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시작이 반이다 (2)
“반응이 엄청나네…….”
개인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에일이 땀을 삐질 흘렸다.
그가 직접 올렸던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은 물론, 커뮤니티 사이트들도 뜨겁게 달궈졌다.
명백히 에일의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여전히 경쟁은 치열하지만 6대 길드들이 소강상태가 되었고, 상위권 랭커들의 순위는 쉽게 변동되지 않고 고착화된 상황.
거기다 눈에 띄는 루키들도 없던 시점에 신박한 컨셉의 실력자가 나타난 것이었고, 좀 더 신선한 이슈에 목말랐던 많은 이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실력과 컨셉, 운, 시기까지 모두 알맞게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였다.
‘아무도 못 알아챈 거 보면 연기 실력은 나름 합격점이라는 건가.’
에일은 이번 영상을 촬영하느라 사람들이 제멋대로 생각하던 섬뜩한 이단심판관 역을 맡아 충실히 수행했다.
기도문을 줄줄이 외우며 몬스터를 도륙 내고 피도 눈물도 없는 광신도.
단순히 게임 속 컨셉 플레이가 아니라 실제로 루를 맹렬히 믿는 광신도처럼 보여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나마 연기엔 자신이 없어 과묵한 컨셉으로 잡은 덕에, 어색한 부분이 꽤나 감춰진 게 다행이었다.
‘일단 얼굴도 가려 두길 잘한 것 같고.’
에일은 워로드의 리플레이 녹화 시스템에 내장된 화면 왜곡 기능을 이용해 영상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단순히 화면 위에 덧대는 모자이크와는 달리, 얼굴을 인식하는 게 불가능하면서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능이라 영상의 질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정체를 숨길 수 있었다.
거기다 에일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전력의 스킬은 일부러 감추기까지 했다.
일단 대놓고 유명세를 떨치려 한 것은 맞지만, 사도 전용 스킬이나 일섬 같은 핵심 스킬들을 대책 없이 마구 공개했다간 처음 마주한 상대에게까지 미리 전력이 파악될 수 있었다.
각종 매체에 밥 먹듯이 등장하는 유명 랭커들도 가능한 한 자신의 몇몇 핵심 스킬은 숨기려는 경우가 많았는데, 에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빼고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핑 포션까지 최대한 투자하며 사냥엔 더욱 진심으로 임했다.
무엇보다 에일이 업로드한 영상은 단순히 전체를 모두 담은 영상이 아니라 중간중간 스킵과 시점 변화가 들어가 있는 편집본이었다.
기본적으로 이런 식의 하이라이트 방식은 실제 실력보다도 더 뛰어나게 보이기 마련이었고, 안 그래도 뛰어난 에일의 실력에 편집까지 덧붙이자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끌 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취미 삼아 영상을 만들던 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
에일은 과거 학교에 다니면서도 각종 온라인 게임의 최상위권 랭킹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랭커로서 활약하던 첫 게임에서 투기장 시즌 랭킹 1위를 처음으로 달성했을 때, 그를 기념으로 PVP 하이라이트 영상을 스스로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영상 편집에 손을 댔다.
그 이후로 날카로운 게임 센스와 화려한 플레이 덕에 제법 팬층이 생기기도 하였고, 영상 편집에도 나름대로 실력이 붙어 지금의 작업물을 만드는 데에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수준이었기에, 다음 영상부터는 전문가에게 맡길 생각이었지만.
‘워튜브 컨텐츠 자체에 기대를 한 건 아니었는데… 이 정도면 수입도 상당하겠어.’
이제 막 채널을 개설해서 겨우 영상 하나를 던져 놓았을 뿐인데,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조회수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았다.
가끔씩 영상을 올린다 해도 만약 이 정도 조회수가 앞으로도 유지만 된다면, 영상에 붙을 광고만으로도 상당한 수입이 될 것이었다.
설마 벌써 이렇게 성공적인 반응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빛의 심판자, 루’가 당신을 후원합니다.]
[여신의 총애 +1.35% (현재 58.42%)]
[빛의 교단 공헌도 +700]
[후원 아이템이 지급되었습니다.]
[성수(일반) x 5]
“엇……?”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들에 에일이 놀라 멀뚱멀뚱 바라봤다.
