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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77화 (177/227)

177화 소리 없는 전쟁

솔스티드 지역의 지옥불 지대.

거대한 화산의 영향권 안에 있는 광활한 지대로,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발밑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고, 협곡 사이로는 용암의 강이 흐르고 있다.

당연히 사람들이 그런 환경을 반길 리는 없었고, 어지간해서는 발도 들이고 싶지 않아 할 만큼, 기피되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열악한 환경에 비해선 제법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바로 이곳에 200레벨 초입대의 고레벨 사냥터가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었다.

점점 선택의 폭이 줄어들어, 유용한 사냥터를 찾기 어려워지는 상위권 유저들에겐 아주 훌륭한 지역이 되었다.

제법 효율이 좋은 사냥터임에도 오히려 열악한 환경 탓에 거대 길드의 통제가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행료 없이, 좋은 효율의 사냥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메리트였다.

하지만 반대로 위험성도 지니고 있었다.

길드의 통제가 없는 지역이라는 건, 곧 관리해 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으니까.

지옥불 지대엔 오늘도 어김없이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 진짜 죽으면 안 된다고!”

“그럼 누구는 죽어도 되겠냐?”

“아니, 그게 아니라……!”

절벽 끝에서 유저들이 실랑이 중이었다.

2명의 유저가 사람 하나를 붙잡은 채 무기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

붙잡힌 남자의 뒤편 아래로 흐르는 용암이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

‘젠장, 혼자서 오는 게 아니었는데!’

눈을 질끈 감은 남자가 자신의 지난 선택을 후회했다.

평소 함께하던 파티원이 몸 상태가 안 좋아 쉰다고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는 마침 일반 유저들 사이에선 최상위권의 상징인 200레벨에 막 들어선 터라, 한창 더 치고 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급히 대타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혼자서 사냥을 감행한 것이다.

전력을 감안해 비교적 널널한 사냥터를 택한지라 문제는 없었지만, 역시나 문제는 몬스터가 아닌 유저였다.

지옥불 지대를 처음으로 들어온 탓에 PK라는 변수를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둘이서 왔으면 정면에서 덤비기라도 할 것이지…….”

남자가 이를 갈며 PK범들을 올려다봤다.

한창 사냥에 빠져 있던 중, 뒤에서 공격한 2명의 PK범들에게 꼼짝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숫자만 맞았어도 허무하게 붙잡히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는 쓸모없는 가정이었다.

“졌으면 진 거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큭…….”

남자는 꼼짝없이 입을 다물었다.

최근 혼란한 대륙의 상황을 틈타 급속도로 늘어난 PK범.

특히 200레벨쯤 되는 수준의 전문 PK 유저들은 소속 길드의 보호도 별반 소용없었다.

물론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지만, 단지 큰 길드의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놓아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찍은 200레벨인데…….’

지난 고생을 떠올린 남자는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감격스러웠던 자신의 레벨이 다시 100레벨대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돈과 장비를 잃고, 이틀이나 되는 접속 페널티까지.

입게 되는 타격이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솔직히 죽기 싫지? 그냥 놓아줄까?”

“뭐라고?”

“야, 이렇게 사람 엿 먹이는 걸 뭐가 좋다고 하겠냐? 다 돈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냥 놓아줄 테니까 방어구들 다 벗어서 넘겨줘라. 그러면 깔끔하게 놓아줄게. 우리도 먹고는 살아야지.”

“하, 씨… 그딴 개수작은 20레벨짜리 뉴비들한테나 가서 부려.”

“기껏 놓아주겠다는데 개수작이라니?”

“웃기시네. 아이템 넘겨 봤자 어차피 죽일 거 모를 것 같아?”

남자가 짜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유저를 한번 죽이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한정적이었다.

그렇기에 목숨을 대가로 아이템을 요구한 뒤, 막상 받아 챙긴 뒤에는 입을 싹 닫고 남은 아이템까지 털어가는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무려 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아주 뻔한 수법.

그가 200레벨을 달성하는 동안 PK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것도 아니고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저 피식 웃어 보인 상대는 그에게 간단히 답했다.

“그래? 그럼 죽든가.”

아무 미련 없다는 듯 발을 들어 올리는 PK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자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자, 자, 잠깐만!”

“음? 마음이 바뀌셨어?”

다시 발을 내린 상대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빨리 합의 보자고. 네 뒤에 있는 용암에 다이빙하기 싫으면.”

“젠장…….”

뒤편을 바라본 남자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쏟아 냈다.

높다란 절벽 아래에 시뻘건 용암이 지글거리며 흐르는데, 솔직히 아무리 그라고 해도 무서웠다.

100명 중 99명은 그대로 아이템을 털리고 죽을 것이 뻔했지만, 막상 이런 일이 코앞에 닥치니 눈이 팽글팽글 돌았다.

“언제까지 실랑이를 하게 할 거야~ 내 어깨를…….”

“시끄럽고. 카운트다운 들어간다.”

동료의 말을 끊은 PK범이 하나씩 숫자를 세었다.

“5, 4, 3……!”

퍼억!

“끄아아아악!

그 순간 발길질에 차여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발버둥 치던 그는 꼼짝없이 새빨간 강으로 가라앉았고, 작열하는 용암 속에서 주르륵 녹아내렸다.

