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36화 (136/227)

136화 여섯 번째 집행관 (3)

워로드를 뒤흔든 월드 이벤트.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2강 길드를 상대로 빛의 교단이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

월드 이벤트가 일어난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의 이루어지던 규모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려 하나의 도시 전체를 불태운다는 내용이었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암스텔에 자리 잡았던 수많은 유저가 피난길에 올랐고, 소문을 접한 NPC들 또한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인 만큼 마찬가지였다.

워로드 도시의 거대한 규모상, 피난의 규모와 그로 인한 파급 효과만 해도 엄청났다.

‘나에 대해서도 시끌시끌한 것처럼 보이고.’

에일이 한숨을 픽 내쉬었다.

여섯 번째 집행관의 등장.

유저로서는 최초로 에일이 집행관이라는 교단의 최고위직에 앉았다는 사실 또한 모두에게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그런 그가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건 당연히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때문에 내부 사정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얼떨결에 에일이 이번 일을 꾸민 주모자 격으로 오해받기까지 하였다.

‘정말 엄청나게도 모였군.’

에일이 창밖을 내다보자, 엄청난 수의 신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대도시 락포터의 신전에 와 있었고, 바깥에 있는 이들도 이번 신격의 부름을 받고 몰려든 이들이었다.

이곳 락포터뿐만이 아니었다.

목표로 향하는 각 빛의 신전마다 놀라울 만큼 많은 신도가 모이고 있었다.

에스마이어와 솔스티드.

두 지역에서 활동하던 교단의 모든 유저들이 반강제적으로 모조리 나오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최근 급격히 불어난 에일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소집 대상이 아님에도, 먼 지역에서도 찾아와 모두 모여 힘을 보태기도 하였다.

‘예상보다도 많이 모여서 다행이야. 하지만…….’

이번 퀘스트의 목적은 도시 ‘암스텔’.

영주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혐의를 가진 탓에 표적이 된 곳이었다.

많은 이가 착각을 하곤 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영주’는 점령 길드의 길드장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도시를 차지한 길드에서 사실상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긴 하지만, 명목상 왕가에 충성을 바치는 영주가 한 명 들어앉아 있었다.

에일이 제거해야 하는 것도 바로 녀석이었다.

다만 어째서인지 이번 심판의 대상은 도시 전체였고, 영주의 목을 하나 벤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해당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길드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빙해 길드… 12강 중에서도 쉽지 않은 녀석들이란 말이지.’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는 상대 탓에 에일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집행관님, 여기 계셨군요.”

“아, 오셨습니까?”

그를 찾아온 남녀 한 쌍이 방 안으로 들어섰고, 에일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하얀 갑옷을 차려입은 두 명의 이단심판관.

그들 역시 NPC가 아닌 유저들이었다.

하지만 저 밖을 메운 수많은 유저들과는 달리, 이 둘은 조금 특별했다.

빛의 교단의 두 네임드 플레이어, 루크와 메이.

무려 220레벨을 넘어선 준랭커급 전력이라는 것이다.

물론 에일이 성장하는 동안에도 시간이 지난 만큼, 랭커의 기준은 어느새 240레벨까지 올라 있었다.

하나 6대 길드가 아닌 이상 준랭커 급에 달하는 인재는 굉장히 귀했고, 교단 소속의 유저라면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레벨대였다.

‘이 두 명이 도와준 덕분에 한숨 돌렸지.’

그들은 주변 지역에 있던 게 아님에도 비행선을 타고 직접 찾아왔고, 집행관인 에일을 충실히 따르며 보좌했다.

심지어 이 둘은 ‘루’의 메시지를 받아 본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한두 번에 그쳤을 뿐, 에일만큼 잦은 메시지를 받았던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루에게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빙해의 요격에 대비해 임시 편성한 정찰대를 파견해 뒀습니다. 현재 집결한 신도들의 전력을 분류 중이고, 물자 보급은 문제없이 순조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신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빙긋 웃은 메이가 고개를 꾸벅였다.

교단의 네임드 플레이어가 아니랄까 봐 컨셉도 확실했다.

자신과 같은 입장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대화를 하다 보면, 진짜 광신도가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집행관님의 이름 덕에 많은 자들이 모이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빙해를 상대로 이 정도 전력이라면 승산이 없습니다. 녀석들이 방심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루크가 나서 말했다.

신도들이 모여 큰 규모를 이루었다고는 하나, 상대는 솔스티드 지역에 자리 잡은 강력한 세력 ‘빙해’였다.

12강 길드.

지나치게 강한 6대 길드에 가려진 감이 있었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감히 따라올 수 있는 세력이 없을 만한 위치의 길드들이었다.

‘당연한 말이야. 더군다나 이번 대상은 교단 소속의 유저들뿐이었으니까.’

다른 집행관들을 비롯한 교단의 주요 NPC들은 이번 월드 이벤트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황혼회를 뿌리 뽑느라 총력전을 벌였고, 그동안의 모든 업무가 정체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모이는 신도들의 숫자는 그들보다 많겠지만, 모두가 제각각 활동하던 일반 유저들이었다.

반면 상대는 그동안 수없이 합을 맞춰 온 대형 길드의 정예들이었다.

이대로는 무참히 깨져 버릴 게 뻔했다.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만큼, 무언가 수를 써야 했다.

