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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03화 (103/227)

103화 규격 외 거래자 (2)

워로드의 이동 수단은 다양했다.

대부분의 유저는 주로 직접 걷거나, 말이나 마차, 선박 등을 이용했지만, 각종 마이너한 탈것들까지 따져 본다면 경우의 수는 훨씬 많아진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엄청난 이동 수단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하늘을 가르는 비행선.

빠른 속도로 대륙을 넘나드는 비행선은 각 대도시에 존재하는 정거장을 통해 이용할 수 있었다.

도시 간 텔레포트 같은 기능이 없고, 대륙이 엄청나게 넓은 워로드에선 필수적인 존재였다.

만약 비행선이 없었다면 서로 대륙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유저들은 실제 친구라 할지라도 한 번 만나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아예 만남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무리 현실감을 살렸다 한들 가상현실 ‘게임’인 이상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워로드가 놀라울 정도로 몰입감과 현실성을 살린 명작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성을 위해 게임성을 포기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워로드는 두 요소가 양립이 불가능한 부분에서는 과감히 게임성을 앞에 두었기에, 플레이를 하다 보면 편의적인 설정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유저들이 밀집할 만한 지역 주변엔 대부분 충분한 양의 사냥터가 존재했고, 단지 현실적인 설정만을 잡기 위해 적게 배치해 두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워로드 전역을 누비는 비행선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대신 비행선은 정거장이 존재하는 각 대도시에 한정해서 이용이 가능했고, 빠르고 편리한 만큼 높은 금액이 발목을 잡았다.

현금으로 따져도 부담이 될 만큼 굉장히 비싼 요금이었고, 현실에서 웬만한 장거리 택시를 타는 것 이상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값비싼 비행선의 위에는, 에일이 시원한 바람을 맞아 가며 서 있었다.

“후, 느낌이 색다른걸.”

난간에 기댄 에일이 턱을 괸 채 풍경을 감상했다.

원래 이만큼이나 빠른 속도에서 갑판 위에 서 있다면 당장에라도 날아가야 정상이겠지만, 하늘을 날고 있는 선박답게 마법적 장치가 달려 있어 그런 불상사는 막아 주었다.

‘돈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당분간 비행선을 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편리하기는 했지만, 에일로서도 비행선을 마음껏 타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나이트메어라……. 이야기가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6대 길드, 나이트메어.

워로드의 패자 중 하나이자 사실상 에스마이어 지역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길드였고, 거미굴을 빠져나가는 동안 에일과 통신 채널로 연락해 이야기를 나눈 곳이기도 했다.

에일은 타샤에게 받았던 채널 코드를 이용해 그들에게 먼저 거래를 요청했고, 6대 길드조차 손에 넣지 못한 특별한 정보가 있음을 어필했다.

그리고 그 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에일이 꺼내 들지 않았던 카드, 블랑쉬 고원 지하에 있는 210레벨대의 고대 던전 ‘왕의 무덤’.

6대 길드든 아니든 간에 누구라도 혹할 만한 정보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직 그에 대해선 먼저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 들지는 않았다.

기껏 가지고 있는 정보를 먼저 말해 버리면 거래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럼에도 나이트메어의 관계자는 에일의 말을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에일이 그들의 직속 채널로 연락한 데다가, 워튜브에 얼굴과 이름까지 공개해 버린 덕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양측의 협상 자리가 성사되자마자, 비행선을 통해 왕복할 이동 금액을 모두 우편으로 보내오기까지 했다.

역시 이쯤 되는 대형 길드들은 이런 부분에서의 일 처리부터가 달랐다.‘하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니까.’

이제 겨우 협상 테이블에 앉을 위치로서 인정받았다는 뜻.

막상 그들에게로 찾아갔을 때, 협상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잠깐, 저기 저 사람 에일 아니야?”

“뭐? 그러고 보니…….”

에일의 뒤편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상을 보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었다.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얼굴을 공개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있었다.

다만 그나마 사람들이 호기심에 몰려들기보다는, 대부분은 말을 붙이는 것도 꺼린다는 게 편한 점이긴 했다.

본인의 머리 위에 낙인이 찍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작은 말실수라도 했다간 곧바로 검을 뽑아 들며 달려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가오기 어려워했다.

물론 에일이 실제로 그럴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으음… 안 되겠어.’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시선이 불편해진 에일은 결국 객실 안으로 들어가려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자 수군거리며 구경하던 사람들도 선실로 내려가는 에일을 구경한답시고 쫓아오지는 않았다.

“후우, 이것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에일이 복도를 걸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때 급히 달려오던 남자가 모퉁이를 돌던 에일과 강하게 부딪혔고, 둘은 속수무책으로 넘어졌다.

“으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넘어졌던 남자가 고개를 연신 숙여 가며 사과했다.

누가 봐도 인상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 그는 서둘러 일어섰고, 넘어진 에일에게 손을 뻗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그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난 에일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고, 곧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제대로 보고 있던 것 같은데.”

“예……? 그게 무슨… 히익!”

에일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남자가 기겁하며 주춤거렸다.

자신과 부딪힌 남자가 최근 유명세를 탄 미친 이단심판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남자는 냅다 등을 돌리고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에일은 어째서인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멈춰 세웠다.

“잠깐.”

푸욱!

에일의 검이 뽑힘과 거의 동시에 섬뜩한 소리가 났다.

“어… 어라?”

남자는 자신의 배를 찌른 검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경악한 그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소리 지르려는 순간, 꽂혔던 검을 빼낸 에일은 다시 검을 휘둘러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털썩!

