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사냥의 진수 (7)
막강한 화력을 책임지는 워로드의 마법사들은 힐러만큼이나 다인 파티에 있어 중요한 존재였다.
다만 직업 특유의 캐스팅 시간의 한계로 인해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졌고, 동료의 보호가 없는 상황에서는 굉장히 취약했다.
후방 보호가 버거운 소규모 파티에서는 아예 마법사 유저를 배제하고 갈 정도였다.
계열 내의 몇몇 특수한 클래스가 아닌 이상 일대일 상황에서는 당연히 불리했고, 그 탓에 랭커들 사이에서도 다른 직업군에 비해 눈에 띄게 적은 비율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실력 있는 마법사의 몸값은 더더욱 뛰었다.
큰 약점이 있다고는 한들, 몰이 사냥, 혹은 보스 사냥에서 있어 마법사들만큼이나 강력한 화력을 지닌 클래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력 있는 마법사의 존재는 레이드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컸다.
다만 후방에 서는 딜러 직업군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컨트롤이 까다롭고 재능의 영역이 큰지라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즉,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된 구실을 하는 이는 매우 적다는 것.
치이이익!
새까맣게 타 버린 시체 냄새가 진동했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몰려온 악령들이었지만 모두 장렬하게 산화해 그들의 돈과 경험치가 되어 줬다.
그리고 그 많은 악령을 이토록 빠르게 쓸어버릴 수 있던 이유는 후방에서 광역 마법들을 쏟아낸 마법사의 존재 덕이었다.
“정말 막아 냈네요…….”
리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스태프를 거둬들였다.
엄청나게 들이닥친 몬스터들을 막아 내며 레벨 업까지 해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방금의 팀플레이는 굉장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에일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캐스팅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나요?”
“제가 빠르다고요?”
“아니,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예요.”
“음… 생각해 보니 남들보다는 약간 빠른 편 같기도 해요. 하지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민폐를 안 끼치려고 최대한 노력 중이에요. 아직 혼자서는 사냥도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하하…….’
리아의 말에 에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아직 본인의 재능에 대해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 사기꾼들이 자기들 파티에 넣고 다녔던 건지 이제야 알겠네.’
분명 게임에 대한 이해도나 전투 자체는 아직 미숙한 듯 보였다.
하지만 캐스팅 능력에 한해서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하이 코스트의 광역 마법을 매직 미사일 쏘듯이 캐스팅해 버리니, 일반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을 보여 줬다.
물론 에일이 후방으로 몬스터들이 전혀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능숙하게 막아선 덕도 있었다.
생존에 취약한 마법사가 고작 2인 파티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캐스팅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준 것이었으니, 더욱 빠르게 마법을 쏘아낼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녀의 가공할 만한 재능만큼은 진짜였고, 이런 괴물 같은 마법사 자원을 잠깐 등쳐먹는 데 이용하려 하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판단이었다.
“일단 이곳부터 정리하죠.”
그들은 한가득 쌓인 몬스터들의 아이템 루팅을 시작했다.
거기에 토륨 주괴를 비롯해 파티원들이 운반해 왔던 아이템들을 모두 꿀꺽해 버린 뒤, 에일은 쓰러져 있던 사기꾼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빈사 상태라 해도 너무 오래 방치해 두면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빠른 처리를 해 두는 편이 좋았다.
에일은 형벌 집행 스킬을 통해 그들에게 화형을 선고한 뒤, 큼지막한 화형대를 소환했다.
이번엔 각자 따로 화형대에서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셋을 같은 곳에 묶어 함께 불태워 버렸다.
“끄아아악!”
“음, 이건 뭔가 그림이 잘 안 나오네. 다음엔 거꾸로 한번 매달아 볼까…….”
화형을 감상하던 에일이 탐탁지 않은 듯 중얼거렸다.
미리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편이 나중에 더 많은 영향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그런 에일의 뜻을 알 리 없었다.
‘무, 무서워…….’
기겁한 리아가 진땀을 삐질 흘렸다.
아무리 자신을 속인 사기꾼이라고는 해도, 태연하게 사람을 불태우는 에일의 행태에 익숙해지기엔 무리였다.
물론 에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이단들이 떨어뜨린 아이템 모두 챙기고, 퀘스트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저도 아직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하네요.”
“그러면 일단 같이 긴급 퀘스트부터 클리어하죠. 도중에 누군가 나가면 진행에 지장이 생기고, 평범한 퀘스트도 아닌 것 같은데 보상도 굉장히 좋을걸요?”
“그…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리아가 슬쩍 물었다.
워로드의 중요한 퀘스트라면 그에 걸맞은 리스크가 있기 마련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위험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 둘이라면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을 겁니다. 아주 안전하게요.”
