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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97화 (197/227)

197화 전환점 (4)

콰득!

두개골을 관통한 장검이 박히며 바닥에 꽂혔다.

던전 안을 메우던 몬스터의 비명 소리가 뚝 멎었다.

“확실히… 쉽지 않긴 하네.”

에일이 이마에 맺힌 땀을 슥 닦았다.

그의 주변에 널린 몬스터들의 시체는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를 이루고 있었다.

던전 안에 도사린 몬스터들의 개체 수가 워낙 많은 데다가, 수준마저도 동레벨대 던전에서 손에 꼽힐 만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혼자서 들어왔으니 에일조차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방금만 해도 처음 마주친 녀석들에 더해 소리를 듣고 몰려든 녀석까지 무려 40분을 줄곧 싸워댔고, 이제야 겨우 숨 고를 시간을 얻어냈다.

‘뭐, 그 덕에 부수입이 짭잘하긴 하지만.’

던전에 진입한 지 벌써 하루가 지난 지금.

길을 뚫어내는 동안 쉴 틈 없이 몰려들었던 몬스터들은 자연스레 에일의 피와 살이 되어 주었다.

[현재 레벨 - 234레벨]

그동안 올려놓은 레벨에 더해, 거의 다 채운 경험치 바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효율이 나쁘기로 유명한 미궁의 숲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지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확실히 보상이 남달랐다.

거기다 이 지하 던전엔 일반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준보스 취급의 정예 몬스터들까지 잔뜩 쌓여 있었다.

이단의 낙인까지 찍혀 있는 괴물들을 처치하고서 얻는 공헌도와 스탯 역시 쏠쏠했다.

‘뭣보다… 이게 끝이 아니지.’

흥얼거리며 다가선 에일이 해체용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널브러져 있는 키메라들의 시체를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

.

.

에일이 먼저 살결을 가르며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보다 더 중요한 정예 몬스터들의 시체였다.

일반 키메라보다 더 큰 덩치를 지닌 녀석들은 덩치에 걸맞게 고급 아이템들을 쏟아냈다.

제법 높은 등급의 장비 아이템과 쏠쏠한 값어치의 재료 아이템들.

하지만 에일의 눈에 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콰득!

“이, 이건…….”

해체 중 무언가를 발견한 에일이 눈을 가느다랗게 늘였다.

키메라의 시체 안에서 동그란 물체를 들어 올렸다.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 요상한 아이템의 정체.

어지간한 전리품들이라면 모두 꿰고 있는 에일로서는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몬스터의 내단.

보스나 정예 몬스터들 사이에서 아주 드문 확률로 나오는 소모성 도핑 아이템이었다.

그것도 일반 도핑 포션과는 비교도 안 될 고성능의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전투 관련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켜 주는 데다가, 무려 12시간이나 유지되는 지속 시간이 그 특징이었다.

모든 몬스터를 일일이 해체해 봤자 확률이 아주 낮아, 보통 기대도 하지 않던 유저에게나 나타나는 보너스에 가까운 보상이었다.

다만 단점으로는 거래가 불가능하고, 획득한 뒤 바로 섭취해야 하는 아이템이었기에 거래 수단으로는 가치가 없었다.

“으음…….”

에일이 침음을 내며 내단을 바라봤다.

정말 낮은 확률로만 나타나는 고성능의 도핑템의 등장에도, 그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끈적한 내단에서는 정체 모를 검은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안 그래도 흉측한 언데드 몬스터의 시체에서 나온 것도 꺼림칙한데, 생긴 것도 참 정이 가지 않게 생겼다.

맛있는 게 넘쳐나기로 유명한 워로드였지만, 반대로 이런 혐오 식품들도 현실을 가볍게 초월하곤 했다.

“욱…….”

얼굴을 가까이 한 것도 아니었지만, 코를 찌르는 악취가 강렬하게 올라왔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코를 틀어막은 에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아무리 좋은 성능을 지닌 도핑 아이템이라도 씹어 삼켜야 한다는 심리적 저항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비위라면 자신 있는 에일조차도 내적 갈등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 그래, 몸에 좋은 건데 뭔들 못 먹겠냐.”

서둘러 세이아를 구출해 내야 하는 지금.

그렇지 않아도 한시가 급한 와중에, 이런 고민으로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눈을 딱 감은 에일은 내단을 입속에 휙 집어넣었다.

찌걱!

내단을 우적우적 씹기 시작하자, 그 안에서 검은 물들이 터져 나왔다.

[‘빛의 심판자, 루’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립니다.]

[‘은밀한 탐구자’가 당신의 비위에 감탄합니다.]

“XX.”

에일의 입에서 필터링이 새어나왔다.

저도 모르게 욕지꺼리가 나올 만큼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에일은 꾸역꾸역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삼켰다.

이미 시도를 한 상황에 포기를 했다간, 도핑 효과만 받지 못한 채 비참해질 뿐이었다.

[‘생명의 어머니’가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그녀가 당신에게 내단의 맛을 물어봅니다.]

“끄, 끔찍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맛.

그 어떤 상태 이상보다도 아찔했다.

괜히 운 좋게 내단을 얻은 유저들 중 절반 이상이 포기하고 뱉어 버린다는 게 아니었다.

아직도 뒷맛이 가지 않은 탓에 에일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잠시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오랜 세월 쌓인 내단의 힘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적용 스탯: 힘, 민첩, 체력, 마력, 신앙심]

[남은 시간 ‘11:59:58’]

[‘생명의 어머니’가 당신을 후원합니다.]

