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지하 세계 (7)
치이이익!
정면을 향해 쏟아진 검은 빛의 브레스.
리아가 서 있던 자리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녹아내렸다.
방어에 특화된 전문 탱커라 할지라도 일격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이었다.
당연히 방어 마법을 준비하지도 않았던 마법사가 버틸 수 있을 리는 만무할 터.
하지만 파티창으로 보이는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멀쩡했다.
타악!
“나참, 그 말을 한 사람이 못 피하면 어떻게 합니까?”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로덴이 반응을 못한 리아를 낚아채 구해 낸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놀란 것도 잠시,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리아는 고개를 꾸벅였다.
“죄, 죄송해요…….”
“하핫, 죄송할 건 없고요.”
유쾌하게 웃어 보인 로덴이 그녀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사이 알리사가 발사대 한 발을 사룡의 날개 죽지에 추가로 꽂아 넣었고, 그들에게 서둘러 다가왔다.
“리아 님은 제가 맡을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파앗!
창을 바로 쥔 로덴은 그녀를 맡기고 떠났다.
원래 힐러는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받는 입장이었지만, 그들 파티에서는 오히려 힐러가 후방의 딜러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파티원들의 버프와 체력 상황을 바쁘게 확인하며 관리를 하는 와중에서도, 문제없이 파티원 보호까지 겸할 수 있는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발밑에 새로운 패턴입니다!”
무언가 낌새를 느낀 에일이 외쳤다.
그와 동시에 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푹 솟아났다.
쩌저저적!
파티원들을 노리며 솟아난 커다란 가시들.
사룡이 보인 새로운 패턴이었고, 파티원들은 모두 몸을 던져 피해 냈다.
가시가 나타나기 전에 발밑에 느껴지는 미세한 울림이 있었고, 그것을 감지해 내야 피할 수 있는 패턴이었다.
워낙 발동이 빠르고 징조조차 미묘한 탓에, 대부분의 유저라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죽었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에일을 비롯해 세 명의 파티원은 이야기가 달랐다.
방금 처음 마주하는 패턴임에도 모두 진작 눈치를 챈 뒤, 언제 어디서 가시가 나올 건지도 파악해 냈다.
물론 리아의 경우, 이런 쪽에는 미숙했지만 곁에 있는 알리사의 보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쩌저적!
에일은 여러 차례 발동된 발밑 패턴들을 모두 피해 냈다.
그리고 발사대를 잡아 사룡의 어깨에 작살을 먹였다.
하지만 이전에 발사했던 사슬들이 언제까지나 계속 유지될 수는 없는 법.
쩌엉!
처음에 연결되었던 사슬들이 버티다 못해 하나둘 끊어지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녀석은 더욱 크게 날뛰기 시작했다.
사슬 작살들을 다시 발사해서 놈을 억제해야 했다.
하지만 사룡도 그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콰과과광!
사룡이 날뛰며 좌측 상층의 발사대들이 부서졌다.
무려 용을 상대하는 병기인 만큼, 쉽게 부서질 만한 내구력은 아니었지만 여러 차례 데미지가 누적되면 별수 없었다.
‘발사대가 모두 부서지면 골치 아파진다. 빨리 끝내야 해.’
아무런 제약도 없이 날뛰는 사룡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낮았다.
보다 서두르려는 에일이 다른 하층의 발사대들을 향해 움직였다.
투우웅!
하지만 그때, 사룡이 두 눈을 빛내며 마력을 발산했다.
바닥으로부터 퍼져나간 용의 마력은 이곳 내부를 모두 뒤덮었고, 곧 모든 파티원의 움직임을 정지시켰다.
‘이런……!’
‘당했다.’
로덴도 알리사도 똑같았다.
미리 패턴을 알고 대처해 둔 게 아닌 이상, 도저히 피할 도리가 없는 회피 불가 패턴.
마력에 침식당한 파티원들은 일순간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나 위력적인 광역 속박기인 만큼, 유지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에픽 보스를 상대로 이만한 시간을 붙잡혔다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이었다.
