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83화 (183/227)

183화 랭크 인 (2)

[‘은밀한 탐구자’가 깊은 흥미를 표합니다!]

[‘생명의 어머니’가 새로운 해결사의 등장에 눈빛을 빛냅니다!]

[‘화산의 지배자’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한 신격들의 메시지.

랭커의 등장이란 멀찍이 관망하고 있는 신들의 입장에서도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에일의 앞에 나타난 페이는 무려 989위의 랭커였고, 이견의 여지가 없이 워로드가 인정한 최상위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6대 길드에서조차 손에 꼽을 만한 위치이며, 어딜 가든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들.

그런 존재가 무기를 든 채 그의 앞에 나타났다.

“어쩐지 추적이 빨리 붙었다 싶더라니…….”

“그래, 여기까지 쫓아오는 데 고생 좀 했지.”

페이는 궁수 계열의 ‘사냥꾼’ 유저였다.

직업의 이름답게 추적을 위한 스킬들은 당연히 존재했고, 랭커라면 아무리 흔적을 잘 감춰 놓는다 해도 사람 하나 쫓는 건 일도 아니었다.

“6대 길드 소속도 아니면서 여긴 왜 나타난 거지?”

“왜냐니? 길드전에서 용병 처음 봐? 전쟁이 나면 용병이 꼬이는 건 당연하지. 이런 대규모 충돌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그는 특정 길드의 소속이 아닌 개인 랭커.

아폴리온에게 따로 대가를 받고 고용된 입장이었고, 개인 용병으로서 이 전쟁에 끼어든 것이다.

“뭣보다 너도 6대 길드 소속은 아니잖아?”

“그거하곤 좀 다르지. 알고 있을 텐데.”

너스레를 떠는 페이에게 에일이 답했다.

길드나 교단같이 세력을 따라 참전하는 유저와 철저히 혼자서 활동하며 결정하는 개인 랭커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개인 랭커들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뒷배경이 없어도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상대가 일반 길드라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건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의 당사자들이기도 한 6대 길드에게 밉보이는 건 랭커들조차도 꺼릴 수밖에 없는 일.

모든 길드가 거래처이기도 한 개인 랭커는 이런 요란한 전쟁터에 엮여서 좋을 게 없었다.

몇몇 개인 랭커의 이름이 퀘스트 창에 떴을 때도 그가 반신반의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에일의 말에 페이도 그저 씩 웃으며 입을 다물었고, 무언가 더 말해 줄 기색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리스트가 정말이었단 거군.’

이번 전쟁에 참여하며 루가 부여한 퀘스트 속 목록엔 페이를 비롯한 여러 개인 랭커들의 이름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 아폴리온 길드와 깊게 관련이 있던 랭커도 아니었고, 이런 길드 간 분쟁에 자주 끼어들던 이도 아니었기에 설마하니 페이가 등장한 이상 나머지 랭커들도 이미 아폴리온의 편에서 참전했다고 봐야 했다.

‘뭣보다 그 랭커들이 설마 내 추적자로 붙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그의 앞에 찾아든 랭커에 대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곤 있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 이제 이걸로 한숨 놓을 수 있겠네. 뒤편에 숨어든 심판관들이야 아직 많이 남았지만, 여기서 너만 확실히 처리해 놓으면 나머지 녀석들도 움츠러들 테니까.”

이런 전쟁에서 세력을 대표하는 네임드 플레이어가 주는 영향력은 컸다.

거기다 최근 빛의 교단에서 에일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그보다 더욱 컸고, 확실한 전력인 랭커를 보내 교단의 움직임을 위축시킬 작정이었다.

“그럼 어디 실력 좀 볼까!”

호기롭게 먼저 발을 내디딘 건 페이였다.

빠르게 다가온 그는 휘어진 단도를 휘둘렀다.

카가강!

예리한 검들이 연달아 부딪치며 불꽃을 튀어냈다.

한쪽은 궁수 계열인 상황에 검과 검으로 맞붙었음에도 일방적인 양상은 띠지 않았다.

레인저나 사냥꾼 같은 궁수 계열 직업들은 보통 근접전에도 투자를 해놓으니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랭커, 이 정도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게 놀라웠다.

[‘빛의 심판자, 루’가 초조함을 드러냅니다.]

