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82화 (182/227)

182화 랭크 인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일렁였다.

한차례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던 깊은 숲길.

심판대에 묶여 처형된 대지 교단 신도들의 시체가 제각각의 형벌을 받은 뒤 널브러져 있었다.

에일과 신도들은 대지 교단의 지원 부대를 차단해 내는 데 성공했고, 이 길을 이용할 다른 후속 부대들에게 경외감을 심어 주기 위해 시체들을 화려하게 전시해 놓았다.

루가 영향력을 얻는 수단이기도 한 데다가, 언제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위축감을 그들에게 심어 두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참혹한 현장을 앞에 두고 에일과 루크는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쪽은 대강 마무리된 거 같군요.”

“대지 교단 측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는지 큰 문제 없이, 오히려 수월했습니다. 다만 상당히 깊숙이 들어온지라, 이제부턴 소수로 움직이는 편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저희의 주된 임무는 어디까지나 지원 차단과 후방 교란을 맡는 것이니까요.”

“맞습니다. 이젠 저쪽도 대응해 올 테고, 여럿이 모여 다니면 더 위험해지겠죠. 그럼 남은 분들의 임무 할당을 맡겨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집행관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언제나 빛이 함께하길.”

루크는 공성전 당시 메이와 함께 에일을 도왔던 이단심판관이자, 빛의 교단의 준랭커급 네임드 플레이어였다.

얼마든지 일을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유저였고, 교단 내 대부분의 상위권 유저들에 대해 어느 정도 얼굴도 트여 있는 자이기도 했다.

사람을 다루는 데도 능숙한지라, 각자에게 적당한 임무를 할당하는 건 그의 몫으로 넘겼다.

[‘생명의 어머니’가 당신을 증오합니다!]

[‘생명의 어머니’가 당신의 파멸을 약속합니다!]

[‘생명의 어머니’가…….]

[‘은밀한 탐구자’가 신격들에게 투표를 제의합니다.]

[과반의 찬성으로 ‘생명의 어머니’의 메시지가 30분 동안 차단됩니다!]

‘뭐… 전면전은 다른 쪽에서 맡고 있으니까.’

땀을 삐질 흘린 에일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개인 화면을 띄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는 전선 상황을 지켜봤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6대 길드들은 길게 이어진 동북부 전선 전체에서 치고받는 중이었다.

북부의 철십자는 켈베로스와의 전쟁에 발목을 묶였고, 동북부의 원주인인 그리핀은 넉다운 상태.

비록 둘이 하나를 상대하는 그림이라고 해도, 동남부에서 이미 큰 전쟁을 치른 여명과 나이트메어 길드는 서로에게 상당한 전력 소모한 뒤였다.

아폴리온 하나를 상대함에도 그리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밖에서 끌어들인 외부 세력들은 아무래도 아폴리온 쪽이 조금 더 앞서는 모양이니까. 우리가 후방에서 확실히 데미지를 입혀야겠지.’

아폴리온이 움직인 교단은 대지와 물의 교단 2곳.

게다가 유저들은 물론 NPC들까지 대거 움직인 상대 교단 세력들과 달리, 빛의 교단은 그런 대규모 움직임까지는 보이지 못했다.

전장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닌, 고대 정령과 결사단에 대한 견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단체의 수장까지 잡아들이며 결사단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고는 하나, 아직 그들에 대한 경계는 놓을 순 없었다.

방심하다가 까닥하기라도 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마음을 놓지 않고 전 대륙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럼 내가 처리해야 할 상대는…….’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 에일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퀘스트 창을 띄웠다.

[퀘스트 목표]

[불경한 이단들에게 여신의 심판을 내리십시오!]

[아폴리온 길드의 ‘크루거’(0/1)]

[아폴리온 길드의 ‘다고스’(0/1)]

[대지 교단의 ‘알베릭’(0/1)]

[물의 교단의 ‘바스통’(0/1)]

전쟁에 참여함과 동시에 나타난 목표들.

이번 전쟁에서 에일이 직접 목을 따야 하는 타깃의 목록이었다.

빛의 여신인 루가 그에게 부여한 퀘스트였고, 간혹 발생하던 이단 사냥 퀘스트의 일종이었다.

물론 평소와 달리 이번 퀘스트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종류의 임무는 아니었다.

NPC와 유저가 가리지 않는 범위의 퀘스트로, 나타난 목표가 한두 명도 아닌 데다가, 전쟁 상황 탓에 다른 이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에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강자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렇기에 실패한다고 해서 페널티가 주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가능하면 완수하는 편이 낫겠지.’

신격이 직접 내린 퀘스트치고 보상이 약한 적은 없었고, 굳이 보너스를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퀘스트 목표로 지정된 이들은 하나같이 세력 내의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실제로 이번 전쟁에서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려면, 어차피 쓰러뜨려야 하는 자가 대부분이라는 것.

‘어디까지나 무리는 안 하는 선에서 처리해야겠지만…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겠지.’

스륵!

숲속으로 들어간 에일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까악까악!

울창한 깊은 숲속의 길.

전장으로 이동 중인 물의 교단 신도들이 합류를 위해 부지런히 걷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을 곳곳에 가득한 시체와 핏줄기가 사로잡고 말았다.

목이 매달린 채 축 늘어진 시체들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고, 불에 탄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앞서간 다른 부대가 이 난장판을 대강은 수습한 듯 보였으나, 한시가 바쁜 상항에 모든 흔적을 치우긴 무리였다.

“윽… 이거 피잖아…….”

진득한 혈향에 남자가 코를 틀어막았다.

루를 기리는 빛의 교단의 문양들이 나무와 바닥 등 온 사방에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들은 온통 희생자들의 피로 그려진 것이었다.

매달린 시체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에 바하무트의 신도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으… 젠장. 워튜브에서나 보던 걸…….”

