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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51화 (151/227)

151화 성물

“이걸로 마지막.”

화르르륵!

늘어선 화형대에 거센 불길이 휘몰아쳤다.

에일에게 붙잡혀 묶인 물의 신도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전투를 함께 했던 블랙번 측 길드원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지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

.

.

하나 그들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이단.

아무런 명분도 없는 공격으로 지역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자들이었으니 거리낄 것 없었다.

에일은 먼저 나무 위에 목이 걸려 주렁주렁 매달린 이단들의 시체를 뒤지며 아이템을 루팅했다.

“이젠 이 광경이 무감각해지려는 제가 더 무서워지네요.”

“으음, 저도요.”

파티원들이 태연하게 불타고 있는 신도를 바라봤다.

알리사와 로덴은 물론,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운 리아마저도 그의 형벌 집행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듯한 모습을 보여 줬다.

“뭐, 일단 이걸로 이쪽 거점도 무난히 막아 냈네요. 이제 길었던 싸움도 거의 다 끝나가고……. 솔직히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었는데 말이죠.”

로덴이 느긋하게 말했다.

여러모로 악조건에 쌓여 있던 이번 월드 이벤트의 방어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미 상황이 뒤집혀 클리어를 앞두고 있었다.

큰 사건만 없다면 이대로 방어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게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다 에일 님 덕이죠. 갑자기 혈맹 길드를 이쪽 편으로 바꿔 놓을 줄이야.”

“아뇨, 옆에서 조금 부추긴 게 전부인데요.”

타악!

아이템의 루팅을 끝낸 에일이 바닥에 내려섰다.

조금 높게 걸려 있는 시체가 하나 있어 잠깐 애를 먹었다.

“게다가 아직 상황이 다 끝난 것도 아니고요.”

“하긴, 그렇긴 하죠.”

수긍한 로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난 거나 다름없다’와 ‘완전히 끝난 상황’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에 대해선 이곳에 서 있는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조금 전 워로드에 접속해 온 리아가 허겁지겁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금방 오셨네요.”

“흐아, 도중에 죄송해요. 고양이 밥 주느라…….”

“담배 피고 온 거 아니었어요?”

“그거 정말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

리아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동안 엘트리스에서 사냥하며 장난을 걸어오는 로덴에게 줄곧 시달린 터라, 소극적이었던 그녀도 받아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어차피 상황도 탈 없이 끝났고,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휴, 다행이에요.”

에일의 말에 리아가 안도하며 웃어 보였다.

“맞다, 리아 님. 독이 다 떨어져서 그런데 요리 한 번만 다시 해주실 수 있으세요?”

“독이라니… 너무 당연하게 실패할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거야…….”

시선을 돌린 로덴은 말을 흐렸다.

그야말로 저주받은 손을 지닌 리아는 엘트리스에서 함께 다니는 동안에만 네 번의 요리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 같았다.

온갖 치명적인 부가효과가 담긴 맹독을 제조해 낸 것.

“좋아, 두고 보세요. 이번에야말로 해내 보이겠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근사한 요리를!”

“죽는다라는 표현이 굉장히 살벌하네요.”

그간 로덴과 함께 그녀의 요리를 봐온 알리사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리아는 기합이 들어간 채 민첩한 손놀림으로 요리를 준비했다.

“저도 옆에서 도와드리죠.”

그녀의 의도야 근사한 요리라도 결국엔 자신의 독 만드는 것이었으니, 로덴도 그녀의 옆에서 준비를 거들었다.

“역시… 재료 선정부터 범상치 않군.”

당장 리아가 꺼내드는 식재료들만 봐도, 얼마나 끔찍한 레시피가 구성될지 알 수 있었다.

일반인이 가진 상식의 범주에 가둘 수 없는 그녀의 타고난 요리 센스.

물론 그는 최대한 강력한 맹독이 나오길 바라는 만큼, 레시피는 오로지 독공의 대가인 리아의 뜻대로 따를 예정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각자 다른 목표를 지닌 채 요리에 열중하는 사이, 에일은 알리사와 따로 대화를 나누었다.

