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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96화 (196/227)

196화 전환점 (3)

미궁의 숲.

주변 유저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악명 높은 지역이었다.

엄청나게 넓고 복잡한 지형과 기본적으로 200을 넘는 고레벨 몬스터 서식지였기에 함부로 발을 들였다간 목숨이 달아나기 십상이었다.

특히 사냥터엔 괴악한 패턴의 몬스터들이 잔뜩 포진해 있으면서, 몬스터들이 주는 보상은 메리트가 전혀 없는 것도 문제였다.

다른 용건이 있는 게 아닌 이상, 거의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으려는 곳이었다.

최소한 필드 사냥을 목적으로 이 곳을 찾는 유저는 없다고 봐야 했다.

쿠웅!

나무 사이에서 나타난 거인이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갔다.

‘다행히 눈치 못 챈 모양이야.’

녀석을 보자마자 재빨리 숨은 에일이 멀어진 거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보창에 따르면 녀석은 240레벨의 정예 몬스터.

벌써 230대에 진입한 에일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는 아니었지만,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게 내버려 두었다.

평소에 정예 몬스터들은 보스나 유저 말고도 스탯을 얻어 낼 수 있는 중요한 스탯 수급처였지만, 지금은 그런 작은 부분에 욕심낼 때가 아니었다.

‘이 살벌한 곳에서 요란하게 치고받을 수야 없으니…….’

에일은 숨어 있는 와중에서도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이 지역 안에 들어와 있을 수많은 랭커들을 생각하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미궁의 숲 안에 공주가 있다는 건 확실한 정보인지, 아폴리온도 이 부근만을 철저히 수색 중이었다.

공주의 행방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으니, 자연히 각 길드의 랭커들은 모두 숲속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아주 넓은 숲의 크기 덕에 위치가 특정되었다고 해도 그녀를 뒤쫓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부스럭!

에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풀을 헤치며 다가오는 한쌍의 남녀.

에일은 도로 바싹 자세를 낮춘 채 숨을 죽였다.

“서쪽 동굴은 어때?”

“아직입니다.”

‘저 얼굴은……?’

놀란 에일이 방금 목격한 둘의 얼굴을 곱씹었다.

아폴리온의 두 랭커.

특히 그중 하나는 하이 랭커이자 최고 간부 중 하나인 사일러스였다.

무려 전체 랭킹 8위에 달하는 실력자로,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해 모습을 보였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옆에 붙어 있는 수행원조차 700위대의 랭커였기에 그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최고 간부들까지 직접 와 있었군.’

수도를 장악하는 데 앞장섰던 아폴리온의 최고 간부들.

동북부의 격렬한 전쟁 중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들이 이곳에 있었다.

도망간 공주를 잡아들이는 데 예상 이상으로 시간이 지연되는 데다가, 다른 6대 길드의 랭커들이 숲 안으로 들어섰다는 게 파악되자 그들까지 직접 나선 것이다.

저벅저벅.

가까이 들리는 발소리에도 에일은 차마 고개를 움직여 살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에일이 숨어 있는 곳 바로 앞을 지나쳤지만, 다행히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다.

“설마 혼자서 도망친 공주 하나를 잡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이젠 날파리들까지 꼬이고, 마무리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쓸데없는 변수가 생겼네.”

“죄송합니다. 이 숲에서부터 흔적이 완전히 끊긴지라…….”

“너희 탓을 하는 게 아니야. 홀로 도망쳤던 공주가 어떤 수를 쓴 건지 궁금한 거지. 전투 방면에 소질이 있던 것도 아니고, 몬스터들을 감당할 수도 없을 텐데…….”

말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엿 듣게 된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세이아가 혼자 이 숲을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미궁의 숲은 이곳에 진입한 랭커들조차 발목을 잡힐 만큼, 고레벨의 몬스터가 넘쳐 났다.