한창 에일이 화제가 되었을 당시, 영상 너머로만 보았음에도 절로 느껴지는 광기에 섬뜩함을 느끼던 그였다.

하지만 역시나 이렇게 직접 코앞에서 보게 되니 차원이 달랐다.

높고 무성한 나무들이 빽빽이 놓여 있어, 어두컴컴한 숲의 분위기까지 겹치자 공포물이 따로 없었다.

안 그래도 북동부 지역은 숲이 무성한 지역이 많았는데, 가는 곳마다 이 모양이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해. 소규모 일행들만 노린다고 했으니까. 5명밖에 없는데 방심했다간 저거랑 똑같은 꼴이 될지 모른다고.”

“아까부터 보이는 게 시체들뿐인데 방심하는 게 더 어렵겠다.”

“아오! 아직 전선에 간 것도 아닌데 왜 이러고 있어야 되냐고! 아폴리온은 최강 길드라면서 이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거야?”

맨 뒤에서 걷던 남자가 답답하다는 듯 화를 토해 냈다.

어두운 숲속에서 계속 긴장을 유지하며 이동하는 것도 아주 심력을 소비하는 일이었다.

비록 빛의 교단의 유저 층에서도 실력자들만 추려 숨어들었다고는 하나, 그 정도로 6대 길드 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히곤 하던 거대 길드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끝내주는 길드랑 한편에 섰다길래 완전 기대했는데. 정작 아폴리온은 보지도 못하고, 산하 길드원하고만 대화한 게 전부…….”

푸욱!

그때 구시렁거리던 소리가 멎으며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기겁한 물의 교단의 신도들은 무기를 뽑아 들며 뒤를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맨 뒤에서 걷고 있던 남자가 입을 틀어 막힌 채 장검에 꿰뚫려 있었다.

“저, 저 녀석은!”

“에일……!”

촤악! 털썩!

박혔던 검을 뽑은 에일이 남자를 옆으로 내팽게쳤다.

힐러를 우선적으로 노린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맷집이 약했는지 그대로 사망한 모습이었다.

“쫄지 말고 정신 차려! 그, 그래 봤자 4 대 1이라고!”

파티장을 맡고 있던 신도가 소리쳤다.

레벨 차이가 꽤 난다고는 하나, 나타난 에일은 한 명 뿐이었다.

이만한 숫자 차이라면 레벨에서 우위에 있다고 해도 이기기 어려운 것이 상식이었다.

물론 최상위권이 아닌 일반 유저들의 상식선에 그쳤기 때문에, 에일을 상대로는 소용없는 말이었다.

“끄아아아악!”

하늘 높게 울려 퍼지는 비명.

이번엔 적당히 조절해 모두를 빈사 상태로 만든 뒤 하나하나 정성스레 태워 나갔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형벌 선고’에 따라 지정된 형벌을 성공적으로 집행하였습니다. 스킬의 효과로 스탯 보너스가 2배로 늘어납니다.]

“오케이.”

새롭게 완성된 작품에 에일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방 지역을 휘젓고 다니는 그는 소규모로 돌아다니는 후속 부대들을 끊임없이 잘라먹는 중이었고, 이단을 심판할 때마다 짭짤한 스탯 보너스를 챙기는 중이었다.

‘역시 PK범들이 괜히 생겨나는 게 아니라니까.’

유저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회수한 에일이 피식 웃었다.

필드에서의 PK가 위험성을 동반한다고는 하나, 그에 따르는 보상 역시 굉장했다.

수많은 유저 사이에서 죽지 않을 실력만 있다면, 이런 전쟁은 오히려 최고의 사냥터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기도 했다.

[‘빛의 심판자, 루’가 아름다운 불꽃에 찬사를 보냅니다!]

[‘강의 폭군’이 분노를 드러내며 당신을 노려봅니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다시 나타나셨군그래.’

강의 폭군, 바하무트의 등장에 에일이 반응했다.

전선으로 향하던 자신의 신도가 벌써 수십 번이 넘도록 그의 손에 당하자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이었다.

저번 월드 이벤트에 흠씬 당한 탓에 완전히 틀어져 버린 신격.

원래대로라면 당시에 큰 타격을 입어 이런 움직임조차도 보이지 못해야겠지만, 보나 마나 적의 적은 친구라며 프레이아가 협력했을 것이 뻔했다.

아폴리온도 교단들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을 터.

바하무트가 이번 전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날 어쩌지는 못할 테고, 대교구장급만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면 위험한 일은 없겠지.’

턱!

바하무트의 위협을 무시하며 일어난 에일은 자리를 벗어났다.

여신을 대신한 심판의 흔적은 누구보다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했지만, 반대로 그의 움직임은 적진 한복판에 있는 만큼 신중해야 했다.

이제 다시 숲속으로 모습을 감출 때.

그 순간 왼편에서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카앙!

에일이 던진 단검이 튕겨 나간 모습.

그의 뒤를 쫓아온 추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름 조심해서 다녔는데… 생각보다 빠른걸.”

장검을 바짝 들어 올린 에일이 상대를 응시했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목격했을 리는 없고, 처음부터 에일을 노리고 온 자였다.

아폴리온 길드에서 후방을 정리하기 위해 말들을 움직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추적자가 따라붙었다고 동요할 건 없었다.

‘뭐……?’

하지만 곧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에일은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 저 녀석은…….’

“놀랐어? 나도 기껏 의뢰를 받아서 루키 뒤꽁무니나 쫓아야 할 줄은 몰랐는데… 크루거가 나더러 확실하게 처리하라지 뭐야.”

씨익 웃은 페이가 검을 들어올렸다.

그는 무려 989위의 ‘랭커’.

최상위 1,000명에 든 실력자이자,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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