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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91화 (191/227)

191화 성전 (5)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비상사태에 급해진 아폴리온은 용병 길드들을 파견했다.

대부분은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물과 대지 교단 쪽에 합류를 하겠지만, 소수정예의 용병단들은 전면에 서기보단 후방 교란을 위해 안쪽 거점을 노리고 습격할 것이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길드는 루나틱과 오닉스.

‘침투해 올 루트는 양쪽 다 파악됐어.’

지도를 확인한 에일이 두 가지 경로를 짚었다.

그들의 행동을 예상하고서 미리 곳곳에 뿌려 둔 신도들은 불청객들의 이동 경로를 착실히 파악해 냈다.

그중 에일은 오닉스 길드 쪽을 제압하기 위해, 그들이 지나칠 장소로 미리 움직였다.

그들은 분명 이곳 폐허를 지날 것이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후방에 타격을 입혀 발목을 잡을 생각이겠지만, 괜히 시간을 끌려서 재정비할 틈을 주면 안 된다. 이대로 단숨에 몰아쳐야 해.’

처음엔 생각도 안 하던 아래쪽 전선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된다면, 두 길드를 동시에 상대 중인 아폴리온의 입장에서 엄청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분명 나이트메어와 여명이 아폴리온를 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느닷없이 아폴리온과 손을 잡은 켈베로스도 철십자가 맡아 몰아붙이는 중이었고, 최소한 지금의 상황에서 더 이상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순조롭다고 말하기엔, 찜찜한 부분은 남아 있었다.

바로 아직도 아폴리온의 간부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카린이나 솔로스를 비롯해 하이 랭커들이 전장에서 날뛰는 와중에도, 크루거를 비롯한 아폴리온의 간부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에일의 코앞에까지 나타났던 다고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아폴리온의 상위 랭커진은 모든 길드를 통틀어서도 최강이었다.

워로드 공식 랭킹에서 상위 20위 중 6명이 아폴리온의 소속이었을 정도니,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최강의 길드에 가장 가깝다는 대중의 평과 대부분의 유저에게 좋은 인식을 지닌 것도 바로 이 막강한 랭커진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최고 전력을 정작 전쟁에는 써먹지 않고 놀리고 있다니.

상대하는 입장에선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이 가려진 패를 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지?”

그렇게 에일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시선에 들어온 것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는 ‘루’.

하지만 그녀는 평소의 아름답고 위엄 있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리를 까닥이며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었다.

‘…….’

처음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를 시작으로.

요즘 들어 아래 세상에 자주 나타난다 싶긴 했지만, 슬슬 자신의 앞에서 위엄 있는 이미지 관리는 포기하기 시작한 듯했다.

“요즘 들어 너무 자주 나오시는 거 아닌가요?”

“신이라 해도 어느 정도의 유희는 필요하기 나름. 한곳에 묶여 지내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아느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지.”

최근 에일이 워낙 일들을 잘 처리해 주고 있는 덕에, 루의 영향력도 드높게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영향력에 여유가 있으니, 자주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영향력을 아끼기 위해 본모습을 취하고 있을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듯 내심 즐거운 기색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냉정한 척 무표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 하고 있었다.

“교단 사람들이 이 모습을 알까요?”

“당연히 알 수 없어야지. 신도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없지 않느냐.”

“저도 신도인데 제 앞에서는 왜…….”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대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몇 달밖에 안 될 텐데요.”

“시끄럽다.”

타다닥!

그때, 조그만 도마뱀이 루의 머리 위에 파닥이며 올라왔다.

화산의 지배자, 화룡 라자갈이었다.

이쪽도 역시 불의 교단의 신도들이 보게 된다면, 이 위엄찬 모습에 적잖이 놀라게 될 것이다.

거기다 라자갈은 루가 쥐고 있는 얼음과자에서 두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루는 라자갈을 힐끔 바라보더니 선심 쓰듯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라자갈, 네가 바하무트의 적수이니 특별히 주는 것이다.”

찹찹찹!

달려든 도마뱀이 크게 한입 먹어치웠다.

“모든 물과 얼음의 파멸이다.”

쩝쩝거리며 아이스크림을 파멸시키는 라자갈.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에일은 불현듯 생각난 오랜 의문점을 꺼내 들었다.

“여신님, 이제 말해 주실 때도 됐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성물을 다 모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아직 곤란하다.”

“신격이라는 자가 그것 하나 대답해 주지 못하다니. 내게 물어라. 이 몸과 계약을 하면 모든 사실을 알려 주마.”

감질나는 듯 입맛을 다신 붉은 도마뱀이 에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라자갈의 말에 루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이건 계약을 맺은 신격과 사도 간의 대화, 훼방꾼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니까.”

끼잉.

루의 살벌한 살기에 라자갈은 조용히 찌그러졌다.

