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여섯 번째 집행관
“정말 해냈어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널브러진 사룡의 시체 앞.
녀석을 쓰러뜨린 파티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무려 에픽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데다가, 이번은 마지막 순간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더욱이 위험했던 만큼 보상도 뛰어났다.
창과 스태프, 로브나 갑옷과 장신구 등.
수많은 상위 등급 아이템들이 사룡에게서 드랍되었다.
하나같이 고가의 품목들이었고, 파티원들은 각자의 직업에 따라 합의 후 배분했다.
그중에서 에일이 차지한 아이템은 사룡의 장신구 세트.
[저주받은 사룡의 반지(성장형)]
- 등급: 유일
- 종류: 반지
- 장비 레벨: 137
- 마법 방어력 99
- 힘 +30, 민첩 +18, 체력 +6, 마력 +6
- 해당 아이템은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습니다. 소유자의 레벨에 따라 모든 옵션이 성장합니다.
[사룡의 장신구 세트 효과 (3/3): 모든 스탯을 15(레벨 비례)만큼 증가시킵니다. 모든 마법 피해를 10% 감소시킵니다.]
‘엄청난데……. 역시 에픽 몬스터야.’
자신의 손에 들어온 아이템에 에일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유일 등급 장신구가 세 개.
등급에 걸맞은 좋은 스펙은 물론, 세트 효과로 스탯 보너스에 마법 피해 감소 옵션까지 얻을 수 있었다.
단지 이 정도만 하더라도 엄청난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박이 터졌다는 건, 이 장신구들이 모두 성장형 아이템이라는 점에 있었다.
‘플레이어와 함께 레벨이 오르는 성장형 아이템……. 그것도 유일 등급 장신구에 성장 옵션이 붙어 있다니 시장에 내놓으면 얼마나 할지 짐작도 안 가는걸.’
당장 아무리 좋은 옵션을 지녔다 하더라도, 레벨이 오를수록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게 아이템의 숙명이었다.
레벨이 어느 정도 상승한 구간마다 상위의 아이템으로 교체해 줘야 하는 것 또한 상식.
하지만 성장형 아이템의 경우는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
모든 옵션이 유저와 함께 성장하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에일이 획득한 장신구는 유일 등급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전설급 아이템을 얻는 게 아닌 이상 교체할 필요가 없었다.
이 장신구 세트를 통째로 얻은 대신 다른 수많은 장비 아이템들을 포기해야 했지만,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오히려 시중 가치로 따지면 에일이 가장 많은 몫을 챙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루팅 아이템이 전부가 아니니까.’
쓰러진 녀석의 시체를 해체하자 사룡의 뼈, 비늘, 송곳니 등 버릴 것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아이템 제작에 사용되는 굉장한 상위 재료들이었고, 역시 용족답게 부산물조차 뛰어났다.
‘총애 수치도 드디어 백을 넘겼고.’
이번 레이드를 통해 에일의 총애도는 102를 넘어섰다.
원래 정해진 총애의 최대치는 100%로 정해져 있었지만, 신격의 선택을 받은 사도의 경우 최대 200%까지 상한이 증가했다.
‘큰 변화는 없는 건가?’
에일은 원래 총애도의 상한이었던 100%를 초과하면 뭔가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당장은 스펙이 증가했다는 것 말고는 크게 느낄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추가로 더 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이니까.’
“에일 님, 그나저나 아까 그 스크롤들은 뭐예요?”
정신없이 새로 얻은 창을 구경하던 로덴이 어느새 슬쩍 다가와 물었다.
에일이 사용한 세 장의 마법 스크롤.
일회용 스크롤답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워로드의 공헌도 상점이라면 길드를 가진 유저들에 비해, 교단 쪽 유저들이 가지는 몇 안 되는 이점이었고, 로덴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에일이 전에 스크롤을 사용했던 것도 본 적이 있었고,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방금의 상황만큼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딱 필요한 스크롤들만 챙겨 두셨지?”
에일이 상황에 맞춰 사용한 스크롤들은 마치 어떤 상황이 일어날 것인지 미래라도 보고 온 듯한 선택이었다.
특히 추락 마법 스크롤은 특정한 상황에야 사용이 가능한 탓에, 어지간해서는 들고 다닐 일이 없었다.
“거기다 에픽 보스한테 상태 이상이 통하려면 최상급은 됐어야 했을 텐데… 혹시 이번에 쓰려고 미리 준비해 두셨던 거예요?”
“네, 뭐… 드래곤이라길래 혹시 몰라 준비해 뒀죠.”
에일은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상황에 맞춰 어디서든 선택 후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능력이었다.
보통의 신도들이라면 아이템을 미리 준비해 구비를 해 둬야 하는 만큼, 이렇게 적재적소에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애초에 에일만큼 엄청난 공헌도를 모으고 다닐 사람 자체가 흔치는 않겠지만.
원래 사도의 특전들은 사냥의 난이도가 급상승할 한참 뒤의 시점에서 주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위력적이었다.
그 덕에 에일이 비교적 수월하게 선발주자들을 쫓아갈 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최상급 스크롤들은 출혈이 컸다.
스크롤 세 개에 소모된 18,000포인트.
4,500이라는 큰 공헌도를 받기는 했지만, 이번 지출을 메꾸기엔 어림도 없었다.
물론 회수를 못 했다고 해서 손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사룡을 쓰러뜨리는 데 투자함으로서 그 이상의 것들을 얻었으니까.
‘여긴가…….’
에일이 오염된 근원의 앞에 섰다.
이번 퀘스트의 진짜 목표이자, 지금 시점에서는 엘트리스의 대지를 잠식시킨 마지막 오염 지점이기도 했다.
파아앗!
