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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93화 (193/227)

193화 성전 (7)

쿠구구궁!

던전의 봉인을 지키지 못한 페널티가 작동되었다.

염소 머리를 한 거대한 거인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250레벨의 보스 몬스터이자 악마의 하수인인 샤고어가 포효하며 불청객들을 바라봤다.

절반만 풀린 봉인 탓에 이 자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츠츠츠츳!

당황하는 에렌과 켈즈의 등 뒤로 결계가 펼쳐졌다.

보스의 등장과 동시에 나갈 수 없게 작동된 결계는 샤고어가 임무에 실패한 유저들을 모두 청소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도망치거나 시간을 끌며 버티는 것으로는 답이 없고, 반드시 저 녀석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크워어어!”

콰과과광!

녀석이 크게 휘두른 팔이 그들을 노렸다.

양 손에 든 도끼가 사납게 내리 찍혔다.

“죽어라! 버러지 같은 놈들!”

악마의 하수인인 샤고어는 당연히 자신의 앞에서 알짱거리는 인간들을 양쪽 모두 공격해 왔다.

에일이 풀어낸 봉인이었지만, 녀석이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신성력의 악취가 느껴지는 교단의 인물 중 하나였으니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에일 역시 당연히 샤고어가 적대적일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콰앙!

‘좋아, 잘 굴러가고 있네.’

요란하게 박살 나고 있는 던전 내부를 보며 에일이 생각했다.

그가 노린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두 명의 랭커를 동시에 상대한다는 건, 아예 100위권 내에 든 하이 랭커가 아닌 이상 힘든 이야기였다.

현재 에일의 스펙으로 정면 승부에서 이기기란 확률이 너무 희박했다.

그렇기에 반드시 싸워야만 한다면, 차라리 이런 정신없는 난전으로 몰아가는 편이 이길 확률이 더 높았다.

예상할 수 없는 제3의 변수는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요소였으니까.

[돌발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당신의 눈앞에 나타난 모든 신성 모독자와 이단을 처단하십시오!]

‘좋아.’

메시지를 확인한 에일이 미소를 띄웠다.

마침 유저와 보스 양쪽 모두를 타겟으로 루의 퀘스트까지 발동되었다.

이렇게 된다면 더 의욕이 넘치게 된 상황.

콰과광!

“젠장!”

난동을 부리는 샤고어의 기세는 대단했다.

상대는 250레벨의 고레벨 보스 몬스터였고,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만큼 랭커들조차도 고전 중이었다.

“이런다고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

카앙!

에일이 사납게 맞붙은 검을 튕겨냈다.

보스가 날뛰는 이 정신없는 난전 속에서 4명의 유저가 서로 얽히며 검격을 주고받았다.

보스를 신경쓰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서로가 서로를 쓰러뜨리는 게 최우선이었으니 더욱 난장판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메이를 몰아붙이던 켈즈가 도중에 급히 몸을 피했다.

액티브 스킬 두 개를 써 가며 그녀의 빈틈을 만들어 냈으나, 보스의 도끼가 자신의 머리 위로 찍혀 드는 탓에 뒤로 물러나야 했다.

아무리 랭커라고 한들 상대는 어중간한 보스 정도가 아니었다.

전투 중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콰과광!

반면, 에일은 사나운 샤고어의 공격을 수월하게 피하고 있었다.

최소한 그들에 비해선 훨씬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타고난 반응 속도 덕도 있었지만, 에일이 샤고어의 패턴을 알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 던전에 진입해 봉인된 샤고어를 고의로 깨워 레이드를 진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투자한 시간 대비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이드는 시도되지 않았고, 자연히 유저들에게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초로 시도해 본 이는 있기 마련.

정보 사이트 깊숙한 곳엔 샤고어에 대한 정보도 숨어 있었고, 그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가 바로 에일이었다.

‘녀석의 패턴 중 확실히 주의해야 할 건 세 가지.’

콰아앙!

샤고어가 두 팔을 들어 바닥을 내려쳤다.

