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시체굴 (2)
“쿠에에엑!”
던전 내에 리젠된 시체 머맨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녀석들은 단검을 빼든 루카스의 간단한 손짓만으로 순식간에 쓰러졌다.
레벨차가 워낙 큰 만큼 궁수 계열 직업인 루카스가 빼든 보조 무기 정도로 스킬 하나 없이 한 번에 정리되었다.
루카스는 도륙 난 몬스터들을 짓밟으며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가 사방에 뚫려 있어 굉장히 복잡한 구조의 던전이었다.
미리 내부 구조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를 해 온지라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안에 숨어 있을 타깃을 찾아내는 건 조금 더 복잡했다.
덕분에 툴론과 루카스가 흩어져 수색 작업을 시작한 지 어느새 10분이 넘게 지났다.
‘그래 봤자 시간문제지만.’
일단 이 안에 그들의 표적인 에일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아마란스의 길드원들이 안으로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틈을 노려 에일이 도중에 입구 쪽으로 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들의 조원 중 한 명이 입구를 굳게 지키고 있었고, 에일은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부리나케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표적이 고의로 그를 유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 조원은 그를 따라 추적을 하지도 않았다.
이곳 입구만 확실히 지키고 있다면 에일은 무슨 일을 벌인다 해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철컹!
그때 루카스가 발을 내딛었던 바닥이 움푹 꺼졌고, 양옆으로 기다란 창날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놀란 기색도 없이 쥐고 있던 단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향하던 창대들을 모두 토막냈다.
후두둑 땅에 떨어지는 창들을 바라본 그는 가볍게 혀를 찼다.
“아까부터 무슨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시체굴에 들어온 뒤, 온갖 곳에 놓여 있는 함정들을 계속해서 마주했다.
처음엔 도시에서 빠져나온 뒤 불안감을 느낀 표적이 입구 주변에 함정을 설치해 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조금 더 안으로 들어와 보니 아예 작정을 하고 함정으로 도배를 해 뒀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딴에는 머리를 최대한 굴려보려고 한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 숫자만 많지 하나같이 조잡한 함정들이라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이걸로 우리를 잡아 볼 생각을 했단 말이지?”
루카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조장은 방심하지 말라고 했지만, 역시나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는지조차 모르고서 허겁지겁 도망쳤을 게 눈에 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작 이 정도 대책만을 세워 두고, 이런 막다른 던전 안으로 들어오는 선택을 했을 리가 없다.
“조장?”
벽 너머로 기척을 느낀 루카스가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쪽에선 그의 예상대로 입구에서 찢어졌던 조장, 툴론이 모퉁이를 돌며 나타났다.
아무래도 서로 던전을 돌다가 동선이 겹쳐 마주친 모양이었다.
“벌써 15분이나 지났군.”
“판단력은 낙제점이지만 숨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모양인데요.”
“그래 봤자 얼마 안 남았다.”
표적이 숨을 수 있는 장소는 더 이상 많지 않았다.
쫓기는 표적의 입장에서 던전을 나돌아 다니다가는 마주치는 몬스터와의 전투를 벌이느라 발목이 묶이고 싸움 소리에 발각될 가능성이 더 컸으니, 아직도 발견이 되지 않은 건 표적이 한곳에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이라고 봐야 했다.
이제 남은 건 기껏해야 네다섯 곳의 포인트뿐이었다.
부스럭!
갑자기 한쪽에서 수상한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소리가 나타난 곳의 방향으로 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고, 그곳이 몬스터가 나타나는 위치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금방이었다.
파앗!
그 어떤 대화나 제스처도 필요 없이 툴론과 루카스는 동시에 달려 나갔다.
그러자 그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에일은 기둥 밖으로 뛰쳐나왔다.
‘젠장!’
에일이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조금은 더 버텨 주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피융!
순식간에 활시위를 당긴 루카스의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에일은 재빨리 기둥 뒤에 숨어 화살을 피해 냈고, 곧 모퉁이를 돌아 도망쳤다.
