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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89화 (89/227)

89화 결사단 (2)

“치잇……!”

협상이 결렬되자 에일은 급히 무기를 빼들었다.

어째서인지 거짓말이 단번에 들통난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원.”

방금의 대화를 모두 따라가지 못한 로덴도 창을 들었다.

하지만 그사이 훌쩍 물러났던 뮤트는 높이 쳐든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러자 미처 보이지 않았던 제단의 꼭대기 부분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검은 빛의 돌, 낯이 익은 물건이었다.

“사령석……?”

보스 몬스터 가하르가 지키고 있던 정체불명의 돌, 사령석.

크기가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확실했다.

“어쩐지 되살아나는 게 본 듯한 방식이다 했더니, 하드록 동굴에 있던 도적단도 너희가 벌인 짓이었나.”

“도적단……? 그래, 역시 결사단의 뒤를 쫓고 있던 거였군.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죽어 줘야겠어.”

스스스슷!

제단 위의 사령석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불길함을 한가득 안고 있는 저 검은 기운들은 곧 사방으로 퍼졌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을 모조리 휘감았다.

그러자 힘없이 늘어져 있던 광신도의 시체들이 하나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놈들이 언데드가 되어 일어나자, 금세 에일과 로덴을 사방에서 겹겹이 에워싼 모양새가 되었다.

“후후, 어때? 제단 옆을 지키고 있던 녀석들이야. 자기들 딴에는 나름 정예들이라던데 어디 한번 잘 상대해 봐.”

비웃음이 서린 얼굴의 뮤트가 손을 휘휘 저으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그게 신호라도 되듯이 사방의 언데드들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이런……!”

카가가강!

다수의 적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들이 언데드에게 포위당해 무기를 휘두르는 동안, 뮤트는 느긋하게 걸어 제단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마력을 움직여 바닥에 그려진 거대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사방으로 퍼져 방 전체를 떠돌던 사령석의 검은 기운들이 제단 한가운데로 몰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방 전체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어느새 한데 모여 응축된 기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더욱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슨 짓을……!”

“교단의 뻔한 움직임을 모르고 있었을 거 같아? 미안하지만 모두 읽혔어. 곧 심문소의 떨거지들이 시설 안으로 몰려오겠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예상치 못한 뮤트의 말에 에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던전 내부에 위치한 마법진의 정체를 파악한 뒤, 곧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용 스크롤을 사전에 지급받았던 이유.

정체불명의 마법진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파악만 된다면, 멀지 않은 지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단심판관들이 황혼회의 소탕을 위해 들이닥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집행관 아일린에게서 전해 들었던 계획대로라면, 아마 지금쯤 그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올 시점이었는데 결사단의 일원이 정확히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설마 함정이었던 건가?”

“정답. 바깥에 있던 마법진 따위는 위장에 불과해. 교단의 병력이 모두 지하 던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놈들도 이 광신도들과 함께 의지도 없이 기어 다니는 시체가 될 테지.”

파아앗!

뮤트가 마법진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금지된 마법 중 하나인 대단위 절멸 마법이 담겨 있는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마법의 유효 범위는 무려 던전 전체, 강함과 상관없이 발을 들인 자는 모조리 전멸할 것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고위 마법이었지만, 황혼회가 모아 뒀던 수많은 영혼의 힘을 이용해 설치해 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더 정교한 수도 준비해 뒀었는데, 이렇게 쉽게 걸려들 줄 알았으면 그냥 천장에 칠면조 다리나 하나 매달아 둘 걸 그랬어.”

‘젠장…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다급한 상황에 에일이 생각했다.

자신이 속한 교단의 세력이 약해지면 해당 신격은 물론 에일도 결국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었다.

이단심판관들이 도착해 함정에 당하기 전에 저 대형 마법진이 발동하는 것을 저지해야만 했다.

“로덴 님, 시간이 없습니다! 제단 쪽으로 길을 뚫어야 해요!”

“알겠습니다!”

서걱!

로덴이 달려들던 세 명의 광신도를 동시에 베어 버리며 발을 내디뎠다.

에일 또한 장검에 성화를 먹인 뒤, 놈들을 사정없이 베어 갈랐다.

언데드를 대상으로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만월’ 효과는 여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성스러운 백색 불꽃이 순리를 거스른 놈들을 불태우며 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뮤트는 여유가 넘치는 태도로 마력을 주입하면서 제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절멸 마법진이 발동한다면 방 안에 있는 에일과 로덴 또한 무사할 리가 만무했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상대해야 할 적이 너무 많은 상황.

에일은 인벤토리를 열어 성수를 꺼내들었다.

챙그랑!

성수가 담긴 유리병이 힘껏 던져져 바닥에 부딪혔다.

병이 깨지며 성수가 주르륵 퍼져 나왔고, 에일은 검으로 광신도 하나를 벤 뒤 성화에 휩싸여 몸부림치는 녀석을 그리로 집어 던져 성수에 불씨를 먹였다.

화르르륵!

성수를 먹인 성화의 위력은 굉장했다.

맹렬한 화염이 주변 범위의 언데드들을 휩쓸었고, 위력을 확인한 에일은 남은 성수들을 모조리 던져 가며 길을 뚫었다.

