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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58화 (158/227)

158화 북부의 주인 (2)

북부의 눈 덮인 설산.

한차례 험준한 경사를 지나자,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도시가 있었다.

“북부에 이만한 도시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선 에일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철십자의 요새 도시, 하베나.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석조로 이루어진 구조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를 연상시키는 굉장히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에일이 놀란 것은 도시의 규모였다.

설산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도시의 커다란 크기는 물론, 그 안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 NPC들까지 바쁘게 오가며 일상을 지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상당한 숫자였다.

도저히 사람이 살 환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만 들려왔던 북부에, 이런 규모의 거점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너진 유적지를 재활용했지. 보기엔 칙칙하지만 최소한 얼어 죽을 일은 없으니까.”

철십자의 길드장, 시르가 무심히 말했다.

유적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에일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그녀였다.

백색 망토와 장검, 길게 늘어진 잿빛 머리, 어깨에 털 장식을 두른 철십자 특유의 복장까지.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얼음장같이 차가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왠지 누군가와 닮은 듯한 그녀의 인상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얼굴이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까 묘하게 어디서 본 것 같은 인상이란 말이지.’

에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이 날 듯 안 날 듯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감각이었다.

그렇게 그가 딴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길거리를 빠져나왔다.

시르는 도시 외곽의 다리 위에 멈춰 섰고, 함께 온 길드원들을 물렸다.

후우웅!

다리 위로 찬바람이 불어왔고, 묵묵히 걸음을 옮긴 시르는 난간에 팔을 기댔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에일이 그녀를 뒤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다리의 난간 아래, 가파른 절벽 바깥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드넓은 설원.

오싹한 기분이 들 만큼 멋진 풍경이었지만, 헤쳐 갈 입장에서 생각하면 보기만 해도 막막한 광경이었다.

거리는 물론이거니, 군데군데 숨어 있을 몬스터와 물자 조달까지.

이걸 보고 있자면 아직도 험난한 여정이 한가득해 보였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시르였다.

“성물을 찾으러 왔다 했지? 어때, 저기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겠어?”

“뭔가 바라는 거라도 있는 건가?”

“서로 협조하면 더 편한 길로 갈 수 있다는 거지.”

고개를 돌린 시르의 눈동자가 에일을 바라봤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와의 거래를 제안해 오는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확실한 단서를 잡았던 참이라. 도움은 필요 없겠는데.”

웨이스톤에서 얻은 위치 정보.

에일은 그것이 숨겨진 성물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좌표만 확실하다면, 굳이 철십자와 거래 같은 걸 하지 않더라도 성물을 찾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확실한 단서라… 정말 확신할 수 있겠어?”

“무슨 소리지?”

“네가 말한 단서, 유적지 안에 있던 웨이스톤을 말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북부에서의 일을 우리가 모를 리가. 거기다 웨이스톤은 거기 있던 게 전부가 아니거든.”

시르의 말대로 웨이스톤은 하나가 아니었다.

에일이 발견한 것 외에도 더욱 많은 수가 북부 곳곳에 퍼져 있었고, 심지어 그것들은 모두 제각각 가리키는 좌표가 달랐다.

처음엔 무언가 특별한 장소인 줄만 알았던 철십자도 좌표를 쫓아 여러 차례 허탕을 치게 되었다.

‘이런, 하나가 아니었다니…….’

예상 못 한 상황에 에일의 표정이 난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웨이 스톤이라는 이상한 돌들이 북부에 생겨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정확히는 성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생겼을 때부터였지. 아마 성물과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할 거야.”

“입장이 바뀌어 버렸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이해가 빨라서 좋은데. 성물의 등장이라면 우리 쪽에서도 이미 들은 정보야. 하지만 정작 그 성물에 대해선 자세히는 알려진 바가 없는 게 문제였지. 아마 빛의 교단의 집행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어?”

시르가 슬며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으음, 뭔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걸…….’

그동안 그녀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와는 왠지 많이 다른 인상이었다.

생긴 대로 차가운 여자라는 소문이 한가득이었는데, 막상 마주 대화를 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뭐지? 교단 관계자도 아니고 6대 길드가 신경 쓸 이유는 없을 텐데.”

“보통은 그렇겠지만, 요새 불청객들이 늘어나서 말이지.”

“불청객?”

성물의 등장이 알려진 이후, 고대의 보물을 찾아 나선 건 에일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교단의 신도들은 물론, 도굴꾼, 현상금 사냥꾼, 범죄자 길드, 일부 준대형 길드와 개인 랭커들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는 이들까지도, 북부를 비롯한 각 오지에 상당한 숫자가 몰려들었다.

성물이 가질 막대한 가치에 꼭 교단의 일원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노리게 된 것이다.

에일도 대강은 그런 움직임이 있다곤 들었지만, 규모에 대해선 몰랐던 바.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꽤나 놀랐다.

‘이거 아무래도 조심해야겠는걸…….’

