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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53화 (153/227)

153화 성물 (3)

쩌엉!

강력한 창격에 에일이 튕겨져 나갔다.

냉기를 머금은 기다란 창.

바하무트의 상위 권속인 아그리아의 무기였고, 그녀가 창을 휘두르는 경로엔 극한의 냉기가 휘몰아쳐 얼어붙었다.

촤자자작!

얼어붙는 바닥을 피해 에일은 몸을 굴렀다.

하지만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아그리아는 대응하려는 에일을 집요하게 쫓아오며 수십여 차례의 연격을 찔러 넣었다.

빠악!

강한 충격에 에일의 고개가 젖혀졌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창격에 시선이 가있던 틈을 타, 주먹을 사용해 타격한 것이다.

여지없이 걸려 버린 스턴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을 발동한 에일은 뒤로 훌쩍 물러났다.

치유의 빛 스킬로 지속 치유를 건 뒤,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라면 모를까, 포션을 마실 시간 따윈 없었다.

카앙!

맞부딪힌 검과 창.

에일의 장검에 타오르는 백색의 성화마저도, 창에 맺힌 강력한 냉기에 움츠러들었다.

[‘생명의 어머니’가 지금의 상황에 우려를 표합니다.]

[‘은밀한 탐구자’는 당신이 한 발 물러설 것을 종용합니다.]

에일이 사정없이 밀리는 모습에 신격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처음엔 대등하게 보였던 싸움이 점점 길어지면서, 성립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급격히 기울자 우려를 표하는 것이다.

[‘화산의 지배자’가 답답한 듯 불의 숨결을 토해 냅니다.]

[공용 공헌도 +1,000]

특히 바하무트와 원수지간인 라자갈은 훨씬 몸이 더 달아올라 있었다.

어떻게든 녀석을 막아 내 주길 바라며, 에일에게 공헌도 후원까지 해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역시 장난이 아니야……!’

말로만 듣던 신격의 상위 권속과 직접 검을 맞대 보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것도 괴수가 아닌 인간형 권속.

사용하는 기술이나 틈을 만들어 내는 노림수, 심리전까지 걸어오는 게 마치 몬스터가 아닌 최상위 유저를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상대가 체력을 비롯한 각종 스펙은 보스몬스터 수준이라는 게 문제였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조합.

‘나도 처음엔 할 만한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전투가 시작된 초반에만 해도, 에일이 공격에 여러 차례 성공하며 그녀의 체력을 9퍼센트나 깎아낼 수 있었다.

지상에 나타난 권속이 아직 온전한 힘을 되찾은 게 아닌 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끌릴수록 점점 상대가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단지 체감만이 아니었다.

정보창으로 보았을 때만 해도 처음 그녀가 괴수의 뱃속에서 막 나타났을 때는 100레벨 안팎에 불과했다.

하나 지금 아그리아의 레벨은 어느새 140을 넘어서는 중이었다.

그에 맞춰 모든 스펙이 차차 오르고 있는 건 당연한 일.

이 정도 추세로 힘을 모두 되찾았다간 최소 200레벨 중후반대는 가볍게 넘어갈 것으로 보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의 목숨뿐만이 아니라 바깥의 전황까지도 위험해졌다.

유저 하나가 전황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런 괴물이라면 이야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빠악!

에일은 순식간에 뒤로 뻗어진 발에 차여 나뒹굴었다.

파고들어 역극을 사용해 봤지만 그조차 가볍게 간파당한 것이다.

‘이거… 포기하는 편이 나은가.’

벽 끝에 부딪힌 에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일곱 신격이 지닌 상위의 권속이란, 도저히 플레이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의식 전에 막아 냈다거나, 본체를 토해 내기 전에 괴수를 쓰러뜨렸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기회는 이미 날아간 지 오래였다.

“도망칠 생각은 마라.”

검은 눈동자를 굴린 아그리아가 창을 뻗었다.

그의 걱정을 덜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유일한 출구가 단단한 얼음으로 뒤덮여 막혔다.

바하무트의 입장에서 루의 사도인 에일은 죽이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영향력을 벌 수 있는 수단이었다.

심지어 그가 꾸며 놓은 일들을 사사건건 방해하기까지 했으니 절대 놓치면 안 될 상대였다.

“치잇……!”

콰드드득!

뾰족한 얼음 덩어리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도 냉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아그리아의 능력은 굉장히 골치가 아팠다.

그렇게 에일이 간신히 공격을 피해 낸 순간.

후웅!

미끄러지듯 날아든 아그리아가 창을 크게 휘둘렀다.

냉기가 가득 찬 서늘한 창날이 순식간에 다가와 에일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흘러가던 시간의 흐름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충만한 하얀빛이 주변 공간을 온통 감싸고 있습니다!]

파아앗!

“설마…….”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일이 앞을 바라봤다.

찬란한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루.

“전투 중에 이루어지는 개입은 골치가 아프거늘, 상황이 좋지 않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여신님?”

“상황이 급하니 짧게 전하겠다. 플레이어 혼자의 힘만으로는 상위 권속을 감당해 내는 건 무리다.”

“설마 그 말을 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잠자코 듣기나 하거라. 이곳 성지는 옛 신을 기리기 위한 장소. 그의 유산인 성물이 잠들어 있던 장소이기도 했다.”

“성물이라면 전설 속의…….”

“그래, 맞다. 이곳에 있던 건 성물의 파편이라고 말하는 편이 조금 더 정확하겠지만.”

