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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225화 (225/227)

225화 정상으로 (6)

콰드득!

에일은 잔해에 깔려 있던 무기를 빼냈다.

칼집에 검을 꽂아 넣은 그는 곧바로 공주에게로 갔을 크루거를 뒤쫓아 아래층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마땅한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그에게 찾아가려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강력한 패턴으로 무장했다 해도, 파훼법 없는 보스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플레이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베일에 싸여 있던 크루거의 패를 알게 된 이상, 적어도 미리 대처는 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루의 물음에 에일의 시선은 인벤토리로 향했다.

인벤토리에 쌓여 있는 수많은 스킬북들.

교환 불가 아이템인 탓에 그간 버리는 것 없이 꾸준히 모아 온 것들이었다.

[현재 레벨 - 251]

에일은 크루거와의 싸움에 앞서 스킬을 하나 새로 습득할 수 있었다.

오늘 연이어 랭커들을 격파하며 얻었던 경험치와 보상들 덕에 그의 레벨은 250을 넘어서 있었다.

250레벨이란 25번째 습득 스킬을 배울 시기라는 것.

크루거를 상대로 에일이 떠올린 몇 안 되는 가능성을 실현시키려면 여기서 원하는 스킬 중 한 가지를 뽑아야만 했다.

“여기서 새 스킬을 얻고 갈 거야. 하지만 제대로 된 스킬이 나와 줘야 가능성이 생기겠지. 스킬북 숫자는 넉넉한 편이지만 만약에라도 내가 생각한 스킬이 안 나와 준다면…….”

에일의 표정이 짐짓 어두워졌다.

만약 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그땐 정말 시작도 해 보지 못하고 끝나는 것이었다.

물론 스킬 하나가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하진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 정말 많은 게 걸려 있는 셈이었다.

“그럼…….”

“잠깐.”

스킬북을 꺼내 든 에일이 책에 손을 가져간 순간.

루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멈춰 세웠다.

영문을 모르는 에일의 시선이 닿자 그녀는 발갛게 얼굴을 붉혔다.

“혹시… 버프 필요해?”

* * *

공주를 지키기 위해 남았던 자들과 우회한 아폴리온의 길드원간의 전투는 이미 끝이 나있었다.

양측 랭커들의 시체가 즐비했고,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성내를 초토화시킨 뒤였다.

뚜벅뚜벅!

들려오는 발소리에 쓰러져 있던 카린은 힘겹게 고개를 올렸다.

빈사 상태에 빠진 데다가 출혈 탓에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위층으로 갔던 아군의 증원이길 바랬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르도 에일도 아닌 크루거였다.

“설마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 정도 피해를 입힐 줄이야.”

크루거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적들은 모두 전멸했지만 아폴리온 측의 피해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최고 간부인 루칸이 당한 데다가 사일러스를 제외한 모든 길드원이 사망해 쓰러져 있었다.

맞붙은 인원의 숫자 차이가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예상 피해를 훌쩍 뛰어넘은 건 확실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희를 너무 얕본 모양이야. 이스트혼이 아닌 다른 게임에서도 꽤나 저력은 있었어.”

미소를 지은 크루거가 카린을 내려다봤다.

그들이 정체를 숨긴 채 속내를 드러내기 전 모두가 속아 넘어간 그 인상 좋은 미소였다.

“엿이나… 먹어.”

풀썩!

체력이 떨어진 카린이 쓰러졌다.

그녀의 사망을 끝으로 유혈이 낭자한 복도엔 크루거와 사일러스 그리고 공주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자 둘은 홀로 남겨진 세이아에게 다가섰다.

“읏…….”

벽에 막혀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

겨우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곤 있었지만 몸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죽음이 다가온 것을 직감했다.

크루거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다.

쩌엉!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천장을 부수고 나타난 에일이 장검을 내려찍었다.

그러자 검을 멈춘 크루거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살아 있었나? 뒤처리는 다 끝낸 줄 알았는데. 여기엔 왜 나타난 거지?”

“왜 나타났기는. 이유라면 하나뿐이지.”

“너라면 차이를 느꼈을 텐데?”

“내가 좀 둔감한 편이라.”

에일의 말에 크루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럼 조금만 더…….”

“크루거.”

사일러스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곧 바깥의 결계가 무너질 시점이었다.

괜히 길게 시간을 끌며 여유를 줄 수 필요는 없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모두 사망한 상황이었으니, 변수가 생길 여지없이 빨리 일처리를 끝내야 했다.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인 크루거는 빠르게 단념했다.

간만에 자신과 같은 동조율 사용자를 상대로 즐겨보려 했지만, 이런 일에서 공과 사도 구분 못 할 바보는 아니었다.

‘두 명이 동시에 오려는 거군…….’

둘의 낌새에 에일이 생각했다.

크루거 하나만으로도 끔찍한데 동시에 덤벼드는 둘을 상대로는 당연히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동안 이런 상황을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파앗!

둘이 동시에 그를 향해 달려든 순간.

“슬슬 시간이 됐을 텐데…….”

콰아아앙!

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가까이 있던 사일러스는 범위에 휘말려 주르륵 밀려났다.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그곳엔 그림자 교단과 힌의 사도인 네슈아가 서 있었다.

마침 전설 스킬의 반동으로 걸렸던 행동 불능 상태가 풀려 때맞춰 나타난 것이었다.

“넌 내가 맡지.”

“이건 또 뭐야?”

사일러스의 인상이 험악하게 찌푸려졌다.

랭커는커녕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었고, 그런 녀석이 감히 자신을 막아서려 한다는 것 자체에 짜증이 솟아났다.

