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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99화 (199/227)

199화 전환점 (6)

마지막 난관에서 마주한 보스의 스펙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모든 마법 계열 공격을 무시하는 마법 면역.

그리고 거기에 더해 물리 내성까지 75퍼센트나 갖추고 있었다.

원래 보스 몬스터에게 물리 내성이 달려 있는 것 자체가 난이도 폭증의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런데 50퍼센트도 아니고 75퍼센트라니.

마법도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저런 특성을 붙여준 의도를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촤아아악!

주르륵 밀려난 에일이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진짜 골 때리게 하네.”

장검을 들어 올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법 내성인 녀석을 잡으려면 접근전을 치러야 하는데, 너무 몸체에 바짝 붙어서 싸우면 땅을 크게 내려찍으며 강력한 충격파를 발산했다.

그나마 녀석의 충격파에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바닥을 나뒹구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츠츠츠츳!

그때 레기아스의 쩍 벌린 입안에 검은 기운이 일렁이며 차올랐다.

그 모습을 본 에일은 투덜거릴 새도 없이 곧바로 녀석에게로 달려나갔다.

놈이 지금 보인 것은 독 안개 패턴의 사전 동작이었다.

굉장히 넓은 범위의 공격이라 대처가 곤란한 패턴이었고,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달려드는 그를 향해 레기아스의 두터운 꼬리가 날아들었지만, 에일은 속도를 살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녀석의 거체가 아주 잠시나마 흔들렸다.

간신히 패턴 발동 직전에 스턴기인 어깨치기로 무력화해 내는 데 성공했다.

콰악!

동시에 에일은 놈에게 검을 쑤셔 넣었다.

깊숙이 찍힌 레기아스의 발목 부근은 새까만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크르르르!

레기아스가 성난 듯 이빨을 드러내며 에일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녀석의 덩치에 비하면 큰 상처가 아닌 데다가, 실제로 줄어든 체력도 많지 않았다.

내성으로 75퍼센트나 반감된 대미지에, 방어력 공식까지 적용되니 유효타를 날려도 체력엔 기별도 가지 않는 것이다.

물리 내성을 제외하고도 녀석의 방어력은 결코 낮지 않았고, 그나마 에일은 패시브로 방어력 관통을 40퍼센트 챙긴 덕에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콰아아아!

레기아스의 강렬한 맹독 브레스가 쏟아져 나왔다.

다급히 뒤로 물러난 에일은 겨우 브레스를 피해냈지만, 브레스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지독한 독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치이이익!

단순히 방금의 일격뿐만이 아니었다.

전투 시작 이후로 레기아스가 쏘아낸 브레스들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두 피해냈다곤 하나 그 경로를 따라 대지를 부패시킨 탓에 곳곳에 독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 넓은 보스룸 안에서도 에일이 밟을 수 있는 땅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 페이스라면 답이 없어.’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투 속에서 에일이 생각했다.

레기아스의 체력은 아직도 86퍼센트나 남아 있었다.

어떻게든 녀석에게 데미지를 쑤셔 박으며 버티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도저히 보스를 쓰러뜨릴 각이 나오지 않았다.

활용 가능한 아이템의 폭, 보스룸 내부의 주변 변수까지 모두 고려해 봐도 마땅히 답이 없었다.

1페이즈만 해도 이 정도인데, 설마 다음 페이즈가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을 테고, 다음 차례가 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였다.

‘아예 장기전으로 가보려 해도 문제가 많아.’

레기아스는 독기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보스였고, 뒤를 받혀줄 전문 힐러 없이 장기전은 곤란했다.

점점 좁아지는 지형에 강해지는 독기의 농도.

자체 회복기와 치유 포션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포션은 이미 남은 게 거의 없는 데다가, 회복기인 ‘치유의 빛’도 적잖은 마나를 소모하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승부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녀석의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보스전 때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변수였던 공헌도 상점의 마법 스크롤 역시, 레기아스가 완벽한 마법 내성을 지닌 이상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강한 독기로 인해 체력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미치겠네.’

떠오른 메시지에 에일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점점 차오르는 독기 탓에 이젠 공격에 당하지도 않은 그의 체력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큰 대미지가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방 안에 독기가 차오를수록 줄어드는 체력 폭은 더욱 심해질 것이었다.

이는 에일의 입장에서 매우 큰 압박이었다.

보스룸으로 들어왔던 통로는 입장 뒤에 완전히 무너진 탓에 다른 장소로 유도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그 조그맣던 통로를 지날 수 있을 만한 덩치의 보스도 아니었다.

‘각종 내성에 독기까지. 대놓고 장기전으로 말려 죽이는 보스를 상대하는데 장소까지 바꿀 수 없다니. 이대로 가면 실력이고 뭐고 답이 없어.’

애당초 혼자서는 공략이 불가능한 던전.

이쯤 되면 그렇게 설계된 곳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작전을 바꾼 에일은 재빨리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번 시나리오 던전에서는 중간에 포기하고 바깥으로 나갈 방법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다른 구역이라면 몰라도, 던전의 끝을 의미하는 보스룸이라면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가 있을 것이었다.

보스를 죽인 후에 통로가 열리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 에일의 입장에서는 다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찾았다.’

이런 개떡 같은 보스를 준비해 놨음에도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보스룸 구석의 바위 뒤에 커다란 통로의 입구가 놓여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게 가능하다는 뜻.

앞에서 달려드는 레기아스를 역극으로 따돌린 에일은 곧바로 바위가 있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키이이익!

“잘 먹고 잘살아라!”

에일은 순식간에 통로를 타고 올라갔다.

최종 시나리오의 완료 보상을 받지 못하는 건 다소 아쉬웠지만, 이미 챙길 만큼 챙긴지라 부분 보상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공주 쪽이니까. 이 정도면…….’