목을 베여 꼼짝도 못 하고 쓰러진 남자.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여신의 총애 +0.15% (현재 63.10%)]

[빛의 교단 공헌도 +30]

[신앙심 스탯 +1]

[광기 스탯 +1]

“나 참…….”

에일이 그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아이템을 루팅했다.

그러자 남자가 떨어뜨린 아이템에는 에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과 돈주머니도 함께 흘러나왔다.

“소매치기가 많다더니. 바로 이렇게 만나네.”

도둑질을 당한 뒤 일정 시간 안에 소매치기범을 해치울 경우, 훔친 아이템을 다시 떨어뜨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비행선을 탈 정도라면, 실력이나 레벨과는 별개로 돈이 어느 정도 많은 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약간의 투자를 통해 비행선에 들어선 뒤, 한탕을 노리는 소매치기범들이 곧잘 꼬였다.

지금의 남자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소매치기 기술이 아주 감쪽같았다.

하지만 에일은 그의 손놀림을 포착해 낸 데다가, 그의 머리 위에 이단의 낙인이 찍혀 있는 걸 일찌감치 볼 수 있었다.

‘상습 소매치기범들은 일부러 레벨을 낮게 유지하기도 한다더니… 정말이었네.’

유저의 돈과 아이템을 훔치는 소매치기 스킬은 기본적으로 고레벨의 유저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보다 레벨이 높거나 비슷할 경우만 사용 가능했다.

그랬기에 에일도 주저 없이 검을 뽑을 수 있던 것이었다.

“그나저나 또 사고를 쳐 버렸어.”

에일이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시체를 내려다봤다.

안 그래도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 불안해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시체까지 발견되었다간 떠들썩하게 시끄러워질 것이다.

몰래 감춰서 밖으로 내던져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기발한 생각이 에일의 머리를 스쳤다.

“흠, 이걸로도 뭔가 해 볼까.”

에일은 늘어진 시체의 다리를 잡은 뒤, 객실 안으로 질질 끌고 갔다.

* * *

우우웅!

비행선은 오래 걸리지 않아 목적 도시에 도착했다.

긴 탑의 형태를 띤 정거장의 꼭대기 옆에서 비행선이 멈춰 섰고, 탑승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객실 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놀란 여성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에일은 등 뒤의 소란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정거장에 내린 에일은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고, 그동안 훤히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기대했던 만큼 대단하네.’

에스마이어 지역 제일의 중심 도시, 메디아.

도시 중앙의 거대한 성채와 그를 둘러싼 화려한 중심 거리.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외곽 거리가 계획적으로 짜여 있었고, 그를 수많은 사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에일이 마주했던 첫 대도시인 듀벨도 남부럽지 않은 규모를 자랑했지만, 메디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덜컹!

승강기가 내려서자 에일은 먼저 탑을 빠져나갔고, 거대한 내부 성채가 자리 잡고 있는 도시 중심부로 찾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성채의 서쪽 입구.

한 손엔 큼직한 미늘창을 들고서 검은 갑옷을 두르고 있는 나이트메어의 군단병들이 성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일반 경비 NPC들과는 차원이 다른 자들이었다.

에일이 신원을 밝히자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군단병들은 물러났고, 에일은 별다른 제지 없이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드르르륵!

성문이 닫히는 사슬 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고, 에일은 길을 걸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협상 자리엔 누가 나오려나…….’

에일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직 그들에게 내세울 것이 마땅치 않았고, 아마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간부급은커녕 일반 길드원이라도 감지덕지.

단지 꽤나 중요한 안건인 만큼 원활한 협상을 위해, 나이트메어 본길드 외의 인물이 협상자로 나서지만 않길 바랄 뿐이었다.

‘여기군.’

위병소를 지나 목적지 앞에 선 에일이 내심 감탄하며 자리에 섰다.

성채 내부, 중심에 한가득 자리 잡은 나이트메어의 길드 건물이 웅장한 모습을 보이며 서 있었다.

일반적인 길드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규모였다.

“어서 오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노인이 다가왔다.

정갈한 모습의 노인은 유저가 아닌 길드의 관리 NPC였고, 앞서 걸으며 에일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는 복도를 걸으며 적잖은 나이트메어의 길드원과 마주했고, 그들 중엔 에일을 알아봤는지 하던 대화를 멈추고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복도를 지나던 도중, 안내인은 갑자기 좌측으로 꺾어 들어갔다.

‘음……? 이쪽은?’

이곳의 건물 구조를 대강 파악하고 있던 에일은 향하는 방향이 조금 이상해졌음을 느꼈다.

응접실이나 회의실은 이 방향이 아니었고, 이쪽 길목으로 가게 된다면 오로지 하나의 방으로만 향하게 된다.

혹시나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안내인을 힐끗거리며 쳐다봤지만, 그는 여전히 이상할 것 없다는 듯 행동했다.

‘잠깐, 혹시…….’

에일의 머릿속에 설마,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무렵.

그 설마가 지목했던 방 앞에 멈춰선 안내인이 문을 열었다.

철컥!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

고개를 꾸벅인 안내자가 물러가고, 열린 문틈으로 에일이 발을 디뎠다.

양옆에 놓여 있는 고급스러운 책장과 가구들, 창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커다랗게 새겨진 나이트메어의 길드 문장을 밝혔다.

그가 알기로 이 방의 정식 명칭은 ‘군주의 집무실’.

“에일… 이라고 했던가.”

나이트메어의 길드장, 카린.

그녀가 에일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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