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전환점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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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가 완료되며 에일의 눈앞에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통으로 징벌의 검이 내리꽂힌 샤고어는 치명적인 상성에 더해 최대 위력까지 끌어올린 스킬에 당하고 말았다.
충분히 체력을 깎아 둔 상황에서 막대한 대미지를 입은 녀석은 꼼짝없이 형태를 잃었다.
메이의 보조에 힘입어 단 둘이서 250레벨의 보스를 해치워 버린 것이다.
츠츠츳!
에일의 눈동자 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끌어올렸던 동조율이 다시 원래의 수치로 돌아오며 차분해졌다.
‘익숙해지고 있는 건가…….’
에일이 자신의 손을 쥐었다 피며 내려다보았다.
처음 오버드라이브 상태에 돌입했을 땐, 해제 뒤엔 항상 띵한 느낌이 찾아왔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동조율의 변화에 익숙해지니 그런 부작용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동조율을 단숨에 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이 거의 없었고, 상태를 유지하는 지속 시간도 조금씩 길어졌다.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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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랭커와 보스 몬스터까지 모두 쓰러뜨린 상황.
검을 집어넣은 에일은 언제나처럼 죽은 시체의 아이템들을 탈탈 털어냈다.
무기와 방어구, 장신구 등.
워로드의 랭커들이 착용하던 고가의 장비는 한 피스에 수백만 원이 우스워질 정도였다.
그를 제외하고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금은 상당했고, 순수 골드 양만으로도 많은 수익을 얻었다.
거기에 보스 몬스터 쪽도 남아 있었다.
샤고어가 떨군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도 특히 에일의 눈에 곧바로 띈 것은 스킬북이었다.
‘오… 마침 잘됐네.’
사냥을 거든 메이와의 간소한 분배 이후, 스킬북을 집어든 에일이 미소를 띠었다.
보스에게서 루팅된 ‘찬란한 검은빛 스킬북’은 황금빛 스킬북의 바로 아래 단계였다.
마침 230레벨을 달성한 참이었는데, 최상급 스킬북까지 나와 주니 딱 맞아떨어졌다.
‘이거… 전혀 예상 못 한 돌발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일이 훨씬 좋게 풀렸네.’
시체에서 루팅한 각종 아이템에 경험치.
퀘스트를 완료하며 얻은 공헌도와 총애도, 스탯.
무엇보다 두 랭커를 동시에 격파하며, 영상과 선전에 사용할 좋은 소스까지 얻어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고, 워로드에서는 특히나 더했다.
“집행관님, 위쪽도 마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아, 어서 올라가죠.”
메이의 말에 에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대로 폐허 위에서 전투를 벌이던 오닉스의 길드원들은 완전히 제압된 듯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벌어졌던 만큼, 다른 쪽으로 움직였던 이단심판관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우선이었기에 스킬북을 품에 집어넣었다
* * *
“오늘따라 메시지가 엄청나게 들어오네.”
급박한 전쟁 상황이 이어지며 아폴리온의 간부들에겐 수많은 보고가 바쁘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건 도시를 나란히 걷고 있는 두 명의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폴리온의 길드장, 크루거.
그 옆엔 최고 간부 중 하나인 루칸.
양쪽 모두 워로드 공식 랭킹 10위 안에 드는 최고 실력자이자,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는 하이 랭커였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 한복판을 걷고 있음에도, 그들을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후드가 달린 망토와 가면이 그들의 정체를 가려 주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나는데?”
“하하, 그러게.”
누가 봐도 정체를 숨기려는 듯한 수상쩍은 차림새였지만, 사실 워로드에선 생각보다 흔한 복장이었다.
정말 정체를 숨기고 다녀야 하는 악질 유저나, 마음에 드는 컨셉을 잡았다거나, 단순히 게임을 하면서 얼굴이 드러나기 싫은 사람들까지도 가면을 애용했다.
무엇보다 이스트혼 시절의 알키오네를 기억하는 이들 중 그들을 따라 가면을 쓰며 활동하는 자들이 많았다.