공주가 혼자 다녔다면 흔적을 숨기며 능숙히 달아나기는커녕, 진작에 몬스터들의 한 끼 식사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과 다르게 몬스터들은 왕족을 알아볼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단 공주가 살해된 것은 아니었다.

에일은 미궁의 숲에 진입하자 루의 퀘스트를 부여받을 수 있었고, 아폴리온보다 먼저 공주를 확보하는 게 퀘스트의 내용이었다.

만약 그녀가 사망했다면 이런 퀘스트가 발생했을 리도 없을 터.

스륵.

아폴리온의 랭커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에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랭커들 숫자가 많아지는 것 같네.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야겠어.’

숲속에서 최대한 아폴리온 측 랭커들을 줄여 주는 편이 경쟁에서 유리하겠지만, 그건 상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멋모르는 유저들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먼저 나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세이아 공주의 확보니까.’

랭커들과의 전투는 철십자나 다른 6대 길드의 랭커들에게 맡겨 두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서부터 찾느냐가 문제인데…….’

골똘히 생각하던 에일은 지도를 확인했다.

미궁의 숲은 손꼽힐 만한 고레벨 지역이라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만한 고레벨 유저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도 아니었기에 정보가 아주 적은 편이었다.

정보망이 엄청난 6대 길드들이 나섰음에도 애를 먹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에일은 이곳에 대한 정보를 꽤나 많이 알고 있었다.

과거 사이트상으로 고급 정보들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텄던 ‘Lotus’와의 교류에서 이곳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난이도만 어렵고 보상은 그저 그런 지상의 사냥터들과 다르게 놀랍게도 숲의 지하엔 꽤나 쓸 만한 던전들이 포진해 있었다.

물론, 그런 지하 던전은 몇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중 긴 시간 동안 몸을 숨기는 데 적합한 곳을 따지자면 의심 가는 지역이 딱 하나 존재했다.

‘하지만 거긴 정말 몇 명 알지 못하는 곳인데…….’

워로드 전체 유저를 따져도 한 손에 꼽힐 만큼 적은 숫자만이 아는 던전.

정보를 알고 있는 몇 명의 유저들 사이에서 비밀 엄수가 아주 잘 이뤄지고 있는 곳이었다.

심지어 아주 뛰어난 사냥 효율 덕에 에일도 나중에 가 보려 했던 곳이었다.

만약 공주가 그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면, 그것 또한 의문일 듯했다.

단순히 우연이 겹쳐서 그곳으로 피신할 수 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수가 있었던 것인지.

‘어찌 됐든 빨리 확인해 봐야지.’

에일은 곧장 지하 던전의 입구가 있는 좌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촤아아악!

끝도 없이 이어졌던 긴 통로.

경사로를 미끄러져 내려온 에일이 간신히 균형을 잡은 채 안착했다.

“휴, 찾았다.”

그의 앞을 반기는 어두컴컴한 지하 던전.

당시 정보를 넘겨받으며 함께 온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었고, 그가 찾은 지하 던전이 맞았다.

쿠우웅!

그때 위쪽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왔다.

‘이거… 제대로 붙기 시작했나 본데.’

머리 위로 들려오는 희미한 폭음과 진동은 쉽사리 끊이지 않았다.

지하 던전이 위치한 곳 자체가 숲의 중심부 근처였고, 그 위에선 맞부딪친 6대 길드 랭커들 간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기에 안 휘말려서 다행이지.’

고개를 저은 에일은 안쪽으로 들어섰다.

지하 던전의 입구는 넓은 크기에 비해 몇 곳 되지 않는 데다가, 죄다 미리 알고 있지 않다면 발견하기 어려운 숨겨진 장소뿐이었으니, 최소한 바깥에서 누군가가 뒤따라 들어올 걱정은 없었다.

‘가능하면 이 안에 있어 줬으면 하는데…….’

화륵!

성화를 장검에 타오르게 만들었다.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선 에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의 몬스터들과 조우했다.

시체들이 덕지덕지 기워 붙은 키메라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흉측한 생김새에 제각기 다른 모습.

