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71화 (71/227)

71화 빛과 그림자 (2)

워로드의 신격은 ‘빛의 신’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를 제외하고도 여섯의 신격이 더 존재했고, 마찬가지로 그들을 따르는 여섯의 교단이 대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요와 어둠, 침묵의 신.

세 가지 이명 모두 신격 ‘힌’을 뜻하는 이름이었다.

‘루’를 따르는 빛의 교단이 극단적이고 과격한 성향 탓에 두 번째 가는 비주류 교단이라면, ‘힌’을 따르는 그림자 교단은 비주류를 넘어서 워로드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교단이었다.

그 이유야 분명했다.

‘침묵’

그림자 교단에 속한 신도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을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페널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실수로라도 입을 열어 대화를 했다간 ‘신의 총애’ 스탯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

특정 대상을 넘어 아예 모든 이와의 소통이 단절된다는 것.

그야말로 워로드에서 제일가는 끔찍한 페널티로써 모두가 입을 모아 동의하는 그림자 교단의 위엄이었다.

스스스.

싸늘한 냉기가 도는 네슈아의 단검에 피어난 검은 빛의 서리는 그가 힌의 신도라는 것과 그들 교단의 전용 직업인 ‘그림자 파수꾼’이라는 걸 알려 주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단심판관이 상징적인 전용 스킬인 ‘성화’를 가지고 있듯, 그림자 파수꾼의 ‘어둠 서리’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고생이 많겠네.”

「너도」

“…….”

굳이 많은 대화 없이도 서로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 에일과 네슈아가 잠시 말을 잃었다.

하나같이 컨셉이 강한 교단들 중에서도 유별나기로 유명한 빛의 교단과 그림자 교단에 몸을 담고 있는 그들이었으니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게 당연했다.

[‘빛의 심판자, 루’가 불편한 심정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당신이 잠재적 경쟁 대상과 너무 편한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교단 소속의 플레이어라면 빛의 교단엔 경쟁자나 다름없는 입장이었고, 더군다나 네슈아가 따르는 신격 ‘힌’은 특이하게도 루와 대조되는 성향을 가진 신이었다.

빛과 어둠의 대척점에 선 두 신격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서로를 경계해 여러모로 복잡한 관계를 띠고 있었다.

물론 신격들 중에 빛과 어둠처럼 대조되는 속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러한 관계는 그들이 유일했다.

자신의 유일한 사도가 힌의 신도와 함께 시시덕거리고 있었으니, 여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작 마주하고 있는 에일과 네슈아의 사정은 달랐다.

다른 진영에 소속되었다고는 하나, 어차피 같은 플레이어인 데다가 오히려 뜻도 잘 통하는 편이었다.

저번의 팽팽한 싸움으로 서로의 실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어딘지 모를 곳에 갇힌 상황에서 굳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거나 죽자고 덤벼들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의 머리 위에 이단의 낙인을 찍어 버린다든가, 특수 퀘스트를 부여한다면 대립은 어쩔 수 없겠지만, 루와 힌 사이의 관계가 그 정도로 나쁜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경쟁 상대라는 정도.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에일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러자 네슈아는 다시 단검을 끄적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우선 밖으로」

“그다음은?”

「배신의 대가」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기엔 너무 손이 많이 가는지 단어만 끄적이는 네슈아였고, 그의 뜻을 모두 문제없이 알아들은 에일은 피식 웃어 보였다.

“뭐, 좋아.”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쭈그려 앉아 있던 두 남자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수의 효력이 다하자 길을 막고 있던 불길이 꺼졌고, 그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통로에서 쏟아져 나왔다.

쿠이이익!

불그스름한 피부의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인간의 살결을 탐하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며 몰려드는 모습.

츠츠츠!

화르르륵!

검은 서리와 백색 불꽃이 둘의 무기에 피어올랐다.

그리고 에일과 네슈아는 땅을 박차고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백을 가뿐히 넘는 몬스터 무리와 두 명의 플레이어가 격렬히 맞부딪쳤다.

촤악!

에일이 힘껏 휘두른 장검이 입을 쩍 벌린 괴물을 그대로 양단했다.

놈을 베고 지나간 장검의 경로에 언데드들이 질색하는 백색 불길, 성화가 일었고 주변의 다른 몬스터를 주춤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싼 몬스터들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언데드들의 압박에도 눈 깜짝하지 않고 움직임을 이어 나가는 에일은 계속해서 놈들을 베어 갈랐다.

그러던 중 뒤편의 몬스터 하나가 에일의 등을 노렸지만, 놈은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네슈아의 단검에 머리가 꿰뚫려 바닥을 뒹굴었다.

그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

네슈아의 뒤를 노리는 몬스터는 곧바로 에일이 차단해 목을 쳐냈다.

그들은 서로에게 등을 맡긴 채 몬스터의 파도를 막아 냈고, 방금에야 겨우 반쪽짜리 대화를 나눠 본 참임에도 등 뒤만큼은 걱정하지 않으며 싸움을 이어 나갔다.

‘28레벨… 무리형 몬스터인가? 아무리 그래도 시작부터 이만한 숫자가 나오는 건 흔치 않은데.’

