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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20화 (120/227)

120화 신념과 광기의 사이 (5)

카가가각!

단검이 거친 소리를 내며 벽에 기다란 흠집을 냈다.

살벌한 기세의 다크 엘프가 달려들었고, 한차례 몸을 빼낸 에일은 장검을 검지로 가볍게 훑었다.

화르륵!

검신에 피어오른 백색 성화가 타올랐다.

불꽃을 머금은 장검이 크게 휘둘러지며, 다가오는 다크 엘프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녀석은 곧바로 자세를 숙이며 검을 피했고 에일의 복부를 발로 차냈다.

튕겨져 나간 에일은 좁은 골목길의 벽에 부딪혀 자세가 흐트러졌고, 다크 엘프는 그 틈을 노려 단검을 뻗었다.

촤악!

서둘러 역극을 발동한 에일이 뒤를 잡았다.

단검을 피하는 동시에 이루어진 반격.

하지만 에일의 신형이 사라지는 순간, 다크 엘프는 곧바로 몸을 날렸고 그 탓에 장검은 허공만을 갈랐다.

‘역시 쉽지는 않네.’

확실히 틈이 생겼을 때 배후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부족했다.

상대의 움직임이 원체 빠른 데다가, 변수에 대처하는 반응 속도조차 굉장히 빨랐다.

힘과 속도, 전투 센스까지 어지간한 동레벨대 유저를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였고, 20이나 차이 나는 레벨 탓에 에일은 더욱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기세를 타 더욱 몰아붙이는 다크 엘프를 상대로 주르륵 물러서고 있는 에일.

하지만 막상 전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일은 공격을 겨우겨우 막아내면서도 큰 타격은 한 번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쩌엉!

틈을 잡은 순간 휘둘러진 장검, 이번엔 다크 엘프가 강한 충격에 뒤로 주륵 밀려났다.

조금만 더 타격이 강했으면 단검을 놓쳤을 뻔했던 상황.

싸움에 있어서는 에일도 뒤지지 않았다.

레벨 차이로 인한 격차는 광기와 총애 스탯으로 어느 정도 간격이 메워졌고, 뛰어난 장비와 스킬들의 뒷받침까지 있었다.

다만, 전투 중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플레이어만이 아니었다.

[저주의 표식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상대에게서 받는 모든 피해량이 증가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치이이익!

팔을 뻗은 다크 엘프가 그를 가리키자, 에일의 머리 위에 검은 표식이 나타났다.

그동안 이단의 낙인만 찍어 왔지, 남에게서 표식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빠르고 변칙적인 쌍수 단검을 상대하는 중이었는데, 대미지와 치명타 보정까지 겹치니 한층 더 까다로워졌다.

얕은 공격을 적당히 받아내는 것도 신중해져야 하는 상황.

그러나 아직 꺼내들지 않은 수라면 오히려 에일이 더욱 많았다.

쩌엉!

순식간에 대검으로 바뀐 에일의 무기가 엘프를 찍어 눌렀다.

무게를 실은 일격, 갑자기 뒤바뀐 무기에 당황한 다크 엘프가 훌쩍 물러났다.

“무슨……?”

하지만 에일은 상대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진 기다란 창이 다크 엘프의 어깨를 꿰뚫었다.

단번에 바뀐 무기의 리치로 인해, 반응이 늦어져 버린 탓에 미처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적중된 창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특수 효과 ‘쇠약’이 발동되었습니다!]

적의 공격력을 감소시키는 상태이상 쇠약.

창의 효과가 느껴지자 한껏 인상을 찌푸린 다크 엘프는 상처에 또다시 당황하고 물러나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택했다.

다소 높이 찔러진 창의 아래로 파고들어, 에일의 빈틈을 노려왔다.

물론 그것까지도 에일의 계산 범위 내.

역할을 다한 창이 스르륵 사라지며, 두 개의 단검이 에일의 양손에 쥐어졌다.

