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56화 (156/227)

156화 성물 (6)

“후, 앞으로 살 집이라…….”

짐을 내려놓은 우진이 집 안을 바라봤다.

드넓은 평수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비좁고 허름했던 방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그의 표정엔 만감이 교차했다.

녹터눔으로 뽑아낸 막대한 골드, 그리고 무엇보다 유명세를 떨치며 워튜브로 벌어들인 돈은 상상 이상이었다.

개발사에게 보상으로 받았던 1억은 더 이상 그의 재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여기다 두면 되겠죠?”

“어, 내가 놓을 게 이리 줘.”

현성이 끙끙대며 들어오자, 우진이 마지막 짐을 건네받았다.

우진의 이사를 도와준 남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 같은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의 워로드 닉네임은 로덴.

이사한다는 소식을 듣자 우진을 도와준다며 집 앞까지 쫓아온 그였다.

‘처음엔 적응이 안 돼서 어색했는데 말이지.’

워로드에서만 보던 그를 현실의 옷차림으로 보니 굉장히 묘한 느낌이었다.

온라인 게임 시절에도 이렇게 정모 같은 자리에 모여 만난 적은 없어서,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랭커로 활동해 왔던 현성은 이미 익숙한지 거리낌이 없었고, 지금은 어느새 말도 편히 놓은 상태였다.

“오케이, 다 끝났다! 음, 그런데 거실이 조금 허전한데요?”

“갑자기 집이 커져서 말이지.”

이전에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새집.

뭔가를 채워 넣으려고 해봤자, 그 조그마했던 방에 짐이 있어 봐야 많을 리 없었다.

아직은 따로 가구를 구매하지도 않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신 그 덕에 이사하는 데 그리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뭐, 깔끔하니 보기 좋네요.”

“그러고 보니 아래쪽 상황은 어때?”

“워로드요? 다 잘 풀리고 있죠. 퀘스트도 넘쳐나고, 사냥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요즘은 오염되는 일도 전혀 없어서 다들 여신한테 미쳤어요.”

월드 이벤트가 끝나고 다시 엘트리스에 내려간 파티원들.

실력도 전원이 랭커급인 멤버에서 엘트리스라는 최고의 무대까지 활동하니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왕자 측의 움직임이 모두 6대 길드에게 막히면서 대지가 오염되는 일도 멈췄고, 엘트리스 주민들의 신앙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형 쪽은요? 성물을 찾았다 하지 않았나?”

“성물은 저번에 같이 내려갔을 때 맡겨 놨지.”

두 개의 성물 파편을 얻은 우진.

그는 파티원들과 함께 엘트리스로 복귀한 뒤, 도시에 위치한 대신전에 성물 파편을 맡겼다.

앞으로 많은 이가 노릴 만한 물건이었고, 아직 아무도 모르는 엘트리스 지역에 놓는 편이 가장 안전했다.

물론 지금 우진은 또다른 성물 파편을 추적하기 위해 엘트리스를 나온 뒤였지만.

“아무래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아. 단순히 퀘스트 한두 개 엮여 있는 게 전부가 아닐 만큼.”

성물 파편을 교단의 신전에 회수했을 때 주어진 엄청난 보상.

다음 파편을 찾으라는 퀘스트까지 자동으로 발동되었다.

보상이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 나타나진 않았지만, 권속이 직접 언급한 것도 그렇고, 신격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부여한 것으로 보아 심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유일신의 흔적이라니 설정에서부터 범상치 않긴 하네요.”

“문제는 그것 말고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는 거지만.”

몇몇 물의 교단 유저에 의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성물의 등장.

우진 같은 특정 교단의 신도들만이 아니라, 보물을 노리는 다른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쉽게 단서가 잡히지 않을 만큼 주어진 정보가 한정되어 있었다.

띵동!

뜬금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

“짜장면 시켰어요?”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이사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것도 아니고, 지금 마땅히 그를 찾아올 손님은 없었다.

머리를 긁적인 우진은 현관문을 열었다.

“김우진 님 댁 맞으시죠? NG전자에서 왔습니다.”

“이게 무슨…….”

입을 쩍 벌린 우진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자 현관으로 밀고 들어온 직원 두 명이 커다란 TV를 안으로 들여왔다.

그것도 무려 1,400만 원짜리 최신형 고가 모델.

“사정이 있어 선물만 보낸다더니…….”

보낸 이를 확인하자 설마 했던 것이 맞았다.

알리사가 보낸 집들이 선물이 도착한 것이다.

“미친…….”

현성도 충격받은 듯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곤 거실 한쪽에 쌓인 두루마리 휴지 세트를 바라봤다.

턱없이 초라한 선물.

자존심이 상한 듯 현성이 벌떡 일어났다.

“저, 저도 다시 사올게요. 더 비싼 걸로다가…….”

“됐어…….”

TV가 없는지는 뜬금없이 왜 물어보나 했더니, 이런 걸 보내올 줄이야.

대부분의 랭커 출신들이 부자라는 것쯤은 알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철저히 예상 밖의 집들이 선물이었다.

제품의 설치는 금방 끝났고, 일을 마친 직원들은 우르르 빠져나갔다.

