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사냥의 진수 (6)
[곤경에 빠졌던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었습니다!]
[여신의 총애 +0.21% (현재 77.38%)]
[빛의 교단 공헌도 +45]
[신앙심 스탯 +1.5]
‘뭐지?’
에일이 갑자기 나타난 메시지에 흠칫 반응했다.
퀘스트를 진행 중이던 파티를 기습해, 유저 세 명을 쓰러뜨리고 한 명만을 남겨 둔 상황.
그런데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다는 것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유저는 방금 그들과 한패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어? 그러고 보니…….’
에일은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 기억을 되짚은 에일의 머릿속에서 금방 떠올랐다.
“저번에 뵀던 그분?”
워로드를 시작하고 듀벨의 사냥터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그때의 여성이었다.
뿔토끼에게 쫓겨 죽을 뻔했던 걸 구해 줬었는데, 그녀는 에일이 교단 소속이라는 걸 알자마자 겁에 질려 도망갔었다.
“말도 안 돼……. 아니. 그, 그땐 정말 죄송했어요…….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서…….”
뜻밖의 만남에 놀란 리아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듯 안절부절못하며 사과했다.
그동안 에일의 얼굴을 잊지 않은 건 물론이고, 이단심판관이라는 희소한 직업 탓에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엔 빛의 교단이라는 악명에 지레 겁을 먹어 도망쳤지만, 어디선가 죄를 짓고 다닌 게 아닌 이상, 갑자기 공격당할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하고 무슨 관계이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혹시 이분들하고 무슨 문제라도…….”
“여기 세 명 전부 악행을 벌이고 다니던 이단들이었거든요.”
“저, 정말요?”
깜짝 놀란 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그녀는 그제야 에일이 다짜고짜 파티원들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그게… 제가 아직 광역 마법의 범위 조절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러다 며칠 전에 실수로 몬스터 주변에 있던 유저분까지 조금 휘말리게 해 버렸는데, 그때 저분 장비 내구도가 바닥나서 방어구가 깨져 버렸어요. 그때 수리비가 300골드나 나와 버리는 바람에… 빚을 다 갚을 때까지 함께하게 된 거예요.”
‘아, 대충 그렇게 된 건가. 어쩐지 입을 꾹 닫고 있더라니.’
리아의 말에 에일은 상황이 대강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히 사기당하셨네요.”
“네……?”
“지금 이 녀석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을 다 합쳐 봤자 30골드도 안 될걸요. 그런데 하나에 300골드짜리 방어구를 걸치고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죠.”
“하, 하지만 경매장에 검색도 해봤어요! 분명 300골드라고 적혀 있었는데…….”
“대조해 놓고 봤을 때 100퍼센트 일치했나요? 파손된 장비라 이름이나 스탯을 정보창으로 확인할 수도 없었을 테고……. 파손된 탓에 외형도 꽤나 변했을 테니 적당히 비슷한 장비로 속여 말한 거겠죠. 한두 번 속여 본 게 아닌 상습 사기범들인 것 같은데, 이단의 낙인이 아무한테나 찍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리아의 표정에 절망이 어렸다.
사실 이렇게 대차게 호구를 맞은 경우는 수많은 게임을 해 왔던 에일도 간만에 보는 것이었다.
눈치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었다면 도중에 모를 수가 없었을 텐데 불쌍할 따름이었다.
“이럴 수가… 다행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예요.”
울상이 된 리아가 원망 섞인 눈초리로 사기꾼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빈사 상태가 되어 정신없이 뻗어 있는 그들은 시선을 인지하기는커녕 뭔가를 말해낼 기운조차 없었다.
하지만 에일에겐 아직 의문점이 하나 남아 있었다.
‘사기를 친 것까지야 그렇다 쳐도……. 뭐 하러 사람을 직접 끌고 다녔던 거지?’
일반적으로는 상대를 죽이고 아이템부터 간단히 빼앗거나, 계속 우편을 통해 독촉해 빚을 갚으라며 돈을 뜯어냈을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귀찮게 파티원으로 끼워서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까지 나타났던 것으로 보아,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려는 그녀의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에일은 우선 이 문제에 대해선 제쳐두고, 그녀에게 급한 질문부터 던졌다.
“혹시 이 녀석들이 어떤 퀘스트 받았던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저한테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어서요.”
“그게… 내용상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운반 퀘스트였어요. 저기 있는 아이템들을 이곳까지 옮겨 달라고 했거든요.”
그녀의 말에 에일이 시선을 옮겼다.
파티원들이 인벤토리에서 꺼내 내려놓았던 많은 아이템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토륨 주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연금술이나 마법 실험 등에 주로 사용되는 재료들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의뢰를 세 번이나 맡았어요. 그때마다 운송해야 하는 위치가 달라졌고, 일에 비해 굉장히 많은 보상을 줬죠.”
“어떤 NPC한테서 의뢰를 받으셨죠?”
“라우즈라는 다크 엘프였어요.”
‘다크엘프……?’
어둠 숲에 터를 잡은 채 살아가는 다크 엘프들은 하얀 숲의 엘프들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개인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나마나 결사단과 관련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다소 뜬금없는 등장이었다.
“하지만 어둠 숲이라면 아예 다른 지역에 있어서 거리가 상당했을 텐데요.”
“어둠 숲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마주친 거라서요. 뒷골목 쪽에 있던데.”
‘도시에 나와 있는 건 조약 위반일 텐데…….’
