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95화 (95/227)

95화 인맥도 실력이다 (3)

[듀란의 서(일반)]

[감정가: 5골드 15실링]

[복원된 원형 석판(하급)]

[감정가: 48실링 84쿠퍼]

[아벤티노 가문의 가보(일반)]

[감정가: 1골드 9실링 11쿠퍼]

“으음…….”

에일이 손에 쥔 이상한 접시를 내려놓았다.

골동품 감정이 모두 끝나고, 물건을 하나둘 수령 중인 에일은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차근차근 확인했다.

멸망의 마을과 이번 전리품실에서 얻은 것들까지 합쳐져 굉장히 많은 양의 골동품을 감정소에 맡겼었고, 이제야 감정이 끝나 물건들을 돌려받는 중이었다.

감정이 끝날 동안 적잖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지만, 마침 도시와 가까운 사냥터가 존재해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게다가 되돌아오는 수확은 그만큼 확실했다.

‘이거 유물들만 팔아도 손해는 안 보겠는데.’

대부분의 유물 아이템은 플레이어에게 주로 판매나 수집용도에 불과했다.

던전의 골동품들을 긁어모으는 행동도 대부분 이를 통해 쏠쏠한 부수입을 얻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에일도 딱히 관련 퀘스트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별다른 쓸모가 없는 유물들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고, 곧바로 이 자리에서 돈을 받고 물건들을 넘겼다.

[란쿨루스의 잔(희귀)]

[감정가: 91골드 35실링 64쿠퍼]

‘좋았어……!’

희귀급 유물이 등장하자 에일이 쾌재를 불렀다.

막 습득했을 당시엔 볼품없어 보여 기대를 않던 물건 중에서도, 가끔씩 이렇게 대박이 터져 주기도 했다.

‘확실히 멸망의 마을에서 잔뜩 쓸어 담아두길 잘했어.’

엄청난 양을 쓸어 담은 덕에 그만큼 많은 아이템이 나와 줬다.

물론 챙겼던 골동품 중 대부분은 돈을 받을 수도 없는 잡동사니인 데다가 지나치게 훼손되어 가치를 잃어버린 유물들이 섞여 있는 터라, 감정 비용이 더욱 많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지금까지 나온 결과물들만으로도 그 이상의 수익을 남겨 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골동품 중에서는 유물 아이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빛 스킬북 x 2]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랏빛 스킬북]

“이건……!”

마지막에 등장한 아이템들을 보자 에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버려진 사원 아래에 위치한 전리품실의 책장에서 얻은 수많은 고서.

그중에서 고등급 스킬북들이 섞여 나온 것이다.

붉은빛과 보랏빛이라면 6개의 스킬북 등급 중 세네 번째를 차지할 만큼 높은 등급의 스킬북이었고, 운만 따른다면 희귀에서 영웅 등급 스킬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일의 시선은 그 두 스킬북 쪽이 아닌 다른 방향에 온통 쏠려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찬란한 보랏빛 스킬북]

‘이게 나타나 주다니…….’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찬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스킬북.

여기서 붙은 ‘찬란한’이라는 단어는 해당 스킬북이 색에 따라 가지게 되는 같은 한계 범위 내에서도, 좋은 등급의 스킬이 더욱 잘 나오도록 높은 확률을 지닐 때 붙는 수식어였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희귀 등급을 넘는 스킬은 거의 나오기 힘든 붉은빛 스킬북에 ‘찬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면, 희귀에서 상급의 스킬이 나올 확률이 대폭 증가한다는 말이었다.

때에 따라선 수식어가 붙은 스킬북이 한 등급 위의 스킬북보다도 더 낫다는 평을 받고는 했는데, 설마 이런 방법으로 얻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곧 40레벨에 사용할 스킬북이 필요했는데… 고민거리 하나가 싹 날아갔어.’

에일의 레벨은 현재 37.

수중에 들어온 네 개의 고급 스킬북 덕에, 다음 시점에 배울 스킬의 걱정은 접어 두어도 될 수준이었다.

지금 발을 들인 월드 퀘스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번 전리품들은 정말 여러모로 희소식을 안겨 주었다.

현재 에일의 창고엔 무려 7,500골드와 토륨 주괴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수중엔 300골드가 쥐여 있었다.

전투 위주의 유저가 현금을 끌어온 적도 없이, 지금 레벨대에 이 정도 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에일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감정소를 나서려던 순간, 그의 앞에 작은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이건…….’

알리사에게서 도착한 메일 한 통.

워로드와 연동된 에일의 메일 아이디에서 받은 것이다.

그녀가 워로드를 통해서도 아니고 메일로 연락할 만한 용건이라면 한 가지뿐.

‘설마 벌써……?’

마차 위에서 업로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알리사는 기꺼이 자신의 지인 중 편집자 한 명을 소개해 준다고 했다.

마침 사람을 구하지 못해 곤란하던 에일은 당연히 그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였고, 녹화되었던 영상을 보내 줬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가 잘되었다며, 결과물이 나오면 다시 연락하겠다고만 들었는데…….

벌써 연락이 다시 오다니.