에일이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리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원래 같았으면 이런 무서운 퀘스트를 마주쳤을 때는 보상이 어떻든 간에 내팽개치고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의 전투를 거치며 에일의 실력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소식에 둔감한 리아는 에일이 최근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단심판관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만약 랭커를 보게 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할 정도였다.
거기에 한 명이라도 밖으로 나가게 되면 결계가 풀려 버리는 문제도 있었고.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저도요.”
이야기가 끝나자 둘은 가벼운 악수를 나눈 뒤 곧장 통로 안쪽으로 향했다.
제한 시간이 걸려 있는 퀘스트였기에 마냥 느긋하게 다닐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체 탄내가 진동하는 통로를 지나며 서로의 이름을 비롯해 소개를 나누었고, 곧 성역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건…….”
“심하네.”
주변을 둘러본 에일이 고약한 광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웠을 동굴 내부는 온통 새까맣게 오염된 모습이었고, 역겨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역시 정령의 숲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패턴이야.’
이미 본 적 있는 익숙한 광경에 에일은 이번에도 고대 정령과 관련이 있을 거란 걸 확신했다.
퀘스트의 결과에 따라 중대한 영향이 끼칠 수 있다는 것도, 주변 환경이 오염된 채 고대 정령이 깨어나면 근방의 지역 전체가 무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쓰여 있던 것일 터였다.
하지만 이번엔 정령의 숲에서 마주했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이미 성역 내부의 부패가 심하게 진행되어 있었다.
괜히 그들에게 긴급 퀘스트가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저번 퀘스트에선 정화 능력을 가진 로툼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이 없는 이번엔 어떻게 정화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 이건가?’
에일의 시선이 퀘스트 창에 나타나 있는 정화율로 향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0퍼센트를 가리키고 있던 수치였지만, 지금은 아주 조금이나마 올라가 있었다.
내부로 들어와서 에일이 한 일이라고는 몬스터를 제거한 일뿐.
아마 성역에 가득한 오염된 몬스터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다시 이곳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키이이이익!
“옵니다!”
“네!”
비명을 내지르는 악령들이 또다시 한바탕 몰려들었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몰려드는 악령들을 향해 리아의 마법이 쏘아졌다.
콰지지직!
뻗어져 나간 강렬한 전격이 악령들 사이를 튕기며 여럿에게 큰 대미지를 주었다.
전격류 공격 마법, 연쇄번개.
이번엔 평균 캐스팅 시간이 4초라는 마법을 거의 즉발급으로 사용해 버리는 그녀였다.
그리고 리아가 서둘러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에일이 놈들을 막아섰다.
이번엔 입구가 제법 넓어 혼자서 몬스터들을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꽤나 고생할 만한 지형이었다.
하지만 에일은 장검의 리치와 성화를 이용해 악령들이 후방으로 빠져나가는 일 없이 달려드는 족족 쓰러뜨렸다.
심지어 허덕이며 겨우 막아 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은 미숙한 리아가 불안감을 느끼거나, 당황하지 않게 최대한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사이 두 번째, 세 번째 마법으로 리아의 플레어 랜스가 연달아 이어졌고, 달려들던 악령들이 휩쓸려 나가며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콰아아아!
키이이익!
난장판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악령들 또한 에일이 마지막 불의 세례 스킬로 마무리 지었다.
엉망이 된 통로엔 악령들의 시체로 가득 찼고, 조금이나마 정화율이 올라간 것까지 확인했다.
누가 보더라도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아주 매끄럽게 이루어진 몰이 사냥이었다.
무엇보다 에일이 주목한 부분은 경험치였다.
‘역시 이곳도 효율이 엄청나.’
놈들을 쓰러뜨리면서 올라간 경험치 양이 굉장히 높았다.
아쉽게도 떨어뜨리는 아이템이나 돈 자체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으나, 개체당 얻을 수 있는 경험치 양이 굉장히 높았고. 다른 사냥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체감이 갈 정도였다.
월드 퀘스트와 연관된 덕분인지 아주 높은 통행료를 받아야 할 만한 사냥터를 또다시 접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곳은 그를 방해할 침입자가 생겨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알아서 그의 앞에 쏟아지는 몬스터들의 개체 수 또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 정도 속도라면…….’
광역 마법을 쉴 새 없이 쏟아낼 수 있는 마법사의 존재와 악령들을 상대로 상성 좋은 에일의 광역기까지 겹쳐져 사냥 속도도 엄청났다.
사냥을 막 시작한 초반 단계임을 고려하더라도 굉장히 빠른 페이스였다.
이곳이라면 안 그래도 탄력을 받았던 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리아 님, 당분간 스케줄 같은 건 없겠죠?”
“네……? 아, 네. 그렇긴 한데…….”
리아가 얼떨떨하게 답했다.
그러자 에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고,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
“저, 저기… 에일 님? 눈빛이 조금 무서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