첫 번째 패턴이 발동되며 충격파가 일어났고, 바닥 아래에서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났다.

결계 내에 녀석의 패턴 범위가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녀석이 바닥을 내려칠 때마다 창날처럼 예리한 바위들이 튀어나와 그들을 노렸다.

카앙!

에일이 다가온 켈즈의 검을 받아 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위들을 피해 가며 에일을 공격하는 모습.

이는 그 둘뿐만이 아니라 에렌 쪽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없는 패턴 와중에서도 공격을 피하고, 서로의 검을 쳐내면서 싸움을 이어 나갔다.

양쪽을 동시에 신경 써야 했고, 수준 높은 전투가 오갔다.

랭커라는 이름은 단순히 레벨만 높다고 달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바위를 피해 가며 유저를 상대할 수도 있을 만큼 실력과 경험이 쌓여 있었다.

‘거기까진 예상하고 있었어.’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여전히 공격해 오는 두 랭커의 압박 속에서 에일은 갑자기 크게 횡으로 이동했다.

후우욱!

분노를 토하던 샤고어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두 번째 패턴을 선보일 징조였다.

녀석의 입에서 뿜어져 나올 건 전방을 휘감는 화염 브레스.

반박자 빠른 발동 시점과 굉장히 넓은 범위 탓에 미리 알지 못하면 답이 없었다.

콰아아아아!

샤고어의 입에서 쏟아진 불꽃은 일직선상의 모든 걸 초토화시켰다.

이 패턴의 가장 무서운 점은 가공할 만한 파괴력 탓에, 휩쓸리면 다음 기회도 없이 무조건 즉사라는 점이다.

범위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화상 대미지를 입을 정도였다.

“미친……!”

켈즈와 에렌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패턴을 알지 못하는 메이 쪽은 이미 에일이 범위 밖으로 끌어 낸 뒤였다.

파앗!

불길을 맞닥들인 랭커들은 최후의 카드 중 하나인 탈출기까지 써 가며 가까스로 브레스를 피해 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그대로 끝날 뻔한 상황이었다.

“켈즈.”

“그래.”

식은땀까지 삐질 흘린 에렌과 켈즈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곤 앞으로 달려 나가 노출된 샤고어의 허리 부근을 공격했다.

에일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든 실패했든, 결국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보스를 없애야 했다.

원래는 에일부터 먼저 해치운 뒤 보스까지 해치울 작정이었다.

허나 아직 체력이 깎이지도 않은 상태에서 보인 샤고어의 패턴은 그들의 시선에서도 심상치 않았다.

처음 보는 보스를 고작 두 명이서 상대하기엔 역시 부담스럽기 때문에 먼저 작업을 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쩌엉!

“이 벌레만도 못한 놈들!”

공격을 당하기 시작하자 샤고어는 분노하며 소리쳤다.

고정되어 있는 상반신 탓에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녀석의 약점.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 체력 바가 그를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공격에 더해 에일까지도 거들었다.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메이도 보스 공략에 거들었다.

카가각!

“이 자식이……!”

“아깝네.”

빈틈을 노려 찔러 들었던 에일의 검이 에렌의 단검에 가로막혔다.

보스를 함께 공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간의 전투가 중단된 것은 또 아니었다.

난데없는 삼파전이 벌어진 상황.

끔찍한 반경의 패턴을 피하고, 서로의 공격을 주고받으면서도 보스의 체력을 줄이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보스와 유저 양쪽에서 다가오는 공격들은 물론, 한쪽을 쓰러뜨린 뒤의 상황까지 모두 신경 써야 했다.

결계로 막힌 공간 사이.

보스를 가운데 둔 채, 네 명의 유저가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며 검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에일이 슬쩍 샤고어의 체력 바를 확인했다.

샤고어의 체력이 절반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세 번째 패턴이 곧 다가올 차례였다.

