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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226화 (226/227)

226화 정상으로 (7)

에일이 새롭게 배운 ‘갑옷 파쇄술’은 상급으로 분류되는 스킬이었다.

타격당 방어도를 감소시키는 효과는 얼핏 들었을 때 아주 좋아 보였지만, 공격 한 번당 깎이는 방어력이 많지 않은 게 문제였다.

물론 수치가 낮더라도 중첩만 아주 높게 쌓인다면, 그 어떤 방어 관통류 스킬보다도 강력한 효력을 낼 수 있었다.

하나 이 스킬엔 보스 몬스터를 대상으로 최대 5회 중첩이라는 제한이 달려 있었다.

유저나 일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경우는 제약이 없긴 했다.

하지만 PVP에서 보스도 아닌 유저의 피통을 그 이상으로 때릴 일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이나 타격을 넣었으면 충분한 효율 보기도 전에 싸움이 끝나는 게 정상이었다.

지금처럼 PVP에서 이만큼이나 중첩을 쌓은 게 철저히 비정상인 상황.

에일은 철저히 크루거와의 싸움을 위해 스킬창 하나를 투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된 거였나……. 이거 완전히 당했는데.”

크루거가 쓴웃음을 흘렸다.

하락한 방어력이 상태창에 선명히 빛났고, 그에 따라 그의 공격력까지도 오히려 내려가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방어력을 깎는 저주나 쇠약 계열의 스킬은 크루거가 가장 경계하던 것이었다.

전설급 스킬 공방일체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스킬이었지만, 그로 인해 공격력까지 함께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치명적이었다.

디버프에 두 배의 피해를 받는다는 것.

그 탓에 그는 보스를 상대하든 유저를 상대하든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했다.

하나 설마 흑마법사나 암흑기사도 아닌 이단심판관 클래스인 에일이 이런 유의 스킬을 준비해 올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한 수였다.

‘처음부터 철저히 계산된 수였어.’

에일이 이런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보고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분명 자신을 파훼하기 위해 새로 스킬을 마련한 것일 터였다.

심지어 에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어력 변동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일부러 강도를 조절하면서 일정한 대미지를 가했던 것이다.

실제로 눈치 빠른 크루거조차 방금까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정교한 수였다.

방금 패시브의 존재를 드러내며 타격을 가한 것도 이 이상으로 방어와 공격력을 낮추면 그가 눈치채게 될 테니, 그 전에 최대한 대미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내 패시브를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 짧은 시간에 대처법을 들고 나올 줄이야……. 한 방 먹었어. 하지만 뒤늦게라도 깨달은 이상, 더 이상 당해 줄 수는 없지.”

검을 치켜든 크루거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상대가 파훼법까지 가져온 이상, 더 시간을 끌면 의도치 않은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더는 그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쩌엉!

한껏 몰아붙이는 크루거의 검이 에일을 위협했다.

빗겨간 그의 공격으로 인해 기둥이 박살 났다.

마치 보스 몬스터가 2페이즈라도 진입한 듯이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나 에일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의 공격을 회피해 가며 동조율을 더욱 끌어올렸다.

[현재 동조율 - 199%]

에일은 더 이상 동조율을 끌어올리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망설임을 버리자 평소보다 훨씬 더 쉽게 최대치를 갱신할 수 있었다.

200 직전의 최대치까지 차오른 동조율에 진입하자, 에일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더 이상은 일방적인 그림이 아니었다.

카앙!

“역시 동조율을 다루는 실력만큼은 우리 이상이군. 하지만……!”

반격을 받아친 크루거는 감각을 한껏 끌어올렸다.

오버드라이브 사용자는 그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시스템 과부하, 오버드라이브 상태에 돌입합니다!]

[현재 동조율 - 164%]

동조율이 상승되어 단숨에 100퍼센트를 넘기자 크루거의 눈이 붉게 빛났다.

양쪽 모두 오버드라이브 상태에 들어섰고, 크루거는 다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

에일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스치면 상대의 방어력과 공격력이 동시에 감소하는 만큼, 유효타가 아닌 견제뿐만이라도 충분했다.

분명히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입장이 뒤바뀐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상대하는 게 쉬워지진 않았다.

콰앙!

‘윽!’

머리가 통째로 날아갈 뻔한 에일이 다시 균형을 잡았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한 방에 게임 오버가 되었을 만큼 아슬아슬했던 상황이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최대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깎아냈다고는 하나 여전히 크루거는 강했다.

콰아아앙!

접근기를 통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그가 검을 휘둘렀고, 벽이 박살 나며 에일은 한참을 튕겨 나갔다.

곧바로 반응해 어느 정도 회피하긴 했지만, 유일급 광역 스킬로부터 완전히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벌써 30퍼센트 이하로 줄어든 체력이 붉게 깜빡였다.

파아아앗!

에일은 지속 회복 마법인 ‘치유의 빛’ 스킬을 통해 체력을 채웠다.

하지만 천천히 차오를 체력보단 당장 다가오는 크루거의 공격이 더욱 매서웠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후우.”

에일은 결단을 내렸다.

그의 동조율이 200퍼센트를 뛰어넘으며 치솟았다.

카가가각!

“설마…….”

완전히 달라진 에일의 움직임.

그 차이를 곧바로 알아챈 크루거의 표정이 바뀌었다.

급변한 에일의 분위기에 그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00대를 넘긴 건가……?’

오버드라이브의 다음 단계.

가상현실의 개발자들이 정해 둔 한계치 이상의 동조율이었다.