긴박한 전투의 틈에서도 에일은 표기되는 몬스터들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정보를 확인했다.

그가 상대하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은 불그스름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모두 각양각색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28레벨의 몬스터임은 같았다.

언데드 몬스터답게 성 속성과 화 속성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 에일로서는 훨씬 상대하기에 수월했다.

그렇게 둘이 각자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베어 가른 뒤.

쿠웅!

끝내 마지막 몬스터가 쓰러졌다.

“후우… 어떻게 잘 막아 냈네.”

장검을 꽂아 넣은 에일이 한숨을 돌렸다.

아무도 죽지 않고 무사히 이겨 내긴 했지만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끈질기게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긴 사투를 벌인 탓에 끈적한 피가 여기저기 눌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들은 모두 언데드 몬스터들의 피였다.

엉망인 겉모습과는 달리, 에일과 네슈아는 약간의 체력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무리 없이 흘릴 수 있을 만한 공격을 몇 번 받아냈을 뿐, 살짝 찢어지거나 스친 상처가 전부였다.

이제 처음 파티 플레이를 함께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둘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졌다.

더군다나 둘은 조금 숨을 돌릴 뿐, 그리 지친 기색도 아니었다.

그를 증명하듯 단검을 거둔 네슈아는 따로 쉴 시간을 가지려 하지도 않고서, 곧장 괴물들이 들이닥쳤던 통로를 향해 나아가려 했다.

“잠깐……!”

하지만 에일이 그를 불러 세웠다.

우뚝 멈춘 네슈아는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고, 에일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몬스터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루팅은 하고 가야지.”

옅은 빛으로 반짝이는 괴물들의 시체.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는 표시였고, 그를 그냥 지나칠 이유는 없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네슈아는 괴물의 시체 위에 걸터앉아 팔짱을 낀 채 에일을 기다렸다.

“…넌 아이템 루팅 안 해?”

「보스만」

“자식… 돈 많나 보네. 부럽다.”

피식 웃은 에일이 진심이 섞인 말을 중얼거렸다.

현질 등의 이유로 시작부터 자금이 풍족한 유저들은 일반 몬스터를 잡은 뒤 아이템을 일일이 줍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경우인 모양이었다.

포션이나 장비 정도야 모두 경매장에서 마련하고, 돈으로 구할 수 없는 스킬북이 걸려 있을 때에만 루팅을 한다는 건데, 에일의 입장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뭐 어쨌든 그건 그거고. 나는 아이템 독차지하니 더 좋지.’

부럽긴 하다만 어쨌든 에일에게는 좋았다.

전리품으로 얻을 수 있는 몫이 무려 두 배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상당히 많은 몬스터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만큼, 무시 못 할 양의 골드와 아이템이 떨어져 줬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전리품을 모두 획득한 에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해체용 칼을 꺼내 들었다.

“…….”

“미안, 조금만.”

머쓱하게 사과한 에일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사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질긴 가죽과 단단한 뼈를 가르는 그의 모습은 다른 유저들에 비해 눈에 띄게 빠른 속도였고 몬스터 열댓 마리를 눈 깜짝할 새에 해체해 냈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행운석(희귀)]

“나왔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붉은빛의 보석.

예상보다 훨씬 이르게 원하던 아이템이 나와 주자 에일이 펄쩍 뛰었다.

지금의 녀석들처럼 붉은 기운을 띠고 있는 언데드 혹은 동물형 몬스터들을 해체할 시,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소모 아이템 ‘행운석’이었다.

스킬북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흔치 않은 거래 불가 아이템인 데다가 꽤나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보석이었다.

일반 루팅으로는 결코 나오지 않는 녀석이었고, 해체 작업에 아예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습득 경로에 대해 알고 있지도 못했다.

물론 애초에 해체를 즐기는 플레이어라고 해도, 오히려 에일처럼 아이템 하나하나의 습득 방법에 대해 줄줄이 외우고 있는 게 이상한 것이었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네슈아조차 행운석의 등장에 흠칫 놀란 얼굴이었다.

계속해서 몬스터 해체를 이어 나가던 에일은 그런 네슈아에게 손짓하며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었고, 곧 해체가 끝난 시체 하나를 그에게 밀었다.

“……?”

반사적으로 아이템을 루팅한 네슈아의 손에도 붉은 행운석이 들려 있었다.

백이 넘는 몬스터를 일일이 루팅하고 해체할 동안 기다려 준 그에게도 하나 나눠준 것이다.

남은 몬스터를 모두 해체한 에일은 행운석을 총 다섯 개나 얻을 수 있었고, 충분히 만족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작 백 조금 넘게 잡은 거 가지고 행운석이 여섯 개나 나오다니. 갑자기 내가 벼락 맞을 수준으로 운이 좋아진 게 아니라면 일반 던전은 아니라는 소리겠네.’

행운석의 통상적인 드랍 확률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이렇게 높은 확률로 아이템을 드랍하는 것은 밸런스 붕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몬스터의 리젠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회성 던전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고, 네슈아와 함께 통로로 향하자 곧 그의 추측이 맞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히든 던전 ‘멸망의 마을’의 첫 번째 시나리오가 완료되었습니다!]

[부분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