그녀의 말대로 계약을 맺은 사도와 신격 간에는 더 강한 유대가 이어져 있었다.

에일이 마음을 바꿔먹지 않는 이상, 우선권은 루에게 있었다.

그녀가 약간의 영향력을 사용한다면 라자갈을 이 자리에서 내쫓아낼 수도 있었다.

아래 세상에서의 유희를 여기서 마감하고 싶지 않던 라자갈은 가만히 입을 다무는 걸 택했다.

“시스템상 제약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숨기고 싶은 사실이라도 있는 겁니까?”

“곤란한 사정이 있어 어쩔 수가 없구나.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대와 나,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건 확실하니. 때가 되면 모두 알려 주겠다.”

자신만만하게 말을 마친 루가 걸터앉았던 바위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이제 전투를 준비할 때일 텐데? 이번 적수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적이니까요.”

후방으로 침투해 오는 루나틱과 오닉스 길드의 사이.

오닉스가 다가오는 길목을 고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었다.

조금 더 랭킹이 높은 ‘랭커’가 포함되어 있는 적.

그를 맡아 상대해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부담될 수도 있는 표적이었지만, 에일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같은 900위대의 랭커를 맡았으면 위험 부담이 덜할 텐데, 그쪽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나?”

“제 실력을 확인하려는 겁니다. 언제까지고 곁가지에서만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흐음.”

그의 말에 옅은 미소를 띤 루가 에일을 빤히 바라봤다.

묘한 감정들이 섞인 시선이었고, 에일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꼭 이겨야 한다.”

“뭐… 그래야죠.”

그는 바위에 기대어 놓았던 장검을 들고 일어났다.

어느새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되었다.

* * *

용병 길드 오닉스의 길드원들은 한 폐허 지역을 지나는 중이었다.

한때 중간 규모의 활발한 무역 거점이었으나, 이번 전란을 겪고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터라, 지도에서 아예 지워지기까지 했다.

원주인인 그리핀 길드를 습격하며 한 번 거점을 빼앗은 아폴리온의 솜씨는 아니었다.

“전쟁하면서 컨셉질 하는 놈들이야 많다곤 하지만, 이건 여태까지 봤던 것들하고는 레벨이 다른데.”

“하… 그러게.”

그동안 전쟁터를 전문으로 오가며 온갖 고약한 광경을 보아온 용병들도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빛의 교단의 손에 완전히 박살 난 거점은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불타 버렸다.

발을 딛는 곳마다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들의 흔적과 공포스런 처형대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빠르게 통과한다. 이런 곳에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거 없어.”

“예, 대장.”

리더인 켈즈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방 지역을 파고든 오닉스의 길드원들은 20명씩 다섯 갈래로 나뉘어 숨어들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도 그중 한 무리일 뿐이었다.

적진 침투 및 거점 타격이 주된 작전이니, 인원수가 많으면 괜히 움직임에 부담이 가기만 했다.

물론 인원이 분산된 만큼 많은 수의 적과 조우하면 곤란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속도를 올려 폐허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파바박!

예리한 칼날의 투척 단검들이 날아들었다.

길드원들은 재빨리 숨거나 무기를 꺼내 튕겨냈지만, 미처 반응하지 못한 두어 명은 그대로 단검에 맞았다.

하지만 오닉스의 멤버들은 모두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정예로 구성되어 있었다.

체력 손실을 입었을 뿐 이 정도로 숨통이 끊어진 이는 없었다.

“설마 움직임을 읽은 건가?”

터억.

아니나 다를까 페허 위에서 빛의 교단의 이단심판관들이 나타났다.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심판관들은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며 길드원들을 공격했다.

고요하던 폐허에서 갑작스레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카앙!

“에일……?”

켈즈는 자신과 검을 맞부딪힌 에일을 알아보았다.

물론 그건 미리 준비를 하고 온 에일도 마찬가지였다.

‘오닉스의 켈즈…….’

켈즈는 무려 741위의 랭커였고, 아주 유명한 네임드 플레이어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번에 아래쪽 전선에 증원으로 투입된 용병 길드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적이었다.

741위와 934위.

분명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거의 200위가량이 차이 나는 무시 못 할 간격이었다.

‘다소 많이 뛰어오른 감이 있지만… 이 정도는 돼야 실력을 확인할 수 있겠지.’

쩌엉!

켈즈의 힘에 튕겨 나간 에일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270을 목전에 둔 높은 레벨에 걸맞게,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검사 계열의 ‘포식자’ 랭커.

전쟁 전문 용병 길드의 대장답게, 단일 대상 PVP에 굉장히 위력적인 직업이었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놓았다가는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될 수 있었다.

“탐색전 같은 걸 벌일 여유는 없겠지.”

츠츠츳!

에일이 눈동자 색이 금빛으로 물들이며 변했다.

[현재 동조율 109.61%]

[오버드라이브 상태에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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