“나참…….”

난데없는 선물에 어안이 벙벙한 우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때, 눈을 길게 늘인 현성이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알리사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

“넌 또 무슨 소리야.”

“아무리 랭커 출신이라도 그렇지, 집들이 선물로 1,400짜리를 누가 해요? 게다가 트리나무는 그렇게 큰 게임도 아니었는데.”

“집에 돈이 많은 걸지도 모르지.”

“답답하긴! 형도 알리사 님 실력 알잖아요? 치유사가 근접전으로 유저도 때려잡는 거. 암만 랭커여도 그런 쪽으로 유명한 힐러는 한 번도 없었어요. 특히 트리나무에 그런 실력자가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건 확실히…….”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블러디직 스튜디오와 곧바로 연이 닿게 해준 것도 그렇고, 정말 트리나무 출신일지부터 종종 의심이 갔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전 처음 봤을 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고요.”

“뭐,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해. 그러면 그 말이 맞다면 왜 우리를 속이면서 같이 다니는 거지?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건…….”

우진의 말에 현성의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그들을 속임으로써 뭔가를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정말 그럴 이유가 없었다.

“에라이.”

현성은 야심찬 추리가 실패로 돌아가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곤 바닥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 새 TV를 틀었다.

“화질 죽이네. 나도 하나 장만할까.”

* * *

이사가 모두 끝나고, 현성을 돌려보낸 우진은 곧바로 워로드에 접속했다.

그가 자리한 곳은 에스마이어의 이단심문소.

에일이 마지막으로 로그아웃한 곳은 그곳의 심문소의 기록 서고였다.

교단에 대한 온갖 기록들이 담겨 있는 서고.

아스칼론의 왕궁 서고조차도 쉽게 보지 못할 만큼, 방대한 양의 자료가 쌓여 있는 곳이었다.

하나 그가 찾는 자료는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에일은 조금 더 서고의 깊숙이 들어가 자료를 찾았다.

기밀 구역은 아무나 들어설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교단의 집행관이라는 위치인 에일은 제한 없이 출입이 가능했다.

‘마침 요청했던 자료들도 도착했군.’

탁자 위에 쌓인 방대한 기록서들에 에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찾는 것은 성물에 관한 모든 기록들.

에스마이어의 기밀 서고만으로는 부족했고, 각지에 있는 교단의 기밀 자료들을 본떠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이렇게 쌓인 자료들.

성물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들은 모조리 보내 달라고 한 만큼 방대한 자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진절머리 낼 만한 책더미였지만,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즐거이 손을 뻗었다.

그리곤 한동안 그것들의 분석에 매진했다.

그가 중점적으로 알아내야 하는 것은 다른 성물 파편들의 위치.

바하무트가 먼저 움직여 바난 요새 지하에 있던 성지와 성물을 찾아냈던 걸 생각하면, 추적이 결코 불가능할 리는 없었다.

‘정보가 없다 보니 다른 유저들은 짐작도 못 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교단의 기밀 서고 덕에 훨씬 앞서 나가는 입장이다.’

그가 서고에 들어선 뒤, 알아낸 사실 중 하나.

성물은 원래 지금 등장할 시점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모든 신격이 깨어나고 움직임에 따라, 성물의 등장 시점 역시 함께 가까워진 것이다.

‘연쇄적으로 작용한 트리거에 영향을 받을 건수라면… 성물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을 리는 없다는 거겠지.’

성물은 태고의 주신을 상징하는 엄청난 아티팩트.

일곱 갈래로 떨어져 나온 지금과 달리, 진정한 유일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나 성물이 가지는 역할이 단지 상징성만이라면 권속이 직접 언급을 하고, 그 많은 영향력을 신격에게 부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언가 힘을 가진 물건일 것이라는 추측.

‘거기다 성물은 총 15개의 파편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핵심은 앞선 네 개의 파편.’

그가 발견한 두 개의 파편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영향력을 띠었다.

하지만 15개로 제각각 나뉜 성물 파편 중에서도 보다 더 중요한 파편이 따로 있었다.

바로 첫 번째부터 네 번째의 성물 파편.

정확한 생김새나 명칭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네 조각은 하나의 성물을 완성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부분들이었다.

나머지 파편들은 힘을 더욱 강화시키는 부가적인 요소였다.

‘그렇다면 네 개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촤르륵!

에일이 두터운 서적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네 개의 파편이 흩어진 위치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른 파편들에 비해 이 네 조각에 대한 위치는 비교적 명확하게 나와 있어.’

여러 전설이 동시에 언급한 사실에 따르면, 성물의 핵심 파편들은 각 오지 지역에 하나씩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북부의 설원, 서부의 사막, 남부의 늪지, 동부의 황야.

현재 거의 모든 유저가 활동 중인 왕국 내 영토가 아닌, 그 밖에 위치한 극한의 지역들.

제대로 된 거점과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으며, 몬스터들의 수준도 유저에 대한 배려 따윈 없는 곳들이었다.

‘그러면 선택지는 네 곳인가? 가능하면 확실한 단서부터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만약 이중에서 가장 나은 곳을 찾으라면… 아무래도 이곳이겠지.’

지도를 살피는 에일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