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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80화 (180/227)

180화 소리 없는 전쟁 (4)

“카사노!”

뮤트의 부름에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그녀와 같은 보랏빛 로브를 걸친 남성은 겉보기엔 아주 젊은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80을 넘긴 고령의 노마법사였다.

비밀 결사단을 이끄는 수장이자, 금단의 마법에 손을 댄 뒤 젊음을 얻게 된 실력자.

이단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인사였고, 결사단을 지탱하고 있는 강한 구심점이기도 했다.

“당분간 북동쪽에 가 있을 거라고 했을 텐데.”

카사노가 뮤트의 등장에 제법 놀란 듯 반응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는 금세 그녀의 정체에 대해 파악해 냈다.

“그래, 이번에도 분신이었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예거와 연락이 끊겼어.”

뮤트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결사단이 북동부의 고대 정령을 풀어놓은 뒤, 대대적인 추적이 그들에게 붙었고 서로 간에 취하던 연락 마법도 추적 대상 중 하나였다.

서로가 이전처럼 자유롭게 연락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그 때문에 그녀의 능력 특성상, 상황에 따라 간부들 간의 소식통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하나 그 탓에 공주를 낚아채러 갔던 예거로부터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었다.

“연락 두절이라… 그럼 세이아 공주는 어디 있지?”

“저번에 왕궁 밖으로 나선 이후로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어.”

“그럼 작전이 성공한 모양이군.”

“이봐 그렇게 간단히 단정 지을 게 아니야. 만약 예거가 붙잡혔으면 우리도 곤란해진다고.”

“아니, 그렇게 간단히 당할 만한 녀석은 아니야.”

카사노가 장담하듯 말했다.

그는 어설픈 수에 넘어갈 만큼 허술하지도 않았고, 혹여 계획이 틀어졌다 해도 무리하게 계획을 밀고 나갈 이도 아니었다.

어느 도시를 가건 두 눈 벌겋게 뜨고 다니는 빛의 교단 놈들이 바글거리는 상황 속에서 아직 마땅한 연락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 뿐일 것이다.

무엇보다 미리 상대의 전력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특별한 능력까지 있으니 걱정할 게 아니었다.

“그것보단 길드 쪽이 제일 신경 쓰이지.”

“아직도 그 소리야?”

뮤트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카사노가 수상하다는 대상은 바로 6대 길드 중 하나인 아폴리온이었다.

6대 길드 중 처음으로 왕자 측에 가담해 힘을 실었고, 불리했던 상황을 단번에 반전시켜 준 거대 길드.

한배를 탄 결사단과도 긴밀하게 동업을 이어 나가고 있지만, 그들의 길드장인 크루거와 몇 차례 직접 마주해 대화를 나눈 카사노는 아직도 미심쩍은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하도 그렇게 말하길래 계속 지켜봤는데, 딱히 수상한 낌새를 보인 적은 없었어.”

정작 일선에 나서 아폴리온과 같이 여러 일들을 진행한 뮤트는 전혀 그런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카사노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그야 네가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뭐? 내가 몽타뉴나 퓨즈처럼 눈치 없는 놈으로 보여?”

“아니, 녀석들이 치밀한 거지.”

그는 그동안 비밀 결사를 이어 가며 많은 세력과 손을 잡고 서로 등을 찔러 왔다.

하지만 지금 마주하고 있는 녀석들은 지금까지의 여타 조직들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특히 길드장이라는 남자, ‘크루거’는 더더욱 그랬다.

콰앙!

그때, 천장 위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마치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요란한 소리였고, 그에 걸맞는 묵직한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습격이다!”

화르르륵!

건물의 벽이 무너지며 타오르는 불길이 쇄도했다.

이곳은 결사단의 본거지.

결사단이 가진 대륙 곳곳의 수많은 거점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지닌 데다가, 수장인 카사노까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가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다는 것.

“예거가 당했군.”

카사노와 뮤트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이 본거지는 우연으로 알아낼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고, 이 정보를 흘렸을 만한 자는 예거뿐이었다.

“으아아악!”

“서둘러 불을 꺼라!”

기습을 당한 결사단원들은 마법으로 화염을 진화하려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의 앞에 당도한 것은 꺼지지 않는 백색의 성화.

그것도 성수까지 듬뿍 먹여 놓은 탓에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고, 오히려 발 빠르게 뻗어져 나가는 불길에 휩싸여 희생자만 늘어났다.

후웅!

그리고 그 맹렬한 불길 사이로 멀쩡히 안으로 들이닥치는 침입자들.

성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빛의 교단의 이단심판관들이었다.

“빛의 교단… 놈들이 어떻게……!”

콰악!

성화의 검을 치켜든 심판관들은 앞을 막아서는 결사단원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가며 나아갔다.

이단들에게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빠져나갈 출구는 모두 차단되었고, 지독한 불길 탓에 마법사들이 제대로 반항하기도 어려웠다.

단 한 명의 도주자도 허락하지 않고 모두를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콰드드드득!

카사노의 마법이 발동되며 뒤흔들리던 바닥이 솟아났다.

솟아난 바닥은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복도에 있던 심판관들을 단 번에 묻어 버리려 매우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쿠구구궁!

하지만 카사노의 마법이 그들을 집어삼키기 직전.

그 사이에 끼어든 남자가 신성력으로 방어막을 펼쳐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집행관 페드로.

