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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222화 (222/227)

222화 정상으로 (3)

콰과과광!

두 명의 랭커가 어지러이 합을 주고받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소음도 완전히 묻힐 만큼 가쁜 공방이 오갔고, 왼편에서 치고 들어오는 익시온에 반응해 에일은 크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물러남과 동시에 스킬을 발동시켰다.

촤르르륵!

에일이 두 손을 모으자, 익시온의 발치에서 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바닥을 뚫고 나온 신성의 사슬이 그를 붙잡아 꽁꽁 묶었다.

캐스팅 시간도 없이 즉발로 이루어진 신성의 사슬은 현재 유지되고 있는 가호 덕에 최대의 내구도를 지닌 채 나타났다.

유저가 아닌 보스 몬스터라 해도 쉽게 풀 수 없었다.

콰득!

하지만 익시온은 사슬에 묶이자마자 바로 판단을 내려 탈출기를 사용했다.

단숨에 사슬을 빠져 나온 그는 훌쩍 물러나 거리를 벗어났다.

‘좋아.’

신성의 사슬이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탈출기를 모두 빼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한차례 콤보에 얻어맞아 스턴에 걸린지라, 하나뿐인 상태이상 해제기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승산이 없지 않아.’

아주 잠깐, 에일의 시선이 옆 화면으로 향했다.

현재 메시지에 나타나 있는 그의 동조율은 어느덧 165퍼센트에 달해 있었다.

익시온과의 전투를 치러가며 최대치를 갱신하는 중이었고, 분명히 체감이 되고 있는 수치였다.

물론 체감을 하는 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

“여기서 끝내자.”

츠츠츳!

익시온은 더 이상 싸움을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주변에 생겨난 검은 안개들이 익시온의 대검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번엔 버프기가 아닌 공격기… 그것도 보통의 스킬이 아니니 조심해야 한다.”

“예.”

들려오는 루의 목소리에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신격인 그녀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으로만 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풀풀 느껴졌고, 보나마나 전설 등급 스킬을 꺼내려는 것이었다.

익시온은 이미 에일을 상대로 전설 등급 스킬을 사용하는 걸 감수한 상태였고, 더 이상 주저할 이유 따윈 없었다.

“그럼 여신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일이 옆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언젠가 그가 전설 스킬을 반드시 꺼내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진 않았다.

침착하게 대처해야만 했고, 루도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이다!”

온 힘을 다한 익시온이 크게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대검에선 칠흑같이 어두운 검기가 발산되었고, 엄청난 범위를 휩쓸며 빠르게 다가왔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전설 등급 스킬의 위력.

아무리 체력이 많고 방어력에 자신이 있다고 한들, 저런 스킬에 직격당했다간 따져볼 것도 없는 즉사였다.

콰악!

하지만 에일은 물러서지도, 웅크리지도 않았다.

[특수 스킬, ‘여신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검을 강하게 쥔 에일이 자세를 취했다.

가호가 지속되는 동안 단 한 번에 한해 사용이 가능한 ‘여신의 권능’ 스킬.

그러자 그의 옆에서 찬란한 빛과 함께 나타난 루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일의 눈에만 보이는 모습이 아닌 분명한 실체화였다.

그렇게 나타난 빛의 여신은 그의 옆에 바로 섰고, 서로가 나란히 등을 맞댄 채 검을 들었다.

콰아아아아!

모든 걸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거대한 검기 폭풍의 앞.

그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일체감 속에서 그들은 함께 검을 휘둘렀다.

* * *

파스스!

한차례 거대한 충격이 발생한 방 안은 잠깐 적막이 감돌았다.

반대편 벽이 뻥 뚫려 무너져 내렸고, 바닥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은 단숨에 소멸되었다.

특수 스킬, 여신의 권능.

이단의 모든 공격을 집어삼키는 특수한 부가 효과를 지니고 있는 강력한 일회성 공격 스킬이었다.

만약 이단이 강한 일격을 날린다면, 받아치는 그의 스킬은 더욱 강해져 덩치를 불린 채 적을 삼켰다.

공격기면서 반격기의 특성까지 지닌 기술.

대상이 이단의 낙인이 찍혀 있는 적에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익시온은 당연히 지정도 하기 전에 이단인 상태였다.

터엉!

의식을 잃은 익시온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쓰러졌다.

이미 체력은 완전히 바닥났고,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의 일격에서 승부가 결판이 난 것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이단 처단과 퀘스트, 후원 등의 보상이 들어왔고, 각종 메시지들이 에일의 시야를 채웠다.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었다.

올라간 레벨과 스펙에 더해 익시온을 단신으로 쓰러뜨린 저력.

그 모든 것이 합산되어 에일의 공식 랭킹은 단숨에 2위까지 치솟아 올랐다.

타악!

쓰러진 익시온의 아이템만 루팅한 뒤 에일은 바깥으로 나섰다.

승리의 희열이 진하게 남긴 했지만, 한숨 돌릴 세도 없이 싸움을 거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켜야 했던 1층의 마법진이 파괴된 시점에서 랭커들 간의 싸움은 이미 끝이 나 있었다.

“에일 님!”

“말도 안 돼, 해냈군요!”

다가온 로덴과 리아가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굳이 그의 랭킹이 급상승한 것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뻥 뚫린 벽 너머 쓰러진 익시온의 시체가 훤히 보였다.

“하하… 저도 아직 얼떨떨하네요.”