“내가 이걸 놓칠 것 같냐!”
냅다 소리친 루카스가 손아귀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단검 같은 투척용 무기가 아니라 기다란 굵은 밧줄이었다.
휘리릭!
화살이 박혔던 기둥에 그의 로프가 능숙하게 휘감겼고, 루카스는 팽팽히 잡아당겨 몸을 날렸다.
‘로프 액션……! 추적자였나.’
에일은 그제야 그의 직업을 확실히 유추해낼 수 있었다.
‘로프 액션’이라면 궁수 계열의 특화 직업 중 하나이자, 루카스의 직업인 ‘추적자’의 시그니처 스킬이었다.
추적자는 명명된 이름 그대로 추적과 PVP에 특화된 궁수직이었고, 빠른 기동성을 바탕으로 상대를 말려 죽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직업이었다.
성능이 뛰어난 접근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건 당연했다.
파앗!
그렇게 로프를 이용해 순식간에 둘의 거리가 좁혀졌고, 모퉁이를 돈 루카스의 활시위는 다시 한번 당겨져 팽팽히 늘어났다.
하지만 바로 그때.
보이지 않았던 실 하나가 그의 몸에 부딪혀 툭하고 끊어졌다.
퍼억!
반응할 새도 없이 옆에서 날아든 갈퀴손 모양의 나무 함정에 루카스는 몸이 붕 떠있는 상태에서 정면으로 얼굴을 얻어맞았고, 공중에서 균형을 잃은 채 땅에 곤두박질쳤다.
이번에도 역시 에일이 미리 설치해 둔 함정이 작동한 것이었다.
“이런 XX!”
격분한 루카스가 거의 넘어짐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에일은 이미 방금보다 더 많은 거리를 벌린 채 달아나고 있었다.
뒤쪽에서 따라온 툴론은 루카스를 단숨에 일으켜 세우고는 다시 거리를 좁혀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시간을 벌었다 한들 레벨 차로 인한 속도 차이 때문에 그들의 손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는 무리였다.
파바박!
루카스가 쏜 화살이 세 갈래 녹색 빛으로 나뉘어 에일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위력적인 그의 공격으로 인해 바위 벽엔 커다란 흠집이 남았고 파편이 주위로 튀었다.
하지만 막상 에일에게는 직접적인 피해를 전혀 주지 못했다.
‘이걸 피해?’
루카스와 툴론은 그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력으로 도망치고 있는 상태에서 정확하게 날아오는 화살을 뒤도 안돌아본 채 피해낸다는 것은 초보자가 요행으로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 이거 재밌는 자식이네?”
“흥분하지 마라.”
다시 한번 에일의 움직임을 따라 그들이 모퉁이를 돌자 이번엔 길을 막고 있는 얇은 밧줄이 보였다.
주변 환경에 맞춰 색깔까지 바뀌어져 있어서 무심코 어두운 지역을 지나치다간 함정에 빠질 수 있을 만한 녀석이었다.
루카스와 툴론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으며 밧줄을 건드리지 않고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것은 눈속임일 뿐, 진짜 장치는 밧줄의 뒤쪽에 가느다랗게 쳐져 있는 실이 있는 쪽이었다.
물론 아마란스의 길드원들도 그 사실을 모두 간파하고서, 밧줄을 뛰어넘자마자 자세를 낮추며 실을 지나쳤다.
역시 에일이 예상했던 대로 어지간한 건 다 눈치를 채는 모습이었다.
함정을 빠져나온 툴론은 곧바로 스킬을 발동시켰고, 순식간에 앞으로 도약하며 에일과의 거리를 좁혔다.
덜컹!
연달아 설치해 둔 에일의 함정이 추가로 발동되었지만, 톨론이 돌진기로 발동된 함정을 그대로 들이받으며 돌파했다.
그렇게 에일의 바로 뒤까지 쫓아온 툴론은 자신의 두 단검을 들어 올렸다.
