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28화 (128/227)

128화 지하 세계 (2)

“그쪽 엇나가지 않게 조심하고! 앞으로 더, 더, 더. 좋아, 거기서 조금만 오른쪽으로!”

쿠웅!

완성된 동상이 광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찬란한 빛을 뒤로한, 갑옷 차림의 아름다운 여신이 장검을 찬 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

빛과 정의, 광기의 여신인 루의 모습을 딴 거대한 동상이었다.

“에일 님!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보이십니까?”

노움들이 에일을 향해 마구 떠들었다.

들뜬 심정을 감출 수 없는 듯한 모습이었고, 막 도시에 복귀한 참이던 에일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미리 이야기로 들었던 것보다 루의 동상이 굉장한 크기와 모습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

광장의 모습도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노움들.

인파가 어찌나 많은지, 광장을 가득 채우고도 거리와 지붕에 늘어서 있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황홀한 자태입니다! 강인하고도 아름다우신 저 모습… 드디어 진실된 신과 함께라니, 당장 저의 목을 매도 여한이 없습니다.”

“아아, 여신님!”

노움들이 눈물까지 주르륵 떨어뜨리며 경배를 올렸다.

찬양일색인 그 모습에 에일조차 땀을 삐질 흘렸다.

“모, 모두들 좋은 마음가짐이군요.”

이곳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도시가 광신도들로 가득해진 모습이었다.

쉽게 남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편에, 고집까지 센 탓에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신념을 바꾸지 않으려는 성향까지.

그야말로 빛을 따르는 광신도가 되기에 누구보다 적합한 이들이었다.

‘일이 이렇게나 잘 풀리다니. 다행이야.’

에일이 저번의 일을 회상했다.

처음 노움의 퀘스트를 받게 된 그는 곧장 사악한 몬스터로 가득한 오염 지대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곤 오염 지대의 중심에 서, 사령석 파편 사용해 땅을 정화시켰다.

땅을 정화시킨 뒤, 그 사실을 알리자 노움들은 당연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에일이야 네슈아에게서 처음 알게 된 방법이었지만, 이곳 엘트리스에서는 오로지 그밖에 모르는 정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에일은 루의 기적이자 구원이라며 그들을 꿰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던 순간에 나타난 구원의 손길.

눈앞에 일어난 기적 앞에 노움들은 간절한 기도를 무시했던 기존의 신을 버리고, 루를 따르는 신자들이 되었다.

이것이 노움들의 도시 전체가 빛의 신앙을 믿게 된 경위.

그리고 일은 아직도 척척 진행 중이었다.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중심가에 건설 중인 두 번째 신전도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엘트리스의 다른 도시들에도 소식을 전하는 중입니다. 저희 종족의 도시는 물론, 다른 자들도 빛의 교단에 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남쪽 평야의 붉은 오크들도 그들이 숭배하던 신인 구크와 무크를 버리고 여신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지금쯤이면 영향력이 엄청 늘어났겠는데.’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교단의 신도들.

일곱 교단이 경쟁하며 나누고 있는 지상과 달리, 엘트리스는 지금 온통 빛의 교리로 물들고 있었다.

이로 인해 루가 얻게 될 영향력이 엄청날 것은 당연한 일.

물론 지금 이 일들이 단순히 여신이 얻을 영향력에서 그치지는 않았다.

“저희 전사들 중 대부분이 빛의 기사단으로 전향하는 중입니다.”

“에일 님을 따라 교단의 이단심판관이 되기 위해 수행에 나선 이들도 많습니다.”

“그분의 검으로써 죽는 것은 영광이니까요!”

종족 전체가 신도가 되고 있는 덕에 전투원들도 모조리 교단을 따르며 검을 들기를 원했다.

그 덕에 교단의 직접적인 전투 전력까지 급상승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 엘트리스 지역은 아무리 약한 사냥터나 종족이라 해도 대부분 80레벨은 넘어섰다.

저레벨대의 초보자가 들를 일이 없는 지역인 탓.

노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이상의 고레벨 개체들도 있는 모양이었고, 모두가 즉시 상당한 힘을 가진 전력이 되어 줄 수 있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여신님께서 무척이나 기뻐하실 겁니다.”

에일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몸을 바싹 낮추며 에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사하다니요……! 에일 님도 저희 종족… 아니, 엘트리스의 은인이십니다.”

주변에 있던 노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여신의 뜻이라고는 하나, 실제로 오염된 땅을 직접 나서 정화한 것은 에일이었다.

그 탓에 그들은 에일을 여신이 직접 내려보낸 화신, 혹은 지상의 구원자쯤으로 보고 있었다.

“은인이라니요. 아직 모두 끝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에일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결사단이 줄곧 사령석을 이용해 행패를 부리고 다니던 탓에, 오염이 생겨난 땅은 다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았다.

그동안 계속 에일이 오염을 정화하고 다녔음에도, 아직 많은 곳이 그대로 오염된 채 남아 있었다.

‘그동안 챙겨둔 파편이 넉넉하기에 망정이지.’

오염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사령석 파편.

그것이 없으면 엘트리스의 정화가 불가능했고, 사용할 때마다 파편에 담겨 있는 마력이 줄어들어 횟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사령석 파편이 몇 번 사용하고 끝나는 일회용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꽤나 여러 차례 사용이 가능한 덕에, 미리 확보해 둔 파편의 숫자로 지하의 남은 오염된 땅들도 정화할 수 있어 보였다.