그도 그럴게 미궁의 숲의 지상에 살던 몬스터들의 시체가 한데 모여 만들어진 괴물들이었고, 이곳 지하 던전엔 죄다 저런 녀석들뿐이었다.

‘세이아가 이런 놈들을 뚫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지만… 확실한 안전 구역이 몇 곳 있으니까. 그쪽 위주로 먼저 살펴봐야겠지.’

몬스터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지상과 다르게, 미궁의 숲 안 중 확실히 안전하다고 생각될 만한 구역은 오히려 이 지하 던전 안에만 존재했다.

키에에엑!

에일을 목격한 키메라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흉측한 괴물들이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몰려드는 모습은 흡사 공포 게임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에일에게만큼은 이런 광경쯤은 일상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오히려 교단의 이단 심문소가 이것보다는 몇 배 더 공포스러울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콰아악!

맞부딪힌 에일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키메라들을 피하고, 장검을 휘두르며 괴물들을 썰어 냈다.

비교적 좁은 통로가 오히려 녀석들을 상대하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화르르륵!

스킬, 불의 세례가 발동되었다.

휘둘러진 검에서 뻗어져 나온 거센 불길이 통로를 가득 채우며 키메라들을 쓸어 냈다.

키에에엑!

우월한 스탯에 더불어,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추가 대미지가 놈들을 산화시켰다.

키메라들은 에일보다 높은 240레벨대의 몬스터들이었지만, 에일이 지닌 스펙은 전혀 그 레벨대에 밀리지 않았다.

서걱!

침착히 숫자를 줄여 나가는 에일이 한 녀석의 머리를 베었다.

어느새 그는 키메라들이 보이는 공격 패턴에도 거의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에 몰려든 키메라들 사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건……?’

이단의 낙인이 머리 위에 찍혀 있는 한 녀석.

일반 몬스터에게는 낙인이 찍힐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녀석은 단순히 덩치만 큰 녀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가 급히 놈의 상태창을 열어 보자 250레벨의 정예 몬스터라는 게 드러났다.

콰과과광!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녀석이 주먹을 뻗어 한쪽 벽을 박살 냈다.

급히 몸을 피하긴 했지만, 같은 키메라 여럿이 단번에 짓밟혀 사라졌을 만큼 엄청난 괴력이었다.

‘속도도 빠르고… 한 번이라도 당하면 끝이겠네.’

훌쩍 물러선 그는 검을 바로 잡았다.

츠츠츠츳!

에일의 동조율이 단숨에 끌어 올려졌다.

금빛으로 물든 그의 눈이 움직였고, 어느새 코앞까지 돌진해 온 거인에게로 향했다.

쿠웅!

높게 뛰어오른 에일이 거대 키메라의 등을 베며 내려왔다.

내려찍히는 녀석의 주먹을 피하고, 비게 된 왼쪽으로 파고들며 검을 찔러 넣었다.

정예 몬스터가 지닌 빠른 속도와 괴력이 무색할 정도로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놀랍도록 여유로운 모습의 그는 녀석의 동작을 모두 읽고 압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점점 누적되어 가는 대미지.

그 끝으로 에일은 괴물의 목을 단숨에 내리쳤다.

콰아악!

거대 키메라가 검은 피를 분수처럼 내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째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 잠깐, 들었던 거 이상인데?’

벌써 오른 레벨에 에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여 있기는 했지만, 그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경험치가 훨씬 더 많이 들어왔다.

‘이거 어쩌면…….’

크어어어!

그때 우렁찬 포효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에일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자 방금 처리한 거대 키메라와 비슷한 덩치의 정예 몬스터들이 잔뜩 다가오고 있었다.

“허…….”

하지만 정작 놈들을 앞둔 에일의 입가엔 미소가 자리 잡았다.

‘중요한 건이라 레벨업은 잠시 미룰 셈으로 찾아온 건데. 이거, 그럴 필요가 없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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