에 그는 흠칫하며 물었다.

“본당 분이십니까?”

“확인하게.”

혈수탈명에게 빼앗은 패찰을 내밀었다. 파룡당 내당주의 패찰에 그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내당주님을 뵙….”

“본인이 아닌 대리일세. 분타주님은 어디 계신가? 급한 일이야. 빨리 기별을 하게.”

“간밤에 분타를 습격한 악적에게….”

“빌어먹을! 여기 책임자는? 차상위 명령권자가 있을 것 아닌가!”

내 노성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무인의 뒤를 따라 박살난 파룡당 분타 안으로 들어섰다.

그나마 좀 덜 탄 곳으로 안내 받아 앉아 있자니 누가 왔다.

“호검방(昊劍幇) 방주를 맡고 있는 장인적이요.”

마흔 줄의 중년 사내다. 호검방은 파룡당 분타가 들어서기 전의 석성 흑도 패권을 쥐었던 곳이다.

“백검(魄劍)의 명성은 흥국에서도 자자하지요. 흥국 청도방의 이도연입니다.”

“섬패의 날카로움은 익히 알고 있소. 그런데, 파룡당 내당주 대리 분이 왔다들었소만?”

백검 장인적, 호검방주가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파룡당과 연이 없는 청도방의 인사가 파룡당 내당주 대리를 칭했으니 말이다.

“제가 청한 분도 호검방주님이 아니라 이곳 석성 분타의 책임자입니다만?”

나도 의문으로 답해 준다.

“어제 악적이 분타를 들이쳐서 죄다 변을 당했다오. 그 탓에 지휘 체계가 공백인지라 맹방의 수좌인 본인이 어쩔 수 없이 지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중이오.”

호검방주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너도 불어라는 눈빛이다.

“하아, 원래 청도방도 파룡당의 맹방이 되기로 약조되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내당주께서 본방을 찾는 중이었지요. 그런데, 본방에 당도하기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일이라면 무슨?”

“웬 악적들이 그 일행을 습격한 것입니다. 결국… 내당주를 제외한 전원이 변을 당했습니다. 내당주께서도 심한 부상을 입으셨고요.”

“혈수탈명이!!”

“화를 피하신 내당주께선 악적들이 파룡당에 유감이 많은 자들로 보였다시며 분타들이 습격당할 수 있다 우려하셨습니다.”

“으음… 과연.”

“그 후 내당주께서 분타에 연락을 명하셨기에 이렇게 내당주의 패찰을 받아들고 달려온 겁니다.”

“그럼, 영도의 분타는 들렸다 오는 것이오?”

흥국에서 영도가 더 가까우니 묻는 것이다.

“그쪽은 사부님이 가셨습니다.”

그쪽도 이쪽과 비슷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청도방이 이렇게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도 결국 석성에서 일이 터졌구려.”

호검방주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파룡당에 소식은 전했습니까?”

“전서구가 없소. 난리 통에 다 죽었소.”

“영도에서 흥국의 일이라도 전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군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호검방주께서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내 말에 호검방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오?”

“석성에서 파룡당 분타가 불타고, 분타주와 핵심 인사들이 몰살당한 일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 셈입니까?”

“범인을 잡자는 거요? 하지만 누군지 알아야 잡을 거 아니오? 복면을 뒤집어써서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데!”

“아무것도 안 하시겠다? 파룡당이 그렇구나 하면서 가만히 있을 것 같으십니까?”

“무슨 악담이오!”

장인적이 목청을 높였다.

“악담이 아닙니다. 현실을 보자는 겁니다! 저는 청도방의 후계자입니다. 제가 괜히 여기까지 뛰어 왔겠습니까? 방주인 사부께서 괜히 영도까지 직접 가셨겠습니까? 우리 영역에서 파룡당 내당주가 습격당했고, 파룡당에서 이름난 고수인 풍랑인도와 독심쌍도가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청도방은 멀쩡하지요. 파룡당에서 청도방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같은 일이 석성에서도 일어났는데, 호검방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무림 문파의 세력권에서 일어난 무림의 사건은 해당 무림 방파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무림의 관례. 흥국현의 일은 파룡당이 충분히 청도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이다. 석성의 일은….

“흥국과 석성은 경우가 다르지 않소.”

물론, 파룡당 분타가 들어선 석성은 분타의 영향력이 더 크니 호검방은 그 관례에서 비켜 갈 수 있기는 하다.

어지간하면 자발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랬는데,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석성 분타의 혈사가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거나, 제가 내당주의 명으로 석성에 오지 않았다면 그랬겠지요. 내당주께서 임시로 부여한 내당주 대리의 권한으로 호검방에게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합니다.”

혈수탈명의 패찰을 내밀고 말했다.

“하아!”

호검방주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파룡당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현장을 유지하고, 주위 탐문으로 흉수의 흔적만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파룡당 내당주의 패찰을 들이밀고 요청한 탓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곤란한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석성이 당했으니 우리는 우도 분타로 전력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청도방에서는 얼마나 동원할 생각이오?”

“사부님과 저는 물론, 사제에 정예들 전원을 동원할 생각입니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파룡당의 분노를 고스란히 뒤집어쓸 상황이니 힘을 아끼고 자시고 할 게 없지요!”

호검방도 이제 같은 상황이니 너희들도 내놓을 수 있는 전력 다 내놓으라는 말이다.

“영도에서는 나서겠소?”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흥국현에서 일어난 일만 봐도 흉수의 강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분타 하나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지요. 지원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공격당하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도의 분타로 합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도로 본문의 정예들을 끌고 가겠소.”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놈은 흥국에서 일을 저지르고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우도에서 잡지 못하면 기회가 없습니다!”

“걱정 마시오. 현청의 협조를 구해 관의 쾌속선을 빌리겠소. 그럼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우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요.”

하아, 사기 치기 힘드네. 입에 침이나 바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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