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격동의 장 (2)
스킬북을 감싼 눈부신 광채에 에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흔히들 손꼽히는 랭커들도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다는 최종 등급의 스킬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번 스킬북은 무려 2번째로 마주하는 황금빛 스킬북이었다.
신성 마법에 한해서 신앙심이 마력을 대체하여 기반 스탯이 되도록 하는 ‘구도자의 열성’.
이 전설급 스킬 또한 황금빛 스킬북을 개봉했을 때 얻은 것이었다.
해당 스킬북의 소유권은 처음 공략을 진행했던 에일에게 주어진 바.
‘갑자기 행운 버프를 준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
에일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최대치와 확률이 가장 높은 황금빛 스킬북이라도 막상 어떤 스킬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루에게 부여받은 행운 보너스로 그 혹시 모를 불운의 확률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터억!
에일이 스킬북을 집어 들었다.
“…….”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알리사조차 숨을 죽이고 있었다.
워로드의 게이머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중요한 순간.
긴장된 분위기 속, 에일은 과감히 손을 뻗어 책장을 넘겼다.
파아아앗!
발동된 스킬북에선 찬란한 금색 빛이 터져 나왔고, 에일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과 마주했다.
“이건……?”
마주한 에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어때요?”
그런 그의 반응에 알리사가 물어왔다.
그러자 에일은 그녀에게도 메시지창을 공유했고, 알리사의 눈앞에도 스킬창이 펼쳐졌다.
[여신의 가호(전설)]
-이단심판관 전용 스킬
-신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합니다.
“……!”
알리사가 순간 숨을 들이켰다.
황금빛으로 물든 스킬의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말 전설급 스킬이 나왔다.
“정말 나타났네…….”
어안이 벙벙한 기분에 에일이 중얼거렸다.
속으로는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을 정도로 전설 스킬을 간절히 바랐지만, 정말 나타나자 순간 기뻐해야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저번 달에도 이런 꿈을 꿨다가 실망했었…….”
“축하드려요! 정말 대단한데요?”
알리사가 에일의 몸을 앞뒤로 흔들었고, 쓸데없는 생각에서 번뜩 깨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에일은 2개의 전설급 스킬 보유자가 되었고,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6대 길드장을 포함해서도 2개의 전설 스킬을 보유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설마 2번이나 전설급 스킬이 나와 줄 줄은 몰랐네요.”
“그 고생을 했는데 받을 만도 하죠. 아니면 조금 전에 나타났던 여신님이 도와줬던가.”
“하하…….”
순간 뜨끔한 에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곧 스킬창이 떠 있는 화면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어요.”
“아, 정말이네요.”
마찬가지로 화면 쪽에 시선을 돌린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 그대로 방금 얻은 스킬엔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전설급 스킬이 나타나 준 것까지는 아주 좋았지만, 아무리 스킬창을 더 들여다봐도 스킬의 설명이 부실했다.
설명문은 불과 한 줄에, 자세한 효과에 대한 묘사는 전혀 쓰여 있지를 않았다.
워로드에서 불친절한 설명의 스킬들이 없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높은 등급에 올라온 이후부터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전설급 스킬인데 이 정도 설명이 전부라니, 확실히 일반적인 범주에선 벗어나 있는 경우였다.
“흐음… 그렇다면 어떤 스킬일까요.”
“처음 봤을 때는 패시브 스킬인 줄 알았는데, 분류상으로는 액티브 스킬로 표기되어 있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여신의 가호가 깃든다는 걸 보면, 아무래도 버프 종류가 아닐까요?”
“음…….”
일리 있는 그녀의 말에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설급 스킬에 무슨 버프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높은 등급의 고성능 버프기라면 워로드에 충분히 숫자가 있는 편이었다.
물론 그 종류야 워낙 천차만별이라 직접 써 보지 않는 이상, 어떤 부분에 효과를 주는지는 가늠도 할 수 없겠지만.
‘뭐, 직접 써 보면 알 수 있겠… 잠깐.’
무의식적으로 새로 얻은 스킬을 발동해 보려던 에일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뒤늦게 그의 눈에 띈 건 스킬창 아래쪽에 조그맣게 표기되어 있는 쿨타임이었고, 그 칸에는 무려 6시간이라는 단위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를 본 에일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쿨타임만 6시간짜리 액티브 스킬이라니, 이만한 쿨타임의 스킬은 워로드 전체를 따져도 손에 꼽을 만큼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일부 존재하는 그 극소수의 스킬들마저 대우가 좋지 않아 묻힌 게 대부분이었다.
고작 하루에 몇 번밖에 쓸 수 없는 스킬이라면, 일반 전장이나 사냥에 제대로 활용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고, 대체로 실전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전설급 스킬인 이상 그런 경우에 포함될 리는 없을 터.
‘이러면 스킬이 어떤 건지 써 볼 수도 없네.’
에일이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무턱대고 효과 좀 구경하려다가 6시간을 잠자코 기다릴 수야 없으니, 지금은 스킬을 아껴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처한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아무래도 스킬 효과는 여길 나간 뒤에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네, 그편이 낫겠죠. 전리품 분배도 끝났으니 바로 출발하면 될 것 같아요.”
이리저리 해체된 레기아스의 시체 주변을 정리한 에일과 알리사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연히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읏차.”
에일은 쓰러져 있는 세이아를 등 뒤에 업었다.
