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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95화 (195/227)

195화 전환점 (2)

“오, 850위도 넘은 건가.”

바위에 걸터앉은 에일이 중얼거렸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화면엔 자신의 이름과 845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워로드 공식 랭킹에서 900위대를 넘어서 845위까지 순위를 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두 랭커를 제압할 때 보스 몬스터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나, 당시에 보여 준 움직임과 대처까지도 포함되어 산출되는 방식이었으니 랭킹은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만약 혼자서 둘을 동시에 제압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면, 최소 100위권 안에는 들었을 것이다.

거기다 올라간 레벨 그리고 새롭게 얻은 23번째 습득 스킬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 전투만으로 845위가 된 것은 아니었고, 그 이후로 전투를 몇 번 벌이며 스펙을 더 끌어 올리면서 최대 동조율을 116퍼센트까지 올리는 데 성공하자 지금의 순위까지 올랐다.

이 엄청난 상승세에 유저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고공행진 하던 에일의 주가는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그러한 이득은 자연히 교단에게도 영향을 주기 마련.

아래쪽 전선의 기세는 완전히 빛의 교단에게로 넘어온 상황이었다.

‘이대로만 풀려 간다면 목표 달성도 먼 일이 아니야.’

랭킹은 순조롭게 올라가고 있었고, 교단의 세력도 불어나는 중이었다.

이번 아폴리온과의 전쟁만 성공적으로 마치면, 6대 길드에게 약속받았던 대로 모든 핵심 성물 파편을 모을 수 있었다.

이번 성물 퀘스트의 스케일과 중요성으로 보아 많은 보상이 주어질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모두 모은 성물로부터 얻을 루의 영향력과 공주와의 약속대로 공식 교단으로 자리 잡으며, 세력 확장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그를 가로막을 건 없었다.

자신의 모든 목적 달성이 코앞까지 다가온 듯했다.

‘물론, 벌써 끝을 바라보기엔 시기상조겠지.’

분명 일들이 좋게 풀려 가는 건 맞았다.

이대로 전선을 계속해서 밀고 들어가 압박해 준다면, 아폴리온의 입장에서도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아래쪽 전선을 맡던 물의 교단과 대지 교단과는 달리, 유저 간 전쟁을 전문으로 하던 용병 길드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다소 까다로워진 측면이 있었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답게 전력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이곳뿐만이 아니라, 최근 아폴리온의 전력은 갑자기 수비적으로 돌아서 버티기에 나섰고, 전선이 고착화된 상황이었다.

북동부의 필드 주도권을 대부분 넘겨주며 방어 거점들을 끼고 수성에 전념하는 모습.

그렇게 나오는 이상 막무가내로 밀어 낼 수도 없었다.

높은 등급의 성벽이나 첨탑 등 각종 방어 시설을 겹겹이 낀 수성 측의 이점이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컸다.

물론, 지하 종족을 전력으로 가지고 있는 빛의 교단에서는 래터의 땅굴이나 드워프들의 우월한 공성 병기를 이용해 가며 계속 두들기면 거점의 공략 시간은 훨씬 단축 가능했다.

하지만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아폴리온측 랭커들도 그렇고, 무언가 노림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에일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띠링!

그의 앞으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건……?”

* * *

“그, 그게 사실이라고……?”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에일이 믿기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철십자의 길드장, 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정보야. 수도에 보내 둔 길드원들에게서도 연락이 왔고.”

“어떻게 그런 짓을…….”

“사실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 미리 공을 들여 놔야겠지만, 다른 6대 길드들도 할 수 없어서 안 한 게 아니거든.”

6대 길드의 랭커들이 왕궁에 침투해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일은 그녀의 말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랭커 수준의 강자들은 NPC들 사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고, 6대 길드는 그런 괴물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껏 6대 길드가 왕가에게 만큼은 손을 안 댄 이유가 있었다.

‘그래, 그런 짓을 벌였다간 후폭풍이 감당 안 되니 피한 거였지.’

에일이 진땀을 삐질 흘렸다.

워로드 대륙 전역의 수많은 NPC들은 대부분 왕국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었다.

다른 종족에 대한 다소 강경한 정책 탓에 이종족의 경우 왕국에 적대감을 가진 경우가 많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NPC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들만큼은 많은 지지를 보내 왔다.

오랜 정통성 있는 왕가의 핏줄을 지닌 데다가,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다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한데 거대한 모험가 길드 하나가 수도에 쳐들어가 왕족을 죽이고, 왕궁을 장악하기까지 한다면 그에 대한 반응이야 불 보듯 뻔했다.

해당 길드가 엄청난 반발을 살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칫 하다간 NPC들 사이에서 워로드 내의 모든 모험가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었다.

6대 길드들조차 여태 왕가와의 마찰을 피하고, 영지 세금의 일부를 얌전히 납부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녀석들 결사단의 힘을 빌려서 꼭두각시들을 세워 둔 모양이야. 표면적으로는 공주도 왕자도 멀쩡히 살아서 왕궁에 있고, 바깥에서 눈치챈 기색도 없어.”

“대강 어떤 방식의 마법인지 알아낸 점은 있나?”

“아니, 전혀. 어떤 수가 통할지 안통할지 알 수가 없으니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는 거지.”

지금 시점에 왕궁에 있는 왕족들이 가짜라는 걸 알아봤자,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 모두 도루묵이었다.