‘도망친다 해도 따라잡힐 가능성이 커. 일단 이 기회를 본다……!’

검으로 붙은 상태에서 에일이 결심을 굳혔다.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 해도 결국은 검사 대 궁수였다.

레벨이나 스킬 개수가 차이가 나 봤자, 근접전으로 붙는다 하면 당연히 에일의 우위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상황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는 말.

카앙!

단도를 힘으로 비껴내며 빈틈을 만들어 낸 에일이 정면에서 일섬 스킬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 순간 페이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허엉!

그때 바로 커다란 범이 나타나 그들을 습격했다.

맞붙어 있던 둘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범과 함께 경사면을 굴러떨어졌고, 에일은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큭…….”

털썩!

에일이 자신의 위에 축 늘어진 범의 시체를 옆으로 치웠다.

한데 뒤엉켜 떨어지는 그 짧은 틈 사이에 그는 범의 배를 갈랐고, 이렇게 시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 페이를 놓쳐 버린 터라 주위를 살폈다.

유심히 살폈지만 페이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사이 멀리 달아나기라도 한 건지 주위는 아주 고요했다.

‘잠깐, 설마?’

오히려 그 고요함에 에일의 감각이 발동했다.

상대의 직업은 사냥꾼, 그것도 랭킹 안에 든 최상위 실력자였다.

‘방금 달려든 녀석은 길들인 야수일 테고… 만약 처음부터 이 자리를 봐뒀던 거라면…….’

바짝 긴장한 에일이 앞쪽으로 조심스레 발을 뻗었다.

그렇게 뻗어진 세 걸음 째 발걸음이 닿는 순간.

덜컹!

아니나 다를까 발동된 덫이 그를 노렸고, 에일은 급히 몸을 빼냈다.

만약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발목이 덫에 붙잡혀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역시… 처음부터 이쪽에 자리를 잡아 둔 거였어.’

사냥꾼은 궁수 계열의 직업이긴 하지만, 주 무기인 활에 버금갈 만큼 다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이한 직업군이었다.

지금 발동한 함정도 위력적인 보조 수단 중 하나였다.

미리 자리를 봐뒀다면, 육안으로 구별은 불가능해도 주변에 함정들 잔뜩 깔려 있을 게 눈에 선했다.

“이봐, 에일! 내가 왜 아폴리온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지 알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척을 감춘 페이가 그를 향해 말을 건네 왔다.

“나도 처음엔 이런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긴 싫었어. 하지만 앞으로 워로드를 하려면 오히려 이쪽에 붙는 게 더 안전하다는 걸 알아 버린 거야. 안타깝지만 너흰 줄을 잘못 서 버린 거고.”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

적당히 말을 받아친 에일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말소리를 쫓아 그의 위치를 파악해 보려 했지만, 사방에서 소리가 울리는 탓에 알 수 없었다.페이가 가지고 있는 패시브 스킬의 효과였다.

소리만으로 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고, 남은 단서라고는 울창한 숲에 가려진 시야와 사방에서 날아들 공격뿐이었다.

투웅!

날아든 화살이 그의 얼굴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에일은 정확히 화살이 날아든 방향으로 파고들었다.

왼편의 나무 사이로 접근한 에일은 그곳에 있을 페이를 노리고 곧장 검을 치켜들었다.

“이건……!”

하지만 수풀 너머에 놓인 것은 사람이 아닌 소형 석궁.

페이가 미리 설치해 둔 일회성 석궁이었고, 바로 아래에 있는 폭발 함정이 작동되었다.

콰아앙!

‘젠장, 이래서 사냥꾼들이 성가시다니까.’

겨우 몸을 빼낸 에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줄곧 들어왔던 대로 고약한 수를 써댔다.

워로드 유저들이 상대하기 가장 짜증 나는 순위를 정할 때 항상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히는 게 바로 자리 잡은 사냥꾼이었다.

각종 함정과 야수, 독을 이용하며, 지형에 숨어들어 거리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플레이 방식.

골려먹는 입장에서는 재밌겠지만, 농락당하는 입장에서는 열이 뻗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바로 랭커라면, 더 이상 화가 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안에서 싸웠다간 승산은 없어.’

눈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기척을 죽인 페이의 솜씨는 완벽했다.

