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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75화 (175/227)

175화 추적 (4)

퀸즈 블론드에서 붙잡은 여명의 길드원.

수많은 신도들의 손에 붙잡혔던 그는 끔찍하게 처형당해 거리 행진에 동참하게 되었다.

정보를 토해 내게 하는 모종의 과정은 겪지 않았지만, 어차피 유저에겐 고문의 효과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기겁할 만큼 공포를 심을 순 있어도, 입을 열게 만들어 정보를 빼내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어수룩한 유저라면 몰라도 준랭커쯤 되는 작자가 자신이 속한 길드의 중요 정보들을 뱉어 낼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바로 신도들의 손에 처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사진을 비롯해 증거를 확보하고, 떨어뜨린 장비 아이템의 회수하는 등의 절차는 잊지 않았다.

여명의 길드 마크가 선명히 새겨진 그의 방어구.

붙잡힌 길드원의 얼굴과 함께 빼도 박도 못할 분명한 증거였다.

“그렇단 말이지…….”

그 사실을 보고받은 카린이 턱을 괴었다.

나이트메어의 길드장으로서 직접 전선에 나가 전투를 지휘하는 중이었지만, 뒤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찜찜하던 후방은 역시나 결사단이 여명 길드와 손을 잡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빛의 교단에서 한 건 해 줬군요!”

람빅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뒤에서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 졸렬한 건 여전하네요. 길드장,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저희도 고대 정령을 이용하죠.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람빅이 의견을 제시했다.

북동의 그리핀 길드가 당했듯, 고대 정령은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만큼 굉장히 강력한 변수였다.

전선으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는 지역까지 방심할 수 없는 데다가, 한 번이라도 허용했다간 큰 문제가 터져 나올 수 있는 성가신 공격 수단이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변수를 한쪽만 쥐고 있다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여명은 저희처럼 빛의 교단의 협력도 받을 수 없으니, 이런 작업에 훨씬 더 취약할 겁니다.”

이미 음지에서의 추적에 도가 터있는 이단심판관들로 가득한 교단.

그런 그들의 능력은 기대 이상이었고, 훌륭하게 후방에 숨어들었던 적들을 제거해 나가는 중이었다.

반면 여명 길드는 교단을 꼬드길 만한 성물 파편도 없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오히려 고대정령이라는 변수를 더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잘만 된다면 팽팽하던 균형을 완전히 깨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변수.

그 앞에서 잠시 생각을 하던 카린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니, 왕자는 어차피 왕위를 얻을 생각뿐이야. 여명이 먼저 입장을 바꾸고 왕자에게 붙은 이상, 굳이 그쪽에 고대 정령을 풀어 박살 낼 이유도 없지.”

이제 와서 왕자의 편에 선다고 한들 이번 전쟁에선 제대로 된 이득을 볼 수 없었다.

기껏해야 고대 정령에 서로 당하지 않는 정도가 전부였다.

“뒤에서 칼을 꽂으려던 녀석들을 가만히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고… 뭣보다 냄새가 구려.”

인상을 슬쩍 찌푸린 카린이 읊조렸다.

“어딘가 구린 냄새가 난단 말이야.”

6대 길드 중 한 곳이 무너지며 여명이 결사단과 손을 잡아 왕자의 쪽에 섰고, 켈베로스는 느닷없이 철십자에게 선전 포고를 건 상황.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있었고, 그녀의 감이 계속해서 반응을 보내 왔다.“전선을 잠시 뒤로 물려. 확인해 볼게 있다.”

카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우우우웅!

대륙을 가로지르던 비행선이 정거장에 도착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동부 지역 누이나의 대도시.

6대 길드인 여명 길드의 영지이기도 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선으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는 도시라 이 곳을 찾은 유저들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르르 빠져나간 사람들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정거장에 내린 에일.

퀸즈 블론드에서 여명의 길드원을 붙잡은 뒤, 곧장 이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느닷없는 발걸음이기도 한 데다가, 여명의 영지에 들어온 위험한 짓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이곳까지 비싼 돈을 들여가며 비행선을 타고 온 것은 모두 이유가 있어서였다.

‘다행히 늦을 일은 없겠어.’

시간을 확인한 에일은 서둘러 정거장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영지 내에서 결사단의 활동을 억제해 달라는 나이트메어와의 거래를 생각하면, 여명의 영지에 온 것은 분명 불필요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래를 트고 있는 곳은 나이트메어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앞서 맺었던 철십자와의 거래.

놀랍게도 그가 시르에게서 성물 파편을 건네받을 때 받아들였던 조건은 다름 아닌 나이트메어와 여명, 두 길드 간의 전쟁을 멈추는 것이었다.

‘나이트메어와의 거래는 어디까지나 고대 정령이 소환되는 일 없게 막아 달라는 거였으니까. 이번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 필요는 없단 말이지.’

처음엔 철십자에서 왜 그런 조건을 내민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점점 워로드의 판도가 움직이고, 몇 시간 전 시르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자,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뭔가 알고 있는 눈치로 보이긴 했지만… 설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그가 철십자에게서 모든 사실을 듣게 된 것은 퀸즈 블론드에서 길드원을 잡은 뒤, 정보 공유 약속에 따라 정보를 공유했을 때였다.