[공용 교단 공헌도 +50]

‘죽으라고 고사 지낼 땐 언제고…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다시 정신을 차린 에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적당히 남은 전리품들을 챙긴 그는 던전의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이 고생을 하면서 얻은 강력한 도핑 효과가 있을 때 본전을 뽑아야 했다.

이곳 지하 던전 안에 존재하는 안전 구역은 총 열두 곳.

몬스터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곳이었고, 만약 잠잠해질 때까지 추적을 피해 잠시 숨어 있어야 한다면 그곳이 제격이었다.

그렇게 나아간 에일이 마주한 것은 두 갈래 길.

던전의 정보를 알고 있는 에일은 자연스레 그가 향하려던 왼쪽 길로 향하려 했다.

‘잠깐…….’

그때 아주 희미한 혈향이 오른편에서 풍겨왔다.

낌새를 눈치챈 에일은 곧장 오른쪽 길목으로 향했고, 그 곳에서 예상 못 한 광경을 목격했다.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검은 피.

에일을 맞은 것은 온통 뒤엉켜 있는 키메라의 시체들이었다.

던전이나 사냥터 속 몬스터들끼리 서로를 사냥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건 달랐다.

‘몬스터들끼리 싸운 게 아니야.’

한쪽 무릎을 꿇은 에일은 자세히 흔적을 살폈다.

곳곳에 그어져 있는 정교한 상처.

예리한 쇠붙이로 갈라진 상처였고, 그것도 키메라의 약점 부위만을 정확히 노린 일격들이었다.

이건 몬스터가 아닌 사람의 흔적이 분명했다

‘분명 누군가 있어. 하지만 누구지?’

에일은 이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게 볼 수 없던 고레벨 몬스터들을 공주가 도륙했을 리는 없는 일.

물론 이것만으로 공주의 흔적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또 없었다.

‘알아봐야 할 필요는 있겠어.’

일어난 에일은 이곳에서부터 희미하게 이어진 흔적을 뒤쫓아 더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금껏 능숙하게 지워져 있던 발자취와는 달리,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흔적들이 이어져 있었다.

물론 에일이나 랭커들의 시선에서의 기준일 뿐.

어지간한 유저들은 직접 봐놓고도 전혀 모르고 지나칠 만한 미세한 흔적들이었다.

다만 이 흔적들을 따라가면서도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쪽 방향엔 안전 구역이 없을 텐데… 그렇다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거지?’

쿠구구구!

의문을 품은 바로 그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이, 이런……!’

에일은 뒤늦게 몸을 빼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엄청나게 넓은 범위의 바닥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며, 꼼짝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바닥에 떨어지며 낙하 대미지로 인해 체력이 주르륵 깎였다.

제법 깊게 떨어진 탓에 체력이 아슬아슬했다.

“이게 대체…….”

머리를 부여잡은 에일은 곧장 회복 포션을 꺼내 마셨다.

갑작스러운 일에 정신이 없긴 했지만, 체력바가 빨개지면 일단 포션부터 찾는 것은 게이머의 본능이었다.

컴컴한 동굴의 안.

주위를 둘러보려 했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바닥을 짚은 에일은 골똘히 기억을 더듬었다.

‘이 주변에서 갑자기 발동될 함정이라면, 시나리오 던전뿐일 텐데. 그렇다면 혹시……?’

[시나리오 던전이 발동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져 고립되었습니다. 괴수들을 피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역시나…….’

에일이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반응했다.

이곳 지하 던전 내부에 위치한 또 다른 던전.

하지만 그가 방금 알아낸 사실은 단순히 시나리오 던전을 마주했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원래 지금 마주한 이 시나리오 던전은 몇 가지 트리거가 작동된 이후에나 생겨나는 히든 던전이었다.

이곳 지하 던전을 찾아낸 최초 발견자는 당시 전력이 부족한 탓에 조사만 진행한 뒤 미궁의 숲을 떠났고, 그가 발견했던 이 히든 던전도 공략되지 않은 채 다시 모습을 감췄다고 했다.

‘절대 우연히 던전이 드러날 만한 조건은 아니었어. 그렇다는 건 즉… 누가 이곳의 함정을 고의로 파뒀다는 거겠지.’

누군가 일부러 이 길목에 함정이 생겨날 트리거를 발동시켜 놨다는 것.

정보가 없던 이라면 단순히 던전의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만이었겠지만, 미리 이곳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던 에일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 위에 있다는 거네.’

에일은 어느새 꽉 막혀 버린 천장 쪽을 바라봤다.

혹시 모를 추적에 대비해 고의로 흔적을 남기고, 시나리오 던전을 활성화까지 해 둔 장본인.

이 던전은 끝까지 클리어하지 않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였고, 에일로서는 반드시 이곳을 돌파해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키에에엑!

동굴 안을 쩌렁쩌렁 메우는 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자 에일은 횃불 하나를 꺼내들어 바닥에 내던졌고, 어둠이 약간이나마 물러가며 시야가 트였다.

그렇게 에일이 마주한 것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었다.

심지어 정예 몬스터의 숫자나 전반적인 레벨까지도 위에서 마주했던 것 이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 시나리오 던전은 당시 미궁의 숲과 지하 던전을 별탈없이 조사하던 최초 발견자조차도 진입을 포기하고 되돌아갔을 정도였으니까.

파아앗!

몰려드는 괴물들의 한가운데에 선 에일.

치켜든 그의 장검에 새하얀 빛이 서렸다.

“누가 이런 걸 준비해 둔 건진 몰라도, 얼굴 한번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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