“놈들을 분산시킬 방법을 찾아야겠죠. 제가 해결책을 찾아보겠습니다. 우선 두 분은 집결하는 유저들을 통솔해 주십시오. 솔스티드 지역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에스마이어의 유저들을 한데 집결한 뒤 이동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루크와 메이가 동시에 대답하며 물러났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에일은 한차례 머리를 쓸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모인 유저들을 움직이는 거야 저 둘에게 맡겨 놓으면 되겠지.’

개별 활동엔 자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통솔이나 지휘 쪽은 경험이 전무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공대장 같은 걸 떠맡는 편은 아니었고, 일단 골치 아픈 문제는 경험 많은 저 둘에게 맡기면 되어 보였다.

‘그동안은 따로 움직인다.’

장비를 챙긴 에일은 서둘러 떠날 준비를 했다.

수많은 인원이 전투를 위해 모이고 이동하는 만큼, 적잖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었다.

그사이 에일은 막막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른 쪽에 여러 볼일이 있었다.

덜컥!

그때, 누군가가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 락포터 신전의 여사제였다.

‘잠깐…….’

하지만 에일은 확연히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서는 벌써 이번이 두 번째 경험이었으니까.

“잘 있었는가?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구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신님.”

에일이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빛의 여신, 루. 그녀가 직접 여사제의 몸을 통해 현신한 것이다.

“이렇게 직접 현신까지 하신 걸 보면, 영향력이 제법 넉넉해지셨나 봅니다.”

“그대가 나를 위해 활약해 준 덕분이지.”

그녀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겉으로는 여사제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뒤를 비추는 은은한 후광과 여신으로서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동안 사도로서 많은 일을 해 주었다. 하나 아직 갈 길이 멀지.”

“알고 있습니다.”

루의 목표는 다른 신격들을 경쟁에서 밀어내고, 대륙 전역에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는 것.

현재 예정보다 일찍 깨어난 덕에 빠르게 치고 나가고는 있었지만, 다른 신격들을 배제하기까지는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이번 월드 이벤트의 결과에 많은 것이 걸렸다. 그대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그녀는 그동안 모은 막대한 영향력의 대부분을 이번 월드 퀘스트를 발동시키는 데에 투자한 것이었다.

만약 성공만 한다면 단번에 교단의 영향력을 폭증시킬 수 있지만, 실패하면 결과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조만간 큰 변화가 일어날 거다. 버그 하나에 좌지우지될 만큼 워로드의 시스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그건 게임사에서 뭔가 눈치챘다는 말씀이십니까?”

깜짝 놀란 에일이 물었다.

아무리 게임사에서 업데이트나 피드백도 없이 개입하지 않는 방침을 가졌다 해도,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경우엔 개입하는 것이 당연했다.

단지 여태껏 워로드에서 오류라는 게 발생한 적이 없어 나설 일이 없었을 뿐.

만약 게임사에서 이번 버그를 발견했다면, 무언가 조치를 취해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애초에 롤백이 불가피할 만큼 막대한 오류가 생기지 않는 이상, 그들이 직접 나서진 않을 테니까.”

무슨 사정인지 궁금했지만, 루는 더 이상 자세히 말해 주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그녀의 입장에서는 에일에게 이야기를 해 줄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번 퀘스트는 해낼 수 있겠는가?”

“솔직히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물론… 되든 안 되든 해 봐야겠죠.”

“기운 내거라. 혹시 모르지. 멋지게 이번 일을 해낸다면, 그대에게 근사한 입맞춤이라도 해 줄지도.”

“그, 그게 갑자기 무슨…….”

에일이 얼굴을 붉히며 흠칫 물러섰다.

갑자기 이 미친 여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루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신의 입맞춤이라… 행운의 상징 아니더냐?”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에일이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동안 가난한 사정 탓에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본 에일에게는 여러모로 과한 이야깃거리였다.

평범한 여성이라면 모를까, 아름다운 여신의 원래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후후, 얼굴값을 못 하는 사내로군. 모쪼록 건투를 빌겠다. 언제나 네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마.”

파앗!

하얀빛과 함께 루의 현신이 사라졌다.

* * *

“하하하! 이 자식들이 드디어 미쳤구나.”

빙해 길드의 길드장, 테온.

그는 최근 들려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에 가소로움을 참지 못했다.

빛의 교단에서 대대적인 전쟁을 벌이려 일어났고, 그 대상이 바로 빙해 길드가 소유한 도시라는 사실.

신격이 벌이는 월드 이벤트의 악명에 대해선 익히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신도가 모인다고 해 봤자 소용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레벨대조차도 제대로 통일되지 않는 오합지졸들.

반면 빙해는 본인들의 길드원은 물론, 도시에 배치된 NPC 병력과 산하 길드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

아무리 요즘 불어난 빛의 교단이라고 한들,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의 주동자를 생각하면 기가 찼다.

“에일이라고 했지. 하다 하다 이런 놈들까지 기어오르다니.”

테온이 이를 빠득 갈았다.

언제 나서야 하는지조차 분간 못 하고 날뛰어 대는 것.

여기저기서 띄워 주기 시작한 루키들이 흔히들 저지르는 실수였다.

“길드장, 저희 쪽 대응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NPC만 거들게 한다면, 굳이 산하 길드들은 소집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 모조리 모아.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녀석은 철저히 짓밟아 줘야 하거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