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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76화 (176/227)

176화 추적 (5)

촤르르륵!

바닥에서 뻗어져 나온 신성의 사슬이 남자를 휘감았다.

꼼짝없이 붙잡힌 그는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나뒹굴었고, 에일은 그 틈에 그를 빈사상태로 만들었다.

“휴, 끝까지 애를 먹이네.”

찔러 넣은 검을 회수하며 에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일섬을 한 방 먹여 놨음에도 생각보다 저항이 거셌지만, 결국엔 완전히 제압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

창밖을 슬쩍 내다보자 소란을 들은 주민들이 웅성거리고 있었고, 인파를 헤치며 경비원들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도심 거리의 폐건물이 불타며 연기까지 모락모락 나니 시선이 끌리지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적으로 곤란해지는 건 첩자질을 하던 쪽이었지만, 에일도 괜히 도시 경비병과 여명의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기가 귀찮아졌다.

‘복잡해지기 전에 내빼야지.’

스킬로 묶인 사슬 위에 밧줄과 재갈을 물린 뒤, 에일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타오르는 성화를 발견해 떠들썩해진 현장을 뒤로하고, 인적 없는 골목까지 달아났다. 현장을 급습하기 전에 미리 봐둔 지점이었다.

털썩!

내동댕이쳐진 남자가 바닥을 뒹굴었다.

에일은 신음을 흘리는 그에게 다가가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지속 시간이 지난 사슬이 사라졌지만, 빈사 상태인 데다가 밧줄까지 묶여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너… 지금 실수하는 거다.”

“그러시겠지.”

아랑곳하지 않은 에일은 그의 얼굴 사진을 확보했다.

그리고는 이전에 메신저를 터 놓은 타샤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단순히 위장을 한 것이 아니라, 나이트메어의 길드원이 확실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적당히 구색만 갖춘 것이라면 같은 길드원을 속이진 못할 테니까.

“역시…….”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스완이라는 나이트메어의 정식 길드원.

이번에도 역시 산하 길드 정도가 아닌 정식 길드원이었다.

단순히 겉모습만 같은 게 아니라, 단검을 사용하는 것부터 직업과 전투 방식 역시 정확히 일치했다.

“누가 이런 일을 시킨 거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비밀리에 길드의 명을 받고 움직인 거다. 고대 정령이라는 변수에 잠자코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알았으면 일단 이것부터 풀어.”

“하.”

뻔뻔한 그의 거짓말에 에일은 코웃음쳤다.

“네가 외부에서 심어 놓은 첩자라는 건 이미 알고 왔어. 두 길드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려고 끊임없이 이간질을 해온 것도.”

“무슨 헛소리를…….”

“그리고 그 배후는 아폴리온… 맞지?”

“뭐……?”

당황한 스완의 표정이 아주 보기 좋게 변했다.

아주 미세한 변화에 금세 원래의 얼굴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에일이 아니었다.

이자는 상대 길드인 여명의 첩자도 아니었고, 결사단에게 매수된 배신자도 아니었다.

지금 두 길드 간의 판도에선 완전히 제삼자 취급을 받던 아폴리온 길드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첩자였다는 것.

그것도 이곳에서 잡힌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반대로 나이트메어의 영지에서 잡힌 여명 측 길드원을 비롯해 그 이상일 거라 예상되는 숫자.

같은 6대 길드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여명과 나이트메어에 은밀히 첩자들을 심어 둔 것이다.

‘어쩐지 어딘가 이상하더니만.’

에일조차도 시르에게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1.5세대 가상현실게임인 ‘뉴월드’ 시절부터 심한 경쟁을 이어온 나이트메어와 여명 길드.

그 둘 사이의 갈등을 보다 심화시키기 위해, 아폴리온 길드에선 여태껏 조심스레 개입해 작업을 치고 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그동안의 균형을 깨며 길드 하나를 통째로 삼키는 동안 견제를 받지 않을 수 있었고, 거기다 두 강력한 경쟁자를 전면전을 통해 전력을 소모시키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아주 성공적인 이간질 전략이었다.

“후방 타격을 위해 파견된 인원 중 한 명이라……. 그래서 바로 들키지 않을 수 있던 거군.”

타샤가 보내온 추가 정보에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은 때에 먼 영지까지 찾아가 부재하고 있으면 당연히 길드에선 수상한 점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하나 스완의 경우는 달랐다.

거대 길드 간의 전쟁은 전면전이 전부가 아니었고, 뒤편에서도 치열한 후방 공작이 이루지곤 했다.

서로가 서로의 후방에서 주요 거점과 보급을 파괴하며 공방을 주고받는 일.

그도 그를 위해 후방 지역에 파견된 길드원이었던 것이다.

길드 앞에선 충실히 임무들을 수행해 나가며, 다른 편에선 이런 짓을 하고 있었을 거라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언제부터 이런 짓을 벌인 거지? 길드 가입이 6개월 전인 걸 보면…….”

툭!

그때, 묵여 있던 스완의 몸이 축 늘어졌다.

눈에 초점을 잃으며 널브러진 모습.

체력 상황으로 보아 목숨이 끊어진 건 아니었다.

“강제 종료인가.”

에일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강제 접속 종료.

전투에 돌입했거나 포박된 상태에서 강제 종료를 하면 약간의 페널티가 주어진다.

하지만 괜히 에일의 심문에 휘말려 혹시 모를 정보의 단서를 흘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뭐, 그래도 얻어낼 건 모두 얻어냈으니까.’

애초에 그에게서 뭔가 더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뒀고, 이제 이 사실을 거대한 고객들에게 알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이 정보를.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처리할까…….”

