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62화 (162/227)

162화 북부의 주인 (6)

무덤 속 사방에서 몰려드는 언데드.

개체 수가 상당히 많은 데다가, 중간중간 유저였던 천상 교단의 마법사들까지 되살아나 섞여 있었다.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조합.

하지만 크게 어렵지 않았다.

언데드를 상대하는 건 그에게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혼자가 아니라 철십자의 길드원과 네슈아와 함께였고, 에일은 성화를 적극 사용해 놈들을 날려 버렸다.

하나 가장 문제인 쪽은 프레이아의 권속.

두 마리나 나타난 그녀의 ‘수확자’는 격이 달랐다.

권속 중에선 가장 낮은 위치의 하위 권속이라 해도, 지금의 에일이 상대하기엔 터무니없이 벅찬 상대였다.

콰아아앙!

시르에게 튕겨져 나가, 벽 속에 틀어박힌 수확자.

사방으로 균열이 퍼진 한쪽 벽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쿠구궁!

피어나는 먼지와 함께 일단락된 시르의 전투.

‘역시 대단하네…….’

설마 단신으로 권속 둘을 쓰러뜨릴 줄이야.

워로드 랭킹 2위의 자리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선을 돌린 에일은 복도에서 몰려드는 언데드들에게 영웅급 스킬인 불의 세례를 날렸다.

전방으로 쏟아진 성화에 산화되어 으스러지는 시체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만이 남았고, 더 이상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후… 이번은 어떻게든 마무리된 건가.”

방 안이 잠잠해지자 에일이 한숨을 돌렸다.

불타고 절단 난 시체들로 바닥이 지저분하게 어질러졌지만, 최소한 더 이상 움직이는 녀석들은 없었다.

‘느닷없이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이번 프레이아의 행동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었다.

여기 있는 유저들을 몰살했다 하더라도, 주변에 그녀의 신도가 없으니 성물 파편을 자기 쪽으로 회수할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에일을 응징하기 위해서 나타난 신격의 이벤트라는 것.

가장 큰 세력과 부유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프레이아이기에 가능한 개입이었다.

웬만한 신격이었다면 투자할 영향력이 아까워 유저 한 명을 상대로 이런 행동은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뭐… 난데없이 생겨난 몬스터 웨이브 덕분에 레벨도 올랐지만…….’

[‘생명의 어머니’가 가증스러운 사기꾼들에게 증오를 표합니다!]

[‘빛의 심판자, 루’가 한심한 시선을 보냅니다.]

격하게 서로를 비방하고 있는 두 여신들.

특히 영향력을 투자한 권속의 개입으로도 해결되지 않자, 프레이아는 에일과 루를 향해 저주를 퍼부어 댔다.

[‘화산의 지배자’가 웃음을 터트립니다.]

[‘은밀한 탐구자’가 권속을 참한 필멸자에게 깊은 흥미를 느낍니다.]

물론 다른 신격들은 따분함을 달래 줄 재미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팝콘을 튀길 뿐이었다.

특히 은밀한 탐구자, 레녹스는 권속 둘을 벤 시르의 활약에 꽤나 감명을 받은 듯했다.

“권속이라… 그렇다면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들도 신격의 개입 탓이었겠지? 뭔가 밉보일 일이 있었나 보군.”

다가온 시르가 말했다.

전투하며 상대의 상태창을 확인한 그녀는 수확자가 일반 몬스터와 다르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신격의 권속만이 가지는 회색빛의 이름.

그 정도 정보쯤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음, 어쩌다 보니…….”

“경쟁 체제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면 앞으로 활동하는 데에도 지장이 생기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럴 일은 없어.”

에일이 단호히 확언했다.

아무리 영향력이 많은 신격이라 해도, 이처럼 직접적인 개입을 무한정 가할 수는 없었다.

프레이아도 순간 이성을 잃고 홧김에 지른 행동이라 그렇지, 지금 같은 개입이 정상적인 케이스는 아니었다.

다른 사건이 엮여 있지도 않아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개입은 그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지 교단의 사건과 조금이라도 맞닿게 된다면, 어떻게든 개입해서 날 잡아먹으려 하겠지. 빨리 움직이는 편이 낫겠어.’

역시나 앞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무기를 집어넣은 에일은 무덤을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아이템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지금으로썬 철십자로부터 어렵사리 얻어 낸 이 성물 파편을 무사히 회수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에일이 떠날 준비를 하자, 한숨을 푹 내쉰 네슈아도 그를 따라 나설 준비를 했다.

다음 목적지가 서로 같지는 않았지만, 북부를 빠져나가기까지는 함께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시르가 그를 휙 잡아끌었다.

“잠깐. 네슈아, 너한테도 따로 부탁할 일이 있는데.”

「내가 그걸 왜 들어줘야 하는데?」

“성물의 효과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파편을 모두 모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이야.”

그녀가 말하자, 네슈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

[고대 성물의 네 번째 파편을 회수하였습니다!]

[성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핵심 파편 중 하나를 모았습니다.]

[신격, ‘빛의 심판자’가 막대한 양의 영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여신의 총애 +9.31%(현재 134.85%).]

[빛의 교단 공헌도 +40,000]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에일은 혹독한 북부를 다시 넘어 무사히 대륙 안쪽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에스마이어 지하에 위치한 엘트리스의 신전에 도착한 뒤, 핵심 파편을 무사히 회수해 여신의 동상 앞에 놓았다.

그 순간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보상이 주어졌다.

