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지하 세계 (6)
사룡을 목격한 에일과 로덴은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녀석을 발견하긴 했지만, 워낙 깊은 골짜기 아래에 있는 탓에 그대로 절벽을 통해 내려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놈이 있는 위치만큼은 확실히 파악되었다.
이제 확실히 향해야 할 방향이 정해진 셈.
그들이 좋은 소식을 가져온 사이, 어느덧 완성된 요리들이 멋진 비주얼을 뽐내며 차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어디선가 고약한 악취가 풍겨왔다.
“음? 이게 무슨 냄새지……?”
에일을 비롯한 일행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위함이었고, 그들의 시선은 곧 모닥불에 얹어진 냄비로 향했다.
넘칠 듯 가득 차올라 있는 보랏빛 액체.
부글거리면서 악취를 뿜는 것이, 거의 죽음을 내뿜고 있는 듯한 비주얼이었다.
“요리… 인가?”
“세상에, 독이 돼 버렸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모두가 진땀을 흘렸다.
분명 각종 신선한 식재들을 털어 넣었던 냄비 안이었지만, 막상 나타난 결과물은 이미 지상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리아가 요리하려 했던 음식이 독극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만들어 낸 건 단순한 독도 아니었다.
“이거 효과가 대단한데요? 부가 피해량이 무슨… 이걸 직접 삼켰다간 과장 안 보태고 죽겠어요.”
정보창을 확인한 로덴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효과를 확인하자 그녀가 완성한 무언가는 강력한 피해량을 지닌 맹독이었다.
“분명 멀쩡해 보이는 식재료들뿐이었는데… 이렇게 강력한 독약을 만들어 내다니. 리아 님은 놀라운 레시피를 찾아내는 데 재능이 있네요.”
알리사도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
워로드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독이 존재했고, 비슷한 효과를 지닌 독이라고 해도 만드는 조합법은 천차만별로 나뉘었다.
심지어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다 해도 끓이는 시간이나 재료의 투입 순서 등 효과가 다양하게 나뉘곤 했다.
한데 리아는 본의 아니게 저렴한 재료값으로 최상의 조합을 찾아 상위 독을 제조해 낸 것이다.
우연이 따랐다고는 하나,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저주받은 재능으로 인해, 쏟은 정성이 무색하도록 만들어진 끔찍한 결과물.
이 처참한 심정에 리아는 이미 반쯤 울먹거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이거 제가 좀 써도 될까요? 안 그래도 쓸 만한 독을 좀 구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 네… 가져가세요.”
리이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덴은 신나서 창날에 독을 발랐다.
오로지 패시브 위주의 플레이를 벌이는 로덴이었으니, 변수 창출에 도움을 주는 무기독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남은 독까지 싹싹 포션병에 채워,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두 명의 고인물이 다른 쪽으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 에일은 그녀에게 위로를 건넸다.
“리아 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요리하다 보면 독도 만들고, 뭐 그럴 수도 있죠. 아마도…….”
“저, 정말요?”
아니,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었고, 에일은 그녀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 * *
“여기가 맞는 것 같죠?”
“예, 맞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목적지의 앞까지 돌파한 에일의 파티가 자리에 멈춰 섰다.
구체적인 목적지의 위치를 알아내자,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룡이 잠들어 있을 마지막 방으로 통하는 입구가 그들의 앞에 놓여 있었다.
입구는 두터운 석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혹시나 해서 힘껏 밀어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이걸 써야 하네.’
에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인벤토리에서 퀘스트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이번 퀘스트를 의뢰한 노움들에게 건네받았던 ‘회색 열쇠’였다.
과거 엘트리스를 휩쓸던 사룡을 여러 종족이 힘을 모아 이곳에 봉인시켰고, 그 탓에 강력한 마법으로 출입이 막혀 있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무덤 밖을 관리하는 노움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들어서면 안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엘트리스에 남은 마지막 오염의 근원이 사룡이 잠든 바로 이곳에 생겨났다는 게 문제였다.
가만히 두면 대지 오염이 점점 퍼져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이었고, 오염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녀석이 오랜 봉인으로 인해 굉장히 쇠약해진 상태라는 것.
그랬기에 그들이 에일에게 의뢰를 맡긴 것이었다.
드드드득!
굳게 닫혔던 고대의 문이 열렸다.
양옆으로 비켜선 석문 사이로는 넓게 펼쳐진 중심부와 그를 둥글게 둘러싼 여러 층이 보였다.
마치 콜로세움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모습.
높이도 너비도, 실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공간이었다.
위쪽으로는 대부분 막혀 있었지만, 한쪽엔 에일이 전에 내려다봤던 대로 깊은 골짜기와 연결되어 있어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저기 있군…….’
에일이 오염의 근원을 찾았다.
오염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고,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선 사령석 파편을 통해 그를 정화해야 했다.
하지만 그리로 향하는 길목엔 무엇보다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녀석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쿠구구궁!
꿈틀이며 일어나는 거체.
잠들어 있던 사룡이 눈을 번쩍 뜨며 깨어났다.
“잠깐, 에픽 보스……?”
사룡 벨라고스.
정보창으로 보이는 녀석의 이름이 짙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말은 즉, 녀석이 에픽 보스 몬스터라는 것.
에픽 보스 몬스터라면 지금껏 마주쳐 왔던 일반 보스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경우로, 유저들 사이에선 공격대 단위가 투입되어야 하는 대단위 필드 보스들과 동급의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가장 큰 이유는 희소성.