그는 사령석 파편을 꺼내 정화의 빛을 내뿜었다.
* * *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칭호 ‘지하 세계의 구원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장착 시 효과: 모든 스탯 +98, 방어력 +7%]
[영구적으로 엘트리스의 주민들에 대한 관계도가 증가합니다.]
“오염이 모두 사라졌다!”
“세계의 구원자! 엘트리스의 영웅이여!”
도시의 광장은 기쁨에 찬 노움들이 찬양하는 모습으로 가득 찼다.
노움뿐만이 아니었다.
개중엔 다른 도시에서 찾아온 이종족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엘트리스에 사는 자들이라면 모두가 직면했던 생존의 문제였던 만큼, 종족의 구별은 무의미했다.
특히 그와 엮인 대형 퀘스트를 모두 마무리 지은 에일은 단번에 3레벨이 올라 140레벨을 달성했다.
거기다 그동안 얻었던 칭호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성능의 칭호까지 얻을 수 있었다.
지하 세계의 구원자.
무려 전 스탯을 98이나 상승시켜 주며, 방어력 증가 효과를 지닌 칭호였다.
당장에 칭호를 변경한 에일은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노움족의 대표를 맞이했다.
“에일 님, 부디 저희의 성의를 받아 주십시오.”
“이건……?”
늙은 노움은 두 손을 모아 그에게 한 권의 책을 건넸다.
그러자 에일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금빛 스킬북]
“뭐, 뭐야 설마!”
“우와…….”
로덴이 호들갑을 떨며 반응했고, 뒤편의 리아도 멍하니 감탄사를 흘렸다.
다른 파티원들은 사룡을 처치한 것에 대해서만 같이 보상 아이템을 받았지만. 지금 에일의 경우는 달랐다.
이번 근원의 정화와 함께, 그동안 엘트리스의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며 대지를 복구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황금빛 스킬북이라니…….’
에일도 차마 놀라움을 감추지 못헀다.
워로드 최고 등급의 스킬북.
당연히 절대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워로드 최상위에 위치한 천 명의 랭커라 해도, 이 황금빛 스킬북을 직접 본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리 못해도 영웅 등급 아래의 스킬은 나올 일조차 없을 만큼, 절대적인 최고의 스킬북이었다.
물론 직접 개봉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은 이걸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어안이 벙벙했다.
“에일 님, 축하드려요!”
“이러다 전설 스킬 하나 나오는 거 아니에요?”
얼떨떨하게 스킬북을 건네받은 에일에게 그들이 축하를 건넸다.
로덴의 말대로 황금색 스킬북이라면 최대 전설 등급의 스킬까지 노려볼 수 있었다.
다만 찬란한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결코 그 확률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설 등급 스킬의 소유자는 매우 적었다.
워로드 전체 유저로 따져도 열을 넘지 않을 정도.
괜히 에일이 여태껏 전설 등급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전설이라는 등급을 노려볼 수라도 있는 게, 바로 이 황금빛 스킬북뿐인지라 모두가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다.
“마침 140레벨이었죠? 당장 사용해 봅시다. 저만 빼고 제 주변 사람들은 항상 운이 좋았거든요. 분명 여기서 전설 뜰 거예요.”
로덴이 에일을 붙잡고 말했다.
이 스킬북에서 어떤 스킬이 나올지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에일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기회를 봐서 사용하려고요. 행운석도 한참 전에 다 써 버려서……. 지금 써 버리기엔 용기가 안 나네요.”
“으… 하긴 그게 맞긴 하겠네요.”
직접 결과를 볼 수 없게 되자 아쉬워하는 로덴이었지만, 그도 에일의 말에 수긍했다.
그냥 여기서 사용해 버리는 것보단 작은 행운 보정이라도 받고 사용한다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스킬을 얻을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보상을 모두 수령한 뒤, 흥분이 가라앉으려 할 때 즈음.
[엘트리스 지역이 완전한 빛의 교단의 세력권하에 들어섰습니다.]
[에스마이어 지부의 이단심문소로 향해 보상을 수령하십시오.]
[여신의 뜻이 당신을 부릅니다.]
‘이건……?’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에 에일이 흠칫했다.
우선 엘트리스 지역 전체가 빛의 교단을 따르게 되었다는 건 굉장히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메시지들은 에일이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여신의 뜻이 부른다니… 보상을 주고 싶으면 후원 방식으로 건네주면 될 텐데, 이단심문소로 호출까지 하고. 최근 메시지도 뜸하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 * *
엘트리스에서의 사건이 일단락된 뒤, 에일은 다시 햇볕이 쬐는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곧장 시스템 메시지의 지시에 따라 에스마이어의 이단심문소로 향했다.
그곳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난 이는 집행관 아일린.
“어서 오시죠, 형제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아, 집행관님.”
일면식이 있는 둘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에스마이어 지부의 심문소장이자, 교단의 집행관인 그녀는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단심문소에서 절 불렀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새로운 여섯 번째 집행관의 임명이 다가왔으니까요.”
“예……?”
깜짝 놀란 에일이 눈을 치켜떴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집행관이라면 빛의 교단을 대표하는 최고위직.
교단이 지닌 긴 역사 동안, 다섯 명을 유지하던 상태에서 변동이 있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섯 번째 집행관이라니.
“외부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이라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답니다. 물론 여신께서 직접 뜻을 내리신 이상, 바뀔 건 없지만요.”
“어떻게… 아니, 새로 임명된 자는 누구죠?”
“아, 설마 아직 듣지 못하셨던 건가요? 그분이라면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사실 아주 가까이에 계시죠.”
그녀가 의외라는 듯 즐거운 미소를 띠었다.
“집행관, 앞으로 잘 부탁드리죠. 여신의 부름을 받은 그대라면, 함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