카가가강!

상대는 쌍수 단검을 사용하는 근접 클래스.

양측의 리치 차이를 고려해 자신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올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임을 이용해 최대한 근접전으로 몰아붙이려는 속셈.

하지만 에일에게 쥐여진 옵션은 긴 리치의 무기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녀석과 똑같이 쌍수 단검으로 대응한 에일이 다크 엘프의 목을 그었다.

아쉽게도 가볍게 스쳤을 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진 못했지만, 붉게 맺힌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말……?’

쓰러진 채 싸움을 바라보고 있던 하이 엘프가 놀란 눈을 치켜떴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의 도움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다크 엘프 추적자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고, 그녀에게도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

“가급적 조용히 처리하려 했는데…….”

불쾌한 듯 피를 닦아낸 다크 엘프가 양손에 마력을 모았다.

방해할 틈도 없이 빠르게 모인 그의 검은 마력은 곧 바닥에 스며들더니 무언가를 소환해 냈다.

콰드드득!

벽돌을 뒤엎으며 나타난 검은 정령.

좁은 골목을 자신의 몸집으로 거의 한가득 채운 정령은 다크 엘프의 옆을 지키듯이 섰다.

‘정령술인가…….’

숨을 고른 에일이 녀석을 올려다봤다.

기본적으로 교감 능력이 뛰어난 엘프들은 꼭 정령사가 아니더라도, 정령술을 곁들여 전투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주 당혹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충분히 예상 범위 내였고, 대응 방법도 미리 떠올려 뒀었다.

촤르르륵!

에일의 손에 펼쳐진 소환 스크롤.

하얀 빛이 퍼지며 스크롤이 발동되었고, 붉은 화염과 함께 커다란 소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에에엑!

화염을 휘감은 뱀이 검은 거인과 한데 엉켜 전투를 벌였고, 골목을 엉망으로 부수며 여파를 만들어 냈다.

사방으로 튀는 파편 속에서 먼저 발을 뻗은 건 에일이었다.

반격하려는 다크 엘프의 단검을 비틀어 흘림과 동시에 정확히 빈틈을 향해 일섬 스킬을 발동했다.

힘껏 내리 찍힌 장검에서 강력한 성화와 검격이 뻗어져 나갔고, 멈칫한 다크 엘프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콰아아아!

“크으윽!”

공격에 당한 엘프의 체력은 단번에 너덜너덜해졌다.

검은 정령이 엘프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리려 했지만, 에일의 소환수가 그를 가만히 볼 리는 없었다.

쿠구구궁!

불의 뱀이 정령의 몸을 휘감으며 움직임을 봉쇄했고, 그사이 에일은 한 발자국 더 뻗으며 검을 들었다.

일섬에 당한 여파로 완전히 빈틈을 열게 된 다크 엘프, 놈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파앗!

휘청이던 다크 엘프의 모습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녀석이 다시 나타난 곳은 에일의 등 뒤.

놈이 찔러 넣은 두 단검이 에일의 등을 깊숙이 꿰뚫었다.

그로서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고,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여지없이 당해 버린 치명적인 일격으로 인해 추가 데미지가 들어왔다.

에일은 급히 다리를 뻗어 다크 엘프를 차냈다.

‘젠장…….’

자신의 체력바를 확인한 에일이 인상을 구겼다.

표식에 치명상까지 당한 탓에, 남은 체력이 2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만약 쇠약을 걸어두지 않았거나, 그간 방어 쪽에 투자를 해 두지 않았다면 방금의 일격으로 즉사했을 것이다.

확실히 이만한 레벨 차이는 한순간도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설마 그걸 사용할 줄이야.’

공격에 당해 휘청이던 다크 엘프가 갑자기 모습을 감출 수 있었던 이유, ‘그림자밟기’라는 기술을 활용한 덕이었다.

