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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17화 (117/227)

117화 신념과 광기의 사이 (2)

빛의 교단을 따르는 신도들이 찍었던 영상 하나가 퍼졌다.

수많은 유저가 모여 있는 사냥터 한복판에서 붙잡힌 이단들을 화형대에 세워 불태우는 모습.

이번엔 네임드 플레이어인 에일이 직접 나타난 모습까지 담겨 화제가 되었고, 커뮤니티엔 그들에게 당해 불타 버린 유저가 남긴 글까지 올라왔다.

전후 사정을 듣고서 신도들을 비난하는 이도 있었지만, 사실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교단 소속의 유저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러설 경우 여신에게 받게 될 페널티 때문에, 이단을 앞두고 공격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더군다나 이단의 낙인이 머리 위에 찍혔다는 것에서부터 누군가에겐 악독한 일을 벌인 적이 있다는 것이었고, 딱히 동정을 받을 만한 이들로 인식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들은 오히려 꾸준히 이슈를 식지 않게 만들어 줬다.

아예 관심 밖이었던 빛의 교단이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노출이 된 것만으로도 효과는 굉장했다.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빛의 교단을 찾게 되었고, 교단에 발을 들이는 것은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물론 아예 에일처럼 이단심판관 직업으로 새로 캐릭터를 키우는 건 부담이 컸다.

주로 신규 유저들이 관심을 가지며 이단심판관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기존 유저들 중 그런 모험을 감행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교단에 몸을 담으려는 경우는 전혀 달랐다.

딱히 길드가 없는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신앙을 가질 수 있었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거나 진심으로 교단에 관심이 생긴 유저들 사이에서 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유저가 교단에 몰린다는 것은 곧 루가 얻을 수 있는 영향력의 증가를 가져왔다.

[빛의 여신 ‘루’의 퀘스트를 부여받았습니다!]

[이단사냥 - 대의원 델런드 (0/1)]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남은 시간 ‘26:29:58’]

[성공 시 보상: ?]

‘이건……?’

갑작스럽게 떠오른 퀘스트에 에일이 멈칫했다.

지금까지 늘상 받아왔던 루의 퀘스트였지만, 평소에 부여하던 돌발 퀘스트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이번에 그에게 부여된 것은 정식 퀘스트, 그중에서도 ‘이단 사냥’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지금까지는 적당히 상황에 맞춰 돌발 퀘스트를 즉석에서 주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할 만큼 충분한 영향력이 확보된 듯 보였다.

신격의 뜻을 직접적으로 이행하는 것인 만큼 보상 또한 일반 퀘스트와는 격을 달리할 것이었고, 에일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호재였다

‘하지만 델런드를 제거하라니?’

그의 정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에일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이단 사냥의 표적이 된 델런드는 왕도의 귀족 중 하나이자, 무려 대의회에 참석할 권한이 있는 대의원직을 맡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이번 계승 문제에서 왕자를 굳건히 지지하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이런 거물을 대책 없이 건드렸다간 보통 일로 끝나지 않을 텐데…….’

대의회의 일원을 제거하라는 여신의 뜻.

하지만 아무리 신에 미친 광신도 집단이라도 워로드 전역을 다스리는 왕가에 대놓고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빛의 교단에게 루의 뜻이 내려왔다는 사실이 전해졌다면, 델런드를 제거하는 데 뒷감당 따위는 제쳐두고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에일은 달랐다.

마땅한 이유 없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간 큰 분쟁이 발생할 수 있었고, 필연적으로 교단 세력의 약화가 뒤따라오기 마련이었다.

다만 그런데도 이단 사냥 퀘스트가 부여되었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정보를 찾아봐야겠군.’

* * *

“이곳인가…….”

거리 앞에 선 에일이 건너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웅장한 모습의 저택이 담장 너머에 자리잡고 있었다.

에일은 왕도로 향하며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수집했고, 이번 표적인 델런드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대강 감을 잡은 상태였다.

유력 귀족을 상대로 한 정보라 얻기 꽤나 까다로웠지만, 밤을 틈타 그의 저택에 얼굴을 감춘 수상한 자들이 들락날락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초대받은 손님들이 저택 안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꽤나 작업이 치밀하게 이루어진 것인지, 그동안 사람들의 의심은 받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왕도 쪽 정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최고 등급 유저들 사이에선 델런드의 저택 안에서 인신공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추측도 작게나마 떠돌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보통 악마숭배자들이 주로 보이는 패턴이지……. 왕도 한가운데에서 그런 일을 벌이다니 대범한 녀석이네.’

에일은 단순히 델런드가 악마숭배자일 것이라는 추측에서 그치지 않았다.

하필 지금 시점에 여신의 정식 퀘스트가 부여된 이유.

만약 델런드가 황혼회의 첩자나 협력자인 것이라면, 그에 대해서도 대강이나마 수긍이 갔다.

워로드의 크고 작은 악마숭배 집단이야 널려 있었지만, 빛의 교단에선 황혼회와 전면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만약 골치 아프게 수도의 고위직까지 숨어든 황혼회의 조력자를 제거하기 위해, 여신이 이번 퀘스트를 부여한 것이라면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럼 가 볼까.’

마지막으로 장비의 체크를 끝낸 에일이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높은 귀족의 저택인 만큼 당연히 입구를 지키고 있는 고레벨 경비 NPC들이 서 있었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이라면 수상쩍게 주변에 접근만 해도 험한 꼴을 당하며 쫓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에일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하나 있었다.

철컹!