“수고하셨어요.”

싱긋이 미소 짓는 알리사가 다가왔다.

여기 있는 유저들 중 그를 가장 굳게 믿고 있던 그녀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에일뿐만이 아니라, 다들 격렬한 싸움의 여파로 꼴이 엉망이었다.

복도를 채운 시체들의 숫자도 상당히 많았다.

마법진이 파괴되면서 아폴리온 쪽에서 먼저 물러나긴 했지만, 서로 전력 소모가 상당히 심했다.

“그래도 아폴리온의 간부를 둘이나 잡아냈으니, 상황이 훨씬 좋아진 거겠죠.”

“다른 간부도 잡았단 말이에요?”

깜짝 놀란 에일이 물었다.

놀랍게도 에일이 전투를 벌이고 있던 사이에, 바깥에서도 아폴리온의 간부인 다고스를 처치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방금 갑작스럽게 벽을 뚫고 나온 거대한 일격.

에일이 날린 여신의 권능 스킬에 전투 중이었던 다고스가 휘말려 빈틈이 생긴 덕분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카린과 솔로스의 협공으로 그를 제압해 내는 데 성공했다.

철컹!

그렇게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 안쪽에서 내성의 성문을 열어 내는 데 성공했다.

침투조가 움직이는 사이 바깥에서 시선 끄는 역할을 맡았던 나머지 길드원과 랭커들을 안으로 들여보냈고, 적잖은 인원이 추가로 합류했다.

“덕분에 이제 승산을 잡았어.”

어느새 뒤에서 다가온 시르가 에일의 어깨를 턱 짚었다.

단신으로 간부 제압해내며 단숨에 2위까지 랭킹이 뛰어오른 것은 모두가 상상도 못했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다 가장 시급했던 마법진까지 파괴하는 데 성공해 냈으니 엄청난 공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진 쪽은 어떻게 됐지?”

“안타깝게도 한쪽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무력화가 되지 않았어. 하지만 한쪽이 무너진 덕에 위쪽 마법진에서 발동 직전의 마력이 엉킨 모양이야. 덕분에 시간을 번 셈이지.”

“그나마 다행인 건가…….”

아무래도 양쪽 마법진을 통해, 마법 발동에 필요한 마력은 이미 모아둔 모양이었다.

하나 마력을 다시 안정화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그들의 입장에선 그 시간만큼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지?”

“바로 위쪽으로 움직여야지. 시간을 벌었다고 늦장 부리고 있을 순 없으니까.”

시르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내성 위쪽엔 또 하나의 마법진이 존재했고, 그것까지 제대로 파괴해 내야만 진짜 마법을 막아 낸 것이었다.

“공주 쪽은?”

“그쪽이야 이미 지시를 내려뒀지.”

아래층들의 장악이 끝난 지금, 외각 지역에 숨겨져 있던 세이아 공주를 성채 내부로 몰래 들여보낸 것이다.

절멸 마법진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벨하벤 도시 내성의 바깥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제 절멸 마법진이 발동한다 한들 공주만큼은 무사히 지키며 빼돌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깥의 모두가 죽도록 마법진이 발동하는 걸 지켜볼 수는 없었다.

시르는 아예 이 기회에 아폴리온을 완전히 끝장낼 셈이었다.

“그러면 전부 다 위쪽으로 움직일 수는 없겠네.”

“그래, 녀석들도 이 정도 수는 읽어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지킬 인원도 필요하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공주를 지킬 인원은 남는다는 것.

아직 루칸이나 사일러스 같은 강한 간부들이 살아 있었고, 다른 곳에 숨어 있다가 공주를 노리고서 소수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카린과 솔로스를 비롯한 여러 랭커들은 아래쪽에 남도록 결정되었다.

그 두 간부를 막을 수 있는 건 6대 길드장 정도 되는 레벨뿐이었다.

뭣보다 전력 분산에 대해서도 마지막 마법진을 지키고 있는 적 인원만 파악한 뒤라면, 곧장 지원을 요청해 불러들일 수도 있었으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다들 회복은 끝났겠지. 바로 움직인다!”

시르와 다수 랭커들을 비롯, 에일과 동료들까지 포함해 많은 수의 랭커가 마법진 공략을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내성의 층들을 올라가는 동안 습격은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중간에 발목을 잡기보다는, 마법진 쪽에서 전원이 모여 방어를 펼칠 모양이었다.

하나 결계 밖 랭커들의 합류 덕에 전력상으로는 충분히 우위로 바뀐 뒤였다.

더군다나 이번 에일의 활약 덕에 더더욱 여유가 생긴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사실상 승기를 거의 잡아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콰아앙!

커다란 문을 통째로 부수며 내부로 진입했다.

마지막 층의 결계가 있는 위치.

이 문 너머는 많은 아폴리온의 랭커들이 전부 모여 방어전을 벌일 거라 예상되던 위치였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뭐……?”

“이건…….”

내부로 들어선 랭커들은 순간 자리에 멈춰 섰다.

적들의 존재나 함정 탓이 아닌 ‘당혹감’ 때문이었고, 모두가 그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시르와 알리사, 에일조차도 똑같았다.

터엉!

기다란 검이 바닥을 치며 드넓은 홀을 울렸다.

수많은 랭커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단 한 명.

그 중심에 홀로 서 있는 아폴리온의 길드장, 크루거가 찾아온 랭커들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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