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23화 (123/227)

123화 투기장

에스마이어 지역의 최대 도시, 메디아.

중심 지역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에일은 그 사이를 뚫고 거리를 가로질렀다.

도시에 도착한 뒤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투기장.

[‘메디아’의 투기장에 진입하였습니다.]

- 매칭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정식 결투가 아닌 유저 간 PVP는 모두 금지됩니다.

- 다수 아이템의 사용에 제한이 생깁니다.

커다란 투기장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대도시의 중심 거리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워로드에서 찾아와 보기는 처음인데 말이야…….’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에일이 즐겁게 바라봤다.

투기장, 유저들 간의 결투를 위해 대도시마다 마련되어 있는 대표적인 시설이었다.

유저들이 전력을 다해 싸운다는 건 같았지만, 이렇게 투기장을 찾는 것과 필드에서 만나 서로를 PK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곳에서라면 상대의 체력을 0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들, 결투가 끝나면 아무런 사망 페널티가 없이 회복이 가능했다.

서로 원한을 품을 일 없이, 정당하고 깔끔하게 PVP를 즐기는 가장 건전한 방법이었다.

단, 투기장 컨텐츠가 가장 건전하다고 한들, 모두의 관심을 끌기는 무리였다.

PK를 벌이는 동기 중 가장 큰 것은 상대가 가진 아이템의 약탈 혹은 세력 간 다툼이었고,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결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투기장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고, 그 포인트를 모아 투기장에서만 존재하는 전용 상점의 아이템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에일이 이곳을 찾은 이유 또한 거기에 있었다.

특별 상점에서 취급하는 수많은 품목 중에 이번 퀘스트의 목적인 ‘파쇄의 인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포인트를 모아서 구매해 버리면 되는 거지.’

결투를 통해 포인트를 모아서 아이템을 구매한다.

지금 에일의 입장으로선 파쇄의 인장을 얻는 데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존재했다.

바로 파쇄의 인장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가 굉장히 크다는 것.

지불해야 하는 포인트가 높은 탓에, 그만한 보상 포인트를 모으려면 상당히 많은 승리를 거두어야 했다.

투기장에서조차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승만 계속 이어간다면 훨씬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

워로드 투기장이 가지는 큰 특징.

결투를 연달아 승리할 경우, 상당한 양의 연승 보너스를 준다는 것이다.

거기다 중간에 끊기지 않고 더 많은 연승을 이어갈수록 추가되는 보상은 더더욱 커진다.

‘중간에 한 번도 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필요한 승리는 30번. 어렵긴 하겠지만 불가능할 건 없지.’

[명예 점수: 미배치(1,200점)]

[투기장 전적: 0승 0패(승률 0%)]

[투기장 포인트: 0]

에일이 창을 띄워 정보를 확인했다.

워로드의 투기장이라면 들어와 본 경험도 없던 그였으니, 아무런 전적도 포인트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1,200점이라…….’

가장 위에 적혀 있는 ‘명예 점수’라는 항목에 에일의 눈이 갔다.

투기장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점수였지만, 보상 격으로 여러 아이템들을 구매할 수 있는 포인트와는 많이 달랐다.

명예 점수란 투기장 컨텐츠에 참여한 해당 플레이어의 수준을 알리는 지표로, 점수가 높을수록 더욱더 뛰어난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결투의 승패에 따라 명예 점수가 오르내리고, 결투의 상대방이 매칭되는 것 또한 이 점수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사실상 명예 점수는 PVP에 발을 들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부 길드나 파티에서는 아예 이 명예 점수를 기준으로 사람을 받는다고도 하니, 실력을 파악하는 데 있어 상당한 신뢰를 받는 지표였다.

‘30연승이면 대략… 1,700점쯤 되려나.’

워로드 투기장의 점수 체계에서 시작 기준은 1,200점.

지금 에일의 정보창에 표기되어 있는 것과 같았다.

거기서 더욱 점수를 올려 1,300점대에 진입했다면 꽤나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를 넘어 1,500점을 달성한다면, 어딜 가도 인정받을 만한 상위권의 고수격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1,700점.

상위 1퍼센트 이내에 들었다는 기준이자, 명실상부한 투기장 최상위권 유저의 상징이었다.

만약 에일이 한 번도 패하지 않고 30연승을 이룰 수 있다면, 막대한 연승 보너스 덕에 이 1,700점대의 진입을 노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천상계라고도 불리는 점수대가 존재했고, 랭커들을 포함한 괴물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었다.

지금 에일의 입장에서 노리기엔 여러모로 무리인 구간이었다.

‘이거… 한 번에 1,700점을 달성하면 괜찮은 영상이 나오겠는데?’

마침 에일은 영상 제작에 사용할 새로운 컨텐츠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만약 한 번에 최상위권의 상징인 1,700점을 달성해 버린다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번도 지지 않고 여러 차례 연승을 이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에일의 레벨은 80.

어느 정도 점수대가 올라간다면 맞설 유저들에 비해 한참 부족할 게 뻔했다.

‘최대한 레벨을 올리고는 왔지만, 아직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어.’

실력을 가리기 위한 목적의 투기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레벨 차이에 따른 보정이 주어진다.

바깥에서의 경우처럼 레벨만으로 압도해 버리면 점수의 의미가 없으니,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완전히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각 플레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 개수의 차이로 인해, 여전히 레벨은 투기장 내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80레벨인 에일이 가지고 있는 습득 스킬은 8개, 그에 반해 120레벨 유저와 만나게 된다면 상대는 12개의 추가 습득 스킬을 가진 채 싸움에 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80레벨은 찍고 왔으니 괜찮겠지.’

