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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206화 (206/227)

206화 격동의 장 (4)

‘뭐……?’

당황한 에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통로엔 침묵이 감돌았다.

그녀의 말에 에일은 발걸음도 순간 멈춰 설 만큼 놀랐다.

아무리 최정예 길드인 알키오네라 해도, 알리사가 일반 길드원 수준이 아닐 거라는 것쯤은 에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키오네의 창립 멤버라는 건 차원이 달랐다.

길드의 시작을 함께 한 일원으로 범접할 수 없는 지위를 가진 최고 간부 중 하나였다는 것이었다.

에일이 순간 발걸음을 멈추자, 앞서 가던 알리사는 뒤를 돌아봤다.

“걱정 마세요. 이제 와서 이상한 짓을 벌일 생각은 없으니까. 길드의 일엔 손을 놓은 지 오래거든요.”

무심히 말한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에일도 잠자코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확실히…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면 진작에 벌였겠지.’

아폴리온 길드보다 한발 빠르게 세이아를 빼내 안전하게 확보해 뒀던 그녀의 행보를 보면 배신할 작정은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아폴리온 길드의 입장에서는 번거로울 것 없이 공주만 죽이면 모든 게 끝났을 일이었다.

굳이 이런 일을 벌이며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길드가 무슨 일을 벌이건 상관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뒤늦게 시작한 워로드에서도 레벨업을 하지 않고 생활 컨텐츠 위주로 플레이한 거였죠.”

그 결심은 에일을 만난 이후에 달라진 것이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알키오네 내에서 그 정도 위치였다면, 갑자기 길드를 떠난 이유라도 있었던 건가요?”

“전에 말했던 것 그대로예요. 회의감이 든 거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지만요.”

알리사는 묵묵히 걸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공주를 업은 채 뒤를 따르는 에일은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과거 알키오네 길드 내에서 내분이 있었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기에, 그로선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잠깐, 혹시 다른 간부들도 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에일이 번뜩 물었다.

알키오네엔 총 일곱 명의 창립 멤버가 있었고, 그녀가 말한 둘을 빼더라도 다섯이 남아 있었다.

유론처럼 또 다른 6대 길드의 길드장이 알고 보니 알키오네의 간부 출신이라는 상황은 절대 사양하고 싶었다.

그리고 알리사는 다행히 고개를 저었다.

“나머지 다섯은 그대로 아폴리온에 옮겨 갔어요. 길드장을 포함한 아폴리온의 최고 간부 다섯이죠. 그중 길드장을 맡고 있는 크루거는 알키오네의 워든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고요.”

‘그런 거 였나…….’

그녀의 말에 에일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알키오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로는 크루거의 정체에 대해선 그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양쪽 모두 같은 기사 계열의 직업을 택한 데다가,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 무엇보다 그들은 길드를 대표하는 길드장이었다.

그나마 다른 쪽에는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하는 간부가 없다고 하니, 그와 협력 중인 6대 길드가 갑자기 뒤통수 칠 일이 없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기껏 공주를 데리고 가자마자 배신당할 일은 없겠네요. 이곳만 잘 빠져나가면…….”

“에일 님, 하나 알아 둬야 할 게 있어요.”

작은 통로의 앞에선 알리사가 멈춰 섰다.

짐짓 심각해진 그녀의 말투에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가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맞아요.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끝을 낼 수는 없을 거예요. 지금 아폴리온의 전력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강하니까요.”

“다른 곳도 아니고 아폴리온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숨기지 않은 진짜 전력에 대한 이야기죠.”

“숨겼다니요……?”

“알키오네는 처음부터 다른 길드들을 쓰러뜨리며 성장했어요. 체급 차이가 나던 길드도 간단히 쓰러뜨렸고, 오히려 그 탓에 위협적인 세력으로 간주되어 많은 견제를 받았었죠. 나중에는 사실상 이스트혼의 모든 길드들이 뭉친 반연합 세력과 싸우느라 휘청거렸던 적도 있었어요. 결국 이겨내긴 했지만 그때의 경험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죠. 그렇다면 워로드로 넘어온 간부들이 이번엔 어떻게 했을까요?”

알리사의 의미심장한 말이 던져졌다.

어느 게임이건 처음부터 압도적인 전력의 길드가 있다면, 모든 길드가 힘을 합쳐 그들에게 대항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었다.

이스트혼에서 이미 한 번 겪어 봤기 때문에. 간부들은 그 사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설마 하는 에일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알리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폴리온 길드는 반연합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전력을 감췄을 뿐이었고, 간부들은 여태껏 랭킹을 고의로 낮추고 있던 것이었다.

레벨과 스킬 구성, 장착한 아이템, 실제 전투 데이터까지.

모든 가상 현실 게임을 통틀어도 워로드가 가장 정확한 랭킹 산정 방식을 지닌 것은 맞았다.

하지만 모든 걸 계산한다고 해도, 보인 적이 없는 행동을 판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만약 여태 본 실력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면, 랭킹을 숨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왕가를 장악한다는 승부수를 던진 이상, 아폴리온은 분명 본 실력을 드러낼 거예요.”

* * *

털썩!

나이트메어의 길드장, 카린.

추적자들을 쫓아 뿌리의 길 내부로 진입한 그녀가 피 묻은 단검을 털어 냈다.