지금 그의 스탯 상으로는 아주 가볍게 느껴져, 이동에 별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머리카락이 목뒤를 간질이는 게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럼 따라 붙는 키메라들은 알리사 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정도야 맡겨 주세요.”
창을 든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보스는 제거했지만, 지하 던전 안에 도사리고 있는 키메라들은 그대로였다.
어차피 목적은 사냥이 아닌 도주였으니, 놈들을 일일이 상대하기보다는 떨쳐 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치자 에일이 앞장섰다.
쿠구구궁!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땅이 격하게 흔들리며 굉음을 토해 냈다.
단순히 흔들림이 아니었다.
아래쪽뿐만 아니라 이젠 아예 머리 위의 천장이 울렁거리며 요동치는 것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뭐지?”
에일과 알리사가 위를 바라봤다.
미궁의 숲 지하 던전 안에 이런 이벤트가 존재한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보스나 던전에 연관된 특정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딱히 이런 일이 생길 만한 이유 자체가 없을 터.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에일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설마…….’
돌아간 에일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레기아스의 브레스가 뻥 뚫어 놓은 벽과 기둥이었다.
브레스뿐만이 아니라 녀석이 온갖 패턴으로 난동을 부리며 박살 낸 던전의 범위는 상당했다.
기둥이란 기둥은 죄다 날아가고, 여기저기 균열 생겨나 갈라진 자국이 선명했다.
만약 격렬한 전투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다면…….
콰과과광!
“읏……!”
또다시 땅이 흔들리며 천장이 커다랗게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그들의 뒤편에서 벌어진 일이라 직접적으로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욱 큰 일이 벌어져 버리고 말았다.
후우웅!
지하 던전 한쪽에 엄청나게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린 것이다.
안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소리에 그들은 큰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에일 님!”
“어서 가죠!”
알리사의 말에 에일은 곧장 다리를 움직였다.
세이아를 들춰 멘 채 달리기 시작한 그의 뒤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너무나 뻔했다.
현재 미궁의 숲에는 안쪽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랭커들로 가득했고, 그런 상황에서 저런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으니 곧장 그들을 추적해 던전으로 내려오기 시작할 것이다.
벌써 몰려들기 시작한 랭커들을 피해 서둘러 빠져나가야 했다.
‘설마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에일은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되죠?”
“왼쪽이에요!”
갈림길 사이에서 알리사가 방향을 가리켰다.
이곳 지하 던전의 출입구는 다른 대다수의 대형 던전들이 그렇듯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어느 쪽 출구로 빠져나가야 가장 안전할지 정도는 그녀가 이미 짜 두었고, 알리사가 가볍게 손짓하자 그의 화면에 지도 정보가 공유되었다.
“조금 빙 돌아야 해서 위험할 수는 있겠지만… 역시 최대한 외각 쪽으로 빠지는 편이 안전하겠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알리사는 달리며 한 번 더 손짓했고, 또 다른 위치 정보가 에일의 화면에 전송되어 떠올랐다.
이번에는 지하 던전 내부가 아닌 지상의 지도였다.
그것도 미궁의 숲 구석에 숨겨져 있는 통로였고, 구조를 보자마자 에일은 바로 어떤 곳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어디인지 알고 있죠?”
“모를 리가요.”
에일이 피식 웃었다.
미궁의 숲 아래의 지하 던전처럼 단 몇 명밖에 알지 못하는 숨겨진 지형.
소수의 정보꾼들만이 공유하던 비밀 통로였고, 이번엔 반대로 그가 친분이 있던 ‘Lotus’에게 건네 주었던 정보였다.
“확실히 그쪽이라면 따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그나마 확률이 높은 쪽이죠.”
콰득!
키이이익!
에일에게 달려들던 키메라가 창에 맞아 튕겨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앞길을 막으려 드는 몬스터들이 괴성을 질렀다.
원래대로라면 세이아가 다칠 위험도 없도록 안전하게 처리하며 나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몬스터들이 붙지 못하도록 알리사가 최대한 처리해가며, 과감하게 돌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력으로 달아나는 와중에 사방으로 몬스터가 달려들기까지 한 상황에서, 유저 혼자 모든 공격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나마 체력이 되는 에일이 세이아를 챙기고, 몸을 비틀어 공격을 대신 맞았다.
키익!
콰득!
엎어진 채 다리를 붙잡으면서까지 그를 잊지 못하고 질척거리는 녀석도 있었지만, 그런 놈들은 발로 머리를 가뿐히 으깨 주었다.
“됐다! 제 등 뒤는 어때요?”
“공주는 무사해요.”
그들은 몬스터들을 무사히 떨쳐 내는 데 성공했고, 에일의 등 뒤에 업혀 있던 공주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양쪽 절벽 사이를 잇는 거대한 다리였다.
던전의 천장이 뚫린 위치와 출구로 향하는 경로상, 이 얕은 골짜기만 무사히 넘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고비는 넘겼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잠깐, 저기…….”
“이런!”
다리 앞에 다다른 에일과 알리사가 동시에 멈춰 섰다.
그새 그들을 추적하러 나선 2명의 랭커가 반대편 다리에 서 있었고, 안타깝게도 아폴리온의 길드 마크가 가슴팍에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그냥 모른 척할까요?”
“방금 눈 마주쳤어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