그 이후, 철십자에선 에일이 향해야 할 지점을 알려 줬다.

생각보다 촉박한 시간에 지체 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한 옥상.

그곳에 자리를 잡은 에일은 한껏 기척을 죽였고, 인적 드문 거리를 주시했다.

미리 전달받았던 접선 장소와 시간.

정확히 그 시간대가 되자 한 남자가 사람들 틈에서 나타났다.

눌러쓴 후드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

퀸즈 블론드에서 잡았던 이와 똑같은 느낌의 수상한 자였고, 그는 주위를 잠시 살피더니 폐쇄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케이…….’

에일은 위에서 그가 출입하는 모습을 담아, 증거 사진들을 찍어 뒀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타난 것은 로브를 입은 정체불명의 여성.

망토에 가려지긴 했으나 다리를 움직일 때 그 사이로 로브에 그려진 초승달 문양이 살짝 보였다.

결사단의 이단마법사가 확실했다.

그녀도 남자가 들어섰던 건물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고, 문이 닫히자마자 옥상에 있던 에일이 움직였다.

콰앙!

문을 박차며 안으로 들이닥친 에일.

깜짝 놀란 남녀가 고개를 돌렸고, 에일은 그들이 반응하기도 전 장검을 뻗었다.

푸욱!

“커흑……!”

마법사의 복부를 꿰뚫은 장검.

방심했을 두 명의 상대 중 먼저 노려야 하는 쪽은 역시나 체력과 방어력이 약한 마법사 쪽이었다.

“여기서 또 만나네.”

“여긴 어떻게…….”

후드가 벗겨지고 가려져 있던 그녀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배를 찔린 마법사의 정체는 결사단의 뮤트.

“이번에도 분신이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콰득!

에일이 찔러넣은 검을 한 차례 비틀었다.

지금까지의 모습과 다르게, 복부를 찔린 그녀의 표정은 처음으로 당혹감에 물들어 있었다.

생명력이 다한 뮤트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고, 형체를 잃고 흩어졌다.

“하나는 정리.”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에일을 알아본 남자가 말했다.

빛의 교단은 분명 나이트메어에게서 의뢰를 받고, 그들의 영지 안에서 대대적인 추적을 진행 중이었다.

허나 여명의 영지 안에 그가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했던 바.

“너도 얼굴 좀 까 줘야겠어!”

발을 박찬 에일이 장검에 불꽃을 먹였다.

남자는 급히 단검을 꺼내 들며 뒤로 물러났고, 에일은 전방에 불의 세례 스킬을 날렸다.

화르르륵!

폐건물 한쪽을 집어삼킨 성화의 세례.

요란한 불길에 폭음과 열기가 후끈 피어올랐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 요란한 공격을 하다니.

비교적 인적 없는 거리라고는 해도 이곳은 대도시의 거리 중 하나였고, 이대로는 경비병들이 몰려올지도 몰랐다.

비밀리에 움직이던 그의 입장에선 바깥의 시선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조급해진 남자는 서둘러 그를 정리하고 따돌리려 했고, 에일은 정확히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남자가 공격적으로 스킬들을 운용하며 몰아붙였지만 번번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동작이 커질 때마다, 공격을 받아 낸 에일이 빈틈을 노리며 더욱 위협적으로 받아쳤다.

빠악!“크윽…….”

몰아붙이려던 남자는 오히려 주먹에 얻어맞아 주춤주춤 밀려났다.

분명 레벨은 그가 30 이상이 더 높았다.

하나 전체적인 움직임은 오히려 에일이 남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폐건물의 불길 속.

자존심이 상한 남자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접근기를 발동하며 발을 뻗었다.

후웅!

그때 역극 스킬을 사용한 에일이 그의 등 뒤로 돌았고, 장검을 내려찍으며 일섬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런 건 안 통해!’

즉시 뒤를 돌아선 남자는 그의 공격 경로를 단검으로 막아섰다.

많은 유저들에게 잘 알려진 ‘역극’은 희귀 스킬 중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기술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파훼법도 많이 연구된 상태였다.

준랭커 만큼이나 유저의 수준이 올라가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쉽게 당해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변칙.

파앗!

발동 직전의 일섬 스킬이 캔슬되었다.

내려찍던 장검은 오히려 힘을 잃었고, 그때 에일이 한 차례 더 안쪽으로 파고들며 체술을 먹였다.

빠악!

어깨에 맞은 남자의 고개가 젖혀졌고, 스턴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번 사용된 일섬이 뻗어져 나갔다.

콰아아아!

뻗어져 나가는 검격과 성화.

버티려던 남자를 뒤로 맥없이 튕겨 내며 그의 체력을 잡아먹었다.

“허억…….”

남자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튕겨져 나가며 뒤편의 불길 속에 빠져 버릴 뻔한 그였지만, 겨우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비를 가린 망토 한쪽이 찢어졌고, 가려 놓았던 문양이 훤히 드러났다.

“이, 이런……!”

검은색 견갑 위에 그려진 선명한 뱀의 문양.

나이트메어 길드의 상징이었다.

“역시, 냄새가 나더라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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