에일은 저번에 얻었던 스킬북들을 사용해 스킬 두 개를 추가로 배워 왔다.

곧 레벨 보정을 받을 장비 아이템들의 등급은 전체로 따져 봐도 굉장히 좋은 편이었고, 장비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 없었다.

이제 나머지는 실력으로 메꿔야 하는 부분들이었다.

“43번 결투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건승을 빕니다!”

안내인에게 찾아간 에일은 비어 있는 경기장을 배정받았다.

배정받은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에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옛날 생각나네……. 예전에 다른 게임을 할 때는 투기장에 살다시피 했었는데 말이야.’

과거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그는 한때 투기장 컨텐츠에 깊게 빠진 적이 있었다.

결투장이든 비무 대회든 게임마다 이름이야 다양했지만, 일단 한 번 발을 들인 후에는 랭킹 1위에 한 번쯤은 이름을 올렸었다.

그 덕에 취미 삼아 영상도 몇 번 올리며 제법 유명세도 떨쳤던 것이다.

물론 학생 시절 시간의 제약과 투기장이 아닌 다른 컨텐츠에도 빠져 있던 에일이었기에 순위를 오래 유지하는 것까지는 무리였다.

[결투에 참여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공적으로 매칭 시스템이 연결되었습니다. 레이팅에 알맞는 상대가 소환될 것입니다! (0승 0패, 1,200점)]

[매칭이 진행되기에 앞서 경기 방식을 선택해 주십시오.]

경기장에 도착한 에일의 앞에 떠오른 메시지.

1 대 1 결투, 2 대 2 태그 매치, 4 대 4 대장전, 개인전 난투 등등.

수많은 결투 방식이 존재했고, 에일은 주저 없이 일대일 결투를 택했다.

대장전같이 다수의 유저가 참가할수록 점수가 조금 더 주어지긴 했다.

하지만 여럿이 참여하는 만큼, 시간이 훨씬 더 걸리고 본인의 실력 말고도 팀원이나 다른 요소로 인해 예측하기 어려운 각종 변수가 많아졌다.

당연히 연승을 이어나가려는 에일의 입장에서는 그리 현명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매칭이 완료되었습니다!]

파앗!

첫 상대가 반대편 자리에 입장했다.

무기를 꺼내든 두 명의 플레이어는 서로를 응시했다.

결투가 시작되기에 앞서, 서로의 전적과 레벨을 비롯해 대략적인 정보는 열람이 가능했다.

‘80레벨……? 꽤 높기는 해도 별건 아니네.’

검을 든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61레벨의 남자는 에일에 비해 레벨이 낮기는 했지만, 그 옆에 적혀 있는 전적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0승 0패, 1,200점.

상대는 투기장에 처음으로 참가한 초짜였다.

몬스터 사냥에만 익숙해 레벨만 높고 PVP엔 어설픈 이들이 많았고, 이곳 투기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이들이 더 쉬운 상대였다.

무엇보다 그는 에일이 누군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띡! 띡! 띡!

시스템 메시지로 결투 시작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치이이익!

결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에일이 사용한 이단 지정 스킬로 인해 남자의 머리 위에 표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남자는 호기롭게 발을 뻗었다.

“간다!”

카아앙!

맞부딪힌 두 자루의 검.

자신감에 찬 남자는 그대로 검을 부딪힌 채 앞으로 밀고 가려 했다.

만약 그에게 약간의 눈썰미가 있었다면,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에일의 장비 상태를 보고서 정면 승부를 피했을 것이다.

무려 유일 등급의 무기.

그리고 영웅 등급의 방어구와 장신구 세트.

투기장의 레벨 조정 효과가 붙는다 해도 등급 자체의 우월함은 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에일에게는 광기와 총애 스탯의 보너스까지 붙어 있는바.

쩌엉!

“무… 무슨?”

힘 싸움에 터무니없이 밀려 버린 남자의 검이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당황할 새도 없이 뻗어진 에일의 검이 수차례 그를 베고 지나갔고, 정확히 제압할 만큼만 퍼부어진 공격에 남자의 체력이 바닥났다.

털썩!

“커헉… 말도 안 돼…….”

남자가 빈사 상태가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압도하며 끝난 싸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결투장 한가운데에 화형대를 소환해 낸 에일은 그를 붙잡았다.

“자, 잠깐! 뭐, 뭐 하는… 으아아악!”

화형대에 묶인 남자가 솟구치는 불꽃에 휩싸였다.

결투에서 눈 깜짝할 새에 져 버린 것만 해도 어안이 벙벙했는데, 갑자기 불꽃까지 코앞에서 아른거리니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죽어갔다.

[‘빛의 심판자, 루’가 즐거운 마음으로 불꽃을 바라봅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100]

완전히 새까맣게 타 버린 남자의 몸.

하지만 남자가 완전히 죽어 쓰러졌음에도 에일의 스탯은 오르지 않고 그대로였다.

‘뭐, 당연한 거지만.’

일단 다짜고짜 불태워 보긴 했지만, 에일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무한히 대결이 가능한 투기장에서 상대를 불태운다고 스탯이 오른다면 버그를 넘어선 치트나 다름이 없었다.

혹시나 화형으로 인한 공격력 버프를 얻을 수 있나 싶어 해 본 것이었는데, 이것도 딱히 주어지진 않았다.

[결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현재 전적: 1승 0패, 1,205점]

가볍게 승리를 챙긴 에일은 무기를 거뒀다.

“다음!”

[매칭이 완료되었습니다!]

파앗!

다음 희생자가 에일의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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