하지만 네슈아의 실력을 알고 있는 에일은 마음 놓고 크루거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네슈아가 나타나서 한쪽을 맡아 주는 사이 결판을 내야 했다.

카드드득!

“일이 재밌게 됐네. 그럼 어디 실력 좀 볼까.”

정면에서 맞부딪힌 검 사이로 둘의 시선이 오갔다.

에일은 곧바로 오버드라이브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여신의 가호’ 스킬을 발동했다.

크루거와는 달리 그의 입장에서는 간을 보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콰아아앙!

근접한 상태에서 하얀빛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유일급의 공격 스킬인 ‘신성 폭발’.

원래도 짧은 시전 시간과 뛰어난 데미지를 지닌 훌륭한 공격기였지만 여신의 가호 스킬의 영향 탓에 아무런 딜레이도 없이 즉발로 사용되었다.

크루거조차도 이렇게나 가까이서 사용된 범위 공격을 피할 순 없었다.

촤아악!

데미지와 넉백으로 인해 크루거는 주르륵 밀려났다.

에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음 스킬을 발동시켰다.

바닥에서 솟아난 신성의 사슬이 그의 몸을 칭칭 휘감았고, 위에선 거대한 징벌의 검이 떨어졌다.

콰아아앙!

몸이 묶인 크루거는 폭발 속에 여지없이 휘말렸다.

아무리 반응 속도가 빨라도 미리 다음 수를 예측하지 않은 이상 피할 수 없는 즉발성 스킬.

비록 신성 마법에 한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여신의 가호 스킬이 지닌 즉발 옵션의 위력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루거는 효율성을 위해 주로 물리 방어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경향을 보였다.

공방일체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두 가지 방어 계열 중 마법 방어에 대해선 비교적 소홀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잘못 짚었어.”

터벅.

크루거는 폭발 속에서 멀쩡히 걸어 나왔다.

그는 워로드 현존 최고의 스펙을 지니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마법 공격에 비교적 큰 데미지를 입는 건 맞았지만 취약하다거나 약점이라며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두 유일급 스킬에 정통으로 적중당했는데도 그의 체력은 고작 2%가량이 깎인 게 전부였다.

아무리 여신의 가호 스킬에 쿨타임 감소 효과까지 붙어있다곤 해도 대형 스킬인 만큼 잦은 사용은 불가능했다.

‘어차피 어려울 거란 것쯤은 알고 있었어.’

에일은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며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절망적으로 여겨질 만한 차이라고는 하나 그나마 크루거는 지니고 있던 전설급 공격 스킬이 하나 빠진 상태였다.

그 정도 위력과 범위라면 쿨타임도 상당히 길 것이었다.

위층에서 사용한 탓에 최소한 이번 싸움에서는 사용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카앙!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에일의 주도하에 공방이 이루어졌다.

크루거는 스킬 공격이 아닌 이상 어지간한 공격들은 모두 가볍게 흘려 넘겼다.

깊지 못한 얕은 공격들은 얼마든지 허용해도 그의 갑옷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에일은 방관에도 투자가 되어있었지만 워낙 내구가 높아 쉽사리 데미지가 안 들어갔다.

후웅!

‘큭…….’

그에 반해 위협적으로 스쳐 가는 크루거의 공격은 하나하나 묵직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에일은 워로드의 랭커 수준에서 비교한다 해도 자체 내구력이 상당한 편이었다.

광기 스탯의 우월한 보너스, 여신의 가호 스킬의 일시적 스탯 뻥튀기, 자체 치유 스킬까지 있고 물리 저항과 방어력에도 많이 투자한 덕이었다.

하나 크루거의 공격은 어지간한 전문 딜러의 것 이상이었다.

일반 탱커를 상대할 때처럼 공격을 몇 번 가볍게 허용하며 넘겼다간 그대로 뻗게 될 것이었다.

쩌엉!

7분을 넘게 합을 주고받은 에일은 뒤로 물러나며 손을 모았다.

신성의 사슬 스킬의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사용한 것이다.

촤르르륵!

바닥을 뚫고 나온 빛의 사슬에 크루거가 붙잡혔다.

‘이번에도 마법 공격인가?’

어찌 보면 뻔한 패턴.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순식간에 다가선 에일은 성화로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일섬’.

영웅 등급의 물리 공격기였다.

콰아아아!

강렬한 충격에 크루거는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순간 균형을 완전히 잃었을 만큼 명백한 유효타였다.

“어떻게……?”

언제나 여유가 넘치던 크루거의 표정에 의문이 깃들었다.

미동도 하지 않던 그의 체력에 무려 10퍼센트가량의 데미지가 박힌 것이었다.

그의 드높은 물리 방어력 수치를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

“이번 건 조금 따끔했지?”

“설마…….”

미간을 좁힌 크루거는 뒤늦게 자신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그러자 어느새 절반 가까이 떨어져 있는 자신의 방어력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드높은 방어력이었지만 원래의 수치와 비교하면 대폭 떨어진 수준이었다.

에일이 25번째로 얻은 습득 스킬의 이름은 ‘갑옷 파쇄술’.

타격당 적의 방어력이 일정량 감소하는 효과를 지닌 패시브 스킬이었다.

공방을 주고받으며 흠집조차 나지 않아 무의한 것처럼 보였던 에일의 검격은 하나하나 쌓여 가며 상대의 방어력을 갉아먹었다.

“너도 알다시피 약점 없는 스킬 같은 건 없으니까.”

“…….”

여유롭던 크루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가 지닌 전설급 스킬, 공방일체의 효과.

방어력의 감소는 곧 공격력의 감소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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