이번 성물 쟁탈전은 교단뿐 아니라 다른 유저들 쪽에도 적잖은 신경을 써야 할 듯했다.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무서운 것이 바로 같은 유저들이었으니까.

“좋아, 알고 있는 건 모두 말하겠어.”

고개를 끄덕인 에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선에서 정보를 모두 전달했다.

그가 북부를 가장 먼저 선택한 것도 혹여 난관에 봉착했을 경우, 6대 길드인 철십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거래 관계로 그만한 대가를 건네야 하긴 했지만.

이 넓은 지역 안에서, 맨땅에 시간을 내버리는 것보다야 뭐든 나았다.

“그러면 15개의 성물 파편을 다 모았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아직 알 수 없어. 아무런 기록도 이야기도 남아 있는 게 없거든.”

“빛의 교단도 모른단 말이지.”

가장 궁금하던 부분에서 막힌 이야기.

시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옛 주신의 성물이라… 그렇다면 아무래도 성물을 모으는 쪽이 유일신이 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거밖에 더 있나?”

그녀가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모든 성물 파편을 먼저 모은 신격이 진정한 유일신으로서 힘을 얻게 된다는 것.

에일도 가장 그럴듯하게 생각하고 있던 가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엔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만약 한쪽이 유일신이 된다면, 자연히 남은 신격들은 모두 거짓 신격이 되거나 소멸될 것이었다.

그러나 워로드의 신격은 기본적으로 불멸의 존재.

세력이 일시적으로 쇠락한다고는 해도, 신격으로서의 지위를 잃거나 소멸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워로드의 일곱 교단은 모두 월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거대 팩션이었다.

혹여 신격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그를 따르는 교단도 자연히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여태 전용 직업을 가진 팩션이 사라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에일이 단호히 말했다.

유저들에게 전용 직업을 부여하는 세력들.

만약 그 세력이 사라지면 한순간에 소속 유저들은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었고, 그런 팩션이 사라지는 경우는 지금까진 한 번도 없었다.

워로드니 어떻게 일이 전개될지 방심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이번 사건으로 그렇게까지 될지는 의문이었다.

각 교단은 사도와 월드 이벤트로 엮이는 최장기 컨텐츠였고, 정말 유일신이 생겨난다면 갖가지 문제들이 얽혀 나올 일이었다.

“확실히 그런 쪽으로는 문제가 있겠네……. 어쨌든 들을 만한 건 모두 들었으니.”

시르가 반듯하게 접힌 쪽지 한 장을 에일에게로 넘겼다.

숫자들이 빼곡히 적힌 종이.

그 안엔 철십자가 북부의 각 웨이스톤에서 얻었던 위치 좌표들이 한가득 적혀 있었다.

[북부 지도의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게다가 북부의 지도 정보까지 획득하였다.

대부분의 지형이 파악되지 않아, 어둡게 가려져 있던 에일의 지도가 밝혀지며 갱신되는 모습.

국경 밖 오지의 지형 정보란, 굉장히 중요한 정보인 만큼 모든 지형을 건네받은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웨이스톤의 좌표를 찾아가는 데까지는 문제없도록 밝혀졌다.

“내가 건넨 정보의 대가치고는 조금 과한데…….”

“미리 빚을 얹어 두는 셈 치지. 뭔지도 모를 녀석들이 수상쩍은 물건을 차지하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

그녀는 성물에 대한 경계를 거두지 않았다.

1차적으로는 교단 간의 이야기라 해도, 유저들의 길드들도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움직임이라면 뭐든 주시해 둬야 했다.

“그리고 이거.”

시르가 아이템을 휙 던졌다.

타악!

에일의 손에 안착한 푸른 돌.

북부의 깊은 지하 광산에서만 나온다는 청화석이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불의 기운이 담겨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체온 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하는 특수 광석.

이걸로 다 해결되었다고 여길 수준은 아니지만, 맨몸으로 다니는 것보단 훨씬 나아질 것이다.

“북부는 거치니까, 조심하는 편이 좋아. 지금까지 걸어 들어온 건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긴 머리를 쓸어 넘긴 시르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 강한 적들과 혹독한 환경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이곳 북부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경 밖 오지들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웨이스톤이 가리킨 좌표들은 모두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왕자의 수작질을 먼저 알려 준 것에 대한 보답도 있으니 괜한 소리는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한테 선수를 뺏기기 전에 어서 가버리지 그래.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그 이상한 종교는 안 퍼트리고 다녔으면 좋겠네.”

[‘빛의 심판자, 루’가 불경한 불신자를 노려봅니다!]

이상한 종교라는 말에 발끈한 루의 메시지.

하지만 북부를 손에 넣고 있는 시르의 입장에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다행히 루로서는 초월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그녀에게 이단의 낙인을 찍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무려 세계 랭킹 2위의 상대를 감당할 수 없는 에일로서는 여러모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뭐… 적어도 철십자의 거점 안에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속으로 한숨을 돌린 에일은 여신이 변덕을 부릴까 서둘러 등을 돌려 떠나갔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묘한 말에 시르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마지막 말, 조금 찜찜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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