경비병들이 비켜서고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활짝 열렸다.

에일 본인의 이름으로 찾아온 것이 아닌, 세이아 공주의 협조를 받은 덕이었다.

자세한 사정에 대해선 그녀도 모르고 있었지만, 지난 활약 덕에 델런드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드넓은 마당과 정원을 지난 에일이 저택의 문을 두드리자, 나이든 집사가 나와 방문객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상 좋은 집사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고 저택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그를 마주하자 에일은 묘한 피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어지간해서는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미량의 혈향이었지만, 워로드를 플레이하면서 하도 자주 맡게 되니 금세 구별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년의 집사에게서 어딘가 뒤틀려 있는 기운까지 느껴졌다.

에일은 그간 항상 언데드와 이단들과 뒤엉켜 지내던 덕에, 그 묘한 이질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서걱!

머리가 날아간 집사의 몸뚱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문답무용.

대화 따위는 필요 없었다.

집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역시나 사방에서 나타나 준 괴한들이 몰려들었다.

“침입자다!”

“놈을 죽여!”

황혼회의 광신도들이 저택 안에 바글바글했다.

워낙에 큰 저택이긴 했어도 어찌나 많은 지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평안한 얼굴의 에일은 살짝 열려 있던 저택의 문을 마저 닫을 뿐이었다.

* * *

콰득!

단숨에 목이 꺾여 부러진 남자가 형편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혈흔이 낭자한 바닥, 엉망으로 부서진 가구, 곳곳에 끔찍하게 살해당한 시체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방금 그를 마지막으로 숨어 있던 황혼회의 광신도들은 전멸했고, 고급스러웠던 저택은 지옥도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초토화된 저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에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끈적한 핏자국이 에일의 얼굴에 잔뜩 묻어 있었지만, 이젠 딱히 찝찝한 감정조차 없었다.

오히려 콧가에 맴도는 은은한 혈향이 없으면 허전할 정도…….

‘그건 너무 갔고…….’

어디선가 느껴지는 인기척에 에일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위층으로 향하는 기다란 계단 위에 델런드가 나타나 서있었다.

미리 들었던 대로, 대의원이라는 높은 위치에 비해 굉장히 젊은 모습의 청년이었다.

“어떤 녀석이 나를 찾았나 했더니… 루의 광신도였나.”

델런드는 추적자의 등장에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에일은 그의 말에 불쾌하다는 듯 대꾸했다.

“악마를 따르는 광신도가 누구더러 광신도라는 거지?”

“그런가? 내가 보기엔 지금 네 모습이야말로, 누구보다 광기에 가까운 모습 같은데.”

비릿한 웃음을 흘린 델런드가 에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일은 시체들 사이에서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고, 그제야 왠지 뜨끔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 여러모로 신경을 썼을 텐데……. 나에 대해선 어떻게 알아낸 거지? 빛의 교단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더니 냄새를 맡은 건가? 아, 아니면 공주가 네 배후에 있었던 건가?”

“그거야 알 거 없고.”

순식간에 땅을 박찬 에일은 그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대의원직을 맡고 있는 델런드긴 했지만, 전투 능력 자체는 전무했기 때문에 제압은 간단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녀석도 자신의 정체가 들키면 곤란하기에, 저택 바깥의 도움을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에일조차 한 가지 간과하던 사실이 있었다.

쩌엉!

“무슨……?”

팔을 들어 올린 델런드는 멀쩡히 에일의 검을 받아냈다.

그리고 공격을 막아 낸 그의 팔은 갑자기 흉측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덩치를 불렸다.

[죄악의 존재, 신성모독자를 발견했습니다!]

콰드드득!

온몸이 변형되며 괴물의 형태로 변하는 델런드.

머리 위에 생겨난 이단의 낙인은 물론, 신성모독자임을 알리는 메시지까지 나타났다.

‘이런 거였나…….’

서둘러 뒤로 물러선 에일이 사태를 파악했다.

그는 핏빛 황혼회의 조력자나 첩자 같은 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악마의 의식을 행할 만큼 베나론의 열렬한 추종자였고, 죄 없는 사람들의 영혼을 대가로 힘을 얻은 자였다.

그간 저택 안에선 탐욕의 의식이 진행 중이었고,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젊음과 힘을 얻어왔던 것이었다.

크어어어…….

모습이 뒤바뀐 델런드의 커다란 주둥이 사이로 침을 줄줄 흘렸다.

용케 변하며 저택을 박살 내지는 않았으나, 놈의 거대한 몸집 탓에 이 대저택이 비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일반 도시에서도 큰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다니.

에일로서는 미처 예상 못 한 전개였다.

콰과과광!

흉측한 괴물이 크게 팔을 휘둘렀고, 저택 바닥이 온통 박살 나며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큭, 이렇게 날뛰어도 되는 건가? 들켰다간 네가 더 곤란해질 텐데.”

“내가 이런 상황도 대비 안 해뒀을 것 같나? 이곳은 왕실 마법사들도 알아챌 수 없는 강력한 결계에 둘러싸여 있다. 네놈이 바깥으로 도망갈 수 없는 건 물론, 아무도 널 도우러 올 수도 없다는 말이지.”

델런드가 끔찍하게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력한 결계의 존재, 아무리 내부에서 큰 싸움이 벌어진다 한들 저택 바깥에서는 눈치챌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에일은 오히려 그 사실에 반가움을 느꼈다.

“그래? 그거 잘됐네.”

안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든 밖에선 알 수 없다니, 길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아주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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