그녀의 말을 듣자 에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야기가 제법 흥미로워졌다.
하이 엘프를 포함해 여러 위협적인 이종족들과 이루어진 왕가의 조약은 다크 엘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함부로 영역을 나설 수 없도록 이야기가 되어 있을 텐데, 다크 엘프가 인간들의 도시 뒷골목을 활보하고 있다는 건 조약을 무시했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런 수상쩍은 퀘스트까지 유저에게 넘기다니, 심상치 않은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 월드 퀘스트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어쩌면 오른 왕자가 접촉한 외부 세력이 결사단만으로 끝이 아닐지도……. 동굴 안쪽을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에일이 시선을 돌려 동굴 내부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보았다.
저 안쪽에 해답이 있을 것이었고, 재빨리 여기 남은 이단들을 정리하고 조사를 위해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들.
쏴아아아!
통로로부터 거무스름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곧 그들이 서 있는 천장과 바닥까지 침식시키며 검게 물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로에서 모습을 드러낸 새까만 몬스터 한 마리가 순식간에 땅을 박차더니 에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악!
에일은 즉시 검을 뽑아 단숨에 허리를 베어 버렸고, 두 동강이 나 버린 녀석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꿈틀댔다.
[긴급 퀘스트가 발생되었습니다!]
[고대의 존재가 잠들어 있는 성역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서둘러 오염된 성역을 정화하십시오!]
[현재 정화율 ‘0.00’%]
[남은 시간 ‘239:59:58’]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형 퀘스트입니다.]
‘뭐… 240시간? 10일짜리라고……?’
그야말로 미친 퀘스트.
일단 시간제한이 걸렸다 하면 항상 촉박함에 쫓겨야 하는 워로드의 퀘스트상, 이런 규모의 퀘스트는 에일도 여태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퀘스트 내용에 적혀 있는 고대의 존재와 오염이라는 단어.
에일은 단박에 정령의 숲에서 마주했던 고대 정령을 떠올렸다.
배후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때에도 놈들은 고대 정령이 잠든 성역을 오염시키려 했었고, 이번에도 패턴이 똑같았다.
‘설마 그런 거였나…….’
키이이이익!
악령들의 울음소리가 통로에서 쩌렁쩌렁 울려왔다.
저 아래로 놈들이 몰려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전 그만 가 봐도 될까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겁에 질린 리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절묘한 타이밍에 다음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현재 동굴의 모습을 감춘 결계가 생성되어 있습니다.]
[이미 안으로 들어왔던 구성원의 이탈이 발생할 경우, 결계가 사라지고 퀘스트에 심각한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어쩔 수 없네요. 일단 올라오고 있는 녀석들부터 정리하고 이야기하죠.”
“네…….”
저 밑에서 몬스터들이 얼마나 몰려들지 모르는 상황.
에일은 재빨리 파티를 맺었고, 그녀의 전력을 확인했다.
먼저 레벨은 40, 직업은 세분화를 타지 않은 일반 마법사였고, 장비는 특출할 것 없이 평범한 수준이었다.
“주력 속성은요?”
“딱히 정해 두지 않아서… 다속성이에요.”
“캐스팅 시간 보정 스킬은 있나요?”
“아니요, 공격 마법 위주로 배워둬서요…….”
“흐음…….”
약간의 곤란함을 느낀 에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평범한 실력의 마법사가 캐스팅 시간과 관련되어서 별다른 보정 스킬이 없다면, 마법 한 방을 날리는 데에도 한세월이 걸릴 것이었다.
마법사 유저들의 경우 재능과 실력에 따라 캐스팅에 필요한 시간이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솔직히 그녀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쓸 만한 범위 마법이라면 전투 한 번에 마법 한 번 사용하기도 버거울 것이고, 후방을 지켜야 할 짐만 늘어난 건 아닌지 조금 걱정스러워질 찰나.
키이이익!
벌써 코앞까지 다가온 검은 악령들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일단은 전투를 치러야 했고, 에일은 놈들이 뒤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나마 좁은 입구 앞에서 자리를 잡고 막아섰다.
“뒤쪽에서 광역 마법 부탁드릴게요!”
“아, 네!”
촤아악!
악령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고, 에일은 놈들이 다가오는 족족 장검을 휘둘러 쓰러뜨렸다.
그나마 비슷한 레벨대의 일반 몬스터들이라 버티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몰려들고 있는 놈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
화르르륵!
하지만 그 순간, 에일을 스치고 지나간 커다란 불의 창이 악령들을 꿰뚫었다.
수 마리를 관통한 뒤 통로 바닥에 박힌 불의 창.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과과광!
박혔던 창이 폭발하며 막대한 화염을 일으켰고, 통로를 가득 채운 화염이 몬스터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게 무슨……?”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에일이 순간 자리에 굳었다.
그녀가 사용한 스킬은 플레어 랜스.
희귀 등급의 화염계 공격 마법으로, 등급 자체가 굉장히 높은 스킬은 아니었다.
하나 플레어 랜스는 강력한 위력 대신, 캐스팅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유명한 광역 마법이었다.
캐스팅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보정 스킬들을 가지고 있어도 최소 30초는 걸릴 수준이었고, 랭커급의 유저들조차 10초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캐스팅에 소비한 시간은 단 6초.
에일이 멍하니 시선을 돌렸고, 그곳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힌 리아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서 있었다.
“죄, 죄송해요. 너무 오래 걸렸죠? 조금 긴장을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