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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60화 (160/227)

160화 북부의 주인 (4)

“음, 따듯해…….”

에일이 노곤한 표정으로 양손을 비볐다.

사방에서 타오르는 화형대와 시체들.

그 한가운데에서 불을 쬐는 중이었고, 이 추운 북부에서 이러고 있자니 행복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길목에 함정을 파두고 덤벼들었던 천상 교단의 마법사들은 모두 이단다운 최후를 맞이한 뒤였다.

[‘은밀한 탐구자’가 당신의 전투에 호평을 남깁니다.]

[공용 교단 공헌도 +150]

‘대체…….’

그의 앞에 떠오른 레녹스의 메시지.

에일은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신도들을 헤쳐 크게 분노할 거라 생각했던 처음 예상과는 달리 레녹스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여 줬다.

자기 신도들이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도 모자라 에일에게 소량의 후원까지 넣는 걸 보아, 루와는 또다른 의미로 이상한 성격의 신격 같았다.

‘무슨 꿍꿍이인 건지 원… 신도가 죽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는 건가?’

당장 에일로서는 이렇다 할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장작들의 지원 덕에 떨어졌던 체온을 다시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고, 다시 출발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조금 전 전투를 벌였던 장소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움 중에도 그렇게 연락을 넣더니… 언제 올 생각인 거지.’

그와 전투를 벌이던 레녹스의 신도들은 주변에 있던 동료에게 연락을 바삐 넣었었다.

도움을 요청하던 그들의 말을 보아 증원이 올 것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기에 에일은 쓰러뜨린 신도들을 끌고,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 온 뒤에야 화형을 집행했다.

하지만 제압한 신도들을 모조리 불에 태워, 떨어졌던 체온을 회복할 동안에도 증원이 온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좀 더 마주치길 바랬던 에일의 바램이 엇나간 셈.

콰아아아앙!

바로 그때, 마침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서 한차례 폭발이 일어나며 요란한 폭음이 들려왔다.

이는 누군가 찾아왔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에일은 쓰러뜨린 레녹스의 신도들에게서 설치형 아이템을 몇 개 빼앗을 수 있었고, 그중 ‘폭렬 함정 마법진’을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에 설치해 뒀다.

들려오는 폭음으로 보아 마법진이 발동된 것이 확실했다.

“좋았어.”

발을 박찬 에일은 곧장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렇게 소리가 생겨난 곳에 다다르자, 그는 이미 죽어버린 동료들을 찾아나서 온 찬상 교단의 신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숫자는 여섯… 둘은 레벨이 꽤 높아 보이고, 그중 한 명은 소환의 팬던트를 차고 있는 보아 소환사 계열인가 보군. 저 녀석부터 처리해야겠어.’

당황한 신도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에일은 바삐 눈을 굴리며 상대의 전력을 파악했다.

대략적인 레벨과 직업, 장비들을 파악하고, 혹시나 천상 교단의 네임드 플레이어가 있는지조차 모두 시선 한 번에 확인되었다.

“우리를 공격한 게 네놈이냐?”

“말은 똑바로 해야지. 함정까지 파둔 게 누군데.”

에일이 황당한 표정을 하며 받아쳤다.

방금 폭발한 마법진으로 인해 절반 이상이 적잖은 체력 피해를 입은 걸로 보이지만, 애초에 먼저 공격을 해온 건 그들 쪽이었다.

“음, 듣고 보니 그렇군.”

예상 밖의 빠른 인정.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에일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동료들의 원수라도 갚으러 온 거냐?”

“아니, 딱히. 그쪽에 유감은 없다. 마침 물자가 부족하던 참이었거든. 입이 줄었으니 더 오래 버틸 수 있겠지.”

“하……?”

전투를 준비하려던 에일의 손에 힘이 주르륵 빠졌다.

천상 교단의 신도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고 그간 들어오기야 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럼 길목에 함정은 왜 파둔 거지?”“그야 다른 유저들을 사냥하기 위해서지.”

“유저를 사냥한다고……?”

워로드의 인벤토리에 챙길 수 있는 식량은 한정되어 있었고, 이런 험지에서의 물자 부족은 필연적이었다.

그 탓에 서로 생존을 위해 유저들을 습격하기도 했다.

이런 오지에서 유저는 무엇보다도 훌륭한 물자 공급원이었으니까.

“그러는 너는 약탈을 해오지 않은 건가? 하다못해 여기까지 왔다면 물자를 노린 습격 정도는 몇 번이나 받아왔을 텐데.”

“무슨 소리야? 지금까진 다른 유저하고 마주친 적이 없는데.”

“뭐……? 어지간히 운이 좋았나 보군.”

“운이 좋다니?”

“우리만 해도 북부에 들어선 뒤 벌써 스무 번이 넘게 유저들과 충돌했어. 소문을 듣고 온갖 유저들이 오지로 몰려든 탓이지. 대부분은 이 가혹한 환경에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적지 않은 녀석들이 이 땅에 들어와 있다.”

시르에게 전해 들었던 이야기나, 에일의 예상보다도 큰 규모의 유저 숫자.

하지만 신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철십자 길드에선 북부에 들어선 유저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 중이야. 우호 관계에 있던 녀석들도 전원 추방이고, 대부분은 보이는 대로 공격당해서 죽어나가는 중이지.”

“뭐? 그럴 리가…….”

그의 말에 에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동안 다른 유저들과는 마주한 적이 없다고 해도, 철십자의 길드원들만큼은 직접 마주했다.

심지어 북부 도시에 들어가 길드장인 시르까지 직접 만났던 그로서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믿건 안 믿건 상관없어. 어쨌든 넌 여기서 끝이니까. 네가 물자들을 모두 챙긴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

츠츠츠츳!