왕궁 내부에 있던 귀족들까지도 아폴리온에 협력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체되었고, 미친척하고 강행 돌파로 증명하는 방법도 불가능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누구든 왕족에게만큼은 함부로 손댈 수 없어.”

시르의 말에 에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 팩션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인 6대 길드, 심지어 빛의 교단의 심판관들까지도 직계 왕족만큼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단순히 큰 권력을 쥐고 있다는 귀족들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거기다 강행하며 잡아들인다고 해도 밝혀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

아폴리온은 결코 허술한 수를 쓸 자들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런 움직임은 악수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왕가를 장악했다는 건 단순히 지분을 늘리겠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데…….”

“그래, 놈들은 아예 일반적인 길드의 범주를 벗어나겠다는 거지.”

왕가를 완전히 장악할 경우, 해당 길드는 경매장 수수료나 영지 세율에 대해 최대치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

특히 영지 세율의 경우, 경매장 수수료와는 달리 그 수익을 고스란히 해당 영지에 다시 투자해야 하는 제약이 걸려 있었다.

길드 측에서 잠깐의 돈에 눈이 멀어 거점 자체를 엉망으로 망치지 않게끔 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하나 왕가의 간섭이 없어진다면, 길드들은 그런 기본적인 제약에서조차도 풀려나게 된다.

영지당 가질 수 있는 NPC 고용 인원의 상한선도 없앨 수 있고, 그 외에도 유저 길드가 가지는 수많은 제약들을 풀 수 있었다.

‘게다가 왕족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은 이상 그보다 더한 짓도 벌일 수 있지.’

에일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만약 아폴리온이 이대로 자신들의 꼭두각시 중 하나를 새로운 왕으로 세워 놓는다면, 그 밑의 수많은 NPC 세력들을 조종하는 것까지도 가능했다.

왕의 뜻이라는 명분 아래에 왕국 내 영향권인 모든 NPC 세력들까지 직간접적으로 간섭하며 입맛대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야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잠잠히 있었지만, 놈들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지. 이스트혼에서의 알키오네처럼 워로드를 통째로 손에 쥔 다음 모조리 착취할 계획인 거야.”

시르가 예상하고 있던 사실들을 담담히 말했다.

당연히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유저들의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아폴리온이 그간 출신 게임과 알키오네로서의 정체를 숨긴 이유도 바로 그 탓이었다.

하지만 만약 왕가를 장악하고 경쟁자인 6대 길드들만 적당히 처리해 놓는다면, 뒤늦게 깨달은 일반 유저들의 여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일반 유저들이 구심점도 없이 모인다고 해 봤자, 최강의 무력을 지닌 길드인 아폴리온을 누르기엔 절대 무리였다.

워로드 또한 한 길드의 독점 시장이 되어 버린 ‘이스트혼’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에 세이아 공주가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쪽만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 이 상황도 단번에 뒤집을 수 있어.”

“공주는 아직 붙잡히지 않은 건가?”

“그래, 추적대가 아직도 수색에 전념 중인 걸 보면 의의로 잘 숨어 있는 모양이야.”

휙.

시르가 가볍게 손짓하자 위치 정보가 에일의 개인 화면에 나타났다.

“이건?”

“아폴리온의 랭커들이 샅샅이 뒤지고 있는 곳이야.”

“그렇다면 이 지역 안에 공주가 있다는 거군.”

에일이 떠오른 지도를 반기며 말했다.

하나 지도 안에 표시된 위치 정보는 매우 포괄적이었고, 이 커다란 지역 안을 모조리 뒤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단서 하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최소한 조금 전보다는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하지만 낙관은 못해. 아폴리온의 정예들이 공주를 추적 중이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곧 잡히고 말 거야. 믿을 만한 호위를 여럿 데리고 빠져나간 것도 아니었으니까.”

“바로 움직여야겠네.”

에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마음 같아선 같이 가고 싶지만…….”

“그야 유론이 있는 이상, 자리를 비우는 건 무리겠지.”

현재 철십자와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켈베로스의 길드장, 유론.

워로드 랭킹 5위의 강자인 그를 감당할 수 있는 건 시르뿐이었다.

“그래. 나이트메어나 여명 쪽도 상황은 비슷할 거야. 최대한 랭커들을 파견하겠지만, 수도로 향했던 아폴리온의 랭커진과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

철십자나 북동부의 전장도 너무 많은 랭커 전력을 빼낼 수는 없었다.

단지 아폴리온 측이 웅크린 채 수성에 나섰다는 것만으로 방심하고 큰 전력을 빼냈다간, 그사이 더 큰 반격에 당해 본대가 갈려 나갈 수도 있었다.

애당초 전장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수도에서도 이렇게 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던 건 주요 랭커진을 빼놓은 채로도 대륙 반대편 전쟁을 감당할 수 있던 아폴리온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 정도야 감수해야지.”

어깨를 으쓱인 에일은 곧장 비행선을 타기 위해 정거장으로 향했다.

“…….”

그러자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르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막 800위대에 진입한 에일은 분명 객관적인 전력상으로는 큰 변수라고도 할 수 없었다.

서로 모여들 수많은 6대 길드의 랭커들에 비하면 그는 하위권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르는 에일에게 단순 전력 이상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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