콰과과광!

그때, 뒤편에서 들려오는 굉음이 에일을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따돌렸다고만 생각했던 레기아스는 좁은 입구를 몸으로 부숴가며 그를 쫓아오는 중이었다.

어찌나 요란한지 소리가 던전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니, 이걸 왜 쫓아와!”

기겁한 에일이 속도를 올렸다.

시나리오 던전의 보스가 자기 던전을 내팽개치고 플레이어를 쫓아오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양쪽 내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만 해도 아주 드문 일인데, 대체 어떻게 되먹은 보스 몬스터인지 알 수가 없었다.

타악!

무사히 통로 밖으로 빠져나온 에일은 지하 던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이대로는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는 레기아스까지 곧 그의 뒤를 따라올 터였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순간 눈빛을 빛낸 에일은 뒤를 돌았다.

그리곤 기꺼이 장검을 꺼내들며 레기아스를 맞이했다.

밀폐되었던 보스룸과는 달리, 이곳은 사방으로 통로가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지하 던전이었다.

체력을 갉아먹던 독기의 중첩만 없다면 충분히 할 만했다.

키에에엑!

‘간다.’

집중력을 끌어올린 에일은 오버드라이브까지 활성화시키며 녀석과의 전투를 이어 나갔다.

레기아스의 까다로운 패턴 속에서도 에일은 놀라운 움직임을 보이며 놈의 체력을 줄여 나갔다.

독기가 너무 쌓인다 싶으면 녀석을 유인해 장소를 옮기고, 또 다시 전투를 벌였다.

이 기세라면 충분히 제한 시간 내에 보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예상은 레기아스의 체력이 70퍼센트에 다다르며 완전히 바뀌었다.

체력이 70퍼센트가 되는 순간 발동된 녀석의 두 번째 페이즈.

콰아아아아!

쏟아진 맹독 브레스가 한층 짙어진 색을 내보이며 바닥을 휩쓸었고, 땅은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렸다.

[지독한 독기로 인해 체력이 크게 줄어듭니다!]

“뭐……?”

장소를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의 체력이 브레스 한 번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페이즈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체력이 큰 폭으로 훅훅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상황이 급변했다.

단숨에 강해진 독기는 에일로서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거기다 새로운 페이즈에 진입하며 82퍼센트까지 치솟은 레기아스의 물리 내성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이건 답이 없다.’

에일의 머릿속에선 순식간에 결론이 내려졌다.

이번엔 이런저런 고민 같은 걸 할 필요도 없었다.

‘도망가는 정도로 떨어뜨릴 수는 없을 테고… 안전 구역으로 가는 수밖에 없어.’

지하 던전 내에 몇 군데 위치한 안전 구역은 단순히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곳의 키메라들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특수한 장소였다.

그리로 가면 아무리 미친 듯이 따라오고 있는 레기아스라도 에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에일이 혹시 몰라 이런 상황을 한켠에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싸우면서 근처로 조금씩 이동한 덕에, 이곳에서부터 안전 구역까지의 위치는 상당히 가까웠다.

촤르르르륵!

땅속에서 솟아난 신성의 사슬이 레기아스를 묶었다.

상황상 최대 강도를 낼 만큼 오랜 캐스팅을 할 수는 없었지만, 녀석을 상대로 잠시나마 시간 벌이 정도는 가능했다.

키에에엑!

사납게 몸부림치는 녀석을 뒤로 하고 에일은 재빨리 땅을 박찼다.

모퉁이를 돌자 바로 나타난 큰 공간.

땅 아래의 지하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높고 넓은 공간이었고, 사방으로 이어진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에일은 그중 한켠에 놓인 높다란 절벽만을 바라봤다.

‘오기 전에 빨리……!’

다급하게 팔을 뻗은 에일이 절벽에 올라탔다.

지하 던전 속, 이 근방에 위치한 안전 구역은 이 절벽 위에 놓인 곳 하나뿐이었다.

콰아아아!

“크윽……!”

어느새 뒤따라온 레기아스의 브레스가 절벽 한편을 휩쓸고 지나갔다.

지독한 독기에 바위마저 흘러내렸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었다.

녀석도 브레스를 연달아 쏠 수는 없었고, 이 틈에 절벽 위로 완전히 올라가야 했다.

콰앙!

에일은 날뛰는 레기아스의 공격을 피해가며 가파른 절벽을 올랐다.

녀석에게 용의 날개는 달려 있었지만, 볼품없이 짜집어진 몸체를 지닌 키메라답게 날지 못했다.

녀석의 팔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서자, 에일은 짧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브레스라도 날아올까, 그는 서둘러 절벽 위로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아앙!

잠시 물러섰던 레기아스가 힘껏 절벽에 부딪혔다.

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으로 인해 큰 충격이 발생했고 절벽이 뒤흔들렸다.

“……!”

예상치 못한 충격에 에일의 손이 미끄러졌다.

하필 절벽 위로 올라서려는 순간에 닥친 충격에 짚고 있던 부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이 높이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즉사 혹은 최소 스턴이었다.

그것도 아래에 미친 듯이 날뛰는 괴물이 버티고 있는 이상, 빼도 박도 못한 게임오버였다.

끝을 직감한 바로 그 순간.

타악!

“어?”

누군가 떨어지려는 에일의 손을 붙잡았다.

마주 잡힌 손에 감았던 눈을 뜬 에일은 고개를 들어 절벽 위를 올려다봤다.

그곳에서 고개를 내민 이는 그로서는 전혀 예상 못 한 얼굴이었다.

“에일 님, 위험했네요.”

붉은 로브 차림의 알리사.

그녀가 에일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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