후웅!
에일을 노리고 뻗어져 오는 사룡의 팔.
꼼짝 못 하는 파티원들 중 녀석이 선택한 이는 에일이었고, 날카로운 발톱이 그를 갈기갈기 찢으려 뻗어졌다.
콰드드득!
하나 사룡의 발톱은 바닥만을 갈랐다.
한 층을 대부분 박살 내며 큰 흔적을 남기긴 했지만, 에일을 끝장낼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훌쩍 위로 뛰어올라, 아래를 휩쓴 사룡의 팔을 장검으로 겨누고 있었다.
[굳건한 의지(영웅)]
에일이 조금 전 사용한 상태이상 해제 스킬.
그가 이번에 새로이 얻은 두 가지 액티브 스킬 중 하나로, 속박 상태를 즉시 해제하면서 공격을 피해 뛰어오른 것이다.
콰과과과!
아래로 힘껏 휘둘러진 일섬이 사룡의 팔을 내리찍었다.
분명 단단한 체력과 높은 방어력를 지닌 사룡은 방어 관통력이 높은 공격이나 고화력기를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에일의 경우, 그 두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관통 효과를 지닌 방어 분쇄 패시브, 거기에 더해 일섬이라는 고화력 기술까지.
촤아아악!
사룡의 검붉은 피가 거칠게 뿜어졌다.
녀석의 왼팔이 깔끔하게 잘려나간 것이다.
체력을 꽤나 깎아 둔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절단이었다.
크아아아아!
격분한 사룡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 그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사이, 다른 파티원들에게 걸려 있던 속박이 풀렸다.
콰과과광!
연달아 큰 폭발이 일어나며, 폭음과 연기가 사룡의 거대한 몸집을 삼켰다.
리아가 사용한 파멸의 불씨가 놈에게 정통으로 적중했다.
역시나 엄청난 화력이었다.
패턴으로 인해 캐스팅이 잠시 중단되었음에도, 집중력으로 마저 캐스팅을 그대로 이어간 그녀의 재능,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의 마법 캐스팅과 폭발적인 데미지 딜링.
그녀의 존재는 어림도 없었을 레이드를 가능케 만드는 중이었다.
투웅! 콰악!
그동안 반대편에 선 로덴이 새로운 사슬 작살을 박아 넣었고, 공략은 굉장히 빠른 템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놈의 체력이 상당량 줄어들자, 또다시 새로운 패턴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드드드드!
거칠게 진동하는 땅.
사룡 벨라고스의 체력이 30퍼센트에 도달함으로서 두 번째 페이즈가 발동되었다.
스멀스멀 몰려온 어둠이 상처투성이였던 녀석의 몸을 감쌌다.
그리곤 어둠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사룡은 완전히 뼈만 남은 상태로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키에에에엑!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용족으로 분류되었던 녀석은 이제 완전한 언데드가 되며, 더욱 사악한 기운을 풍겨왔다.
더군다나 레벨도 순식간에 20이 올라 있었다.
녀석은 뼈만 남게 된 앙상한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저건…….”
“미친!”
사룡이 거대한 몸집을 띄우더니 날기 시작했다.
그대로 사슬들을 모두 떨쳐낸 녀석은 주위를 빙빙 돌며 파티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콰아앙!
입에서 쏘아진 검은 화염구가 주변을 폭격했다.
사방이 펑펑 터져 나가며 엉망이 되었고, 에일도 한바탕 폭발 범위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고작 공격 한 번에 아슬아슬하게 남은 체력.
곧바로 들어온 알리사의 치유가 에일의 체력을 다시 채웠다.
하지만 상황이 이래서야 발사대도 소용없었다.
“이대로는 끌어내릴 수가 없어요!”
‘젠장! 다른 방법이…….’
예상치 못한 패턴에 에일은 대처법을 떠올리려 애썼다.
리아도 쉽사리 마법을 날리지 못하고 있었고, 이대로 가면 꼼짝없이 전멸 위기였다.
