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늪지대의 공포
엘트리스를 떠난 에일은 지체 없이 남부 늪지대로 향했다.
그러곤 웨이 스톤과 그 안에 기록된 좌표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성물을 추적해 나갔다.
최소 며칠 이상의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늪지를 헤집고 다니며 에일은 20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아득하게만 보였던 레벨.
유저들 사이에서 200을 넘어섰다는 건 상징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후발주자인 에일에게도 아주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당면한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철십자의 진출 덕에 비교적 수월했던 북부에 비해 다른 오지들은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는 것.
“도저히 못 찾겠어!”
고개를 치켜든 에일이 소리쳤다.
국경을 너머의 이 넓은 늪지대 속에서 웨이 스톤을 찾아다니는 것만 해도 고단한 일이었다.
힘겹게 웨이 스톤을 찾아냈다 해도 그게 맞는 좌표인지는 직접 찾아가기 전까진 알 수가 없었다.
‘뭣보다 좌표에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단 말이야.’
원래 웨이 스톤의 좌표는 성물이 있을 만한 의심 지역들을 가리켰다.
실제로 성물이 없어 빗나간 좌표라 할지라도, 최소한 다른 시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늪지에 들어선 이후로 좌표로 막상 찾아가면 아무것도 없을 때가 아주 많았다.
단지 울창한 밀림이나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을 뿐.
북부나 서부에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유독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제로 에일도 여러 차례 당한 일인 터라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단서가 잡히긴커녕 완전히 허탕 치는 일들이 더 많아. 거기다 가장 힘든 건 이 끔찍한 환경…….’
그간 들어왔던 악명대로 남부의 늪지대는 혹독한 북부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텁텁하고 축축한 공기, 비위생적인 환경, 귀찮게 구는 벌레들과 바글거리는 몬스터들이 끝없이 그를 괴롭혔다.
북부엔 하나하나가 강력한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었다면, 여기는 밑도 끝도 없이 잡몹들이 밀어닥치는 수준이었다.
물론 중간에 나타나는 필드 보스 몬스터들은 국경 내의 필드 보스들보다도 훨씬 강해 웬만하면 피해 가야 했다.
거기다 신경 써야 할 건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틈틈이 대지 교단의 추적자들을 보내오는 프레이아도 문제였다.
그때 이후로 권속을 보내오지는 않았지만, 지상의 신도들이라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목숨까지 위협받으면서 열악한 늪지를 헤집고 다니자니 신경과민 증세가 나타날 지경이었다.
이곳에 파티원들과 함께 들어온 다른 유저들도 미칠 것 같다며, 얼마 못 버티고 금세 나가 버리곤 했는데 그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나마 쌓여 가는 짜증을 풀 방법은 존재했다.
“여긴가…….”
웨이 스톤이 가리키는 좌표를 찾아온 에일이 자리에 멈춰 섰다.
이번엔 최소한 허허벌판만이 있는 허탕은 아니었다.
울창한 늪지 속 커다란 유적지의 입구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있군.’
기척을 느낀 에일이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극한의 환경인 오지에서 같은 유저를 마주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성물의 등장 탓에 찾는 이가 늘었다 해도, 워낙 넓은 데다가 쉽게 생존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웨이 스톤의 좌표엔 제법 적잖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최소한 성물을 노리고 온 유저라면 모두 좌표 쪽에 모이게 되어 있었으니까.
당장 이곳만 해도 유저들이 있었다.
유적지 안에서 빠져나온 5인 파티가 에일을 마주했다.
“저기 사람…….”
“음? 혼자 여기 오신 겁니까? 아니면 동료가 모두 당했다거나…….”
가장 앞에 있던 남자가 안심하라는 듯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 뒤에 있던 파티원 두셋이 번질거리는 눈빛을 드러냈다.
본인의 표정을 자각하고 관리를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뻔한 패턴에 입가가 비틀려진 에일이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쪽 소속이 어디죠?”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대지 교단의 신도이니까요.”
“아…….”
남자의 말을 들은 에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지 교단, 즉 프레이아의 신도들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성물을 찾아 나섰을 뿐, 프레이아의 명을 받아 그를 노리고 온 추적자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남부 늪지대에 들어선 뒤, 대지 교단의 신도들에게 줄곧 시달려 온 만큼 그냥 지나쳐 줄 이유도 없었다.
“이단이네.”
스릉!
에일이 주저 없이 검을 빼들었다.
“이, 이단……?”
“해 보자는 거냐?”
[이단이 지정되었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오른 이단의 낙인이 빛났다.
“모조리 화형이다!”
화르르륵!
에일의 장검에 성화가 타올랐다.
“미친 자식!”
“우릴 우습게 보는 거냐!”
분개한 파티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마침 물자가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설마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로 덤벼들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자, 잠깐만 저 사람……!”
에일의 정체에 대해 알아차린 여성이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다가선 에일이 역극을 사용해 앞선 탱커를 따돌리며 후방에 있던 그녀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귀찮아질 수 있으니 힐러부터 제거한 선택.
“이 자식이 어느 틈에!”
“크아악!”
그다음은 활을 들고 있던 궁수였다.
불을 머금은 장검이 그의 옆구리를 깊숙이 찔렀고, 궁수는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다.
이곳 늪지를 돌아다닐 정도라면 결코 만만한 유저는 아니라는 것.
하지만 에일은 그를 가볍게 상회할 정도로 엄청난 움직임을 보였다.
광기와 총애도 덕에 기본 스탯 자체도 우월한 데다가, 속도 증가 패시브에 접근 시 추가 보너스를 주는 스킬까지 있으니, 민첩에 투자한 고레벨의 궁수라도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제, 젠장! 왜 안 꺼지는 거야!”
온몸에 불길이 번진 궁수가 기겁하며 몸부림쳤다.