‘확실히 보통 물건은 아닌 게 맞아.’

그에게 주어진 경험치만 따져도, 무려 5레벨이 한 번에 오르게 되었다.

임무를 한 번 완수한 것으로 이렇게 많은 경험치를 받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공헌도나 총애도, 여신의 영향력 등의 다른 보상들까지도 그동안 받아 오던 그 어떤 퀘스트와도 격을 달리했다.

북부에서의 고생이 한번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공헌도 ‘90,000’포인트를 빛의 교단에 헌금하였습니다.]

[신앙심이 ‘180’만큼 상승합니다.]

에일은 이번 성물 회수로 얻은 공헌도를 사용해 신앙심 스탯 올렸다.

그간 쌓아 온 공헌도까지 합쳐 무려 180가량의 스탯을 한 번에 올릴 수 있었다.

물론 그 탓에 모아 온 공헌도를 거의 모두 써 버리긴 했지만, 약간의 여유분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형제님,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내셨군요.”

그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집행관 아일린이 말했다.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온 그녀는 에일의 위업을 아주 자랑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성물은 정당한 신의 상징.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물건을 벌써 세 번째나 회수하셨으니 여신께서도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맞습니다. 대륙 전역에 숨겨진 파편들은 아직도 많이 남았지요. 다른 이교도들의 움직임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고, 성물을 노리는 외부 세력들도 호시탐탐 대륙 전역을 뒤지고 있습니다.”

이번 성물에 대한 건은 알지 못했던 유저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중이었다.

그나마 대륙 내에 있는 성물 파편들은 빛의 교단의 유저와 NPC들도 대거 나서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성물의 나머지 핵심 파편이 있을 오지 지역이었다.

이번에 발견된 북부를 제외하면 서부와 남부 그리고 동부.

이 세 곳에도 좌표가 새겨진 웨이 스톤이 일제히 나타났다.

그를 보아 성물 파편이 숨겨져 있는 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상황.

중요한 건수인 만큼 이번에도 에일이 직접 나서야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북부야 이미 6대 길드인 철십자가 개척에 나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오지들은 정말 아예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었다.

소수의 고레벨 탐험가 유저들을 제외하면 발도 들이지 않는 곳인 만큼, 어떤 지역에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숨겨진 성물에 대한 정보도 아직까진 오리무중임은 당연한 일.

그나마 시간이 지나며 각종 정보 사이트에 가장 단서가 많이 알려진 곳을 고르자면 점찍어 둔 한 곳.

“저는 남부로 가겠습니다.”

* * *

그리핀 길드.

왕국 내 북동부 지역을 중점으로 거대한 세력을 떨치고 있는 6대 길드였다.

세계 랭킹 6위의 정상급 랭커 레윈이 길드장을 맡고 있으며, 특유의 화려한 의상과 더불어 모든 게임에 걸친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다수 소속되어 있어 큰 인기를 지니고 있었다.

특정 게임에서부터 이어져 온 명문 길드가 아니라, 워로드에서 처음으로 시작해 몸집을 급속도로 불린 길드였기에 가능한 일.

그들도 6대 길드의 일원이었고, 이전에 에일에게 월드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전해 받았다.

감히 그들 길드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다른 세력으로 대체하려 한 만큼, 결사단을 비롯한 왕자 측 세력을 추적해 모조리 잡아내는 중이었다.

고작 외부에서 끌어들인 세력 정도로 6대 길드를 감당할 수는 없는 일.

그 탓에 그리핀 길드의 영지 안에서도 결사단은 기를 못 쓰고 음모를 모조리 저지당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최근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놈들의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그것도 유독 그리핀 쪽 지역만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그리핀의 산하 길드가 맡고 있는 추적대들이 대거 나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이 동굴인가…….”

“오염된 흔적을 쫓아 들어온 거니 확실하겠지. 하여간 쥐새끼들이 귀찮게만 한다니까.”

두 파티로 이루어진 추적대원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바깥에서 보기엔 단순히 어두운 동굴이었지만, 안쪽에 들어서자 수상쩍은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아, 찾았다!”

“쓸어버려!”

그들의 눈에 띈 것은 로브를 두르고 있는 결사단원들.

뮤트를 비롯한 이단마법사들이 또 사령석을 가운데 두고 수상한 짓을 벌이고 있었고, 그들은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려 무기를 뽑았다.

“벌써 여길 찾아내다니, 빠르기도 하지.”

결사단의 뮤트가 미소를 띠며 등을 돌렸다.

비록 아래를 구성하고 있는 산하 길드라고는 하나, 그들은 무려 6대 길드인 그리핀의 소속이었다.

어중간한 길드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지금의 전력 차 역시 추적대의 절대적인 우위였다.

하지만 이곳엔 결사단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아앙!

갑자기 나타난 가면인들이 추적대를 막아서며 끼어들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검은 가면을 쓴 자들.

“다른 놈들이 숨어 있었나?”

“그래 봤자 결과는 똑같아!”

길드원들의 무기가 위협적으로 휘둘러졌고, 난입한 가면인과 추적대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고,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며 피를 적셨다.

“말도 안 돼… 커헉!”

하나 놀랍게도 나가떨어지는 건 가면인들이 아닌, 그리핀의 산하 길드원들이었다.

오히려 추적대와 맞닥뜨린 상대는 단 한 명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

마치 6대 길드의 길드원을 상대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이 자식들 NPC가 아니야… 유저다! 그것도 최소 준랭커급……!”

콰득!

마지막 길드원의 시야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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