하지만 정작 떨어져 내린 것은 붙잡혀 있던 남자의 쪽이 아니었다.

“뭐… 뭐야!”

느닷없이 뒤에서 나타난 에일이 숫자를 세던 PK꾼을 뻥, 차 버린 것이다.

그의 동료가 급히 검을 뽑아 들며 에일을 공격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촤르르륵!

바닥을 뚫고 나온 새하얀 사슬이 그의 온몸을 단단히 묶었고, 동시에 에일의 장검이 그를 관통했다.

꼼짝없이 제압당해 바닥에 머리를 박은 PK범.

그사이 에일은 붙잡혀 있던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세요?”

“네… 넵! 정말 감사합니다!”

감격한 남자가 에일의 두 손을 붙잡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구세주가 등장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물론 에일의 행동은 오직 선의를 베풀기 위함은 아니었다.

[곤경에 처한 이를 무사히 구해 냈습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100]

[신앙심 스탯 +0.9]

슬쩍 메시지를 확인한 에일은 쓰러져 있는 PK범에게로 다가갔다.

“음, 장신구가 꽤 좋아 보이는데? 손가락에 끼고 있는 그거 내놔. 그러면 살려 줄 테니까.”

“XX 같은 소리 하네. 요즘 좀 떴다고 설치고 다니기는.”

에일의 얼굴을 알아본 PK범이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들이 쓰던 방법을 그대로 돌려 주며 능욕하려는 게 뻔했고, 그걸 멍청하게 당해 줄 리 없었다.

“아니, 내가 너희 같은 줄 알아? 난 신앙인이란 말이야. 거짓말하면 천벌 받는다고.”

‘잠깐. 그러고 보니…….’

에일의 말을 듣자 PK범의 표정이 솔깃하게 바뀌었다.

빛의 교단의 이단심판관들은 ‘루’라는 여신을 따르는 광신도들이었다.

아무리 미친 여신이라며 악명이 자자해도 어디까지나 ‘정의’라는 이명을 가진 신격.

오히려 광적으로 정의를 따르기에 남을 속이는 거짓말을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겠지?”

“정말이라니까. 마침 장신구들 레벨이 부족해서 새로 맞춰야 했거든.”

“그러지 말고 그냥 끝내 버리시지…….”

구출된 남자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서 안심한 PK범은 장착하고 있던 반지를 빼 에일에게 내놓았다.

얼마 전 다른 유저에게서 빼앗은 고가의 유일 등급 장신구였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럼 이제…….”

“응, 그런 거 없어.”

빠악!

에일의 발이 PK범을 강하게 밀쳤다.

이단에게 정의란 사치일 뿐.

허구한 날 불태워 죽이던 상대한테 거짓말 같은 게 대수일 리 없었다.

“이런 개……!”

떨어져 내리는 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뒤늦게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빛의 심판자, 루’가 엄지를 치켜듭니다.]

“끄아아아악!”

절벽 아래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그 경쾌한 선율에 반응한 루는 에일에게 공헌도를 후원해 왔다.

“용암을 이용한 처형이라니. 이런 걸 놓칠 리가 없잖아.”

에일이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침 업로드할 다음 영상에 무언가 새로운 소재가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이런 장면을 건졌으니 대만족이었다.

이정도면 꽤 좋은 반응이 나올 것이다.

‘여, 역시…….’

구해진 남자는 질겁한 채 입을 다물었다.

겨우 살아난 목숨, 까딱 잘못하다간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사냥터 효율도 좋고, 돌아다니는 이단들도 많아. 역시 이쪽에 오길 잘했어.’

그동안 쌓은 스탯과 경험치에 에일이 뿌듯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철십자와의 약속은 첩자들의 정체를 밝혀냄으로써 지켜졌지만, 아직 나이트메어와의 거래는 끝난 게 아니었다.

후방에서 고대 정령을 부리려는 수작은 여전할 것이었고, 교단은 여전히 각 지역에 숨어든 결사단을 추적 중이었다.

교단이 나서자 꾸준히 성과가 나온 것은 맞으나, 당장 에일이 직접 나설 만큼 아주 큰 단서가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잠시 이곳을 찾아, 스탯을 쌓으며 레벨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성물은 성물이고, 다른 쪽에 정신 팔려서 성장에 소홀히하면 안 되지.’

어디까지나 그의 첫 번째 목적은 선발 주자들을 완전히 따라잡는 것이었다.

‘뭣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에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결사단의 뮤트가 말하길, 상대를 쫓고 있는 건 교단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교단의 집행관이라는 고위직에 있는 만큼, 언제든 그를 노리고 접근해 올 거라는 말이었다.

그것이 추적당할지도 모르는 에일이 위치를 숨기지 않고 이렇게 요란하게 다니는 이유였다.

후우웅!

반대편에서 날아든 화염구가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뒤를 보지도 않고 몸을 살짝 돌린 에일이 가볍게 피해낸 것이다.

마법이 날아든 쪽엔 그를 노리고 온 결사단원이 서 있었고, 예상하고 있던 그들의 방문에 에일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3번째인가… 이번에도 간부는 아닌 것 같지만, 간부급이 직접 찾아올 때까지 모조리 부숴 버리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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