바로 옆에 있던 물가로 뛰어든 그였지만, 물속에서도 몸에 붙은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물에 쉽게 꺼지는 일반적인 불이 아닌 성화의 특징.
거기다 에일이 이번에 200레벨을 달성하면서 얻은 20번째 습득 스킬의 효과 덕이었다.
[성화 강화(유일)]
이단심판관 전용 스킬이자 유일급 스킬.
말 그대로 성화를 강화시켜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고, 더 많은 데미지와 길어진 지속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에일에게 공격 받지 않은 다른 파티원에게도, 조금씩 공포와 위축 스택이 쌓이기 시작했다.
[피투성이 광신도(영웅)]
적을 베거나 쓰러뜨릴수록 주변의 모든 적들에게 위축과 공포 효과를 부여하는 패시브.
단순히 상처를 입히는 건 비교적 효과가 미미했으나, 큰 출혈이 발생하거나 빈사 상태로 만들어 쓰러뜨리는 것은 효과가 컸다.
물론 아예 숨통을 끊는 게 제일이었지만, 상대가 모두 이단으로 지정된 만큼 그건 곤란했다.
콰악!
“커억…….”
복부를 관통당한 남자가 바닥에 스르륵 미끄러졌다.
부드럽게 장검을 뽑아 낸 에일은 시선을 반대로 돌렸다.
붉은 핏자국이 번진 뺨과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장검.
에일의 번질거리는 눈빛이 홀로 남은 남성에게로 향했다.
넷이나 되는 파티원들이 쓰러지며 공포와 위축 상태 이상이 쌓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그것 이상으로 에일이 보여준 가공할 만한 솜씨에 압도된 상태였다.
“으… 으아아악!”
겁에 질린 남자가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일은 그를 뒤쫓으려 하지도 않고 검을 슬쩍 내렸다.
촤르르륵!
“컥……! 이, 이게 뭐야!”
갑자기 바닥에서 솟아난 8갈래의 쇠사슬들이 달아나던 남자를 칭칭 감았다.
발동 속도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속박당한 남자는 꼼짝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신성의 사슬(영웅)]
19번째로 채워 넣은 에일의 액티브 스킬.
신성 마법으로 분류되어 ‘신앙심’ 스탯의 영향을 받는 스킬이었다.
가장 높은 스탯의 영향을 받는 만큼 강도와 지속력이 훌륭했다.
“그럼…….”
그에게 다가간 에일은 속박 효과가 풀리기 전에 검을 쑤욱 찔러 넣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빈사 상태로 널브러지게 되었다.
형벌 집행 스킬로 처형 준비를 마친 에일은 신도들을 질질 끌고 갔다.
“자… 잠깐!”
“살려 줘!”
승부가 결판이 난 뒤, 체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욕설을 하거나 애원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에일에게 자비는 없었다.
에일은 모조리 그들의 목을 나무 위에 매달았다.
그러곤 목이 조여 발버둥치는 신도들에게 성화를 머금은 장검을 가져다 대 불을 붙였다.
화르르륵!
“음, 비주얼이 제법 괜찮은걸.”
교수형과 화형을 합치니 좋은 그림이 나왔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에일은 시선을 돌렸다.
이제 사슬에 묶였던 한 명만이 남아 있었고, 에일은 그에게 다가가 목에 밧줄을 걸어 주었다.
그러곤 나무에 밧줄을 고정시킨 뒤, 임의로 만든 심판대 위에 세웠다.
위태로운 발밑의 통을 걷어차면 바로 남자의 목이 매달리도록 만든 구조였다.
거래를 할 시간이었다.
“웨이 스톤은 얼마나 찾아냈지?”
“그… 그건 왜 물어?”
“솔직히 말해. 너는 놓아 줄 테니까.”
에일이 들이미는 새하얀 불꽃이 코앞에서 일렁였다.
후끈한 기운에 남자의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꿀꺽 침을 삼킨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발견했던 웨이 스톤들, 그리고 직접 찾아가 허탕을 쳤던 좌표들을 모두 실토해 내며 정보를 건넸다.
“말만으로는 부족해. 지도나 표시해 둔 쪽지는 없어?”“여, 여기…….”
“음, 좋아.”
남자가 힘겹게 떨어뜨린 지도에 에일은 만족했다.
다른 유저들이 지닌 이런 정보들이 모여, 발견하기까지의 시간을 훨씬 단축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 이제 놓아주는 거지?”
“그래, 보내 줄게.”
고개를 끄덕인 에일은 통을 발로 걷어찼다.
터엉!
“크하아악!”
목을 매달린 남자가 격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에일을 바라봤다.
“여신의 곁으로 말이야.”
화르르륵!
에일은 그에게 성화를 먹이며 불사질렀고,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형벌에 적합한 집행으로 2배의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후, 상쾌해.”
이렇게 마주치는 이단들을 불태워 버릴 때마다 늪지에서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에일은 고개를 저었다.
‘음… 아니지, 어디까지나 이건 영상을 건지기 위해서니까.’
에일의 컨셉은 여전히 워튜브에서 큰 수요가 있었다.
그의 행각을 따라하는 모조품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난다 한들, 원조인 데다가 뛰어난 실력까지 갖춘 에일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이런 짓을 벌이는 건 모두 전략적인 선택일 뿐이라는 것.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여기뿐만이 아니라, 늪지대의 온갖 곳에 시체가 가득하도록 흔적을 남겨둔 에일이었다.
완전히 타 버린 시체가 대롱대롱 흔들렸고, 에일은 잠시 두 손을 모으고 짤막한 기도를 올렸다.
“하늘에선 빛의 교단으로 개종하길…….”
[‘빛의 심판자, 루’가 벅찬 감정을 느끼며 눈가를 훔칩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