실제로는 여태 그 누구도 갈 수조차 없던 단계였기에 크게 알려져 있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이는 크루거조차도 넘보지 못했던 경지였다.

만약 그 경지가 가능하다 해도 몸에 무리가 갈 것이었고, 그는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데 에일은 주저 없이 그 단계에 들어섰다.

[현재 동조율 - 252%]

“지금 괜찮은 거지?”

‘버틸 만해!’

루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에일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공간 너머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현재 기준치를 넘어선 동조율의 부담을 루가 분산하여 받아주고 있었다.

그 덕에 싸움에 전혀 지장이 가지 않을 만큼, 훨씬 부담이 덜했고 반사 신경이 끌어올려지는 감각만 가득했다.

스스로 한계를 한 단계 더 넘어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빠악!

파고들다가 주먹에 반격을 허용한 에일의 입가가 터졌다.

돌아간 고개 사이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은 에일은 단검으로 무기를 스왑했다.

콰악!

갑옷에 박힌 에일의 단검이 상처를 만들어 내며 꽂혔다.

갑옷 파쇄자의 효과로 방어력이 또다시 낮아졌고, 그에 맞춰 공격력도 함께 떨어졌다.

주변이 온통 박살 나고 둘의 핏자국이 흩뿌려졌다.

공방을 주고받느라 에일의 체력도 거의 바닥나려 했다.

이제 10퍼센트 남짓한 체력은 제대로 된 일격 한 번만 허용하면 끝장날 상황이었다.

‘이, 이건……!’

하지만 초조함을 느끼는 쪽은 오히려 크루거 쪽이었다.

에일의 동조율은 지금 이 순간조차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한계치 따위 존재하지 않다는 듯이 200을 넘어선 상태에서도 계속 증가헀다.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사고는 배로 빨라졌다.

오히려 갈수록 크루거를 상대로 에일이 우위를 가지기 시작했다.

가상현실게임 역사상 최강의 플레이어라 불렸던 크루거가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었다.

숫자나 스펙 차이도 아닌, 순수히 실력으로 압도하는 모습.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우리를 막아 봤자 다른 길드들이 남아 있는 이상, 거대 길드 소속이 아닌 너는 빛을 보지 못해. 오히려 너와 손을 잡은 녀석들에게만 좋은 일을 해주는 꼴이다.”

에일을 마주한 크루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거대 길드에 들지 않은 개인 유저인 이상, 여기서 자신을 막아 내 봤자 얻어내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영지를 비롯한 실질적인 대부분의 이득은 결국 다른 6대 길드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었다.

분명 돈과 명성 모두 아폴리온과 함께 했다면 훨씬 더 크게 얻었을 것이다.

어쭙잖은 도덕관념이나 양심 같은 걸 내세울 필요도 없는 게임 속.

굳이 이런 모험을 감수하며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에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아무리 잘나 봤자 혼자서는 한계가 있고, 길드들이 득세하겠지. 또 지금은 너희를 막기 위해 손을 잡았다고 해도, 세력을 불리려면 언제 뒤통수를 치려 들지도 몰라.”

“그런데 왜.”

“내 목표는 처음부터 세력이나 영지 같은 것들이 아니었거든.”

에일의 답에 크루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만약 워로드를 통해 얻으려는 게 돈과 권력, 명성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원하고 플레이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럼 네가 워로드를 하는 이유는 뭐냐!”

크루거가 사납게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강력한 광역 스킬이 시전되며 검신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허나 돌아오는 에일의 답은 간단했다.

“…게임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키릭!

자세를 취한 에일의 검이 빙글 돌아갔다.

다른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요소일 뿐.

그는 단지 게임을 하는 것이 미치도록 즐겁기 때문에 워로드에 뛰어들었다.

게임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겐 과분할 만큼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츠츠츠츳!

지속 시간 내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여신의 권능’ 스킬.

모습을 드러낸 루와 함께 검을 굳게 쥔 에일은 힘껏 무기를 휘둘렀다.

이것이 마지막 일격이었다.

* * *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털썩!

벨하벤 내성에 생겨난 거대한 흔적.

스킬의 여파에 휘말린 크루거는 앞으로 기우뚱 쓰러졌다.

한 번 쓰러진 그는 다신 움직이지 못했다.

“끝났어…….”

기운이 쭉 빠진 에일이 나지막이 말했다.

당장이라도 다리에 힘을 풀고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참았다.

시선을 돌리자 대피시켰던 세이아 공주는 무사했다.

그녀는 소음이 잦아들자 싸움이 끝났다는 걸 알고서 방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후…….”

네슈아는 엉망인 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목숨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목숨을 잃은 사일러스와 달리, 빈사 직전의 상태에서 행동 불능 페널티에 빠진 것뿐이었다.

파아앗!

찬란한 빛과 함께 나타난 루가 그의 앞에 섰다.

함께 과부하의 부담을 받았던 만큼, 그녀도 적잖이 지쳐 보였다.

하지만 에일을 비롯해 그들의 눈빛엔 지친 것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해냈구나.”

“덕분에.”

둘은 잠시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스킬북을 사용하려 했을 때 그녀가 주려 했던 행운 버프.

당시 에일은 필요한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높은 등급이 나오면 오히려 곤란했기에 거절했었다.

대신 그 버프를 받는 시점을 크루거를 이겨낸 뒤로 미뤘었다.

“…….”

앞으로 다가온 루는 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이상하게도, 행운 스탯의 버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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