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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72화 (72/227)

72화 빛과 그림자 (3)

갑자기 번쩍 떠오른 메시지와 함께, 에일의 레벨이 31로 올라갔다.

에일은 그중 첫 번째 시나리오를 완료했다는 문구와 부분 경험치라는 표현을 유심히 읽어 내렸다.

‘시나리오 던전…….’

하드록 동굴에서 마주했던 던전이 제한 시간 내에 탈출을 실패할 시 발동될 시나리오만 들어 있는 맛보기 수준의 시나리오 던전이었다면, 이번엔 시작부터 제대로 된 냄새를 풍겨 왔다.

‘경험치 양이 심상치 않은데……?’

플피츠 산맥의 산적들을 잡느라 이미 어느 정도 경험치가 차 있었긴 했지만, 방금 잡은 언데드 몬스터들까지 고려한다 해도 한 번에 레벨 업이 되는 것은 범상치 않은 수치였다.

단순한 부분 경험치 보상일 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끝까지 클리어했을 경우의 보상 수위가 어떨지는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터억!

몸을 숙인 네슈아가 에일의 팔을 잡아끌어 당겼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는 굳이 묻지 않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좁다란 통로를 벗어난 그들의 발치 저 아래엔 언데드 몬스터들로 가득했고, 한눈에 보기에도 대책 없이 들이받는다고 해결될 수가 아니었다.

통로에서 나가기 직전, 네슈아가 놈들이 있음을 미리 알 수 있던 건 그림자 파수꾼들이 가지고 있는 기초 패시브 스킬, 기척 감지 덕이었다.

‘유적지… 아니, 버려진 마을인가.’

딱 한눈에 내려봤을 때는 지나치게 건물들이 훼손되어 있어 특이한 모양새의 유적지처럼 보였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니 엉망으로 부서진 마을의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 던전의 이름은 ‘멸망의 마을’이었다.

이런 깊은 계곡의 동굴 속에 누군가가 모여 살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봉변을 당한 것 같았다.

‘그럼 아까 그 언데드들이 원래는 이곳 주민들이었던 건가. 분명 이 주변에 던전이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는데… 재밌게 됐어.’

에일로서는 분명 처음 듣는 이름의 던전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사전 정보가 없어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그동안 유저들에게는 발견된 적 없는 최초 발견 던전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갑작스러운 알림음이 울려왔다.

[‘빛의 심판자, 루’가 죄악의 악취에 눈가를 찌푸립니다.]

[돌발 퀘스트를 부여받았습니다!]

[던전 내부에 있는 신성모독자를 찾아내 제거하십시오(0/1)]

[성공 시 보상: ???]

‘이건……?’

메시지와 함께 나타난 돌발 퀘스트.

존재 자체가 교리를 부정하는 개체이자 대지 위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죄악이라는 ‘신성모독자’가 던전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언데드나 이단 이상으로 교단이 가장 증오하는 적들이었으니, 루가 질색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성공 시 보상은 제대로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들이 진입한 히든 던전과 맞물려 무난한 수준일 거라 보기는 어려웠다.

신성모독자를 처치할 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스탯과 신격이 내린 퀘스트의 보상을 생각하자 에일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일은 침착하게 머리를 식힌 뒤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면 시나리오 던전을 끝까지 클리어해야 하는 모양이었는데, 웬만큼 복잡한 구조가 아닌 이상 돌파하다 보면 놈을 마주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신성모독자쯤 되는 녀석이라면 평범한 몬스터일 리는 만무했고, 끝까지 던전을 클리어하는 동안 찾지도 못할 만큼 어디 구석에 숨어 있지는 않을 터였으니까.

지금은 당장 마주한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가 중요했다.

완전히 언데드로 가득 찬 파괴된 마을.

첫 난관까지는 그렇다 해도 저 많은 몬스터들을 무식하게 때려잡으란 건 아닐 테고, 무언가 해결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렇게 에일이 아래 구조를 파악해 가며 고민하는 사이, 잠자코 있던 네슈아가 먼저 움직였다.

「기다려」

“잠깐, 무슨…….”

에일이 붙잡기도 전에 그는 홀로 아래로 훌쩍 내려갔다.

비스듬한 경사면이라 추락사의 위험 같은 건 없었지만, 몬스터로 가득 찬 동네를 대책도 없이 혼자 강행 돌파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리고 그건 네슈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터억!

아래에 내려선 그는 어둠 속에 숨어들어 가 바짝 모습을 숨긴 채, 무너진 담벼락과 몬스터들 사이로 달려 나갔다.

에일은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문제를 그가 어떻게 해결할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루가 자기를 바라볼 때도 대충 이런 느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막상 구경꾼의 입장이 되자 드높은 신격인 그녀가 왜 굳이 자신을 보면서 즐거워하는지도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저기서 안 들키고 지나간다고?’

여전히 위에서 숨죽이고 있던 에일이 작게 감탄했다.

네슈아는 저 많은 몬스터의 시야를 교묘하게 피해 가며 마을 사이를 헤쳐 지나갔고, 완전히 어둠 속에 숨어들어 발각되지 않고서 빠르게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동굴에서 에일이 그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게 요행이나 우연이 아닌 듯, 놀랍도록 기척을 잘 숨기는 모습이었다.

에일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

그림자 파수꾼이라는 힌의 전용 직업 자체가 잠행에 특화된 암살자 계열 직업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마을 안을 휘젓고 다니던 네슈아는 반쯤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쿠이이이익!

갑자기 마을 한쪽 구역의 언데드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모두가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그 많던 몬스터의 10분의 1가량이 한 번에 소멸되는 모습.