“확실히 이젠 완전히 기울었다고 봐도 될 만큼 일이 잘 풀리고 있어요. 하지만… 혹시 알리사 님도 느끼고 있나요?”

“물의 교단이 버티고 있는 것 말이죠?”

“네.”

에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월드 이벤트는 사실상 거의 다 끝난 싸움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단 측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로서는 물러서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죠. 교단의 입장에선 지금이라도 물러서는 게 손실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일 텐데, 아직까지도 물러설 기미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무언가 다른 수를 보이는 것 같지도 않고, 무의미한 소모전만 계속 이어나가는 건 월드 이벤트의 중요성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모르는 신격의 ‘영향력’ 개념까지 고려하면 이야기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돌아간다면 월드 이벤트 발동에 쏟아부은 영향력의 일부는 회수할 수 있을 터.

‘만약 이번 움직임이 실패로 돌아가면 당분간 제대로 움직임을 취할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는 걸 텐데, 무슨 생각인 거지?’

만약 루였다면 모두가 전멸하더라도 명분과 신념을 위해 한 번 정한 뜻을 거두지 않았을 것이다.

‘정의’라는 이름을 지닌 그녀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신격이었으니까.

하지만 바하무트는 그런 신격이 아니었다.

어떠한 고집이나 온정도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멸망의 신.

심지어 자신의 충실한 신도들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성정으로, 강의 폭군이라는 이명은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직접 내 앞에 나타났을 때도…….’

그의 앞에 나타났던 바하무트는 지나치게 자신에 찬 모습을 보여 줬다.

권속이 지상에 올라오고, 그를 봐주는 다른 신격들조차 소용없을 거라고.

단순히 자존심이 상한 바하무트의 허풍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넘어가기엔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대교구장 ‘멜리아’의 지휘하에, 신의 뜻을 받은 모든 신도가 집결합니다.]

‘월드 이벤트가 처음 생겨났을 때 출력됐던 메시지……. 하지만 멜리아라는 NPC는 보인 적이 없다.’

대교구장이라면 빛의 교단의 집행관에 상응하는 최고위직.

물론 물의 교단의 경우 임명된 인원도 열두 명으로 더 많은 데다가, 구성원 개개인이 강하기로 유명한 빛의 교단에서 정점에 선 집행관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굉장히 강한 전력인 건 변함없었고, 전장에 나섰다면 강력한 변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 이벤트에 동원되었을 대교구장은 여태껏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걸지도…….”

까악까악!

그때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날아든 까마귀가 에일의 팔에 내려섰다.

“이건……?”

“그 녀석이 보낸 거네요.”

까마귀의 옆구리에 그려진 문양을 본 에일이 말했다.

그림자 교단의 상징, 네슈아가 보낸 까마귀라는 뜻이었다.

침묵의 신도인 그는 직접 말할 수가 없어 친구 추가를 해봤자 메신저 이용이 불가능했다.

우편함을 통한 방식도 장소의 제약이 있으니, 뜻을 전할 때 가장 편리한 전서 까마귀를 활용한 것이다.

스르륵!

에일이 다리에 걸린 편지를 꺼내 들자, 녀석은 환영처럼 흩어져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공헌도 상점에서 구입하는 일회성 마법 까마귀였다.

‘크진 않아도 공헌도까지 소모해 가며 전할 급한 소식이라… 따로 알아볼 게 있다더니 뭔가 찾아낸 건가?’

에일은 그가 보낸 편지를 펼쳤다.

* * *

바난 요새.

이번 월드 이벤트에 노려졌던 블랙번 길드의 영지 중 하나였다.

방어시설이 뛰어난 데다가 당시 꽤나 많은 병력이 배치된 곳이라 다른 영지는 몰라도 이곳만큼은 무너질 일이 없을 거라 보였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바하무트의 신도들은 다른 거점을 대신 노리기보단, 지나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강행돌파에 나섰다.

그렇게 집중 공격을 당한 바난 요새는 결국 다른 모든 거점들보다 가장 먼저 함락당하게 되었다.

모조리 불태워 버린 요새는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되었다.

“여기에 뭔가 있단 말이지?”

「그래.」

에일과 네슈아는 바로 그 불탄 요새를 걷는 중이었다.