인벤토리에 있던 성수를 모두 사용하고 나자, 당장 그들에게 달려드는 몬스터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불길로 인해 경로가 방해되거나, 몸에 붙은 불을 끄려 몸부림치다가 놈들끼리 뒤엉킨 덕이었다.

“흐음… 제법이네.”

제단의 중단부에서 멈춰선 뮤트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광신도들을 헤쳐 낸 에일과 로덴이 어느새 제단의 계단을 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지팡이를 들어 사령석을 다시 발동시켰다.

츠츠츠츳!

다시금 피어나온 검은 안개가 제단 아래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바닥으로 향하지 않았다.

검은 기운들은 제단 곳곳에서 제물로 바쳐졌던 짐승들의 시체로 스며들었다.

번쩍 눈을 뜬 짐승형 몬스터들이 제각각의 포효를 토해 내며 일어났고, 원래의 모습보다 더욱 불어난 덩치를 뽐냈다.

“옵니다!”

쿠웅!

가장 가까이에 있던 거대한 범이 뛰어들어 에일과 로덴을 노렸고,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을 박살 냈다.

둘 다 재빨리 반응해 몸을 날려 무사하긴 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단 중턱에 있던 뮤트가 아래를 향해 마법을 쏘아냈다.

회색빛 마력창들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고, 에일은 급하게 반대편 손에 방패를 활성화해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상보다 강한 충격에 몸이 밀려나며 체력이 조금씩 깎였다.

카가강!

그사이, 창을 휘둘러 마력창을 쳐낸 로덴은 곧바로 자신을 노리는 범의 아가리에 창대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 일격으로 줄어든 놈의 체력을 정보창을 통해 확인했다.

“하, 무슨 난이도가 이래……?”

공격 두세 번에 금방 나가떨어질 녀석이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범의 체력은 그렇지 않았다.

제단에서 깨어난 짐승형 몬스터들이 한둘이 아닌 걸 생각하면 심히 난감한 상황.

더군다나 금지된 마력에 손을 댄 마법사답게 뮤트는 캐스팅 시간도 없이 마법을 난사해 대면서 위력까지 절륜했다.

콰과과광!

날아드는 마법들이 펑펑 터져 나갔고, 둘은 겨우겨우 피해 가며 날뛰는 짐승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어지간한 수준의 파티라면 이미 몇 번은 전멸하고도 남았을 정도였다.

“이거 지형이 너무 개떡 같은데요!”

시간 제약이 있는 입장에서 지형까지 불리하니 상황을 원활히 풀어 나가기가 어려웠다.

천천히 풀어 나가기도, 빠른 접근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

뭔가 변수를 만들어 낼 방법이 필요했다.

‘그걸 쓰는 수밖에…….’

결정을 내린 에일은 즉시 인터페이스를 조작했다.

[사도 특전, ‘공헌도 상점’이 열립니다!]

[사도의 자격으로 지역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하급 공간 이동 스크롤]

[공헌도 2,500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눈짓과 생각만으로 시스템창을 조작하는 것이었음에도, 화면이 열리고 목록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구매하기까지 소모된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지출은 감수한다……!’

에일이 선택한 스크롤의 마법은 단거리 블링크.

기본적으로 공간마법은 그 효용성만큼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 마련이었지만, 에일은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이 걸린 상황이었다.

“그건……?”

빛과 함께 에일의 손에 생겨난 스크롤을 본 로덴이 놀란 듯 바라봤다.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건 금방이었다.

그는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앞으로 나서며 짐승들의 시선을 끌었고, 에일의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마력창까지 창으로 쳐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촤르륵!

펼쳐진 스크롤 위에 에일이 손을 올렸다.

시선을 통해 좌표를 설정하고, 스크롤에 마력을 주입했다.

파아아앗!

환한 빛과 함께 에일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바닥을 적셨다.

푸욱!

“커윽……?”

심장을 관통당한 뮤트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코앞으로 이동한 에일은 즉시 검을 찔러 넣었고, 마법사인 뮤트는 생각도 못 했던 기습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에일은 재빨리 그녀의 체력을 확인했고, 주르륵 줄어든 생명력은 0퍼센트를 가리켰다.

사망 판정을 받은 그녀의 몸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끝인가……? 조금 쉬운 감이 있는데.’

인간형 몬스터 혹은 NPC들이 다른 종족에 비해 비교적 체력이 적은 편이라는 하나 너무 쉽게 끝이 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움직인 뮤트의 손이 자신을 관통한 장검 날을 턱 짚었다.

움찔한 에일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 얼굴이 바로 맞닿을 정도로 다가온 그녀는 에일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너무해……. 아프잖아. 치고받는 건 내 전문이 아니란 말이야.”

입가에 붉은 피를 머금은 뮤트가 웃음기를 머금었다.

분명히 죽었어야 하는 상황.

경악한 에일은 그녀의 체력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자 바닥을 드러냈던 생명력이 다시금 주르륵 차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어, 어떻게……?”

츠츠츳!

그녀의 지팡이에 거대한 마력이 모였다.

“나는… 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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