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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59화 (59/227)

59화 시체굴 (3)

‘저 녀석… 보통 녀석이 아니다.’

앞서 달리고 있는 에일을 보며 툴론이 생각했다.

처음엔 그도 내심 속으로는 별것 아니라며 에일을 얕보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던전 내부의 적당한 포인트마다 촘촘히 함정을 설치해 둔 에일은 그를 이용해 자신보다 100레벨도 더 높은 유저 둘을 상대로 도망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조잡한 함정이라도 유저 한두 명을 상대로 시간 지연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고, 공격을 확실히 먹일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지려고만 하면 함정이 발동해 시간을 벌어 줬다.

함정을 설치한 간격들조차 정직하지 않고, 엇박자로 들어오는 함정도 많아 미리 예측하기가 힘든 구조였다.

20레벨 대 유저라고는 믿을 수 없는 노련함은 산전수전 다 겪어본 툴론에게도 명백히 규격 외의 표적이었다.

특히 그는 이곳에 온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을 텐데, 최소 며칠은 지냈던 것처럼 속속들이 지형을 파악하고 실전에서 이용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실력과 머리로는 불가능한 일.

하지만 학을 떼고 있는 건 그들뿐이 아니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죽을 맛이네.’

에일이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뒤를 쫓아오고 있는 두 플레이어의 공격에 직격당한 적은 없었지만, 구르고 부딪히면서 충분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우위에 서 있는 고레벨 유저를 상대로 살아남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온갖 수를 다 써 봐도 바짝 추격해 오는지라 도중에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리를 미리 파악해 뒀다는 것과 곳곳에 설치해 둔 함정 덕에 겨우겨우 시간을 끌며 연명할 수 있던 것일 뿐.

만약 장소를 미리 정하고 치밀하게 루트를 짜 두지 않았더라면, 15분은커녕 30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함정도 거의 다 써 버렸고, 더 이상 버티기는 무리야.’

에일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감각에 허리를 숙였다.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쳐간 강력한 화살이 벽에 박혀 균열을 만들었고, 에일은 그런 와중에서도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시간을 확인했다.

[경과 시간 ‘00:29:23’]

‘됐다.’

30분을 맞춰 놓았던 에일의 타이머가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확인한 에일은 곧장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를 본 추적자들은 순식간에 그를 따라잡을 기세로 거리를 좁혀 왔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또다시 함정이 발동했다.

콰르르르!

화염과 함께 떨어지는 낙석이 그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이번엔 조금 큰돈을 들였던 함정인 만큼 쉽게 눈에 띄지도 않았고, 비교적 많은 시간을 벌어다 줄 수 있었다.

아마란스의 길드원들도 계속해서 조잡한 함정들의 패턴에 익숙해져 있을 테니, 이번 것만큼은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힘들 것이라 예측했고, 그런 에일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에일은 그 틈에 길을 막고 있는 시체 머맨들을 따돌려 가며 한 층 더 아래로 향하는 길목으로 내려갔다.

지금까지 사방으로 연결되어 복잡한 구조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 에일이 향한 길목은 오로지 일직선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인 데다가 심지어 끝이 존재하는 막다른 길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만약 추적자들이 이곳까지 뒤따라온다면 꼼짝없이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두 인식하고 있음에도 에일은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촤악!

급히 길목을 끝까지 내려온 에일이 자리에 멈춰 섰다.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고여 있는 커다란 방 안이 그를 맞이했다.

에일이 도착한 이곳은 시체굴의 보스 몬스터가 자리 잡고 있는 보스룸이었다.

“구워어어어!”

바깥 슾지에 있던 머맨을 몇 십 배 정도 확대한 듯한 거대한 덩치가 에일을 보며 포효했다.

보스 몬스터, 킹 머맨.

항상 사람이 몰리는 인기 사냥터의 메인 보스 타이틀을 쥐고 있었지만, 굉장히 까다로운 패턴과 높은 난이도, 그리고 그에 비해서 나쁜 가성비로 인해 유저들 사이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몬스터였다.

원래 방으로 진입한 플레이어가 잠들어 있는 보스를 직접 깨워야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킹 머맨은 방 안에 아무도 없었음에도 이미 잠에서 깨어나 에일을 향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어느새 뒤따라온 툴론과 루카스가 방 안으로 난입했다.

“갑자기 알아서 막다른 길로 들어오다니 포기라도 한 건가?”

“너무 숨이 차서 말이야. 언제까지 도망칠 수도 없고.”

에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툴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서 있던 루카스가 그런 그를 아니꼽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실컷 발악하다가 밑천이 동나니 항복하시겠다?”

“나 혼자 아마란스를 상대로 어떻게 당해 내겠어.”

“하.”

츠츠츠!

에일의 뒤편에서 킹 머맨이 마법을 시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툴론과 루카스는 그에 대해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무리 보스 몬스터의 마법이라고 해도 어차피 까마득히 높은 레벨을 가진 그들에겐 피해를 입힐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뭐,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어?”

루카스가 활에 비스듬히 기댄 채 물었다.

시간이 남아돌거나 표적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가 묻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일종의 서비스 차원이었다.