고개를 끄덕인 루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다소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자세히 설명해 줄 시간은 없었다.

“하나 고작 파편이라 해도 그것이 가져다주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이미 하나는 녀석이 사용해 버렸지만, 이곳엔 또 하나의 성물 파편이 잠들어 있다. 그걸 찾거라. 그대라면 이 정도만 전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

“하지만…….”

“바하무트가 오히려 한발 앞서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렸구나. 에일, 그대를 믿겠다.”

파아앗!

그녀는 대꾸할 새도 없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시간의 흐름.

까앙!

번뜩 정신을 차린 에일은 코앞까지 날아온 아그리아의 창을 쳐냈다.

무기가 부딪히며 양쪽에 거센 성화와 서리가 튀었다.

‘젠장, 일이 그렇게 된 거였나……!’

이를 악문 에일이 창을 옆으로 쳐냈다.

‘성물’.

머나먼 과거에 존재했던 태고의 주신을 상징하는 엄청난 보물이었다.

일곱 갈래로 떨어져 나온 지금의 신앙과 달리, 당시 존재했던 진정한 유일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단지 워로드 배경 설정의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상징물인 줄 알았는데, 정말 존재했고 지금의 신격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할 줄이야.

‘이만한 월드 이벤트를 벌여 놓고 어떻게 상위 권속을 불러냈나 했더니… 성물의 힘을 빌린 거였나.’

하지만 그녀가 전한 말에선 아직도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작은 성지.

특별히 구조라고 해 봤자, 바깥으로 통하는 복도와 이 방 하나가 전부였다.

딱히 무언가 더 숨기고 있을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지, 그러고 보니…….’

그는 갑자기 공간이 비틀리며 네슈아가 어딘지 모를 공간으로 날아갔던 걸 떠올렸다.

그것도 처음 상대했던 바하무트의 괴수도 그의 뒤를 따랐었다.

‘갑자기 대륙 반대편으로 날아갔을 리는 없고… 이곳 안에 뭔가가 있다는 건가.’

에일은 서둘러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성역의 방 안은 오래된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었지만, 전투의 여파로 대부분 부서져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멀쩡한 부분이 있었다.

‘혹시……?’

방향을 비튼 에일은 바로 그쪽 벽으로 달려갔다.

“어딜 가는 거냐!”

그러자 인상을 찌푸린 그녀가 무섭게 소리치며 그를 막아서려 쫓았다.

원래 같았으면 등을 보인 에일에게 창격을 날려 냉기 공격을 퍼부었겠지만, 정말 벽쪽을 의식한 건지 창을 휘두르지 않았다.

놈들이 방 전체를 휩쓸어 가면서도, 공격이 가급적이면 미치지 않게 하던 곳.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

파앗!

에일이 벽을 스르륵 통과했다.

그러자 네슈아가 사라졌던 때와 같이, 주변이 일렁이더니 완전히 다른 공간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사방으로 복도들로 뚫려 있는 복잡하고 드넓은 성역.

그것도 주변을 둘러보자 상당한 숫자의 물의 교단 신도들이 내부에서 또다른 성물을 수색 중이었다.

“놓치지 않는다!”

곧장 뒤따라온 아그리아가 창을 휘둘렀다.

에일은 옆으로 몸을 피했지만, 그 뒤편에 있던 신도들은 모조리 냉기에 휩쓸려 얼어붙었다.

쿠구구궁!

다른 쪽에선 괴물과 네슈아가 요란하게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고, 에일은 그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쨍그랑!

그는 성수를 담은 병들을 마구 깨뜨렸다.

복도의 바닥과 벽에 흥건해진 성수, 에일은 성화가 타오르고 있던 장검을 마찰시켜 불을 질렀다.

화르르르륵!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꽃.

어느새 레벨이 150을 넘어선 아그리아가 휘두르는 창은 불꽃마저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에일은 그에 굴하지 않고 온 사방에 불을 지르며 달아났다.

어차피 에일은 자신의 성화에 대미지를 받지 않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최소한 물건을 찾아낼 시간 벌이 정도는 충분히 되어 줄 것이다.

‘저 녀석을 공략하려면 성물을 찾아야 한다. 그 전에 네슈아가 타죽지는 않겠지… 아마도.’

* * *

쩌엉!

더욱 강해진 아그리아의 창.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묵직한 힘에 에일이 멀찍이 튕겨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창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붕 떠오른 에일이 제대로 균형을 잡기도 전.

그녀의 창에서 퍼진 냉기가 바닥을 모두 얼어붙게 만들었다.

콰드드득!

에일의 다리를 꽁꽁 얼려 버린 냉기.

풀어내기 위해 힘껏 힘을 줘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끝이다.”

창을 늘어뜨린 아그리아가 에일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커다란 홀 안에 들어서 있던 에일이었지만, 함께 추적하던 신도들까지 동원해 퇴로까지 모두 막아 버린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다리가 얼어붙은 그로서는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에일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걸렸다.

“진짜 아슬아슬했네.”

“그건……!”

주위를 둘러쌌던 신도들의 얼굴에 경악이 물들었다.

에일의 손에 쥐어진 하얀빛의 보주.

그들이 줄곧 찾고 있던 성물이었다.

파아앗!

손에 쥐어진 성물에서 찬란한 빛이 발했다.

[고대 성물의 일곱 번째 파편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도 ‘에일’의 발견으로 신격 ‘빛의 심판자’가 막대한 영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신격, ‘루’의 권속이 강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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