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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79화 (179/227)

179화 소리 없는 전쟁 (3)

도심 뒷골목을 가득 채운 거대한 괴물.

흉측한 모습의 검은 괴수가 마구 날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놀랍게도 이 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결사단의 이단마법사인 예거가 변한 모습이었다.

쿠웅!

“크윽……!”

인상을 찌푸린 에일이 주르륵 밀려났다.

정면에서 가드를 올려 봤지만, 녀석의 괴력을 검으로 맞받아치는 건 소용없었다.

이번에도 마법사(물리)인 결사단원이었지만, 당시에 상대하던 슬래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신체 강화가 아닌 신체 변형 마법.

이성을 잃지는 않는다곤 하나, 금단의 마법으로 지정이 되었을 만큼 극심한 변형을 주는 마법이었다.

실제 그의 모습은 이미 인간이 아닌 몬스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마구 날뛰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론 모두 의도한 움직임이야……. 그래서 더 까다로워.’

원래 이렇게 괴물의 형상으로 변하는 패턴은 본능과 이성이 뒤죽박죽 섞여 괴물처럼 날뛰기 마련이었다.

하나 지금 그를 노리는 녀석은 완전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에 휩쓸리는 일 없이 지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뜻.

콰아앙!

“윽… 이렇게 요란하게 날뛰어도 되는 건가?”

연달아 울리는 굉음과 부서지는 건물들.

주위의 이목을 끌 것은 당연했고, 경비병 몰려들면 당연히 습격자인 예거가 불리했다.

심지어 공격받는 이들 중 왕국의 공주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도시의 병력 전부가 몰려들지도 몰랐다.

하나 여유롭게 꼬리를 말아 올린 예거는 험악한 이빨들을 드러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이곳엔 나만 온 게 아니거든…….”

“에일 님!”

뒤편에 피신시켜 둔 세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한 그녀의 모습.

이곳 주위에 강력한 결계가 펼쳐져 있던 것이다.

아까부터 연달아 터져 나온 폭음에도 아무도 올 기미가 없는 걸 보아 미리 손을 써둔 모양이었다.

“결계를 친 쪽은 따로 있는 건가…….”

“한눈팔지 마라!”

에일이 결계를 친 결사단원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리자, 예거가 소리치며 쇄도해 왔다.

뛰어오르며 꼬리 공격을 피한 에일은 예거의 널찍한 등을 노렸다.

하나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건 팔다리와 꼬리뿐만이 아니었다.

콰악!

보랏빛의 섬광이 뻗어 나와 에일을 관통했고, 튕겨져 나간 그는 바닥을 뒹굴었다.

피를 토해 낸 에일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젠장, 저런 모습에 마법까지 쓰다니……. 생각도 못 했어.’

그가 쏘아낸 것은 다름 아닌 마법.

예거는 몸만 쓸 줄 아는 것이 아니었다.

결사단의 간부라는 건 금단 마법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단순히 괴물로 변하는 능력만 가지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예거는 괴물로 변한 형상에서 스태프나 특별한 선행 동작도 없이 파괴력 있는 마법을 쏘아냈다.

츠츠츠!

이번엔 예거의 입에서 많은 양의 섬광이 모였다.

에일이 빈틈 노려 공주를 노린 것이다.

‘아, 안 돼!’

뒤늦게 그가 막아서려 했지만 늦었다.

뜻하지 않게 튕겨 나갔던 탓에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었고, 미처 손을 쓸 수 없는 위치였다.

콰아아앙!

섬광이 뻗어져 나가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하나 녹색 빛의 방어막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세이아는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할 수 있었다.

“역시 아주 맨몸으로 온 건 아니었군.”

예거는 예상했다는 듯 기이한 웃음을 흘렸다.

세이아의 반지에 담긴 보호 마법이 발동된 것이었다.

무려 왕가의 아티팩트인 만큼 굉장한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다행이다.’

뒤늦게 공주의 옆에 선 에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보호막 안에 서 있는 세이아가 말을 걸어왔다.

“에일 님! 제 쪽은 신경 쓰지 말고 저자를 처리해 주세요! 절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해치진 않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위험한 일은 왜 꾸미신 겁니까? 공주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 쪽도 곤란합니다.”

“상황이 이런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요.”

교단이 전면적으로 나서 결사단원들을 추적한 뒤 활동은 크게 억제됐지만, 공교롭게도 흔적을 쫓기엔 더욱 힘들어졌다.