신도들이 일제히 캐스팅을 시작했다.

“나도 이단을 마주한 이상 못 본 척해 줄 순 없겠어. 뭣보다 이야기도 좀 더 자세히 들어야겠고.”

장검을 치켜든 에일이 입가를 비틀었다.

만나자마자 이단의 낙인을 이미 찍어 놓은 상황.

분명 천상교단의 마법사는 총애도의 보조를 받아 굉장히 위력적인 마법을 구사하기로 유명했다.

이래저래 보조가 필요한 마법사가 워로드에서 길드까지 포기하고 얻은 메리트니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에일의 좋은 점심일 뿐.

파앗!

그는 소중한 물자 공급원들을 향해 발을 뻗었다.

* * *

“지도로 봤을 땐 이 근처인데…….”

미간을 좁힌 에일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덤벼든 마법사들을 제압하고 곧바로 다음 거점을 찾아 나선 그는 이제 성물 파편이 있을 후보군을 다섯 곳까지 좁힌 상태였다.

‘이 정도로 쓸 만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천상 교단은 지식의 신인 레녹스를 따르는 교단답게, 성물에 관해서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북부의 성물 파편 추적에 관해서 크게 앞서나가는 중이었다.

웨이 스톤에서 나온 수많은 좌표 사이에 남은 후보지가 불과 5개도 안 될 정도.

다만 에일이 그를 모두 알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빈사 상태로 붙잡은 여섯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먼저 정보를 털어놓는 쪽만 살려주겠다 하니 의리 없는 한 명이 술술 털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역시 마지막에 방한용 물품과 식량을 모조리 뜯어낸 터라 얼마 못 가 죽었겠지만.

덕분에 성물 추적에 크게 앞서나갈 수 있게 되었다.

“찾았다……!”

눈 속에 파묻힌 거대한 무덤의 입구.

희미한 발자국이 찍힌 걸 보아 이미 누군가 안으로 향한 뒤였고, 에일은 지체할 것 없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다섯 후보지 중 하나인 오래된 지하 무덤.

무척이나 낡은 던전의 구조를 가진 내부는 사납게 생긴 좀비 몬스터와 유저들의 시체가 한데 뒤엉켜 있었다.

‘전투 중에 서로 당한 건가?’

아무래도 이미 천상 교단 쪽이 조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가 나온 것 같았다.

이미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초조함이 든 에일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쪽 방으로 들어서자 또다시 쓰러져 있는 몬스터와 신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쓰러져 있어……? 이 정도로 어려운 던전 같지는 않은데…….’

에일은 묘한 의구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북부의 혹독한 환경을 뚫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만한 유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구간마다 한두 명씩은 꼭 쓰러져 있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안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신도들의 시체는 늘어났고, 의문은 더해져만 갔다.

“커헉……!”

무덤의 끝까지 깊게 들어서자, 들려오는 짤막한 비명.

에일은 복도를 뛰쳐가 무덤의 마지막 방으로 들어섰다.

마지막 방에는 성물이 있을 만한 고풍스러운 보관대가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위에 놓인 보관함은 이미 활짝 열린 상태였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방금 쓰러져 바닥을 뒹군 하나의 시체.

그리고 보관대 옆에 홀로 서 있는 잿빛 머리의 남성.

“네슈아?”

「이번엔 내 쪽이 빨랐네」

피식 웃은 네슈아가 한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의 손에 쥐어진 성물 파편.

에일보다도 무덤에 먼저 들어선 네슈아가 성물 파편을 차지한 것이다.

‘이런, 곤란한데…….’

먼 북부에서 마주한 예상 밖의 얼굴임에도 반가움부터 느낄 순 없었다.

스스로 상당히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도 선수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것도 북부에 있던 건, 성물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단 네 개의 핵심 파편.

이전에 두 개의 파편을 얻었다고는 하나,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큰 건수였다.

“이 자식들이……!”

“성물을 내놔라!”

그때 다른 방에 있던 마법사 두 명이 나타났다.

방 안에 있는 이들을 모두 구워 버릴 작정으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하지만 무기를 빼든 에일과 네슈아가 달려들기도 전, 옆에서 날아든 화살이 그들을 일제히 꿰뚫었다.

“무슨……?”

스릉!

일제히 무기를 뽑으며, 안으로 우르르 들이닥친 철십자의 길드원들.

에일이나 네슈아, 그리고 조금 전 쓰러진 레녹스의 신도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등장이었다.

한두 명도 아닌 여섯 명의 인원.

어떻게 된 일인지 단번에 상황을 파악한 에일의 인상이 구겨졌다.

“말도 안 돼… 미행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북부에선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길드원들 사이에서 나타난 시르.

역시나 철십자는 그동안 계속 에일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그간 북부에서 다른 유저들을 마주치지 않았던 것도 빠른 진행을 위해 근처의 유저들을 적당히 처리해 준 것이었다.

상대는 북부 전용 위장복까지 구비해 둔 데다가, 은신술에 투자한 고레벨의 최상위 유저들이었다.

아무리 에일이라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극한의 환경에선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

시르의 등장에 네슈아도 놀랐는지 자리에 뻣뻣이 굳었다.

성물을 얻은 시점에 느닷없이 랭킹 2위의 정상급 랭커가 나타났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유저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게 정말이었나…….”

“우리가 괜히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오지를 개척한 게 아니거든. 이제 와서 다른 녀석들이 설치게 할 수야 없지. 그리고 네슈아.”

시르가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이름을 알고 있는 걸 보아, 구면인 사이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르는 잿빛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창백해진 네슈아의 얼굴은 무언가 이상했다.

“북부까지 찾아와서 얼굴 한 번 안 비추다니… 서운하네,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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