에일이 축 늘어진 스완을 고민스럽게 내려다봤다.

* * *

철십자의 시르.

나이트메어의 카린.

여명의 솔로스.

세 명의 길드장이 원탁에 앉아 있었다.

무려 전체 랭킹 2, 3, 4위의 정상급 랭커들이 자리한 데다가, 각각 그들의 뒤를 보좌하며 입구에 서 있는 한두 명의 랭커들조차, 모두 두 자릿수를 넘지 않는 상위의 하이랭커들이었다.

이처럼 워로드를 지배하는 6대 길드장 중 절반이 한자리 모인 모습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대륙 전체에 한창 전란이 휩쓸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어때, 이제 납득할 수 있겠나?”

시르가 양옆의 길드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원탁에 놓인 수많은 자료들.

그중엔 에일이 직접 찍어 보낸 양쪽 길드원의 사진도 놓여 있었다.

그 사진들은 특히 양쪽 길드에 첩자가 숨어들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였다.

“길드의 덩치가 커지면 첩자가 섞여 들어오는 걸 막을 순 없어. 하지만 그게 아폴리온의 개입이라는 건 예상 밖이군.”

자료를 툭 내려놓은 솔로스가 말했다.

양측 길드원의 사진을 제외하고도 시르가 모아온 자료들은 그들이 납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견제를 피하기 위해 먼저 싸움을 붙이고, 전쟁이 터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는 거네. 하지만 첩자 중에 소속된 지 1년 가까이 된 녀석도 있다는 건, 아예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단 건데. 이게 가능은 한 건가?”

카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오랜 계획을 실행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아폴리온은 출신 게임조차 없던 신규 길드였다.

워로드에서 첫 시작을 끊으며 세력을 불린 길드.

한데 그런 길드에서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이런 계획까지 세워 놓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불가능해. 처음 세력을 불리던 속도도 그렇고, 켈베로스 녀석들을 순순히 꼬드긴 것까지. 단순한 신흥 길드 수준이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야.”

“짐작 가는 부분이라도 있나 보네.”

“그래, 알키오네가 돌아온 거지.”

“하?”

최초의 가상현실게임이자, 3대 게임 중 1세대를 대표하는 ‘이스트혼’.

알키오네는 당시 이스트혼을 완전히 장악했던 최강의 길드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카린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고, 솔로스도 동조하며 시르를 바라봤다.

이곳에 모인 세 길드장만 하더라도 모두 출신 게임이 있는 명문 길드였다.

당시 세력을 그대로 끌고 오면서 시작부터 조직적인 움직임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이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기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반면 1세대 게임인 이스트혼만큼은 6대 길드는커녕, 눈에 띄는 중대형 길드 중에서도 출신 길드가 하나 없었다.

이스트혼에 자리를 잡을 뻔하던 다른 명문 길드들은 이미 오래전 알키오네의 손에 모조리 공중분해 됐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알키오네가 최강인 동시에 최악의 길드라고도 불렸던 이유였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힘으로 전 지역을 통일한 알키오네는 거래장과 상점에 붙는 모든 세율을 일제히 올렸다.

당연히 반발하는 이들이 들고일어났지만, 그들의 반응은 태연했다.

오히려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자유도가 보장된 게임 속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막대한 이익을 독점했다.

반발하는 이나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은 모조리 찍어 눌렀고, 한 번 쥔 권력을 단 한순간도 넘겨주지 않았다.

“알키오네는 워로드로 넘어오지 않았어.”

카린의 단호한 확언.

그녀의 말 그대로 알키오네는 이미 자리 잡은 이스트혼에 남아 워로드로 넘어오지 않았다.

처음엔 당연히 모두가 그들이 더 큰 시장을 노리며 넘어올 거라 생각했으나,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결정이었다.

“그럼 어째서 알키오네가 넘어오지 않았을까? 이전의 게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시장을 내버려두고서.”

”놈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것도 이젠 한참 전이야. 편하게 눌러앉아서 안주하느라 감도 잃었을 테고, 뭣보다 새로 도전한답시고 워로드로 와 봤자 공공의 적이 됐겠지.”

“그것 때문에 여태 정체를 숨겨 놓았다면?”

“헛소리. 알키오네가 지금도 버젓이 활동 중인 걸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스트혼은 아직도 서버를 종료하지 않은 채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워로드의 등장으로 많은 게임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는 하나, 한 시대를 풍미하던 3대 게임이라면 어느 정도 규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알키오네는 여전히 그곳에서 활동 중이며, 전보다는 못하지만 시장 전체를 독점한 채 많은 돈을 거두는 중이었다.

“단지 눈속임으로 대역을 세워 놓은 거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야. 네 말대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던 시절은 한참 지났으니까. 문제가 발생할 일도 없는 거지.”

알키오네의 길드원들은 전원이 가면을 착용한 채 활동했다.

처음부터 악역을 자처했던 이들이었던 만큼, 원한을 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얼굴과 신상을 감추며 활동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게임 닉네임뿐이야. 속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시르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물론 가지고 있는 것은 심증뿐, 여기에 대해선 어떠한 증거나 자료도 없었다.

하나 지금의 상황까지 와 버린 이상,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고, 자리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곳에 앉은 길드장들도 당연히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게이머라면 모를 리가 없을 만큼 이름이 자자한 알키오네의 이름.

세대 전체를 아울러도 당시에 그들이 보인 파급력은 여전히 최강으로 회자되었고, 단순히 옛날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 *

“생각보다 빨리 뭉쳤군. 이제 와선 상관없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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