“진짜잖아……?”

첨부되어 있는 영상을 확인한 에일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심지어 샘플도 아니라 모든 작업이 깔끔하게 끝난 완성본이었다.

아직 보수나 계약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완성본부터 보내오다니 그의 상식을 벗어난 일.

영상 편집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갈아 넣는 작업이었고, 높은 퀄리티를 가져가려 할수록 작업 시간은 훨씬 더 늘어난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선 훨씬 단축되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벌써 영상 하나가 뚝딱 완성되기엔 너무 빠른 시간이었다.

알리사의 소개를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에일의 그 의구심은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뒤집어졌다.

“음……?”

그녀가 보내온 메일의 마지막 자리엔 로고와 제작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를 확인한 에일의 표정은 곧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 잠깐… 블러디직 스튜디오……?”

* * *

- 이단심판관 영상 또 떴다

- 미친 이번에 로덴도 나왔어

- 로덴? 갑자기?

- 뭔 소리들 하는 거야?

워튜브에 하나의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커뮤니티엔 또다시 파장이 일었다.

얼마 전 통제가 해제되며 새롭게 열렸던 신규 사냥터 버려진 사원.

그 아래에 숨겨진 던전이 바로 이번 영상의 배경이었고, 주인공은 바로 에스마이어 지역의 이단심판관이자 미친 광신도로 뜨거운 화제가 되었던 정체불명의 남자였다.

당연히 그의 등장에 관심을 가지던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광신도를 상대로 한 전투와 처형, 에일의 실력은 오히려 저번 영상에 비해서 더욱 빛이 났다.

관련된 중요 퀘스트 정보를 숨기기 위해, 결사단의 뮤트를 상대한 보스전은 거의 생략되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에일을 제외한 다수의 심판관까지 나와, 언데드는 물론 유저들을 사냥하며 던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니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절묘한 앵글, 소름 돋는 연출이 보는 이를 쉴 새 없이 들었다 놨다 하며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었다.

- 와, 영상 퀄 미쳤다

- 아니, 블러디직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다고? 하이랭커들도 퇴짜 놓는 덱스터가?

- 돈을 얼마나 준 거지

- 블러디직은 돈으로 안 됨. 뭔가 뒷배경이 있다거나 그런 거겠지

- 타 게임 랭커 출신이었던 거 아냐?

기본적으로 영상의 퀄리티 자체가 차원이 다르니 호평과 함께 많은 반응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단순히 블러디직 스튜디오에서 그를 도와 제작에 나섰다는 것 자체만으로 유저들 사이에선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아무 의뢰나 받지 않고 눈이 높기로 소문났던 덱스터였으니, 그가 과거 유명 랭커였다는 설부터 거대 길드가 뒤에 서 있다는 식의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영상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엄청난 화제를 불러온 건 아르메니아의 전 유명 랭커 로덴이 돌아왔다는 것과, 그를 에일이 결투로 쓰러뜨렸다는 것.

- 와, 진짜 로덴을 이겼어?

- 지렸습니다, 형님

- 솔직히 거품이라고 봤는데, 이 정도면 사실상 랭커급인 듯

- 아무리 그래도 로덴 클라스가 있는데 워로드에서 처음 보는 루키한테 지냐? 진심 퇴물 레전드네

- 이 시간에 워벤하는 니 인생이 레전드다

- 저분이 대단한 거지.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ㅜㅜ

- 둘 다 쩔었는데 까는 사람 겜알못임

- 나 아르메니아에 있을 때 로덴 직접 본 적 있는데 진짜 괴물이었음. 근데 그 로덴을 이기다니 얼마나 잘하는 건지 짐작도 안가네

-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지금쯤 워로드 하이 랭커였겠다

- 오늘부터 이분 팬 하겠습니다

댓글창과 게시판들이 마비될 정도의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로덴의 복귀에 국내의 각 포탈사이트에선 실검까지 올랐고, 에일의 정체에 대해서 추측하는 기사들까지 뉴스란에 뜨기 시작했다.

단순히 로덴과 마주하고 함께 던전을 공략한 선에서 그쳤다면 이토록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마주한 뒤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블러디직 스튜디오의 지나치게 뛰어난 편집 실력 덕분인지, 영상을 본 대부분의 사람은 에일이 로덴을 실력으로 압도한 줄 알고 있었다.

로덴이 처음부터 본실력을 드러냈다면 상황이 매우 달랐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실 편집이 가미된 바 없이 원본을 보여 준다 한들, 극도로 빨랐던 영상의 전투 템포에서 그 세세한 차이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눈썰미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라면 무언가를 눈치챘겠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유저는 영상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조차 느끼기엔 무리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에일의 실력 자체는 확실히 뉴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앞선 영상에서는 제대로 보여 주지 않았던 무기 스왑 테크닉은 여태 그 어떤 랭커들도 해내지 못했던 것이었고, 오히려 보는 눈이 뛰어난 이들은 이 부분에 주목했다.

단순히 잠깐의 이슈라 생각하고 관망하던 이들도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바로 이번 영상이었다.

이젠, 거물들의 눈이 그를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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