지금이야 화제에서 거리가 멀어진 옛 길드나 다름없어진 곳이지만, 당시의 임팩트란 대단했기에 아직도 워로드에서조차 따라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북동부가 본격적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모양이야.”
“역시 주요 전력이 다 빠진 상태에서 이겨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겠지.”
“하지만 벌써 이렇게 밀리기 시작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특히 네가 말했던 에일이라는 녀석… 랭커 둘을 동시에 잡더니 더 기세를 타서, 전선 한쪽을 아예 밀어버리고 있던데.”
“하, 다고스까지 직접 보냈었는데 아쉽게 됐어.”
에일의 이름을 듣자 크루거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싹수가 보이길래 나도 한 번쯤 키워 보는 입장이 되어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조금 더 일찍 접근해 볼 걸 그랬나?”
“거기엔 관심 없고.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인데?”
“이제 지키는 데 주력하라고 전해. 무리해서 맞붙을 것 없이 시간만 끌어 주면 되니까.”
“최대한 시간을 버는 데에는 좋겠다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두드리는 모양새가 되면 좋지 않을 텐데? 북동부 주도권은 완전히 여명, 나이트메어한테 넘기려고?”
“그쪽은 내줘도 상관없어. 애초에 대륙 반대편에 지역 몇 곳 얻자고 벌인 일이 아니었으니까. 뭣보다 이제 끝이 보이고 있으니 신경 쓸 게 아니겠지.”
“좋아,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루칸은 한쪽 귀에 손을 올린 뒤, 간부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했다.
그사이 거리를 빠져나가 안쪽으로 꺾어 들어간 그들은 왕궁 앞에 당도했다.
사람이 넘쳐나는 수도 아스칼론 내에서도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곳.
왕궁의 정문 입구에 당당히 발을 들인 그들은 눌러쓴 후드조차 벗지 않고 나아갔다.
“지나가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입구를 지키던 근위병이 그들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원래 아무리 대의회에 참석할 권한까지 있는 6대 길드의 수장이라고 해도, 사전에 출입 허가를 받은 적이 있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근위병들은 그를 저지하기는커녕, 아예 방문의 의도조차 묻지도 않고 통과시켜 주었다.
“1년 동안 준비해 오던 일이 오늘 하루 안에 끝나게 되다니. 언제 겪어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뭐, 동감이야.”
어깨를 으쓱인 크루거는 슬쩍 시선을 옮겼다.
아예 왕궁의 중심 건물 안으로 들어선 그들을 반긴 것은 바닥에 흐르고 있는 진득한 핏줄기.
그리고 코를 찌르는 악취였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왕궁에서만큼은 결코 있어선 안 될 흔적들.
전혀 동요하지 않은 크루거와 루칸은 악몽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들을 무감각하게 밟고서 지나갔다.
유력 귀족과 왕실의 관리, 왕궁을 지키던 병사들까지.
처참히 찢긴 시체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으…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 남자가 옆 복도에서 뛰쳐나왔다.
하지만 곧바로 뒤에서 날아든 검이 남자의 머리를 꿰뚫었고, 그는 힘없이 고꾸라졌다.
콰득!
던졌던 검을 회수한 여성이 크루거를 마주했다.
“아, 오셨습니까.”
그녀는 아폴리온 소속의 길드원이자 랭커였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복도 한편에 아폴리온의 상위 랭커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었고, 그들 모두는 피 묻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상황은?”
“아직 대체 작업에 들어가진 않았습니다만… 청소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여성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청소란, 미리 내부에 포섭해 둔 자들을 제외하고 모조리 처형하는 일련의 작업을 뜻하는 것이었다.
“크루거! 네놈이 온 거냐!”
그때 누군가가 복도에 늘어선 랭커들을 밀치며 나타났다.
위독한 왕을 제외하고는 단둘뿐인 왕국의 직계 왕족이자, 아폴리온과의 협력자였던 오른 왕자였다.
“감히 이런 짓을 벌이는 건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경악한 왕자가 분노를 토해냈다.