그림자밟기는 주로 유저들이 배울 수 있는 영웅급 스킬로, 도적 클래스 사이에서는 굉장히 인지도 있는 기술이었다.

설마 녀석이 이걸 가지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특수 효과 ‘출혈’이 발동되었습니다!]

단검에 당한 등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고, 상처는 체력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조금 전의 발길질을 통해 다크 엘프와의 거리는 어느 정도 벌려 두었고, 에일은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회복 포션을 마셨음에도 그의 체력이 회복되지 않고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로 인해 모든 회복 수단이 봉쇄되었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에일은 당혹감을 느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라니, 언제 당했던 것인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우선 빨리 끝내야겠어.’

에일은 당혹감을 잠시 미뤄두고, 다크 엘프에게 달려들었다.

깊은 출혈이 생겨 버린 이상,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었다.

시간이 끌리면 유리한 것은 녀석의 쪽이었고, 가급적 빨리 승부를 봐야 했다.

까앙!

에일의 장검이 휘둘러진 단검과 부딪혔다.

힘싸움에서 먼저 밀려난 것은 당연히 다크 엘프의 단검 쪽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반대편에 쥐여진 또 다른 단검이 있었다.

푸욱!

빈틈을 노출한 에일의 옆구리를 찌른 단검.

하지만 공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다크 엘프의 쪽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공격은 단순히 견제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출혈 탓에 다급하게 달려드는 에일이 이번 공격을 피하기 위해 물러서길 바라며, 유리하게 시간을 끌 속셈이었지만 에일은 기꺼이 빈틈을 열고 공격을 받아냈다.

“끝이다.”

에일이 치켜올렸던 장검을 힘껏 휘둘렀고, 검격과 함께 쏘아낸 불의 세례가 녀석의 면전에서 쏟아졌다.

화르르륵!

“끄아아아악!”

커다란 불길에 휩싸인 다크 엘프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토해냈다.

비틀거리던 녀석은 곧 체력이 다해 바닥에 쓰러졌고, 그가 쓰러지자 소환되었던 정령 역시 함께 사라졌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후, 죽을 뻔했네.”

에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머리가 어지러운 게 다른 이였다면 빈사 상태에 빠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적은 체력이 남아 있었다.

위험했던 상황에 비해 아주 성공적인 결과였지만, 데미지 계산이 아슬아슬하게 맞아떨어져 다행이었다.

우선 에일은 출혈을 멈추기 위해 서둘러 붕대를 꺼내 감았다.

출혈은 대체로 긴 지속 시간을 가졌고, 붕대는 출혈 막아주는 데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다.

최근 워로드의 도적 유저들 사이에서 출혈을 활용하는 게 유행을 타며 늘어나는 바람에 에일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곧잘 챙기고 있는 물건이었다.

도적을 상대할 땐 닥치고 붕대부터 챙겨라, 도닥붕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됐다.”

상처 부위에 붕대를 제대로 감고 나자, 출혈 효과가 사라지며 체력이 줄어드는 게 멎었다.

하지만 그 뒤로 회복 포션을 마시려 해 봤지만, 여전히 회복이 되지 않았다.

다크 엘프와의 싸움이 끝나고도,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저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설마 계속 이러는 건 아니겠지…….”

“이쪽이야!”

골목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환수까지 활용하며 뒷골목을 부수고, 요란하게 싸워 버린 탓에 경비병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들키면 양쪽 모두 곤란해진다 했으니,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저기요? 괜찮아요?”

에일이 쓰러져 있던 하이 엘프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부축을 해도 걷기가 어려워 보일 정도였고, 에일은 그녀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 멘 뒤,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 맞다…….”

달리려던 에일이 순간 자리에 멈춰 섰다.

급하게 이동하느라 아이템 루팅을 깜빡할 뻔했고, 서둘러 널브러진 다크 엘프의 시체를 뒤적였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헬리브론의 봉인된 지령서(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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