이미 멸망의 길을 걸어 버린 거점은 복구가 가능할 만한 수준도 아니었고, 아무도 찾을 이유가 없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바하무트가 노리는 어떠한 노림수가 바로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네슈아가 보내왔고, 에일은 주저 없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런데 굳이 혼자만 오라는 이유는 뭐야?”

「따라와.」

양피지를 끄적인 네슈아가 먼저 앞서나갔다.

어지러운 폐허를 헤치며 그가 향한 곳은 요새의 중심부에 깊게 파헤쳐진 구덩이의 앞.

엉망이 된 요새에 이와 비슷한 구덩이야 넘쳐났고, 겉보기엔 전혀 특별해 보일 게 없는 구덩이였다.

하지만 네슈아는 곧장 훌쩍 뛰어 그 안으로 내려섰다.

타악!

따라 내려선 에일의 앞엔 정체 모를 입구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는 무슨 통로인지 알 수가 없었고, 안으로 직접 들어서려 했다.

파직!

강력한 결계에 튕겨져 나온 에일이 뒤로 물러났다.

「소용없어, 웬만한 해제 아이템도 통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

에일의 물음에 네슈아는 선뜻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그림자의 가호’.

결계에 걸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최상위 아이템이었다.

네슈아가 속한 그림자 교단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상당한 고가의 공헌도 아이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것만이 아닌 두 개의 아이템을 들고 있었다.

“이걸 왜…….”

「하나보단 둘이 나을 테니까.」

간단히 답한 그는 아이템을 에일에게 던져 줬다.

그간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혼자선 쉽지 않을 걸 직감한 네슈아는 에일과 동행할 것을 택한 것이다.

얼떨떨하게 받아들인 에일은 네슈아를 따라 아이템을 사용했다.

파아앗!

앞으로 발을 뻗자, 반투명한 막을 지나 무사히 안으로 통과되었다.

입구를 막던 굳건한 결계도 그들을 막진 못했다.

“이건…….”

무시무시한 던전 같은 걸 상상했던 에일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결계의 내부엔 신성한 기운으로 충만한 성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큰 규모도 아니고 오래되어 낡은 모습이었지만 구조와 장식,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굉장한 모습이었다.

먼저 이곳의 위치를 찾아냈던 네슈아조차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놀라운데.」

이는 절대 요새를 무너뜨린 뒤 대강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급조한 시설 같은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한 장소였다는 것.

‘이런 곳에 대해선 언급된 적이 없었는데.’

그 어떤 정보사이트에서도 바난 요새에 이런 성역이 있을 거라는 단서는커녕, 대강 지어낸 소문조차도 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에 빠진 에일의 머릿속에서 답이 나오기도 전.

성역의 통로를 걷자 가까이에서 기도문을 읊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오래된 피를 찾으라. 붉은 선혈을 게워내고, 옛 피를 받아들여라. 네게 느껴지는 두려움 속엔 간절한 소망이 빛나고 있으니.”

에일과 네슈아는 소리를 쫓아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마주친 이는 대교구장 멜리아.

하얀 후드를 쓴 그녀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린 그녀의 모습은 광적인 신도를 보는 듯했다.

“고통 속에 새로운 탄생을 품어라. 이것으로 신을 향한 영원한 갈증이 해소될 것이다.”

후두둑!

기도를 외우는 멜리아의 온몸에서 피가 떨어져내렸다.

이미 붉은 피로 흥건한 바닥은 넓게 물들어 있었고, 한 사람에게서 나온 피의 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너의 죽음은 애도받지 않으리. 영광 속에 죽어 진정한 생명을 얻을지어다.”

싸아아아!

어디선가 흘러온 불길한 기운이 멜리아를 감쌌다.

그녀의 몸이 사납게 비틀리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온몸의 뼈가 꺾이며 살점이 부풀어 올랐고, 소름끼치는 우드득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끄아아아아!

성역의 방 안을 가득 메운 비명 소리.

거대한 야수로 변한 그녀가 거체를 서서히 일으켰다.

짙은 회색빛으로 빛나는 이름.

정예 몬스터도, 에픽 보스 몬스터도 아니었다.

[신격, ‘바하무트’의 권속이 강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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