에픽 보스라면 절대 리젠도 되지 않는 탓에 어지간해서는 마주치기 어려웠고, 공략의 보상 또한 굉장히 높기로 유명했다.
물론 그런 만큼 다른 보스에 비해 난이도와 패턴이 높은 건 당연한 일.
어찌 되었건 이번이 에일의 첫 번째 에픽 보스 레이드였다.
[죄악의 존재, 신성모독자를 발견했습니다!]
[엘트리스를 혼돈에 빠뜨렸던 신성모독자, ‘사룡 벨라고스’와 마주하였습니다. 반드시 녀석이 죗값을 치르게 만드십시오!]
[임무에 실패할 경우 커다란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더욱이 녀석은 신성모독자로 지정된 상대.
무조건 실패하는 일 없이 해치워야 했다.
쩌엉!
사룡을 단단히 묶고 있던 쇠사슬들이 하나씩 튕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웅크리고 있던 사룡의 몸이 점점 일어났다.
“으아…….”
녀석의 거체에 압도된 리아는 멍하니 놈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전투가 시작된 것도 아니었지만, 단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선 이들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서둘러 내부의 구조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보스에게 시선을 빼앗길 시간 따위는 없었다.
물론 리아는 멍하니 용의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긴 했지만, 에일을 포함한 세 명의 파티원은 레이드에 앞서 주변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해 냈다.
먼 과거에 대전투를 치러 끝내 봉인했다던 사룡.
녀석을 봉인시킬 때 사용되었던 병기들이 층층이 놓여 있었다.
사슬 작살 발사대.
거대한 발리스타 같은 생김새의 병기들은 대부분 파손되지 않아 아직도 작동이 가능해 보였다.
쇠사슬에 묶여 있던 거대한 사룡을 가운데 놓고, 층들이 사방을 둘러싼 형태였다.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지는 불 보듯 뻔했다.
“로덴 님!”
“알겠습니다!”
모습을 보자마자 에일과 로덴은 곧바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서로 시선을 주고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크어어어!
그사이 사룡이 모든 사슬을 끊어냈고, 거친 포효를 내뱉었다.
녀석은 거대한 몸집을 모두 일으키더니 시야를 가득 가릴 만큼 거대한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콰과과광!
녀석이 팔을 한 번 휘두르자, 전방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어서 올라오세요!”
“히익… 네!”
알리사가 리아의 팔을 붙잡아 그녀를 위로 끌어올렸다.
양쪽으로 흩어졌던 에일과 로덴도 어느새 도착해 하층 위로 올라섰다.
멍하니 사룡이 있는 바닥 층에 있다간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 한들,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쿠구구궁!
사룡은 엄청나게 빠른 몸놀림을 보이며 주변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고, 파티원들은 그 여파만으로도 몸을 날려가며 공격을 피해야 했다.
“크윽, 도저히 준비를 할 수가…….”
흔들리는 바닥 탓에 리아는 꼼짝없이 바닥에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리아라 해도, 녀석이 너무 날뛰어대는 통에 제대로 된 마법을 캐스팅하기도 힘들었다.
원거리 클래스조차 딜을 넣기 어려운 상황.
이대로는 피하기만 하다가 레이드가 끝나버릴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 좌측 상층의 발사대를 잡은 에일이 준비를 끝냈다.
촤르르륵!
콰악!
목덜미에 박힌 거대한 사슬 작살.
그것이 사룡의 단단한 비늘을 뚫고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
느껴지는 고통에 사룡이 미친 듯 포효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의 목덜미에 고정된 작살은 쉽게 빠지지 않았고, 연결되어 있는 사슬과 발사대 또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탓에 녀석은 더욱 날뛰려고 했음에도, 전에 비해선 훨씬 제한된 움직임을 보였다.
‘역시 효과가 있다!’
에픽 보스를 공략하기 위해선 주변 오브젝트의 활용이 필수적이었다.
각 층마다 놓인 발사대는 잠시 동안 녀석을 묶어 놓을 용도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었고,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어 보였다.
물론 유의미한 데미지를 입히거나,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구 날뛰지 못하게 어느 정도 저지하는 정도일 뿐.
녀석은 여전히 사슬 하나를 달고 있는 상태에서 팔을 뻗거나, 꼬리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위협적인 공격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사슬의 유무에 따라 느껴지는 차이가 매우 컸다.
“계속 꽂아 넣어야 해요!”
“이번엔 제가 갑니다!”
쩌엉!
이번엔 로덴이 발사한 작살이 사룡의 옆구리에 꽂혔다.
물론 두세 개의 발사대만으로 저 거대한 괴물을 붙잡아 두기엔 어림도 없는 일.
에일과 로덴, 거기에 알리사까지, 각 층을 돌아다니며 발사대를 잡았다.
사룡에게 꽂히는 작살은 하나둘 늘어갔고, 사방에서 녀석을 붙잡은 사슬들이 팽팽히 당겨졌다.
크게 둔화된 사룡의 움직임.
덕분에 여유가 생긴 리아는 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콰아아앙!
거친 폭발이 사룡의 몸을 감쌌다.
리아의 강력한 고화력 마법이 연달아 꽂히며, 사룡의 막대한 체력도 조금씩 줄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사룡의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가 달했다.
녀석은 거칠게 포효하더니,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츠츠츠츳!
쩍 벌어진 입 사이로 어두운 숨결의 기운이 한데 모였다.
용과 숨결.
어떤 패턴인지는 뻔했다.
“브레스! 피해요! 구석으로!!”
리아가 동료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중요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룡의 브레스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