그녀의 발치 아래엔 난도질당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입구 쪽을 지키고 있던 이들에 이어, 안쪽에서 마주친 아폴리온측 랭커 둘의 목숨까지도 단숨에 끊어 버린 그녀였다.

워로드 최고의 위치에 놓여 있는 랭커임에도, 카린의 속도 앞에선 제대로 된 반응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때 공격을 받았던 세 명의 랭커 중, 단 한 명만큼은 그녀의 기습에도 반응해 목숨을 잃지 않고 서 있었다.

“북동부 전장은 비워 두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일 텐데. 그동안 수도에서 꿍꿍이나 벌이고 있던 주제에 말이야.”

마주한 사일러스와 카린이 말을 주고받았다.

방금의 일격을 간단히 막아 낸 사일러스는 아폴리온의 최고 간부이자 세계 랭킹 8위의 실력자였다.

애초에 카린도 그녀가 고작 기습 한 번에 당해 줄 거란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다.

이미 몇 번 검을 나눠 본 적 있는 사이인 둘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터억!

“이거, 벌써부터 한바탕하고 있었네.”

그때 불쑥 나타난 남자가 끼어들었다.

아폴리온의 또 다른 간부, 루칸.

기척도 없이 나타난 그의 등장에 카린의 얼굴이 꿈틀였다.

사일러스 한 명도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었는데, 세계 랭킹 10위의 실력자이기도 한 그가 가세한다면 꽤나 애를 먹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

“도와줄까?”

“아니, 먼저 가 있어.”

슬쩍 곁눈질을 한 사일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둘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었고, 카린의 예상대로였다.

자신의 실력에 프라이드가 넘치는 사일러스는 혼자서 두 명을 상대한다면 모를까, 자신이 그 두 명의 쪽에 서는 건 절대 용납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긴… 지금이라면 상관없겠지.”

루칸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지금은 공주를 쫓는 게 최우선이었고, 굳이 간부가 두 명이나 달라붙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파악!

“어딜 가려고. 같이 덤벼야 하지 않아?”

카린이 던진 단검이 루칸의 옆 벽에 꽂혔다.

자존심 강한 사일러스의 성격에 대해선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전투에 앞서 미리 성질을 긁어 두는 것이었다.

“그럼 둘이서 잘해 보라고.”

피식 웃은 루칸은 벽에 꽂힌 단검을 가볍게 무시한 채 지나쳤다.

하지만 그런 그와는 달리, 카린의 바람대로 사일러스의 표정은 빳빳이 굳어져 있었다.

콰직!

루칸이 통로를 넘어 사라지자마자 땅을 박찬 사일러스가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광!

유일급 스킬, 강습이 발동되며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시작부터 화끈한 공격 스킬에 넓은 통로의 한쪽은 완전히 넝마짝이 되어 버렸다.

공격을 피한 카린에게 곧바로 달라붙은 사일러스는 맹공을 퍼부었다.

암속성을 다루는 검사인 그녀와 맞붙었을 때는 작은 상처조차 허용할 수 없었다.

저주를 비롯한 강력한 디버프에 걸리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동시에 방금 전의 광역기를 비롯해 뛰어난 그녀의 화력은 어디까지나 도적 클래스인 카린으로선 간단히 받아치기엔 버거웠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회피.

스륵!

스킬, 그림자 밟기가 발동되며 카린은 단숨에 사일러스의 뒤를 돌았다.

뒤로 파고든 그녀는 사일러스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발로 강하게 차냈다.

그리고는 미리 바닥에 던져 둔 단검들을 잡아당겼다.

촤르르르륵!

단검과 연결된 사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단단한 사슬들이 발길질에 튕겨져 나가던 사일러스를 휘감았고 온몸을 강하게 옥죄였다.

“크윽……!”

파앗!

물론 사일러스는 빠른 속도로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을 발동했고, 곧바로 속박 상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평소보다 뒤쳐진 반응에 카린은 이미 빈틈을 포착했다.

“늦었어.”

파아아앗!

사일러스가 튕겨진 사이에 이미 카린은 이중 가속 스킬을 발동한 뒤였다.

순간적으로 극대화된 그녀의 속도는 엄청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일러스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속박 상태를 풀었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일격.

쩌엉!

하지만 카린의 단검은 목을 꿰뚫지 못했고, 커다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방금의 일격을 막아낸 사일러스는 성큼 다가섰다.

“이제 크루거한테 숨길 필요 없다는 확답을 들었으니까. 장난질은 이쯤 하겠어.”

“이건…….”

검을 맞댄 카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느 틈인지 사일러스가 착용하고 있던 장비가 모조리 뒤바뀌어 있었다.

그녀조차도 처음 보는 모습의 무기와 방어구.

맞댄 검 너머로는 완전히 달라진 듯한 눈빛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 그동안 6대 길드니 뭐니 하면서 같이 묶이는 것도 불쾌했어.”

콰아악!

“큭…….”

붙잡힌 왼팔의 압박감에 카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사일러스의 입가엔 싸늘한 조소가 걸렸다.

“이스트혼에선 발도 딛지 못한 찌꺼기들이 최강을 논하고 있다니. 웃음을 참을 수가 있어야지.”

* * *

[현재 랭킹]

[1위 - 크루거(아폴리온)]

[2위 - 사일러스(아폴리온)]

[3위 - 루칸(아폴리온)]

[4위 - 익시온(아폴리온)]

[5위 - 다고스(아폴리온)]

[6위 - 시르(철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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