‘이대로 보스를 끝까지 잡게 되도 곤란해져.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

상대는 랭커, 한번 넘긴 패턴에 또 당해 줄 자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세 번째 패턴이 처음으로 발동된 순간, 그들을 확실히 끝장내지 못하면 희망은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 패턴의 파훼 난이도는 무자비했다.

공략을 진행하던 에일은 메이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의도를 파악한 메이는 그의 지시대로 조금씩 이동하며 그가 말한 방향으로 위치를 옮겨 갔다.

하지만 눈치 빠른 에렌과 켈즈가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묘한 움직임을 목격한 그들은 곧바로 수상한 점을 눈치챘다.

‘다음 패턴이 나올 예정이군.’

“이런……!”

그들이 슬금슬금 따라붙자 미간을 좁힌 에일은 서둘러 메이를 데리고 이동했다.

에일이 급히 이동하는 쪽이 패턴을 피할 수 있는 위치인 것은 당연한 바.

그들도 아예 뛰기 시작하며 에일의 바로 앞까지 거리를 좁혀 왔다.

후우우욱!

‘역시.’

예상대로 샤고어의 가슴이 전보다 더욱 크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사전 정보가 있는 듯한 에일과 같은 위치상에 있으니 패턴에 당할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자세를 낮춘 에일은 메이를 바짝 끌어안으며 검을 바닥에 꽂았다.

쩌엉!

파아아앗!

유일급 방어 스킬, 수호의 방패가 발동되며 하얀 빛의 보호막이 그들을 감쌌다.

“서, 설마……!”

“이미 늦었어.”

보호막 바깥에 있는 그들을 향해 에일이 씩 웃어 보였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켈즈와 에렌은 옆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쩌억 벌어진 샤고어의 입 속엔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두 번째 패턴이 넓은 불줄기였다면, 이번 패턴은 결계 안 공간의 절반을 통째로 태워 버리는 막강한 즉사기였다.

그들의 직업인 포식자와 도적은 양쪽 모두 방어 방면은 뛰어나지 않은 직업이었다.

지금 그들에게 탈출기든 아이템이든 어떤 수가 있건 간에, 이 위치에서는 피할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

“이건 말도 안…….”

* * *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샤고어의 무자비한 브레스 앞에 완전히 휩쓸려 나간 공간.

결계 안은 온통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두 시체가 형편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해, 해냈어요.”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메이가 멍하니 에일을 바라봤다.

무려 랭커 둘을 동시에 상대해서 이렇게 여신의 곁으로 보내는 데 성공하다니.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고, 아무리 그녀라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흠.”

퍼뜩 정신을 차린 메이가 얼굴을 붉히며 무기를 집었다.

아직 그들의 앞엔 250레벨의 신성 모독자 보스가 남아 있었다.

체력이 절반이나 남았고, 이제 인원은 둘밖에 남지 않은 상황.

아무리 기뻐도 그렇지, 순간 칠칠맞게 판단력을 잃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럼 이제 어떻게…….”

“우선 개인화면부터 확인해 주시겠어요?”

“이건……?”

메이의 화면엔 어느새 자료가 전송되어 있었다.

“공략입니다.”

에일이 전송한 자료는 다름 아닌 샤고어의 공략법이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한 샤고어의 패턴과 약점 등에 대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체력이 50퍼센트대에 진입한 이상, 공략이 쉽지 않을 겁니다. 보조를 맡겨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확신을 가진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씩 웃은 에일은 바닥에 꽂아 넣었던 장검을 집어 들었다.

전쟁을 통해 수많은 이단을 태우고, 그때 얻은 공헌도들까지 쏟아부은 덕에 에일의 신앙심 스탯은 1,500을 넘어서 있었다.

샤고어의 광역 브레스 공격을 방어 스킬만으로도 가까스레 막아 낼 수 있던 것도 그 덕이었다.

동레벨 대의 전문 사제들마저도 감히 상대가 안 될 만큼, 신성 마법의 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그리고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저 악마들의 천적이 바로 신성 마법이었다.

“이단에게 심판을!”

[‘빛의 심판자, 루’가 당신을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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