[레벨: 85]

‘으음, 어찌 보면 오염된 땅들이 많아서 나에겐 더 좋은 걸지도 모르겠네. 이 정도 추세라면 굉장히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겠어.’

레벨을 확인한 에일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그는 오염된 땅들을 정화할 때마다 주민들에게 커다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보상 아이템과 스킬북, 막대한 경험치까지 획득하며 나아간 덕에 벌써 85레벨에 달했다.

종족의 생존 여부가 걸렸던 일인 만큼, 퀘스트의 보상도 자연히 두둑했다.

“그럼 이만 출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다시 움직이신다니……! 피곤하실 텐데 조금 더 쉬시는 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에일을 노움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엘트리스의 미래가 달린 일이고,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오염된 대지는 늘어나려 하고 있을 테니까요.”

“크흑, 이럴 수가…….”

“에일 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노움들을 뒤로한 채, 에일은 다시 도시를 나섰다.

이 기세로 지하 세계 전체에 루의 신앙을 모조리 퍼뜨릴 생각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오염된 대지의 정화 작업을 진행하며 퀘스트를 해결해 나갔다.

다만 그 과정이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오염이 생겨나는 위치가 정해진 규칙 없이 제각각이라는 게 골치 아팠다.

아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평원처럼 쉬운 곳이 있는가 하면, 간혹 접근이 어려운 곳도 많았다.

고레벨의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는 던전, 혹은 절벽 끝이나 깊은 강바닥 깊숙이에 위치해 있으면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가파른 절벽을 오르다 아래로 떨어져 죽을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꿋꿋이 퀘스트를 진행한 에일은 처음 들렀던 도시 주변을 모두 정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곧장 다음 지역으로 이동해 나가며 퀘스트를 반복했다.

모두에게 빛의 교리를 설파하며, 오염을 제거하는 일.

그러는 사이, 에일은 교단과 함께 무섭도록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 * *

끽끽끽!

엘트리스의 깊은 땅속.

거대하고 복잡한 굴의 내부엔 엄청난 숫자의 쥐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쥐들은 아니었다.

래터.

지하의 거주자들 중 하나인 쥐 인간들이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놈들은 무려 140레벨대의 강력한 개체였다.

거기다 엄청난 번식력으로 인한 개체수 탓에 엘트리스의 모든 도시와 생명체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녀석들도 깊은 땅속에 살고 있는 만큼, 오염 현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엘트리스의 누구보다도 대지 오염에 민감하고, 많은 피해를 입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갔지.’

래터들이 극도의 위협을 느끼던 찰나에, 에일은 직접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몬스터와는 달리, 래터들은 최소한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지능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에일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그들에게 신의 기적을 선보였다.

“정말이다! 정말이야!”

“오염이 사라졌어! 인간이 우리를 구했다!”

“글쎄 세 번이나 말했잖아. 내가 아니라 여신께서 너흴 구원하신 거다.”

“그래, 그래! 루가 우리를 구했다!”

래터들이 신난 듯 펄쩍 펄쩍 뛰었다.

그중엔 서로 찍찍거리며 부둥켜안은 이들도 있었다.

처음엔 징그럽게만 느껴졌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귀엽게도 보였다.

행동도 그렇고, 말투가 어눌한 게 꼭 어린애들 같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짚어 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래터들은 몬스터와 NPC를 가리지 않고, 엘트리스의 다른 종족들을 종종 습격하던 약탈자였다.

사실상 절반쯤 몬스터나 다름없던 녀석들이었으니, 확실히 말해 둬야 했다.

“잘 명심해 둬. 이것으로 위기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오염을 정화시킨 건 여신의 가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가호가 유지되기 위해선 너희 모두가 간절히 여신님을 믿는 수밖에 없어. 만약 원래의 신으로 돌아갔다간 오염보다 더 한 신벌을 받을 거다.”

“물론, 물론! 어리석었던 옛 신, 털 난 쥐는 우리들을 버렸다. 이제 놈이 우리에게 잊힐 차례다!”

“끽끽끽끽!”

기쁨에 취한 래터들이 짧은 팔로 다 같이 만세를 벌였다.

엘트리스의 최대 세력이나 다름없는 래터들까지 개종시켰으니, 엄청난 성과를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래터들이 공격적이긴 했지만, 목숨도 기꺼이 바칠 만큼 신에 대한 신앙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새롭게 신이 바뀌게 되더라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런 노움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잘 외워서 다른 녀석들에게 전해.”

“그래, 그래! 알았다!”

“끽끽!”

래터들은 좋지 않은 머리를 열심히 굴려 가며, 교단의 규율을 익혀 나갔다.

그들에게 성서를 건네준 에일은 믿음에 필요한 내용들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자, 여기 여신의 정의에 대해선 반드시 잘 이해해 두도록 해.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이들은 결국 모두 이단이 되어 버리고, 우리는 여신의 대행자로서 형벌을 집행하는 거다.”

“형벌! 이단을 불태운다! 이게 아주 마음에 든다!”

“나는 목을 자르는 것도 좋다! 끽끽!”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