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60화 (60/227)

60화 시체굴 (4)

쏴아아아!

시체굴 전체를 가득 채웠던 물들이 일제히 빠져나갔고, 에일은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아마란스의 추적자들은 모두 익사해 싸늘한 시신이 되었고, 굴 안에 득실거리던 시체 머맨들마저도 모두 쓸려나가 사라졌다.

다시 리젠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넉넉했고, 나가는 동안 몬스터들의 방해를 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칭호 ‘고렙 학살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강강약강’를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 ‘수중 보옥’의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

무수히 떠올랐던 인터페이스 창들이 시야를 메우고 있었고, 에일은 그를 하나하나 읽고 지우며 화면을 정리해 나갔다.

먼저 이번 일로 얻은 경험치 덕에 레벨이 2만큼 올라가 28레벨을 달성했다.

비록 쥐꼬리만 한 수치긴 해도 엄연히 에일이 설치한 함정으로 그들에게 데미지를 주었기 때문에 그가 처치한 것으로 판정이 되었다.

레벨 차에 비해 너무 적게 오른 것이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워로드에서는 시스템 악용을 막기 위해 플레이어와 아무리 많은 레벨 차이가 있다고 해도, 한 번에 폭발적인 레벨 업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지는 않았다.

지금의 에일 정도면 거의 최고 수준으로 많이 받아 챙긴 것이었다.

[다수의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여신의 총애 +0.51% (현재 56.07%)]

[빛의 교단 공헌도 +115]

[신앙심 스탯 +3]

[광기 스탯 +3]

당연하게도 유저를 죽이고 다니는 게 본업인 그들의 머리 위에는 이단의 낙인이 떡하니 찍혀 있었기 때문에, 따로 이단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정상적으로 추가 스탯 보너스를 챙길 수 있었다.

[당신의 기지에 감탄한 여신이 후원을 보내 왔습니다.]

[압도적인 열세를 뒤집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600]

거기에 이번 에일의 활약에 감명 받은 루가 후원을 보내왔다.

이번 일을 위해 소모했던 공헌도를 간단히 메꿀 만큼 상당히 큰 보상이었고, 단순히 만족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현재 보유한 공헌도는 1,325.

그동안 착실히 모아 뒀던 공헌도와 합쳐져 굉장히 많이 쌓인 편이었다.

당장 써야 할 용도는 없었지만, 지금처럼 급한 일이 생길 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었으니 바람직한 일이었다.

“찾았다!”

시체굴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아마란스 길드원의 시체를 발견한 에일이 그리로 달려갔다.

혹시나 물살에 휩쓸려 멀리 날아가지는 않았는지 걱정했는데, 입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신에선 희미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정상적으로 루팅이 가능했다.

보스룸에서 둥둥 떠다니던 툴론과 루카스의 시체는 미리 거둬들여 아이템을 챙겨 놓은 뒤였고, 그의 아이템까지 챙겨서 모두 한데 모았다.

그런 뒤 인벤토리를 정리하며 이번 수확들을 체크했다.

‘역시… 장난이 아닌데?’

그들이 직접 장착하고 있던 고레벨 장비 아이템이 5피스가량 떨어졌고, 함께 나온 골드만 해도 상당한 액수였다.

그들 모두 PVP를 중점으로 하는 유저들이니 만큼, 기본적으로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에일의 레벨 대에서는 구경도 하기 힘든 액수였다.

그 외 고급 포션을 비롯한 기타 아이템들까지 포함한다면 이번에 얻은 수확은 훌쩍 뛰어올랐다.

‘레벨 제한 때문에 직접 사용할 수는 없지만, 장비들까지 내다팔면 최소 4,000골드 이상은 뽑히겠어.’

역시나 가장 돈이 되는 건 그들이 장착하고 있던 장비 아이템들이었다.

장비 하나씩만 따져 봐도 실제 현물 가치의 상당한 금액으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이었고, 죽을 고비에서 오히려 대박을 터트리게 된 셈이었다.

“후우…….”

에일은 천천히 심호흡하며 떨리는 팔을 진정시켰다.

치열한 사투 끝에 무사히 살아남은 데다가, 구상했던 작전이 멋들어지게 먹혀들었고, 100레벨 위의 베테랑 셋을 상대로 고스란히 게임 밖으로 보내 버렸다.

거기다 전리품까지 초대박을 터트렸으니 벅차오르는 고양감에 가슴이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에일은 터져 나오려는 기쁨을 애써 감추며 발걸음을 계속했다.

한 번의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진짜 중요한 건 이 다음이었다.

아마란스 길드에서 고작 한 번 죽은 정도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고, 오히려 만회하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한 명이라면 기본적으로 한 조가 끝까지 담당하는 게 그들의 원칙이었고, 이미 건수를 맡은 조원들이 되살아나 위치를 처음부터 다시 추적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최소 이틀 이상의 시간은 번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은 끈 셈.

이제 이 벌어 둔 시간으로 좀 더 본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이번 계획은 운 좋게 딱딱 맞아 떨어졌지만, 한 번 크게 당해 놓고 녀석들이 또 방심해 줄 거란 기대는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길드원만 수백 명이 넘어서는 아마란스를 상대로 나 혼자 끝까지 싸우는 건 자살 행위야. 그쪽에서 먼저 의뢰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내가 살 수 있다.’