이단심문소의 대대적인 추적이 시작되자, 작은 활동조차 주의하며 한껏 움츠린 것이다.

하지만 다급해진 공주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그들에게 새로운 음모를 꾸밀 시간을 줄 순 없었다.

“큰 성과엔 그에 걸맞은 미끼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세이아가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자신이 홀로 바깥에 나와 있을 경우, 결사단이 노릴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접근해 오도록 호위까지 물린 것이다.

한껏 몸을 사리고 있는 결사단의 간부를 상대로 호위대를 숨겨 놓는 정도의 어설픈 수로는 부족했다.

그녀에겐 대어를 단숨에 수면 위로 끌어올릴 미끼 역이 필요했다.

깊숙이 숨어 있던 녀석들조차 정신 못 차리고 달려들 만한 커다란 미끼가.

‘나 참…….’

원래 이렇게 무모한 건지, 아니면 왕위에 대한 욕망이 강한 건지.

반드시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의지로 가득 찬 눈을 보니 후자 같았다.

어찌 됐건 에일의 입장에서는 왕가의 퀘스트까지 생겨난 이상 해내야 했다.

오히려 한껏 웅크리던 결사단의 간부를 상대로, 일국의 공주가 자기를 미끼로 써가면서까지 만들어 준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세이아가 상대에겐 보이지 않게 아이템을 슬쩍 건넸다.

그러자 아이템을 본 에일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이건……?”

“이번 의뢰의 선금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뭘 쑥덕거리고 있는 거냐!”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예거가 두 팔을 내리찍었다.

후웅!

살짝 물러선 에일은 정확한 타이밍에 역극 스킬을 발동시켰다.

빙글 돌아 괴물의 사각지대로 파고든 그는 검을 찔러 넣었다.

마법을 사용하기에도 늦은 상황, 하나 순식간에 반응한 예거는 다리를 비틀어 에일을 걷어찼다.

콰앙!

다리에 걷어차인 에일이 등으로 벽을 박살 냈다.

또다시 줄어든 체력에 그는 지속 치유 스킬을 시전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어……. 설마 역극을 쓸 줄 알았다는 건가?’

차오르는 체력과는 별개로, 인상을 찌푸린 에일이 고민에 빠졌다.

역극을 사용한다고 해도 반응하며 몸을 피하거나 대처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방금 녀석의 그 자세에서 다리를 곧장 움직인 것은 미리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단마법사들이 온갖 기상천외한 마법들을 지니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방금 보인 예거의 대처에 에일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해 봐야겠어.’

에일은 다시 검을 치켜들고는 녀석에게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의 의심은 수차례 격렬한 합을 치고받는 과정에서 점점 더 확실해졌다.

녀석은 역극뿐만이 아니라 일섬이나 스턴기 등 주의해야 할 모든 스킬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실제로 그를 이용해 노림수들을 피해 냈다.

‘설마 했는데 정말 스킬을 간파하다니……. 플레이어들한테는 이런 능력이 없는 게 다행이네.’

직접 맞부딪쳐 보기도 전에 지닌 스킬을 전부 간파하다니.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란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주위를 살피던 에일의 눈빛이 변했다.

이번만큼은 그에게 행운이 따른 것인지, 마침 파훼법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파아앗!

그에게서 검은빛이 뻗어져 나왔다.

[스킬북이 사용되었습니다!]

처음 싸움을 시작할 때 공주가 건넸던 것은 ‘찬란한 검은빛의 스킬북’.

황금빛 스킬북을 제외하면 최고 단계의 스킬북인 데다가, 찬란한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이상 높은 확률로 상위 등급의 스킬이 등장할 것이었다.

파아앗!

새로운 스킬이 나왔고, 그를 본 에일은 입가를 말아 올렸다.

그리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예거가 그의 수를 읽어내기 전에 단숨에 스킬을 시전했다.

콰아아앙!

예거의 바로 뒤편에서 모였던 하얀빛이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신성력을 모아 폭발을 일으키는 유일급 스킬, ‘신성 폭발’.

꽤나 강한 위력에 데미지를 입음은 물론, 강한 넉백에 밀쳐져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왔다.

괴물의 거체조차도 튕겨낼 만큼 강한 충격파 또한 신성 폭발의 주요 효과 중 하나였다.

촤르르륵!

바닥에서 솟아 나온 쇠사슬이 예거를 꽁꽁 감았다.

녀석이 튕겨져 나온 경로를 미리 계산해 사용한 신성의 사슬 스킬이었고, 그와 거의 동시에 무릎을 꿇었던 에일이 캐스팅을 끝냈다.