죽기 직전에 보이는 표적의 반응도 의뢰인들에게는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가급적이면 추한 모습을 보이거나 목숨을 구걸하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타깃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길 말이라…….”

에일이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잠시 고민하는 기색으로 말을 끌었다.

그리고는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아주 희미하게 생겨나는 벽면의 금들을 바라봤다.

“이틀 동안 휴가 보내줄 테니까, 너희 의뢰인한테 안부나 전해주지 그래. 조만간 다시 구워 주러 가겠다고.”

“뭐……?”

콰아아앙!

에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의 벽면이 요란하게 터져나갔다.

정말 순식간에 동굴 천장과 벽이 쏟아져 내리며 파편이 튀었고, 당황한 툴론과 루카스는 낙석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몸을 날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콰아아아!

무너진 천장과 벽 틈 사이로 엄청난 양의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그들은 강력한 수압에 휘말려 순간 균형을 잃었고, 쥐고 있던 무기마저 놓치고 말았다.

방 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급히 뒤를 돌았지만, 이미 그들이 들어왔던 통로에서도 거센 물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저만한 물살을 거스르며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고, 출구가 완전히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XX!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건 설마……!”

툴론의 시선은 그제야 마법을 영창하고 있던 보스 몬스터에게로 향했다.

최후의 마법을 쏘아 보낸 킹 머맨은 어느새 모습이 흐릿해지며 소멸하고 있었다.

“전멸 패턴이 발동된 건가……?”

킹 머맨의 악명 높은 클리어 조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30분 안에 레이드를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주어진 시간 안에 공략을 완수하지 못하면 킹머맨의 마지막 패턴인 ‘왕의 분노’가 발동되었고, 공략을 시도하던 이들은 무조건 시체굴 전체에 물이 가득 차올라 전멸하게 되었다.

지금쯤이면 위쪽 입구조차도 킹머맨의 마법에 바위가 내려앉아 있을 터였고,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아마란스의 다른 조원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그렇게 물이 모두 차오른 뒤, 5분에서 10분 사이면 던전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호흡 부족으로 죽는 시간은 레벨과 스펙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3분을 넘지 못했다.

바로 위에 사람들이 가득한 인기 사냥터가 위치해 있음에도, 시체굴 내부가 유독 극단적으로 인기 없는 사냥터였던 이유도 누군가 보스 공략에 실패하면 다 같이 수장되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패턴은 30분 뒤에야 나타날 텐데……!”

상황 파악이 된 루카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그들도 보스와 이 패턴에 대해 미리 알지 못하고서 이곳까지 쫓아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던전 내부로 들어온 뒤 에일이 한 번 모습을 보였고, 습지에서 목격된 것은 오직 에일 한 명뿐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동료는 있지 않았기에, 최소 보스를 상대로 30분 이상 어그로를 끌어야 하는 이 방법은 절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숨겨 놓은 패거리라도 있던 거냐!”

“아니, 그랬다면 너희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입구 쪽에 수상한 녀석들이 들어오지 않나, 망을 봐달라고 돈을 좀 쥐여 준 게 전부다.”

거대한 바위 파편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에일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루카스는 순간 시체굴에 진입하기 전, 입구에서 자신들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녀석이 떠올랐다.

전사 복장을 입었던 놀란 눈치의 남자.

어딘가 짜증스러운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표적의 사주를 받은 녀석이었다.

“그리고 너희가 들어오는 순간, 보스 몬스터를 깨운 다음에 저걸 사용한 거지.”

에일이 손을 올려 뒤를 가리켰다.

그의 엄지가 가리키는 방향엔 이미 무릎까지 차오른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상처투성이의 허수아비가 하나 있었다.

허밋.

몬스터를 유도할 때 사용하는 미끼 역할 아이템이었고, 플레이어가 없이 어그로를 지속적으로 끌어 주는 역할도 수행 가능했다.

“웃기지 마라! 30분 넘게 유지되는 허밋 같은 게 존재할 리가……!”

“그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겠지.”

오직 각 교단의 공헌도 상점에서만 파는 물건, 공헌도를 무려 400포인트나 들여서 마련한 특수 허밋이었다.

“설마 이런 방법을 쓸 줄이야… 여기서 다 같이 죽자는 거냐?”

“아니. 너희만 죽어야지.”

“뭐……?”

툴론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에일은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는 일 없이, 그저 품속에서 아이템 하나를 슥 꺼내 들었다.

조그만 푸른색 구슬.

머맨이 극히 낮은 확률로 드랍하는 아이템인 ‘수중 보옥’이었다.

삼키면 10분간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희귀한 소모 아이템.

“언제 그런 걸………!”

“아슬아슬했지. 너희가 한 시간만 더 일찍 찾아왔어도 죽는 건 나였을 테니까.”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어느새 턱까지 차오른 수면이 그들을 압박해 왔다.

“조… 조장!”

루카스가 다급한 눈길로 툴론을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그라고 마땅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다 한들, 갑자기 수중 호흡과 관련된 아이템을 따로 챙겨 상비해 뒀을 리가 없었다.

“그럼 이틀 뒤에 보자고.”

사악한 웃음을 띈 에일이 수면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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