스킬, 롤링 커터.
카가가가각!
원 형태로 휘둘러진 검격에 주변 벽과 바닥에 커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급히 물러선 에일의 목 부근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덕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에일은 상대의 준비 동작을 보고 어떤 스킬이 나올지 예상하는 데 성공해 공격 범위에서 미리 벗어났던 것이다.
‘크읏… 도적은 일반직인건가.’
사방에 튀는 파편에 인상을 찌푸리며 달리면서도 에일은 치열하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방금 발동한 두 개의 스킬들로 보아, 툴론은 특화를 타지 않은 일반 도적 클래스로 추측할 수 있었다.
워로드의 직업 시스템은 한 가지 예외를 두면 크게 기본 직업과 특화 직업으로 나뉘었는데 검사, 마법사 등 계열을 대표하는 기본 직업이 존재했고, 그 계열 안에서 또다시 나뉘는 특화 직업이 뒤를 이었다.
예를 들자면 특화 직업은 마법사라는 계열 안에서 한 가지로 특화된 네크로맨서나 소환사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딱히 어느 쪽이 특별히 좋다 하기보단, 조금 더 범용성이 있는 기본 직업과 특정 컨셉에 집중한 특화 직업으로 나뉜 장단점이 있는 부분이었다.
‘기본 직업들은 보통 컨셉 선택의 폭이 넓어. 어떤 방향으로 스킬트리를 맞췄을지 몰라 주의해야 한다.’
잠깐 도망치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일은 바깥으로 향하는 퇴로가 막힌 데다가 140레벨 근방의 플레이어 둘이 뒤꽁무니에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철커덩!
또다시 함정이 발동되었고 바닥에서 솟아오른 포획 덫을 피하기 위해 툴론은 옆으로 돌았다.
에일에게 스킬의 사정거리가 닿기 직전인 순간에 또 다시 동선을 낭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엔 루카스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반응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단지 그가 이번 함정을 회피하는 대신 화살을 쏘아 보내는 것을 선택했을 뿐.
화아악!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화살이 에일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저건……!’
함정의 효과를 보기 위해 슬쩍 뒤를 보던 에일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하필이면 주변에 엄폐물도 없는 데다가, 투사체의 속도가 워낙 빨라 피하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저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추적자의 징표’라는 직업 전용 스킬로 화살에 적중한 적에게 표식을 새겨 위치 파악, 접근 시 이동 속도 보너스, 추가 데미지 효과까지 전부 챙겨주는 괴물 같은 스킬이었다.
일단 한번 맞아 표식이 생겨나면 싸워 이기지 않는 이상, 그로부터 도망치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까앙!
급하게 무기를 스왑한 에일이 단검으로 검은 화살을 쳐내는 데 성공했다.
효력이 무시무시할 뿐이지 자체 데미지는 없는 스킬이라, 커다란 레벨 차이에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추적자의 징표’는 무기로 쳐낸다고 해결되는 스킬이 아니었다.
치이익!
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에일의 단검 칼날에 검은 표식이 새겨졌다.
“치잇!”
에일은 주저 없이 쥐고 있던 단검을 옆으로 휙 내던져 버렸다.
장비에 한번 표식 생긴 이상 스킬을 떨쳐낼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몸 쪽에 스킬을 맞았으면 아예 이런 방법도 불가능하니 그나마 선방한 것이었다.
‘희귀 등급 장비였는데… 어쩔 수 없지.’
아깝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죽게 되면 레벨다운에 장착 중인 장비 아이템도 최소 2개 이상은 떨어뜨릴 텐데, 단검 하나 정도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처음 얻었을 때에 비해 레벨 대도 꽤나 올랐으니, 어차피 곧 내다팔아야 할 걸 적당히 방생해 준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경과 시간 ‘00:19:34’]
에일은 미리 설정해 둔 타이머의 시간을 확인했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어떻게든 놈들에게서 버텨야 했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