하늘에서 나타난 거대한 징벌의 검.

검은 정확히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예거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끄아아아!”

* * *

콰아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하며 피어났던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징벌 스킬에 직격당해 쓰러진 예거는 변형 마법도 풀린 채 뻗어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빈사 상태에 빠진 예거가 힘겹게 말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그와 함께 온 결사단원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을 감싸고 있던 거대한 결계의 막이 스르륵 사라졌다.

쿠웅!

갑자기 위에서 떨어진 한 구의 시체.

예거가 말했던 결사단의 또 다른 간부였다.

“마… 말도 안 돼.”

예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시체를 바라보았다.

결계를 치고 있던 결사단원에겐 손을 쓰지 않은 에일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희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라서 말이죠.”

다가온 공주가 말했다.

타앗!

그때 결사단원의 시체가 떨어졌던 옆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가뿐히 착지한 한 명의 도적.

놀랍게도 에일도 이미 알고 있는 얼굴, 블러디 핸즈의 세베라 로기아였다.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지?”

세베라가 단검의 피를 닦아내며 씩 웃었다.

그동안 외부 인물을 이용하고 있던 건 왕자만이 아니었고, 왕가의 호위를 물린 대신 확실한 대체자를 붙여 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도 있었다.

“그건…….”

세바라의 왼팔에 적힌 문양.

블러디 핸즈의 ‘슬레이어’를 뜻하는 특별한 문장이었다.

슬레이어라면 블러디 핸즈의 핵심 간부들이자, 도시 정도가 아닌 최소 지역 단위를 맡는 중역이었다.

그간 보지 못했던 동안 세베라는 퀸즈 블론드를 맡던 지부장에서 에스마이어 지역 전체를 맡는 자리까지 오른 것이었다.

원래 그녀가 퀸즈 블론드의 지부장들 사이에서도 유력한 네임드 NPC였기에, 언젠가 그 위치에 오를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나 벌써 슬레이어에 올라 있을 줄은 몰랐다.

슬레이어 후보 중 하나였을 뿐, 바로 올라갔다니 조금 빠른 감이 있었다.

“보다시피 꽤 굵직한 건을 진행 중이라서 말이야. 성과도 쏠쏠했고.”

에일의 기색을 알아챈 세베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런 그녀가 공주와 붙어 있는 걸 보아, 블러디 핸즈는 공주 쪽으로 완전히 돌아선 모양이었다.

“설마 이 스킬북도 다 계산된 겁니까?”

“맞아요.”

결사단에서 자신을 노릴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던 세이아는 심지어 접근할 예거의 간파 능력조차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하필 전투 직전 그에게 몰래 스킬북을 건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에일이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스킬북을 활용해 결사단의 간부를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좋아. 여기 일은 대충 마무리됐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그러고 보니 아직 퀘스트가 클리어되지 않았지.’

세베라의 말에 에일이 생각했다.

공주가 자신에게 부여한 왕가의 퀘스트는 아직 완료 표시로 넘어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좀 필요하겠는데.”

“너희 교단이 거하게 들쑤시고 다니긴 했지만, 다른 쪽도 놀고만 있던 게 아니거든. 혹시 네가 처음 나에게 건넸던 편지 기억해?”

“편지……? 아.”

기억을 되짚은 에일은 우연히 퀘스트 아이템으로 ‘카사노의 편지’를 얻었던 걸 기억해 냈다.

그걸 세베라에게 건넨 뒤, 처음으로 사령석을 마주했던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편지에 적혀 있던 카사노가 바로 결사단의 리더야. 그걸 알고 있는 건 같은 결사단의 간부들뿐이고.”

“그렇다면 녀석을 노리겠다는 건가?”

“그래, 결사단의 거점은 대륙 곳곳에 퍼져 있어서 한 번에 소탕하기 쉽지가 않아. 어중간한 타격을 입혀 봤자, 더 깊이 숨어들어 갈 테고. 확실히 해두려면 한 번 기회를 잡았을 때, 큰 타격을 입혀야 한다는 거지.”

곁가지가 아닌 핵심을 쳐내야 한다는 말.

이번 왕위 계승전에 가장 걸리적거리는 결사단의 핵심을 깨부숴 단숨에 무력화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자리에 있던 일행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그러자 힘없이 쓰러져 있던 예거가 움찔했다.

“에일 님, 이자의 처리는 맡겨도 되겠죠?”

“뭐… 그거야 저희 전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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