아마란스가 먼저 의뢰인에게 받았던 의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는 것.

절대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특출한 길드의 소속에 직접 몸을 담고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아마란스가 절대 건드리지 않는 표적들이 있었다.

워로드 전역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세력인 ‘6대 길드’와 연관되어 있거나, 왕도 아스칼론의 NPC 세력 ‘왕가’의 특별 의뢰를 수행한 적 있는 플레이어의 경우.

‘6대 길드 쪽은 아직 쥐뿔도 없는 내 입장에서는 무리고, 그렇다면 남은 건 두 번째 방법뿐이지.’

세계관이나 자세한 지리 사정에 관심이 없는 초보 유저들은 간혹 모르고 넘어가는 부분이었지만, 중앙 지역 바깥의 끔찍한 오지들을 제외하면 플레이어가 활동하는 모든 지역이 모두 ‘왕국’의 영역이었다.

워로드엔 오직 하나의 왕국만이 존재했고, 따라서 왕족 역시 하나뿐이었다.

중앙 수도를 제외하면 영지들의 실질적인 관리와 지배는 영지를 차지한 플레이어 길드가 하기에 생각만큼 큰 힘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목상으로는 영지를 ‘위임’받은 모든 길드가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었다.

영지 수익에서 세금을 조금 떼어갈 뿐, 길드 간 전쟁이나 영지 지배권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 무림의 황실 같은 느낌의 포지션이라고 보면 적당했다.

다만 그렇다고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존재감이나 영향력이 없는 건 결코 아니었다.

왕실 무역이나 토벌 의뢰 등 대형 퀘스트들을 주기적으로 유저들에게 제공하며 전투와 생활 양면에서 중요한 입지를 지니고 있었고, 왕가와의 관계도가 일정 이상일 때만 구매할 수 있는 장비나 포션, 재료 아이템과 전용 스킬북도 존재했다.

공식적인 왕국의 주인인 만큼 워로드 내에 존재하는 NPC 세력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데다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역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어 거대 길드들조차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거기다 범죄 길드들은 왕가와 엮인 일에 특히 더 주의해야 하니까.’

돈만 된다면 오지를 포함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는 범죄 길드들이 가장 탐낼 게 많은 왕도만큼은 얼씬도 하지 않는 이유.

실수로라도 왕실의 일을 방해했다간 왕국 전역에 걸쳐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주변 세력과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생기면 적당히 지역을 옮기며 활동하기 마련인데, 왕국 전체의 주인인 왕가와 문제가 생겼다간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실제로 몇몇 청부 길드들은 왕가의 중요 퀘스트를 진행 중인 유저를 모르고 살해했다가, 길드 전체에 높은 현상금이 걸려 커다란 타격을 입거나 아예 와해된 경우까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아마란스가 왕가와 관련된 유저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범죄 길드 중에선 극도로 신중한 성향을 가진 아마란스는 그런 위험 요소가 있을 법한 일엔 아예 손도 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게임에서 워로드로 넘어온 수많은 명문 청부 길드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와해될 동안, 아마란스 만큼은 독보적으로 오래 살아남아 1강 체제를 구축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에일은 이걸 노려야 했다.

왕가와 관련되게 만드는 순간 아마란스도 깔끔히 그에게 손을 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왕가와 엮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거지.’

워로드 전역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세력인 데다가, 플레이어들에게 양질의 퀘스트를 다수 건네주었고, 그에 걸맞은 훌륭한 보상도 자연히 따라왔다.

그런 왕가와의 관계를 탐내지 않을 이가 없었고, 다른 수많은 유저들도 그들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 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실제로 왕도 주변엔 생고생을 하면서 관계도를 올려 보려 노가다를 하는 유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중 태반이 시작도 못하고 좌절해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떠돌이에 불과한 유저들이 왕궁 출입이 가능할 리가 없는 데다가, 유력 가문의 귀족들이 그들과 대화 상대가 되어 줄 리도 없었다.

운 좋게 특별한 퀘스트를 얻은 게 아닌 이상,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건덕지가 없었다.워로드가 출시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왕가와 교류한 유저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들 중에서도 아예 기대도 하지 않고서 활동하다가 우연히 왕가와 엮인 퀘스트에 연관된 유저들이 대부분일 정도였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불과 지난주를 기점으로 인원에 제한이 없이 왕가와 관련된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 나타난 것이다.

‘찢어진 왕가의 인장’이라는 아이템이 여러 특정 사냥터들의 몬스터에게서 드랍되기 시작했고, 총 15개를 모아 복원에 성공하면 ‘왕가의 인장’이라는 퀘스트 아이템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유저들 사이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사냥터를 찾아 시도해 보고 있는 방식이었다.

다만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우선 사냥에 나선 플레이어에 비해, 최소 20레벨 이상의 몬스터에게서만 인장이 나온다는 것.

아무리 일반 몬스터를 사냥한다 해도, 20레벨 차이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수치였기 때문에 사냥을 시도하다가 죽는 유저들도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광기와 총애 스탯의 전투 보정을 동시에 받는 에일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했다.

‘아이템 드랍률이 굉장히 낮은 게 걱정되기는 하지만… 해 보는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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