깜짝 놀란 에일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래를 바라봤고, 곧 네슈아가 웬 남자의 시체를 질질 끌고서 건물 밖으로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휙 던져져 바닥에 내팽개쳐진 시체.

‘아… 그런 건가.’

멀찍이 떨어져 있어 아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라는 것쯤은 추측이 가능했고, 갑자기 언데드들이 우르르 쓰러진 것을 보아 그들을 사역하고 있던 네크로맨서일 것이다.

마력을 공급하고 있던 주인이 사라지자 당연히 그를 따르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폭삭 무너진 것.

이상한 낌새를 느낀 다른 몬스터들이 침입자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그 사이에서도 네슈아는 유유히 그림자 속에 스며들었고, 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 네크로맨서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쿠에에엑!

침입자를 쫓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던 마지막 네크로맨서까지 등 뒤에서 심장이 꿰뚫려 쓰러졌고,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언데드들은 모두 소멸되었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에일은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무표정한 네슈아의 뺨엔 네크로맨서들의 것으로 보이는 핏줄기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건물 안에 네크로맨서들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촤륵!

네슈아는 찢어진 스크롤 하나를 들어 올려 보였다.

“그건…….”

중급 투시 스크롤.

검은색 겉면으로 보아, 그림자 교단의 마법 스크롤이다.

빛의 교단에 공헌도 전용 상점이 있듯 다른 교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렇게 딱 필요한 순간에 알맞은 스크롤을 가지고 있었다니.

혹시나 그도 자신처럼 공헌도 상점을 어디에서나 사용 가능한 권한을 가진 ‘사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에일은 곧 그럴 리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루가 최초로 깨어난 신격임은 명확했고, 그 이후 그녀의 말에 따르면 에일이 최초의 사도라는 것도 변함없었다.

만약 그다음으로 신격이 깨어나거나 사도가 생겨났다면, 무언가 경고를 해 왔을 텐데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최소 500레벨은 되어야 부여받을 수 있는 ‘사도’의 직위를 받은 유저가 벌써 둘이나 생겼으리라 생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상황에 맞춰 필요할 만한 스크롤들을 몇 개씩 챙기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까진 없었다.

「다ㅇ」

“잠깐만.”

“……?”

또 네슈아가 바닥에 글씨를 끄적이기 시작하자, 에일이 그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깃펜과 양피지를 꺼내 건네줬다.

처음 화형을 선고받고 빛의 교단의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 마지막 말을 남기라며 받았던 물건들이었다.

실제로 쓸 일은 없어 구석에 박아 뒀던 것들.

“보는 내가 더 답답하다. 그걸로 써.”

공중에 떠오른 양피지는 어디서든 쓰기 편하게 고정되었고, 깃펜으로 글씨를 끄적여 본 네슈아는 꽤나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딱딱한 바닥을 단검으로 긋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모양이었다.

한층 더 수월해진 의사소통 방법을 터득하게 된 그들은 허름한 건물들을 뒤지며 마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원래 바깥으로 통했을 것처럼 보이는 통로들은 모두 인위적으로 무너져 내려 막혀 있었고, 굶어 죽기 전에 빠져나가기 위해선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찢어진 로브 조각(하급) x 7]

[혼탁한 마력의 반지(상급)]

물론 에일은 단서를 찾는 와중에서도, 네슈아가 루팅하지 않고 남겨 둔 네크로맨서의 아이템들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직접 쓸 수 있을 만한 건 없었지만, 적당한 가격에 팔아넘길 수 있는 장비 아이템들도 몇 개 나와 줬다.

심지어 에일은 건물 안 곳곳에 놓여 있는 정체 모를 골동품들도 감정을 위해 모조리 챙겨두었다.

“…….”

“뭐, 난 누구처럼 부르주아가 아니거든.”

딴짓을 곁들이자 네슈아가 중간중간 눈치를 주긴 했지만, 에일은 뻔뻔한 얼굴로 그를 가볍게 넘겼다.

아이템을 챙긴답시고 단서를 찾는 걸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음?”

무심코 건물 사이를 지나던 에일이 흠칫 멈춰 섰다.

마을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커다란 우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안을 살피자 이미 말라 물은 한 방울도 없었고, 밧줄로 엮인 사다리가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구성이 에일의 촉을 자극했다.

“이쪽이야!”

멀찍이 있는 네슈아를 부른 에일은 그가 오기도 전에 먼저 아래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보았다.

너무 어두워 우물 바닥이 당장 보이지는 않았지만, 밧줄의 상태만큼은 좋아 사다리가 끊어질 걱정은 없어 보였다.

타악!

바닥에 내려선 에일은 곧장 횃불을 꺼내들었다.

밝게 비춰진 공간, 우물 지하엔 오래된 수로처럼 보이는 낡은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로 내엔 왠지 모를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한쪽으로 길게 뻗어진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짚은 것 같았다.

[두 번째 시나리오가 완료되었습니다!]

[부분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정답이라는 듯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하지만 에일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그르르륵…….”

가래가 끓는 듯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수로의 저편에서 들려왔다.

감각을 곤두세운 에일은 횃불을 조금 더 앞으로 당겼고, 그제야 불빛이 놈의 신형을 비추기 시작했다.

둥그런 몸뚱이로 수로 한쪽을 통째로 막고 있는 비대한 덩치의 언데드 몬스터.

형편없이 뭉개 놓은 지방 덩어리를 한데 뭉쳐 놓은 것 같은 생김새의 하얀 괴물은 몸을 한차례 꿈틀댔고, 구토가 쏠릴 것 같은 진한 악취가 풍겨왔다.

“꾸억?”

놈의 시선이 에일을 향해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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