여태 얻었던 것 중 가장 많이 오른 공헌도, 거기에 처음으로 직접적인 아이템까지 후원이 들어왔다.
성수라면 빛의 교단에서만 구할 수 있는 굉장히 유용한 소모성 아이템이었는데, 지불해야 하는 공헌도가 은근히 부담스러운 탓에 에일은 아직 보유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안 그래도 하나쯤 구매해 둘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대도 않던 시점에 아이템을 공으로 5개나 얻게 되었으니 횡재가 따로 없었다.
‘요새 들어 점점 통이 커지는 걸 보면, 영향력 수급이 다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막 잠에서 깨어난 직후인 데다가, 사도를 만든 반동으로 영향력 수급에 곤란을 겪던 그녀였는데, 처음과는 여러모로 달라진 듯한 모습이었다.
[‘빛의 심판자, 루’가 당신을 기특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역시나 루는 에일의 이번 활약에 대만족한 모양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라도 교단에 가입하는 방법이나 전용 직업의 장단점을 알아보려는 유저가 많아졌으니, 당연히 교단 세력의 확장을 원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대놓고 광신도 컨셉을 잡은 에일이 네임드 유저로서 활동하며 이름을 떨칠수록 필연적으로 빛의 교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이슈로 신격의 입장에서까지 빠르게 체감이 될 만큼 교단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는지 에일이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그녀가 워로드 바깥의 여론이나 반응을 간접적이나마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직접 바깥의 인터넷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워로드 유저들의 대화를 엿듣는 수준인 건지는 모르겠다만…….’
[‘빛의 심판자, 루’가 당신에게 불만을 제기합니다!]
“음……?”
에일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루의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특하다는 눈빛에서 갑자기 불만이 제기되다니 적잖이 당황한 에일은 메시지의 아래에 추가로 출력된 텍스트를 읽어 내렸다.
‘성의 없는 태도에 실망……?’
감사할 줄 모르고서 여신의 은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결국 미지근한 리액션에 실망했다는 소리였다.
엎드려 절 받기라도 내놓으라는 소리였고, 피식 웃은 에일은 진심을 담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아무리 게임 속 존재라 한들, 꼼짝없이 오류 속에 갇혔던 자신을 구해 줬던 은인이라는 것은 변함없었고, 나름의 감사한 마음은 실제 가지고 있는 부분이었다.
[‘빛의 심판자, 루’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여신의 마음은 쉽게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거 실수해 버린 건가…….’
슬쩍 실눈을 뜬 에일이 내심 고민했다.
금세 풀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반응이 돌아와 버렸다.
어쩌면 유일한 사도라고 너무 방심하고 있던 걸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공헌도를 후원받았습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30]
‘결국 이럴 거면서 튕기기는.’
에일은 가까스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흠흠, 좋아.”
기도를 마치고 일어난 에일은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산채를 돌며 사냥한 결과, 에일은 레벨 업에 성공해 드디어 30레벨을 달성했다.
평균적인 유저의 기준에서도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초보자 딱지는 완전히 떼게 되는 시점이었고, 세 번째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에일의 스킬란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산채의 보스들을 잡으며 얻어 둔 스킬북 세 개가 있었지만, 모두 쓸 만한 스킬이 나오지 않았다.
등급으로 보나 성능으로 보나 에일의 기준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
어설픈 스킬임에도 적당히 타협해 습득해 두는 것은 당연히 에일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세 가지 스킬을 모두 배우지 않고 포기했다.
‘일단은 새로운 스킬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이겠어.’
이곳에서 계속 보스 몬스터를 잡아 가며 스킬북을 수급할 것인지, 아니면 더 확률이 높은 상위 스킬북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인지.
에일은 잠시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했다.
까악까악!
그때,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낮게 날아든 백색 까마귀가 에일에게로 다가왔다.
푸드덕 날개 소리를 내며 팔에 올라탄 까마귀는 양피지가 묶여 있는 한쪽 다리를 쓱 들어 보였다.
그러자 에일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하얀 숲에서 온 전령이군…….”
* * *
“금방이라더니 대체 언제 죽일 생각인 거야? 그놈이 활개 치게 내버려 둔 탓에 나까지 보복당해 죽었어!”