느닷없이 왕궁에 들이닥쳐서 이런 짓을 벌여 놓다니.
전혀 듣지도 못한,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왕위가 탐난다고 해도 이런 방법을 쓰고 나서, 조금이라도 이 사실이 새어나간다면 뒷감당이 불가능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소, 왕자. 일은 모두 잘 처리해 뒀으니. 바깥으로 새어나갈 일 따윈 없을 거요.”
“새어나갈 일이 없다고? 이 난장판을 벌여 놓고서!”
“금지된 마법이라는 게 상당히 편리한 수단이라서 말이오. 약간의 도움을 받았지. 지금 이 주변을 두른 결계도 그들의 작품이고.”
“그… 그놈들이 내게 보고도 안 하고 협력했다고?”
“무슨 문제라도?”
“읏……!”
그와 눈을 마주한 왕자가 움찔했다.
크루거는 남자조차 절로 호감이 갈 만큼 좋은 인상의 미남이었으나, 지금 왕자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아주 섬뜩했다.
순간 모험가 따위에게 움찔했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 오른은 성큼 다가가 크루거의 멱살을 쥐었다.
“닥쳐! 힘을 좀 빌렸더니 네가 왕이라도 된 줄 아느냐! 내가 왕국의 주인이다! 내 말에 잠자코 복종하란 말이다!”
성난 오른이 분노를 토해냈다.
하나 크루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차가운 눈빛이 왕자를 향해 내리꽂혔다.
콰악!
“컥?”
생전 느껴 보지 못한 아찔한 감각.
왕족의 고귀한 의복이 붉게 물들어, 피가 줄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이… 이게 대체…….”
검에 복부를 꿰뚫린 오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을 내려다봤다.
분명 왕족인 자신이 검에 찔렸다는 건 결코 있을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닥친 것은 냉엄한 현실이었다.
“오른,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
“끄어억…….”
왕국 역사에 없는 반역 행위.
분노를 토해내야 마땅했지만, 그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복부를 관통한 아찔한 고통에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콰득!
크루거가 박아 넣은 검을 한 번 더 비틀었고, 오른의 입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왕자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공주는 어디에 있지?”“놓쳐 버렸어.”
응접실에서 문을 열고 나온 사일러스가 말했다.
루칸과 같은 최고 간부 중 하나인 그녀는 이곳에 먼저 진입해 청소를 진행한 터라, 이미 피를 한가득 뒤집어쓰고 있었다.
“결계가 쳐지기도 전에 미리 빠져나갔더라고.”
“습격 직전에 낌새를 눈치챈 건가? 역시 이 녀석하곤 다르게 골치 아픈 여자야.”
미간을 슬쩍 좁힌 크루거는 왕자의 시체를 발로 툭 찼다.
형편없이 뻗은 시체를 내버려 둔 채, 왕좌가 놓여 있을 왕궁의 중앙홀로 향했다.
“어디로 도망간 건지 경로는 대강 읽혔어. 이미 추적대를 보내 놨으니 곧 잡힐 거야.”
“대체품들은?”
“저쪽에.”
사일러스가 슬쩍 고갯짓했다.
그러자 그곳에서 공주와 왕자가 멀쩡히 걸어 나왔다.
분명 방금 전에 죽은 왕자와 달아난 공주까지도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크루거의 말대로 단지 ‘대체품’일 뿐이었다.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유력 귀족부터 정원사까지.
이 사태에서 희생당한 모든 이의 대체자가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결사단의 금지된 마법을 빌려 대리인을 세워두는 것.
이 주변을 감싼 특수한 결계에 더해, 상황이 절박해진 이단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지 이단 마법에 대한 탄압의 중지였고, 그를 들어줄 자라면 왕족이든 누구든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이제 거의 막바지네. 공주 쪽은 시간문제인 것 같고. 이거 이스트혼 시절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그래?”
“게임이 다 똑같지.”
뒤를 따라 걷던 루칸과 사일러스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앞서 가던 크루거가 입을 열었다.
“대의회를 소집해. 우리만을 위한 새로운 왕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