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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27화 (127/227)

127화 지하 세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어…….’

에일이 반쯤 넋이 나간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다란 절벽 위에서 보았을 때, 가장 가까웠던 지하 도시를 향해 걷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곳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그동안 놓쳤던 정보라도 있었던 건가 싶어, 정보 사이트들을 탈탈 털어 봤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지역.

이곳과 연관된 조그만 단서조차 아직 유저들 사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었다.

‘던전이나 마을도 아니고, 지역 단위를 통째로 발견하다니.’

여러 도시와 마을들이 흩어져 있던 모습.

물론 에스마이어를 비롯해 지상에 위치한 14개의 거대한 지역들에 비하면, 이곳은 한참이나 작았다.

하지만 이 정도 크기만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에 펼쳐진 또 다른 세계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지나친 사냥터들은 80에서 120쯤 되었지. 저 멀리까지 모두 비슷한 레벨대의 지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뿐이라 해도 엄청난 발견이야.’

도시와 마을이 존재하듯, 사냥터와 몬스터들 역시 존재했다.

당장은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던전들도 있을 것이었고, 어쩌면 새로운 이종족들이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곳에 자리 잡은 걸로 보아, 평범한 인간들은 아닐 것 같은데.’

태양의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 세계.

도시와 마을들이 있다고는 해도, 그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몇몇 수인족들은 지하에 살기도 한다던데……. 아니, 아무래도 드워프들일까?’

걷는 동안 에일이 차근차근 추측해 나갔다.

일단, 몬스터들이나 낮은 지능의 종족일 가능성은 없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도시의 규모로 보아, 그런 녀석들이 모여서 일궈 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거기에 외부를 두른 성곽의 모습 또한 어지간한 인간의 성채와 맞먹을 정도.

하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어느 정도 도시에 가까워지자 멀찍이서 드나들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 노움이었군…….”

노움이라면 키가 작은 난쟁이 종족 중 하나로, 지상에선 거의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희소한 종족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정이 다른지, 아예 대규모로 도시를 이루고 살 만큼 많이 모여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에일이 성문에 다가서자 경비를 서고 있던 노움이 뛰어왔다.

그는 위협적으로 창을 치켜 올렸지만, 정작 창날은 에일의 턱밑에도 닿지 못했다.

“대체 뭐지? 이렇게 생긴 녀석은 처음 보는데. 몬스터도 아닌 것 같고…….”

“인간을 아예 모르는 건가?”

“인간? 네가 인간이라고? 그건 말도 안 돼. 지상의 생명체가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야?”

조그만 노움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나마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는 모양이었다.

“우연히 아래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했거든.”

“지금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으음… 조금 무리일까?”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럴싸한 사연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우연히 아래로 향하는 통로가 발견되었고, 에일은 퀘스트를 통해 그 사실을 접했을 뿐이었다.

“인간에 대해서라면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거짓과 속임수에 능하다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에일이 난처함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유저들이야 물론 말할 필요도 없었고, 기본적으로 영악한 워로드의 NPC들인 만큼 인간 종족에 대한 인식이 틀린 건 없었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움들이 다소 순진한 면도 있었다.

노움들은 고집이 센 편이긴 했지만, 남을 속이려 들지도 않고, 은근히 타인의 말을 잘 믿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 성격 탓에 영악한 인간들에겐 손쉬운 사기 대상이 되어 버리곤 했다.

물론 그건 지상에서의 일이었고, 눈앞의 경비병 노움이 알 리는 없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믿어 줄 생각인데?”

“아니, 인간이라는 건 믿어 주겠어. 너 같은 생김새를 가진 녀석은 엘트리스에서 본 적이 없거든.”

“엘트리스? 도시의 이름인가?”

“아니, 이 세계의 이름이지.”

지하 세계, 엘트리스.

에일이 발을 들인 세상의 명칭이었다.

“그렇군……. 뭐, 그러면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거지?”

“잠깐!”

노움이 창을 세워 에일을 막아섰다.

그를 지나치려던 에일은 멈칫해 노움을 내려다봤다.

“이번엔 왜 그래?”

“네가 인간이라는 것과 통행 여부는 아무 관계도 없어. 원칙상 수상쩍은 녀석은 출입 불가라서 말이지.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더더욱.”

“요즘 같은 때… 라고?”

에일은 노움의 말에서 무언가를 냄새를 맡았고, 그에게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혹시 이 주변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주변이 아니야. 엘트리스 전역에서 난리도 아니지.”

“조금 더 말해 봐.”