완전히 숲속에 숨어들어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고, 곳곳엔 위협적인 함정들이 즐비했다.

더군다나 워로드 랭킹에 표기되어 있는 페이의 레벨은 정확히 264.

장비나 스킬들도 랭커다운 최상위 수준으로 갖춰 놓았을 건 당연했다.

이전에 네크로맨서인 그롬을 상대하던 때처럼 대강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전력을 파악한 에일은 그저 이 곳을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따라잡혀서 다시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 여기선 벗어나야 한다.’

결단을 내린 에일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곳곳에서 날아드는 화살들을 피해가며 페이가 잡아 놓은 이 자리를 벗어나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랭커.

한 번 빠져든 장소에서 벗어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주로를 미리 예상해 둔 페이는 그가 향하는 길목마다 함정을 설치해 뒀다.

콰아아앙!

“크윽!”

커다란 폭발에 튕겨져 나간 에일이 바닥을 짚었다.

다행히 정통으로 당하진 않았지만 체력이 다소 빠졌다.

하지만 그 순간 화살이 날아들 거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어느새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페이가 힘껏 발을 뻗었다.

빠악!

체술 스킬을 이용한 발차기.

직접 모습을 드러낼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기에 꼼짝없이 당한 에일은 넉백 효과로 주르륵 밀려났다.

‘기회다!’

크게 넉백에 당했다고는 해도 균형을 잃지는 않은 데다가, 숨어 있던 페이의 위치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에일의 발밑이 푹 꺼지며, 아래로 파인 구덩이로 빠져들었다.

깊은 구덩이 아래엔 날카로운 작살들이 꽂혀 있었고, 기겁한 에일이 겨우 반응해 땅을 잡아 올라섰다.

파악!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대가로 허용한 한 발의 화살.

왼팔에 꽂힌 화살독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치명적인 맹독에 중독되었습니다!]

[해독제를 복용할 때까지 독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페이가 지닌 유일급 스킬의 효과.

해독제 먹기 전엔 죽을 때까지 체력이 줄어드는 강력한 화살독이었다.

‘해독제가 있긴 하지만… 이건 좀 많이 위험하네.’

인벤토리를 슬쩍 확인한 에일의 표정은 어두웠다.

상대가 해독제 마실 틈을 줄 만한 자도 아니었고, 치유의 빛을 통해 지속 치유를 해봤지만, 더 빠르게 쌓이는 독의 데미지가 체력을 좀 먹었다.

이젠 그가 시간만 끌어도 꼼짝없이 당하게 될 상황이었다.

“이걸로 승산은 없어. 이제 그만 포기하는 건 어때? 반응속도로 봐서 재능이야 있는 것 같다만… 고작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생명의 어머니’가 당신의 죽음을 두 팔 벌려 반깁니다!]

[‘은밀한 탐구자’가 약간의 아쉬움을 표합니다.]

‘이제 어쩐다…….’

꼼짝없이 몰리게 된 상황.

확실히 지금 단계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었다.

독에 당한 이상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고, 도망가는 선택지는 사라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젠 도박수라도 던져야 할 상황이었다.

‘후우.’

속으로 짧게 심호흡한 에일은 집중력을 끌어 모았다.

그리곤 앞으로 힘껏 달려 들어갔다.

파앗!

패시브 스킬의 효과를 받아 접근 시 보너스와 함께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든 에일.

그에게 닿기 전, 역시나 발동된 함정이 아래에서 솟아났다.

하지만 그는 함정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향한 것이었다.

‘부순다!’

콰아앙!

에일은 성화가 서린 검을 휘둘러 함정을 박살 냈다.

저레벨 때 그가 사용하던 싸구려 설치 아이템들과 달리, 어지간해서 반응하기 어려운 상위 등급의 함정임에도 함정을 정면에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면에서 보이는 페이의 표정은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덜컹!

‘무슨……!’

파괴한 함정 너머에 양옆의 함정이 발동되었고, 뻗어진 기다란 창대들이 에일을 노렸다.

이번엔 피할 수가 없었다.

워낙 숫자가 많아 반응하기엔 무리였다.

[‘빛의 심판자, 루’가 눈을 질끈 감습니다!]

죽음이 다가온 위기의 순간.

에일의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현재 동조율 103.5%]

[시스템 과부하 감지, 오버드라이브 상태에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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