교단 내에서도 엄격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는 집행관답게 대륙 전체에서 따져도 명백한 네임드 NPC급 강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마법사들과는 완전한 상성이었다.

불순한 마녀, 마법사를 사냥해 잡아들이는 게 그의 주요 임무였고, 각종 마법을 상쇄하는 능력을 전문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원소 계열 마법사인 카사노에겐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

아무리 결사단의 수장이라고 해 봤자 집행관은 신격의 선택을 받은 교단의 최고위직이었고, 상성 관계까지 꼬인 이상 상황을 뒤집기엔 어림도 없었다.

콰악!

“커억……!”

연달아 날아오던 금단 마법을 쳐낸 페드로의 검이 카사노의 복부를 관통했다.

급소를 정확하게 찌른 덕에 그의 체력이 주르륵 줄어들었고, 눈이 서서히 감겼다.

하지만 그 순간 새하얀 치유 마법의 빛이 카사노를 감싸며 그를 죽음으로부터 끄집어 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콰드득!

목을 움켜 쥔 페드로가 살벌하게 말했다.

예상 못한 기습과 열세인 전력, 거기에 수장까지 꼼짝없이 당하자, 남은 대부분의 결사단원들은 헛된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를 잃으며 붙잡혔다.

금단의 길을 택한 이단 마법사들은 대부분 강한 독기를 품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개중엔 목숨을 구걸하는 이들도 있었다.

진정한 광기로 무장하고 있는 이단심판관들은 그들이 품은 독기 정도로는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사… 살려 줘.”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결사단원이 페드로의 무릎을 붙잡으며 매달렸다.

하나 이단의 낙인이 머리 위에 찍혀 있는 남자를 페드로는 그저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이단을 용서하는 것은 오직 신의 뜻에 달려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롯이 너희를 신의 곁으로 보내는 것뿐이지.”

콰악!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결사단원의 머리가 날아갔다.

이단이 가질 참회의 시간은 오직 여신의 앞에서만 허락되었다.

그때 다른 편에서 제압당해 끌려온 이단마법사들도 하나둘 그의 앞으로 끌려왔다.

전투 불능 상태거나, 가망이 없어 투항한 이들이었다.

“집행관님, 이 자들의 처리는…….”

“모조리 죽여라.”

페드로의 답은 여느 때와 같이 간단했다.

“개자식… 이게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꼼짝없이 붙잡힌 마법사들 중에선 반항적으로 고개를 쳐든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페드로는 그들의 머리를 고이 짓밟으며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신을 대하는 태도에 순종 외에는 필요 없다. 빛에 눈이 멀기 싫다면, 머리를 조아리고 공포에 떨어라.”

터엉!

결사단원들의 목이 하나둘 잘려 나갔다.

“악을 향한 징벌은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우리의 사명을 위해 불꽃을 피워라! 죄인들의 비명 소리가 그분께 닿도록!”

결사단의 본거지를 가득 채운 불꽃과 비명 소리.

번들거리는 집행관의 눈동자엔 모든 걸 집어삼키는 하얀 불길만이 일렁였다.

* * *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보상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

.

.

왕가의 퀘스트가 클리어 되며 커다란 보상이 들어왔다.

‘역시 그쪽은 잘 마무리된 모양이군.’

떠오른 메시지들을 본 에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시체가 된 예거에게서 그는 정보를 성공적으로 뜯어냈고, 그것도 결사단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기 전에 얻어 낼 수 있었다.

그간 제법 많은 이단들을 거치며 노하우가 쌓인 덕분에 신속하게 대답을 들을 수 있던 것이다.

‘하긴 집행관이 직접 나섰으니…….’

그렇게 얻어 낸 정보는 곧장 이단심문소에게로 전해졌고, 그를 제외한 다섯 집행관 중 하나인 페드로가 직접 나서 놈들의 본거지 소탕에 나섰다.

마법사들에게 강한 그가 마침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더욱 은밀하고 빠른 움직임이 가능했다.

‘이번 타격으로 결사단도 당분간 크게 위축되겠지.’

놈들의 본거지를 완전히 불태웠을 뿐, 세력을 완전히 파괴한 것은 아니었다.

페드로가 카사노를 잡아 냈다고는 하나,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간부들도 여전히 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 가한 타격은 굉장히 컸다.

결사단의 본거지에 놓여 있던 수많은 사령석들을 파괴했고, 각 지역에서 놈들이 모아 둔 대지의 마력도 모조리 돌려 냈다.

다시 돌아올 테지만 최소한 놈들의 활동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한 것은 확실했다.

‘게다가 왕가의 퀘스트답게 보상도 굉장하고.’

인벤토리를 확인한 에일이 입가를 말아 올렸다.

이번 퀘스트 보상으로 왕가에게서 받은 아이템은 바로 찬란한 검은빛 스킬북.

왕궁 서고에서 보관되어 있던 물건이었고,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권이 그에게 주어졌다.

검은 스킬북에 찬란한 수식어까지 붙은 덕에 높은 확률로 최상위급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당분간 스킬 걱정은 거의 덜어 낸 셈.

그가 결사단의 간부와의 싸움에서 선금으로 받은 스킬북으로만 해도, 유일급 스킬인 신성 폭발을 얻어냈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이번 결사단을 습격한 사건은 단순히 전조에 불과했고, 아직 그에겐 진짜 본론이 남아 있었다.

[‘카린’님의 대화 요청이 도착했습니다!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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