베켄이 씩씩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여 있는 핸드폰 너머에서는 그와 대조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점은 사과하겠다. 암살 대상의 능력이 우리의 예상 밖이었어.”
아마란스의 에스마이어 지부장, 가네이가 답했다.
평균적인 범주를 넘어선 대상의 실력 탓에 시간이 지체되고 의뢰인을 살해하는 것을 막지 못한 건 명백히 자신들의 실수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죽임을 당한 의뢰인은 그 정도 설명과 사과로는 납득 못 하는 모양이었다.
“무능한 자식들! 워로드 최고의 청부 길드라더니 저렙 하나 못 잡고 빌빌대? 이쪽은 같은 돈을 무려 2번이나 지불했다고!”
얼굴이 시뻘게진 베켄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지만 가네이는 그의 악담엔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는 듯, 여전히 기계처럼 침착한 음색이었다.“우리의 실수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원래 의뢰를 맡던 팀들은 물러난 뒤, 두 번째 의뢰금을 돌려주고 정예 팀을 새로 보낼… ‘예정’이었지. 원래대로였다면 말이야.”
“예정이었다고?”
“놈이 나이트메어 길드와 관련되어 있었다.”
“뭐?”
나이트메어라는 단어에 베켄조차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으며 필사적으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6대 길드라니.
주변에 제법 이름을 알린 중견 길드, 화이트 팽조차도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위치의 초거대 길드였다.
에일이 그런 거물과 연관되어 있을 리가 없을 거라며, 그저 잠깐의 자존심에 미쳐 날뛰던 애송이였을 거라고, 머릿속에서 격렬히 현실을 부정했다.
그때, 입을 연 가네이의 말이 그를 충돌하고 있는 혼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꺼냈다.
“물론 서로 구면은 아닌 것 같았다고 하더군. 놈이 나이트메어와 깊은 협력 관계가 아니었던 건 확실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이렇게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을 리가 없으니까.”
“그, 그렇지! 그렇다면 놈은 언제…….”
“하지만 나이트메어의 길드원이 직접 나선 이상 달라질 건 없다. 우린 여기서 손을 떼겠어.”
“잠깐… 뭐라고?”
반색하던 베켄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입을 벌렸다.
“청부 계약 전에 말했던 동의 사항을 잊지는 않았겠지? 6대 길드와 연관되어 있을 경우 의뢰는 자동으로 취소된다는 걸. 그래도 위약금을 뺀 의뢰금은 모두 돌려주도록 하지.”
“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나이트메어라더니 고작 길드원 하나에 쫀 거냐? 돈이라면 몇 배 더 얹어줄 수도 있으니까 그 자식만큼은 확실히 끝내라고!!”
길길이 날뛰는 베켄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침을 튀겨대는 입이 수화기를 잡아먹을 듯이 다가왔다.
하지만 가네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답했다.
“이봐, 충고 하나 해 줄까? 이 업종은 리스크가 큰 장사다. 돈만 쥐어 주면 의뢰인 대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게 이쪽 일이지. 가끔 재수 없게 대형 길드의 길드원과 엮이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데다가 뒷수습에도 골치 아파. 그러다가 격이 다른 ‘거물’과 한 번 잘못 마주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나? 어제까지는 분명히 멀쩡했던 길드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거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투정을 잠자코 들어주던 조금 전과는 달리, 확 바뀐 그의 말투에 베켄은 저도 모르게 흠칫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아마란스는 어떻게 워로드 전역에 지부를 만들고, 1년 동안이나 활동하면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지킨 거다. 6대 길드의 영역 내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것. 아무리 작은 연관이라도 상관없어. 이제 좀 이해가 가나?”
“그런 말도 안 되는……!”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이 일을 맡기려면 다른 길드를 알아보는 편이 빠를 거다. 사리 분별도 못 하는 머저리들로 말이야.”
뚝!
통화가 끊어졌다.
석화에 당해 돌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에 멈춰 섰던 베켄의 팔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화이트팽의 길드 마스터인 친형은 길드 사정을 운운하며 매몰차게 부탁을 거절했고, 워로드 청부 분야의 최고라는 아마란스마저도 그의 의뢰를 거절했다.
그동안 잘난 맛에 살던 베켄에게는 처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을 죽인 에일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베켄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