“뭐, 좋아. 너도 이곳에 내려온 이상 조심해야 할 테니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는 아닌데… 얼마 전부터 엘트리스의 땅들이 심하게 오염되기 시작했어. 처음엔 한 곳에서 시작됐지만, 서서히 늘어나더니 이젠 세기도 버거울 지경이야. 검게 물든 대지에선 썩은 내가 진동하고, 나중에는 사악한 몬스터들까지 생겨나더군. 모두가 나서 조사를 해 봤지만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어. 다음 오염 현상이 나타날 곳조차 예상할 수 없었지.”

“오염……?”

뜻밖의 소식에 에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결사단이 사령석을 통해 벌이고 있는 대지 오염과 똑같은 현상.

처음 통로가 발견되었던 이유도 오염 현상이 심해져 지반이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곳 지하 세계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염되고 있는 땅 아래에 자리 잡은 세계였으니, 직격으로 피해를 입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노움의 말을 하나둘 들을수록,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지 골치 아픈 일을 넘어선, 생존의 여부까지도 걸린 문제.

“만약 지금 같은 추세로 오염된 지역이 계속 늘어나다간 모두가 죽어 버릴 거야. 몇 년 버티지도 못하겠지. 한번 오염된 땅은 정화가 불가능하니까, 주변 땅을 좀먹으며 끝없이 늘어나는 거라고.”

“잠깐, 오염된 땅의 정화가 안 된다고?”

“그래, 전혀 안 돼!”

노움이 답답한 듯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금세 축 처진 기운으로 말을 이었다.

“주술사들은 손도 댈 수 없었고, 몬스터들은 쓰러뜨려도 끝없이 생겨나. 신에게도 제물을 바치며 빌어도 소용없었어. 오염된 땅은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믿고 있던 신에게까지 버림받은 거지.”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에일은 느닷없이 한쪽 무릎을 꿇어 시선을 맞추었고, 침울한 노움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군. 내가 어째서 이 땅에 내려오게 됐는지 잘 알겠어.”

“무… 무슨 짓이야?”

“너희의 고민, 내가 해결해 주겠다.”

에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염된 땅을 정화시켜 준다는 이야기.

하지만 당연하게도 노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 녀석이… 그런 헛소리를 믿을 것 같아? 지금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수작부리는 거지?”

“전혀. 나라면 오염된 땅을 정화시킬 수 있어.”

“하! 그동안 수많은 전사와 주술사들이 나서도 모두 빈손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너 혼자 그걸 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나는 신이 보낸 사도니까.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서 말이지.”

“구, 구원? 우리의 신이?”

“아니, 녀석은 기만으로 꾸며진 거짓된 신일 뿐. 신도의 기도를 외면하는 이가 어떻게 신일 수 있겠어? 그런 놈은 신이 될 자격도 없지.”

“그렇다면 누굴 말하는 거야?”

“빛의 여신, 루. 그분의 자비가 이 땅에 닿았다.”

벌떡 일어난 에일이 짤막한 기도를 올렸다.

다른 이가 보기엔 누가 뭐라 해도 신실된 신앙인이자, 훌륭한 광신도로서의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당황한 노움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난생처음 보는 종족이 말하는, 들어본 적 없는 여신.

여전히 미덥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에일의 태도에 노움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그들이라 해도 다를 바 없었고, 에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오염된 대지를 정화시키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만들어 주겠다. 대신 내가 만약 신의 기적을 보여 준다면, 너희도 그에 맞는 믿음을 가져야 할 거야.”

“그… 그래, 좋아! 땅을 다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신이든 인간이든 누구라도 따르겠어. 하지만 만약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널 즉시 세상의 끝 벼랑 너머로 추방시킬 거라고!”

“그야 얼마든지.”

* * *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그 한가운데에 찬란한 빛이 서려 있었다.

“흐암…….”

빛의 여신, 루가 따분하게 하품했다.

현신했을 때와는 달리 정돈되지 않아 너저분한 머리칼이었지만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그녀는 계속해서 워로드의 세상 속 이곳저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사용하며 개입할 수는 없었기에, 마치 직접 말을 움직일 수 없는 체스라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에는 다소 흐릿한 시야 속에서 지켜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신격이라고 한들, 세상의 모든 일들을 파악할 수 없도록 걸려진 제약 중 하나.

단, 직접 신격과 계약이 맺어져 있는 사도의 경우, 조금 더 선명하고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것이 신격이 사도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에일을 떠올렸다.

한 명의 활약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누구보다 잘해 주고 있는 뛰어난 플레이어. 하지만 에일은 아직 더 성장을 해 줘야 했다.

지금 그녀의 신경은 빛의 교단 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황혼회와의 전면전 쪽에 조금 더 쏠려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영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영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

느닷없이 폭증하고 있는 영향력.

당황한 루가 흠칫 물러섰다.

이만한 영향력을 벌어들일 만한 사건이라면 진작에 미리 파악해 두고 있어야 했지만, 지금으로선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하던 그녀는 반사적으로 에일이 있는 장소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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