뭔가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래……!’
찰나의 순간, 공략법을 떠올려 낸 에일이 팔을 저었다.
[사도 특전, ‘공헌도 상점’이 열립니다!]
[사도의 자격으로 지역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검색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보유 공헌도: 31,160]
에일이 공헌도 상점의 창을 열었다.
그동안 착실히 모아 둔 공헌도는 어느새 3만을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중 과감히 5천 포인트를 소모해 스크롤 하나를 구매했다.
엄청난 거금이긴 했지만, 지금은 뭔가를 아낄 때가 아니었다.
파아아앗!
바닥에 깔아 놓은 마법 스크롤에서 빛이 나타났다.
이번 스크롤은 작동하는 데 적잖은 캐스팅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분노에 찬 사룡은 아래에서 발생한 수상쩍은 빛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콰아아아!
검은 브레스가 에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주변에 도와줄 이도 없고, 시간도 더 필요한 상황.
“에일 님!”
“어서 피해요!”
파티원들이 그에게 외쳤다.
스크롤을 포기하고 달아나든가, 브레스에 휘말리든가.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자명했다.
하지만 에일은 양쪽 다 선택하지 않았다.
“후우…….”
그는 양손으로 쥔 장검을 거꾸로 들어, 바닥에 힘껏 내리꽂았다.
그러자 꽂힌 장검을 중심으로 원형의 새하얀 방어막이 펼쳐졌다.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기세로 다가오던 사룡의 브레스는 빛의 방어막에 상쇄되어 사라졌다.
[수호의 방패(유일)]
주변을 보호하는 신성 마법계 방어 스킬.
유일이라는 최상위 등급의 스킬답게, 강력한 브레스조차 한차례는 버틸 만큼 단단한 내구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기다리고 있던 스크롤이 발동되며 새하얀 빛을 발했다.
콰아아아!
위로 솟구쳐 오른 새하얀 빛이 사룡을 관통했다.
방 안을 가득 메울 만큼 강렬한 이펙트, 하지만 녀석에게 들어간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에일이 사용한 스크롤의 정체는 공중 개체를 바닥으로 강제로 끌어내리는 ‘추락’ 마법이었으니까.
[최상급 추락 스크롤 - 133Lv]
키에에엑!
사룡의 몸이 기이하게 비틀리며 날개가 힘을 잃었다.
녀석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무려 최상급 추락 스크롤을 구매한 탓에 5,000포인트를 사용했지만, 에픽 보스에게 통하도록 하려면 이 정도 등급은 쏟아야 했다.
검을 뽑아든 에일은 파티원들을 향해 외쳤다.
“지속 시간은 5분! 그 안에 끝낼 겁니다! 다들 따라오세요.”
에일은 과감하게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바닥층으로 내려섰다.
거대한 사룡이 날뛰며 눈먼 꼬리와 날개가 위협적으로 휘둘러지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케이, 해보죠!”
“리아 님, 뒤쪽을 부탁할게요.”
상황을 파악한 로덴과 알리사는 곧장 그를 뒤따라 아래로 내려섰다.
새로이 생겨난 전환점을 놓칠 그들이 아니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최상급 추방 스크롤 - 133Lv]
[최상급 쇠약 스크롤 - 133Lv]
새로운 스크롤들이 그의 왼손에 쥐였고, 에일은 거침없이 앞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 *
[교단의 적, 신성모독자를 처단하였습니다!]
[‘형벌 선고’에 따라 지정된 형벌을 성공적으로 집행하였습니다. 스킬의 효과로 스탯 보너스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
[여신의 총애 +3.51% (현재 102.96%)]
[빛의 교단 공헌도 +4,500]
[신앙심 스탯 +20]
[광기 스탯 +20]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를 획득하였습니다!]
[에픽 보스 몬스터, ‘사룡 벨라고스’를 처치하였습니다!]
[봉인에서 깨어난 전설 속 악룡을 쓰러뜨렸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엘트리스 전역에 널리 알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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